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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항우. 긴말 필요없는 중국 역사상 최강의 무장.

by 사탐과탐 2022.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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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는 긴말 필요없는 중국 역사상 최강의 무장으로 서초패왕이라고 불리는데요
엄청난 무력은 가지고 있었지만 사람을 잘 쓸줄몰라 폭망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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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에 관한 소설중 우리나라에서 삼국지 다음으로 유명한것 중 하나가 아마도 초한지일텐데요

초한지의 주인공은 마지막에 천하를 통일한 한고조 유방이라고 볼수있지만 압도적인 힘으로 가로막는 것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항우의 엄청난 무력은 이게 정말 사실일까?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충격적이죠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중국 역사상 최강의 무력을 갖고있다고 평가받는 서초패왕 항우입니다

 

중국 초나라의 군주였던 항우는 고작 몇천 명의 병사로 수십만 대군을 박살내거나 단신으로 기병 수백여 명을 썰어버리는 등 기록만 보면 실제로 있었던일이 아니라 마치 무협지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죠

이러한 활약상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전투가 바로 거록대전과 팽성대전인데요

 

특히 그중에서도 고작 3만의 군사로 60만 대군과 정면으로 맞붙어 상대를 초토화시키고 별다른 피해조차 없이 적군 30만 명을 일방적으로 살육한 팽성대전의 경우는 세계 전쟁사를 통틀어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합니다

그렇게 이 팽성의 전투는 오늘날까지 전설로 전해지는 항우의 괴력과 군사적 능력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전투가 되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러한 기록들을 온전히 믿을수는 없지만 실제 역사인 사기에도 대부분이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신뢰성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비교대상이 없는 뛰어난 무력과 카리스마로 순식간에 천하를 평정하고 정점에 올랐지만 주변에 있는 뛰어난 인재들을 제대로 쓸줄 몰라서 몰락해버린 드라마틱한 삶과 우미인과의 로맨스 덕분에 후대에 초한지나 패왕별희등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생산하고 무수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죠

 

항우는 관우나 제갈량, 악비 같은 충신도 아니고 라이벌인 한고조나 당태종 같은 명군도 아니었지만 단지 압도적인 무력과 지휘력을 바탕으로 한 카리스마만으로 그들과 나란히 중국을 대표하는 영웅호걸이 된것이죠

 

항우는 기원전 232년 초나라의 팽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은 항이고 본명은 적이며 우는 그의 자인데요

그의 할아버지는 초나라 최후의 명장이라 불리는 항연이었고 그의 집안인 항 씨는 대대로 초나라의 장수를 지낸 명문 중의 명문이었죠

 

하지만 항우가 어느정도 나이를 먹었을 때는 이미 조국인 초나라가 멸망하고 난 뒤였습니다

항우와 같이 살고있던 작은아버지 항량은 조카를 위해 글과 무술을 가르쳤지만 항우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자 화가 나서 그를 꾸짖었죠

그러자 항우는 "글은 제 성과 이름을 쓸줄알정도면 되고 검술 역시 제 한몸을 지킬수있으면 충분합니다

저는 이런 것보다는 만인을 상대해서 이길수 있는 학문을 배우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항량은 조카인 항우가 큰 인물이 될 자질이 있다고 느꼈죠

게다가 항우는 어느날 진시황이 자신이 살고있는 회계 지역을 방문하자 진시황의 행렬을 구경하다 갑자기 "언젠가는 내가 저 자리를 차지하고 말테다!" 라는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부터 천하에 대한 야심이 상당했다는 증거죠

항우가 장성했을 무렵 진나라의 상황은 그야말로 엉망이었습니다

진시황의 시대부터 이어진 폭정으로 백성들은 고통받았고 뒤를 이은 이대 황제 호해는 환관 조고에게 일을 맡긴 채 술과 미녀에 빠져지냈죠

 

결국 기원전 209년에 참다못한 백성들이 폭발하며 진승과 오광의 난을 기점으로 여러 군현의 백성들이 모두 자신들의 지역을 다스리던 진나라 관리를 때려죽이고 난을 일으키는데 참여했습니다

진나라에 반기를 들지 않는 관리들은 모두 목숨을 잃는 분위기가 되자 항우가 살고있던 회계의 태수 은통도 죽음을 피하기 위해 그 지방의 유력자였던 항우의 숙부 항량을 끌어들여 난을 일으키려 했죠

 

하지만 항량은 은통같은 인물은 거사를 함께 하기에 너무 그릇이 작은 소인배라고 판단하며

조카인 항우에게 몰래 지시를 내립니다

얼마후 은통과 항량이 회담을 나누던 장소에 갑자기 항우가 나타나 단칼에 은통의 목을 베어버렸고 이후 항량이 직접 회계를 다스리게 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항우는 은통의 목을 벤후에도 달려드는 군사들 백여명을 혼자서 모두 베어버리며 은통의 남은 세력들을 굴복시켰습니다

