세종대왕에게 대놓고 훈민정음을 반대하가 혼자만 파직당했던 신하였던
정창손은 계속해서 세종대왕에게 틈만 나면 막말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훗날 영의장까지 올랐던 기회주의자 정창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대답이 세종대왕이라고 말할것 같은데요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글을 깨우칠수 있도록 훈민정음까지 만들어
수수료도 받지않고 무료 배포까지했던
백성을 사랑한 그런 임금이었죠
그런데 그런 성군 세종대왕의 입에서
쌍욕이 나오게 했던 신하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정창손이라는 인물이죠
그런데 이 정창손은 영의정을 세번이나 역임했을 정도로
관료로써의 능력만 보면 굉장히 뛰어난 능력을 보였던 인물이지만
훗날엔 인간성은 별로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뜻밖에 인물인데요
그런 그가 어쩌다가 세종대왕에게 쌍욕을 먹고 파직까지 당하게 되었는지
오늘은 정창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정창손은 태종 2년인 1402년에 태어났는데
그로부터 39년후인 1441년에 관직에 몸을 담게 되었죠
그리고 1443년에는 집현전 응교가 되었지만
그에게 있어서 엄청난 충격을 주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바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반포하려고 했던 것이죠
그러자 정창손은 최만리, 하위지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반대에 나섰습니다
그때 그는 이런말을 하게 되는데요
"삼강행실도를 훈민정음으로 백성들에게 가르쳐봐야
태생이 천하고 멍청한 백성들은 바뀌지 않을것이다" 라고 했던 것이죠
훈민정음에 대해 반대하던 최만리는
그래도 정치적이고 과학적인 논리를 내세워
차분하게 반대했었기 때문에 세종도 그를 어쩌지 못했지만
정창손은 조선의 건국 이념이던 성리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을 하며 훈민정음을 깠던 것입니다
원래 성리학은 누구나 수양을 통해서 성인이 될수 있기 때문에
평생 수양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는 철학이 중심인 학문인데
정창손의 발언은 공자, 맹자때부터 내려온 유학과 성리학의 정신을
완벽하게 부정하는 말이었던 것이죠
그러자 세종은 반대상소를 올린 전원을
하루동안만 의금부에 투옥시키라고 명했던 반면
정창손 만큼은 그냥 파직시켜 버렸습니다
거기다가 항상 신하들과 의견이 대립할때는
신하들이 더이상 아무말 못하도록
논리적으로 깔끔하게 압살했던 세종이었지만
이때만큼은 분노에 휩쌓여 왕권을 이용해
반대파들을 쥐잡듯 잡아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빡친 세종은 "훈민정음을 통해 백성들이
효와 충을 깨우치기 더 쉬울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정창손에 대해 '용속한 선비' 라는 말을 했다고 하죠
(용속하다 : 평범하고 속되어 이렇다 할 특징이 없다)
그런데 이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표현이라서
굉장히 순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게다가 욕먹은 당사자인 정창손이 세종실록 편찬에
직접 참여했었기 때문에 엄청 순화해서 기록 했을테니
실제로는 세종이 그의 면전에 대고
쌍욕을 박아버렸을 확률이 높을거라고 하죠
그나마 당시 왕이 세종이었기에 목이 달아나지는 않았지
만약 연산군이나 태종 이방원 쯤 되었었다면
그는 목숨이 여러개라도 부족했을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드라마에서도 재연이 되기도 하는데요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삼강행실도에 대한 발언을 한 사람이
정창손이 아닌 이순지 라는 사람이 한것으로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 세종이 격분하여 이순지에게
"네놈이 유학자냐!" 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죠
그런데 왕이 혼자 백성을 위해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훈민정음을
그걸로 해봤자 안된다는 식으로 그냥 별 이유없이 까버리는 말을 들으면
왕이 누구든 엄청 열받을것 같기는 합니다
어쨌든 다시 집현전 응교로 복직은 될수 있었는데요
이후에도 세종이 불경을 간행하려 할때
성리학의 나라에서 불교를 숭상하는것 안된다며 맞서다가
또다시 좌천되었을 정도로 세종과는 격렬하게 맞부딪혔죠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훈민정음을 반대할땐 성리학을 완전히 무시하는 발언으로 반대했으면서
갑자기 성리학의 나라라면서 불교를 반대했다는건 모순이긴 합니다
하지만 운도좋았던 정창손은 다시 관직에 올라
1448년에는 집현전 부제학의 위치까지 오르게 되었죠
