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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선조. (전,란의 실제 역사) 그가 조선 최악의 왕인 3가지 이유

by 사탐과탐 2024.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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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임금이 조선시대 최악의 왕인 3가지 이유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은 조선 시대의 무능했던 암군들 중

인조와 함께 최악의 왕으로 손꼽히는 선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선조는 왜 그렇게 무능한 왕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일까요?

조선의 14대 왕 선조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백성들을 버리고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머나먼 의주까지 도망갔던 왕이었죠

 

하지만 선조가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그가 단순히 한양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늘 영상에서는 선조가 최악의 왕으로 평가받는 세 가지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선조는 1567년 3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중종의 손자이자 덕흥군의 아들로, 사실 왕위 계승 서열로 따지면 꽤 뒤처진 인물이었죠

하지만 명종의 후사가 없었고, 다른 왕자들은 나이가 어려 선조가 왕위에 오르게 됐습니다

 

즉위 당시만 해도 선조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그의 40년 넘는 재위 기간 동안, 조선은 큰 위기를 맞게 되죠

그럼 이제 선조가 최악의 왕으로 평가받는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선조는 25년이나 왕위에 있었지만, 이렇다 할 업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조선의 문제들은 더욱 심각해졌죠

노비 인구 증가, 토지 잠식, 군역과 요역의 문란 등

각종 문제들이 오랜 시간 계속됐지만 선조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부족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신하들이 대동법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수미법을 제안했을 때도

선조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지금 시행하면 백성들의 반발이 심할 거라며 시행을 미루기만 했죠

 

그나마 시도한 대공수미법도 얼마 못 가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선조 시대에는 어떤 의미 있는 개혁도 이뤄지지 않았죠

더 충격적인 건 선조가 나라 살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겁니다

38년이나 왕 노릇을 하고도 말이죠

 

선조 38년,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역이 수천 리가 되지만

산천이 많이 차지하고 있어 무엇 하나 제대로 생산되는 곳이 없다

산에는 나무만 있고 물에는 돌만 있을 뿐이라서

중원에 있는 하나의 도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원의 1도는 매우 부강해서 우리의 생산력으로는 따라잡을 수가 없다

왜국 역시 우리나라처럼 가난하지는 않다"

 

국가 재정과 세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없었던 겁니다

심지어 고려 시대와 비교하며 한탄까지 했다고 하네요

이런 무능한 통치로 선조 시대 내내

조선의 구조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지 못한 채 오히려 점점 악화되어 갔죠

 

물론 선조에게도 장점은 있었습니다

그는 인재를 알아보는 눈은 있었죠

이순신, 류성룡, 이원익 등 뛰어난 인재들을 등용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인재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오히려 그들의 능력을 시기하고 견제하기에 바빴죠

 

또 선조는 붕당 정치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동인과 서인을 번갈아가며 지지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당파 간의 갈등만 커지게 만들었을 뿐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오히려 비효율적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선조의 무능함은 '정여립의 난' 사건에서도 드러났습니다

1589년, 동인 계열의 정여립이 반란을 계획하고 있다는 고발이 들어왔죠

하지만 이는 사실 모함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선조는 이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서인 측의 주장만 듣고 판단한 끝에

결과적으로 동인 계열의 수많은 인재들이 무고하게 희생되는 '기축옥사'가 일어났죠

 

이 사건으로 동서로 나뉜 당의 대립이 더욱 심해졌고, 조정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습니다

결국 이는 임진왜란 때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죠

선조의 또 다른 문제는 극도로 이기적이고 비정했다는 겁니다

특히 임진왜란 때 그의 행동은 충격적이기까지 했죠

왜군이 쳐들어오자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갔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명나라로 도망가려고까지 했죠

의주에 도착한 선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천자의 나라에서 죽는 것은 괜찮지만 왜적의 손에 죽을 수는 없다"

자신의 안위만 걱정할 뿐 나라와 백성은 안중에도 없었던 거죠

 

더 가관인 건 도망가는 과정에서 백성들의 피난길마저 막았다는 겁니다

임진강의 배들을 모두 불태워버렸거든요

왜군의 추격을 막겠다는 핑계였지만,

결과적으로 수많은 백성들이 강을 건너지 못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평양성에서는 더 악랄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평양을 지키겠다"고 선언해 놓고 밤중에 몰래 도망쳐버린 거죠

속아 넘어간 백성들은 결국 왜군에게 학살당했습니다

 

선조의 도주 계획은 명나라마저 당황시켰습니다

명 조정에서는 "혹시 조선이 일본과 내통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였죠

그만큼 선조의 행동이 비정상적이었다는 겁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선조의 이기심은 계속됐습니다

공을 세운 장수들을 시기하고 견제했죠

특히 이순신에 대한 선조의 태도는 정말 악랄했습니다

 