이후 항량은 진나라에 맞서기 위해 군을 출동시키는한편 자신들이 초나라를 계승한다는 명분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멸망한 초나라 왕족의 후예를 찾아내 그를 초나라의 회왕으로 삼게되죠

 

이후 많은 사람들이 항량군과 함께 싸우기 위해 찾아왔는데 이중에는 훗날 항우의 숙적이 되는 한고조 유방도 있었습니다

항우는 항량에게 군대를 받아 별동대로 활동하게 되는데 양성이라는 지역을 공격할때 수비군들이 격렬히 저항하며 애를 먹이자 성을 점령한후 그곳의 군인과 백성들을 모조리 생매장시켜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는데요

 

그리고 얼마후 성양이라는 곳에서도 또 다시 학살을 저지르는 잔혹한 모습을 보였죠

같은해 음력 9월 숙부 항량이 이끄는 본대가 진나라의 명장 장한이 이끄는 부대와의 전투에서 패배했고 그과정에서 항량이 전사하게 됩니다

 

항량을 죽인 장한은 곧바로 조나라를 공격했고 조나라가 무너지면 다음은 자신들의 차례가 될것이라는것을 알고있던 초나라에서는 즉시 지원군을 보내기로 결정했죠

당시 초나라는 진나라의 중심지인 관중으로 진군할 계획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관중으로 진군할 병력과 조나라를 도울 병력을 따로 나눠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초나라의 회왕이 "진나라의 중심지인 관중에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천하의 왕이 될 것이다"라고 선언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항우는 조나라를 돕기보다는 관중으로 진군하는 쪽에 서기를 원했지만 회왕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항우가 얼마 전 양성에서 사람들을 잔인하게 파묻었던 것을 지적하면서 잔혹한 성품의 항우를 관중으로 보내면 민심이 모두 돌아설 것이기 때문에 군사적 역량은 떨어지지만 차라리 백성들에게 관대한 유방을 보내는 것이 낫다고 회왕을 설득한 끝에 결국 서쪽에 있는 관중으로 먼저 향하는 것은 유방이 되었죠

 

항우는 별다른 성과도 없는 조나라 원군으로 간다는 사실에 불만을 품었지만 분을 참고 회왕의 명령에 따랐습니다

당시 조나라 구원군의 대장은 항우가 아닌 송의라는 사람이었는데 송의가 조나라를 도울 생각은 하지 않고 시간만 끌고있자 항우가 쿠데타를 일으켜 그를 제거한후 군사들을 이끌고 출정하게 되죠

 

송의가 쓸데없이 시간을 끈탓에 조나라는 몹시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있었기 때문에 항우는 즉시 자신의 부하인 영포와 용저에게 2만의 병사를 줘서 선발대로 먼저 보냅니다

선발대가 시간을 버는동안 배를 타고 황하를 건너 본대를 도착시킨 항우는 타고온 배를 모두 부숴버리고 병사들에게 3일치 식량만 나눠준 후 남은 식량 또한 모두 버리면서 죽음을 각오한채 전투에 임했죠

 

얼마 후 초나라와 진나라의 운명이 걸린 거록대전이 시작되었는데 무려 아홉번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혈투를 벌인끝에 항우군의 대승리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초나라 병사들은 항우의 지휘 아래 엄청난 전투력을 발휘해 한 사람이 진나라 병사 10명을 당해낼 기세를 보여줬는데 병사들이 내지르는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 정도였다고 하죠

 

이때 항우를 제외한 다른 제후들은 거록 주변에 진지를 세우고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양군이 보여주는 치열한 전투에 압도당해 아무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고 그저 벌벌 떨거나 식은땀만 흘리면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마침내 항우는 진나라군을 문자 그대로 개박살내고 난 후 주변에 있던 제후들의 부대를 불러들였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때 모든 제후들이 무릎을 꿇고 기어서 항우의 진영으로 왔는데 감히 고개를 들어 항우를 바라보는 제후가 없었다고 하죠

이로서 항우는 대번에 모든 제후들을 제압하며 제후들의 상장군이 되었고 제후들은 모두 항우의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항우는 진나라의 주력군을 이끌던 장한의 항복을 받아내면서 사실상 진나라의 멸망을 결정지은 후 곧바로 진나라의 수도 함양으로 진군하기 시작했죠

 

하지만 이때 항우는 돌이킬수 없는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데 당시 항우에게 항복한 20만명가량의 진나라군 포로들이 함양에 빨리 가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신안이라는 지역에서 이들 모두를 생매장해 죽여버리는 끔찍한 대학살을 저지른 것입니다

 

처음에 군을 일으킬때 회왕이 관중으로 먼저 들어서는 사람을 천하의 왕으로 인정한다고 선언했는데 항우가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던 진나라 병사들은 항우의 학살소식을 전해듣고 어차피 항복해도 죽을 바에는 싸우다 죽자며 격렬하게 저항한 탓에 결국 항우는 유방보다 늦게 도착을 하게 되는데요