이때도 지속적으로 세종의 심기를 건드는 일을 하긴 했는데
바로 불교 숭배에 대해 반대하는 상소문을 지속적으로 올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집현전 부제학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고려사>와 <치평요람>, 세종이 죽은 이후엔 <세종실록>까지 편찬하는데
참여했죠
세종이 죽은 이후에도 관직 생활을 하면서
계속 승진 하다가 문종때는 병조판서까지 오르게 되었고
이후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이조판서를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사헌부에서 그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리는데요
그의 친척이던 홍원용이 이조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정창손이 이조판서에 오르자 친인척간에 같은 관청에서 근무하는건
금지되어 있다며 그를 관직 일선에서 물러나게 해야한다는
상소가 올라왔던 것이죠
하지만 단종은 자신의 아버지 문종실록의 편찬까지 맡았던
정창손의 손을 들어주며 그를 옹호해줬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마안가 그는 권력에 빌붙게 되는데요
바로 1453년, 계유정난이 일어난것이죠
이때 정창손은 문종과 단종의 은혜를 입었지만 바로 배신때린뒤
수양대군 편에서서 적극적으로 수양대군을 지지하며
계유정난에 가담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좌익공신 3등에 녹훈되어 봉원군에 봉해졌죠
그러던 어느날 사위이던 김질이 자신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엄청난 말을 꺼냈는데
바로 성삼문과 박팽년, 유응부 등 많은 사람들이
세조를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었죠
그러자 정창손은 사위 김질과 함께 얼른 세조에게 달려가
단종 복위 음모에 대해 모두 고해 바쳤고
이에 세조는 그를 좌익공신 3등에서 2등으로 올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좀 특이한 점은 김질이 자신을 찾아와 음모를 밝혔을때
그가 동료들을 배신했다는 비겁함에 기가 막혀하면서
김질에게 '더러운 놈'이라고 욕을 퍼부었다고 하죠
어쨌든 결국 김질과 정창손에의해 단종 복위 운동은 물거품이 되었고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유응부 등 사육신들은
모두 끌려가 처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정창손의 이 모습을 본 생육신 김시습은
그를 강하게 비판했다고 하죠
하지만 정창손은 이후로도 승승장구해
1457년에는 정승의 반열인 좌의정에 오르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1년후, 어머니가 사망해 3년상을 치르기 위해 사직을 청하자
세조는 부의를 내리면서 그를 영의정으로 임명하기 까지 했죠
세조의 신하로 있을때도 정창손은 많은 일을 하는데요
죽은 세조의 장남이던 세자 이장에게
'의경'이라는 시호를 올리는데 적극 앞장섰으며
이후 예종과 성종 대에도 계속해서 승승장구하며
관직생활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후 단종의 어머니이던 현덕왕후의 소릉 복위에 반대하기도 했고
성종이 왕비이던 윤씨를 폐하려고 할때는
영의정이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고 하죠
이런걸 보면 참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면서
눈치를 잘 살피며 그렇게 살아남은 인간인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1485년 84세의 나이로 사직을 하게 되었는데
이후 정창손의 집에서 괴이한 일이 발생하는데요
바로 집에서 귀신이 나온것입니다
성종실록, 성종 17년 11월 10일의 기록에는
'영의정 정창손의 집에는 귀신이 있어
집안의 물건들을 이리저리 옮긴다' 라는 기록이 있죠
그러자 아내가 집을 옮기자고 청했지만
정창손은 '나는 이미 늙었으니 비록 죽을지라도 어찌 요귀로 인해서 피하겠느냐'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후 집에 다시는 이상한 일이 없었다고 하죠
일각에서는 정창손의 집에 귀신이 나왔던 이유가
단종을 배신하고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복위를 반대했던 탓에
현덕왕후의 한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무런 능력이 없었다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인
영의정까지 오를수는 없었겠죠
하지만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군주에 대한 충심은 많이 있지는 않았던
그런 인물이었던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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