이순신이 13척의 배로 300척의 왜군을 물리친 명량 해전

그 위대한 승리 이후에도 선조는 이순신을 칭찬하기는커녕 오히려 경계했습니다

이순신의 인기가 자신보다 높아지는 걸 견디지 못한 거죠

 

심지어 전쟁 중 이순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선조는 이순신에게 고기반찬을 하사했습니다

상중인 사람에게 고기를 보내다니, 이건 거의 조롱에 가까운 행동이었죠

 

때문에 이순신이 난중일기에 이렇게 적은 내용도 있습니다

"비통, 비통하다"

선조의 이기심과 질투심은 전쟁 영웅에 대한 예우는커녕

그를 모욕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겁니다

 

선조의 의심병은 이순신 장군뿐만 아니라 다른 전쟁 영웅들에게도 무자비하게 적용됐습니다

대표적인 피해자가 바로 의병장 김덕령이죠

김덕령은 임진왜란 때 전라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하지만 선조는 그를 의심했고, 결국 1596년 김덕령은 모함을 받아 체포됩니다

고문을 받던 김덕령은 결국 옥사했죠

 

재판 과정에서 그의 결백이 밝혀졌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 후였습니다

이들의 죽음은 당시 의병들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렸고

이는 곧 조선의 국방력 약화로 이어졌죠

선조의 이런 의심병과 배은망덕한 행태는

충신들의 충성심을 꺾고 국가를 뿌리째 흔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왜란이 끝난 이후에도 정신을 못 차린 선조는 공신 책봉 과정에서도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자신을 따라 의주까지 도망간 신하들을 '호성공신'으로 대부분 책봉한 반면

실제로 전투에 참여해 공을 세운 장수들은 '선무공신'으로 소수만 책봉했죠

이에 대해 당시 신하들도 "단순히 왕을 호위한 신하들이

전쟁터에서 공을 세운 이들보다 대우받는 것은 마땅치 않다"며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선조는 이를 무시했죠

이런 선조의 행동은 단순히 개인의 성격 문제를 넘어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질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선조의 가장 큰 실패는 바로 자식 농사였는데요

선조의 아들들 중 광해군과 영창대군을 제외하면

거의 모두가 상상을 초월하는 인간 말종들이었죠

대표적으로 임해군과 순화군을 보겠습니다

이 둘은 그야말로 연쇄살인마 수준의 흉악범이었죠

 

임해군은 백성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재물을 빼앗았습니다

그의 횡포가 얼마나 심했는지 임진왜란 때는 그의 횡포에 지친 백성들이

임해군을 붙잡아 일본군에게 넘겨줘버릴 정도였죠

순화군은 더 심각했습니다

그의 패악질은 수원을 아예 텅 비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그의 횡포에 지친 백성들과 지방관들이 도망가버리면서 허허벌판이 된 거죠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순화군의 범죄가 하루 단위로 기록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무고한 백성을 해치는 것은 기본으로 온갖 흉악 범죄를 저질렀죠

하지만 이런 패륜아들의 횡포를 보고받은 선조의 태도는 더욱 가관이었습니다

아들들의 범죄를 제대로 처벌하기는커녕 오히려 감싸고 돌기만 했거든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반면 그나마 제대로 된 아들이었던 광해군은 오히려 핍박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분조를 이끌며 훌륭히 활약했던 광해군을

선조는 끊임없이 견제하고 시기했죠

때문에 광해군마저 왕이 된 뒤 폭군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받은 아버지의 핍박이 그를 비뚤어지게 만든 거죠

 

이처럼 선조는 제대로 된 왕자 교육에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 조선의 왕실은 인간 말종들로 가득 차게 됐고

이는 훗날 조선의 큰 골칫거리가 됩니다

 

선조의 후계 구도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그는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도 끊임없이 견제했죠

심지어 말년에는 어린 영창대군을 내세워 광해군을 위협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광해군 즉위 후 영창대군이 살해되는 비극으로 이어졌고

조선 왕실의 내분을 더욱 심화시켰죠

 

선조의 이런 행태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넘어

조선 왕조를 밑바닥부터 흔드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왕실의 기강이 무너지고 왕자들이 범죄자가 되는 상황은

국가의 존재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선조가 최악의 왕으로 평가받는 세 가지 이유를 살펴봤는데요

무능한 통치와 업적 부족, 이기적이고 비정한 성격, 그리고 최악의 자식 농사

이 세 가지가 바로 선조를 조선 최악의 왕으로 만든 요인들이었습니다

 

선조의 실패는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의 무능과 이기심은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더욱 자세히 드러났고

그 결과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한 그의 잘못된 자식 교육은 조선 왕실의 기강을 무너뜨렸고

이는 훗날 조선이라는 나라가 망하는데 영향을 주게 되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역사 속 최악의 왕 선조

그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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