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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한명련(전,란 실제 역사 인물) 노비에서 임진왜란 영웅이 되었지만 토사구팽 되어 반역자가 된 남자

by 사탐과탐 2024.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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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에서 임진왜란 영웅이 되었지만 토사구팽 되어 반역자로 몰려버린 남자
넷플릭스 전,란 실제 역사 인물인 한명련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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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선시대 암울한 전란의 시대를 살았던 흥미진진한 인물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그는 바로 임진왜란의 영웅에서 한순간에 반역자로 전락해버린 한명련의 이야기입니다

 

천민 출신으로 시작해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되고, 결국엔 반역자로 몰락하기까지

그의 삶은 마치 한 편의 대하드라마 같은데요

 

지금부터 한명련의 일대기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한명련은 황해도 문화현 출신의 천민이었습니다

그의 출생 연도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당시 청년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한명련은 주저 없이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영남 지방에서 왜적과 맞서 싸우며 놀라운 용맹을 떨쳤죠

 

한명련의 뛰어난 무예와 지략은 곧 조정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1594년, 그는 경상 우도의 별장으로 임명되어 진지를 보수하고 군대를 훈련시키는 중책을 맡게 되었죠

 

이후 한명련은 수많은 전장에서 맹활약하며, 이름을 날렸고 나날이 승승장구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의 용맹함은 곧 조정에 보고되었고, 선조는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팔도에서 싸우고 있는 장수들 중에 공적이 뚜렷하여 칭송할 만한 자는 누구인가?"

 

그러자 대신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죠

"비록 천민이지만 한명련이 가장 잘 싸운다 하옵니다"

이렇게 한명련은 천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정3품 별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천민출신이었던 그는 관직을 하사받게 되자,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더욱 엄청난 활약을 펼치게 됩니다.

 

한명련은 명장 김덕령과 함께 각각 도원수 권율의 왼팔, 오른팔이 되어 왜군을 휩쓸기 시작했죠

그는 마치 목숨이 여러 개 있는 듯 죽음 따윈 두려워하지 않으며 수많은 왜군을 베어 넘겼습니다

 

그리고 1597년 정유재란 때, 한명련은 다시 한 번 그의 용맹함을 증명합니다

그는 공주와 회덕에서 왜적과 맞서 싸웠는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선봉에 서서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적병을 닥치는 대로 쓰러뜨리며 큰 승리를 거두었죠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명련은 부상을 입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선조는 매우 걱정했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선조는 이렇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한명련은 어디에 있는가? 칼날에 오른 팔을 부상당하였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떠한가? 중상은 아닌것인가?"

라고 말하고는 실력이 좋은 의원을 보내 확실히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조치했다고 하죠

 

또한 천민이었기 때문에 형편이 좋지 않았던 한명련에게 부족함 없이 급료를 넉넉히 챙겨주었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한명련은 선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전쟁 영웅이 되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무한 신뢰와 확실한 보상을 받은 한명련은 계속해서 공적을 올리면서 전국팔도에 명성을 알렸죠

명나라 제독 마귀 또한 조선의 여러 장수 가운데 이순신, 권율, 정기룡, 한명련 등이 제일가는 명장이라고 인정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 한명련은 종2품 오위장이라는 높은 지위에 올랐습니다

천민 출신으로 이렇게 높은 지위에 오른 것은 당시 조선시대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죠

 

하지만 모든 것이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한명련의 급격한 신분상승은 많은 이들의 시기와 질투를 불러일으켰던 것입니다

특히 광해군을 지지하는 북인 세력은 한명련을 집중적으로 견제했죠

그들은 틈만나면 천민출신 한명련의 신분을 꼬투리잡아 연일 상소를 올렸죠

결국 한명련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변방으로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운명의 아이러니라고 할까요?

한명련을 견제하던 광해군이 즉위한 후, 오히려 한명련을 다시 불러들입니다

 

그렇게 한명련은 다시 한양으로 돌아와 광해군의 신임을 받으며 길주 목사를 거친 후 순변사의 자리에까지 올랐죠

하지만 이 영광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즉위 하게 된것 입니다

가만히 있다가는 화를 입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한명련은 사직을 요청하며 귀향하기를 원했지만, 인조는 이를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명련은 역모 혐의로 체포되었죠

하지만 그를 압송하던 중, 뜻밖의 인물이 그를 구출합니다

바로 북방을 지키던 명장 이괄이었죠

 

이괄 역시 인조반정 공신이었지만, 자신의 공에 걸맞지 않은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며 앙심을 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의 아들마저 역모죄로 몰리게 되어 굉장히 입지가 좁아진 상태였죠

 

이렇게 해서 한명련은 이괄의 반란에 가담하게 됩니다

1624년 1월 22일, 이괄과 한명련은 1만 2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한양을 향해 진격했습니다

그들은 교묘하게 관군과의 교전을 피하며 2월 9일, 무혈입성에 성공하는데요

하지만 이괄의 난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불과 이틀 만에 관군에 의해 진압되고 말았기 때문이죠

한명련은 결국 2월 14일에 부하들의 배신으로 목숨을 잃고 맙니다

 

그렇게 임진왜란의 영웅이었던 한명련은 반역자로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한명련의 아들 한윤은 아버지의 죽음에 큰 원한을 품고 후금으로 망명해버리고 마는데요

그는 후에 후금의 장수가 되어 조선 침략의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되죠

 

한윤은 정묘호란 때 후금군의 선봉에 서서 의주성에 잠입해 군기창고를 불태우는 등 조선에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조선 사람들에게 '한적'이라 불리며 매국노로 낙인찍히게 되었죠

 

이처럼 한명련 가문의 비극은 다음 세대까지 이어졌던 겁니다

임진왜란의 영웅에서 반역자로, 그리고 그의 아들은 조국을 배신한 매국노가 된 아이러니한 결말입니다

 

한명련은 임진왜란의 발발로 암울했던 전란 시대에 목숨을 받쳐 나라를 지켜냈지만, 전쟁이 끝나자 천민이었다는 이유만으로 토사구팽 당하면서 좌천되었죠

그리고 훗날 다시 조정에서 부르자 충성을 다 했지만 인조반정으로 인해 졸지에 또다시 토사구팽 당하며 생을 마감했으니 그의 아들이 조선을 증오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지금까지 천민에서 임진왜란의 영웅이 되었지만 두번이나 토사구팽을 당해 결국 반역자로 생을 마감한 한명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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