 

약속대로라면 유방이 왕이 돼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자신이 모든 면에서 유방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항우는 이를 순순히 인정할수 없었기 때문에 거느리고 있는 40만의 병사를 이끌고 유방을 박살내버리려하죠

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란 유방은 항우의 숙부인 항량에게 중재를 부탁했고 그렇게 항우와 유방은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 근처의 홍문에서 회담을 가지게 됩니다

 

이때 항우의 책사였던 범증은 유방의 재능을 꿰뚫어보고 오늘 이자리에서 반드시 유방을 죽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유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항우는 별다른 명분도 없이 죽일수는 없다며 그를 놓아줘버렸는데요

결국 유방이 살아서 도망가자 분통이 터진 범증이 "어린애와 함께 큰일을 도모할 수 없다! 이번 기회를 날려먹었으니, 이제 우린 유방한테 다 죽었다!"라고 항우에게 크게 소리쳤죠

 

그리고 범증의 말대로 이날 항우의 방심은 끝내 파멸을 불러오게 됩니다

이후 함양에 들어간 항우는 성안에 있던 백성들을 학살하고 이미 유방에게 항복했던 진나라의 왕 자영을 죽였으며 진나라의 궁궐에 불을 질러 모든것을 불태워버렸죠

그가 머무는동안 얼마나 많은 파괴와 학살을 저질렀던지 얼마전에 유방이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풍요로웠던 관중땅은 순식간에 폐허로 변해버렸습니다

 

게다가 항우는 자신에게 왕자리를 넘기고 조용한 삶을 살기위해 떠나는 초나라 회왕마저

부하를 보내 암살해버렸죠

그리고 눈엣가시같던 유방은 파촉의 왕으로 임명해 사실상 감옥이나 다름없는 오지로 보내버렸는데요

이후 항우는 중원 전체를 다스리기 좋은 위치에 있는 관중지역에 남아야 한다는 신하들의 청을 무시한채 자신의 본거지인 팽성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관중을 포기하고 대학살을 저질렀으며 한때 자신이 모시던 회왕마저 살해한 사건들은

훗날 항우가 유방과의 대결에서 패배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죠

그리고 중국역사상 최고의 명장중 하나라고 불리던 한신도 당시에는 항우의 부하였는데 한신의 능력을 높이 사지 않던 항우는 그가 내는 의견을 철저하게 무시했습니다

 

이에 상심한 한신은 유방을 찾아갔고 유방은 그를 대원수로 임명했죠

마침내 기원전 206년 8월 파촉에 들어간 지 겨우 4개월 만에 한왕 유방은 대원수 한신을 앞세워 관중 방향으로 군사를 일으켰는데요

그 길목을 지키고 있던 것은 혹시라도 유방이 변심했을 경우를 대비해 항우가 미리 배치해둔 진나라의 명장 장한과 그 부하들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장한이 충분히 유방을 막아낼수 있을것이라 믿은 항우의 예상과 달리 한신의 지략을 앞세운 한나라군은 장한의 군대를 박살내버리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뒤 관중지역까지 평정해버렸죠

이에 항우는 유방을 응징하려 했지만 마침 제나라에서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바람에 본거지인 팽성을 비워둔채 반란을 진압하러 떠날수밖에 없었는데요

 

얼마후 항우가 반란을 진압하고 또다시 항복한 군사들을 생매장하는 사이 유방은 자신의 밑에 수많은 제후들을 불러모으며 무려 60만에 가까운 병력을 모아 항우의 본거지인 팽성마저 점령해버립니다

자신의 본거지를 유방에게 뺏겼다는 소식을 들은 항우는 불같이 화를 내며 정예병 3만명만을 이끌고 팽성을 되찾으러 떠나게되죠

 

자신들을 상대하러 온 항우의 병력이 고작 3만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은 유방은 자신만만하게 그를 상대하러 나섰지만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 정예병의 위력은 그들의 상상을 초월할정도로 강력했습니다

항우와 초나라군은 밤중에 팽성의 서쪽인 소현에 도착한 뒤 그때부터 동쪽으로 진군하며 눈 앞에 보이는 한나라군을 모조리 쓸어버리기 시작했는데요

 

공포에 질린 한나라 연합군은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한채 10만명 정도의 병사들이 초나라군에 무참히 살육당했고 겁에 질려 남쪽으로 도망친 병사들 또한 수수라는 강 근처에서 추격해온 항우군의 손에 1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죠

수수는 한나라군의 시체로 막혀 물이 흐르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팽성전투 이후에도 항우는 탁월한 지휘력을 바탕으로 참모인 범증의 뛰어난 계책까지 더해지면서 유방과의 싸움에서 계속 승리를 거두는데요

하지만 항우의 부하였다가 유방에게 항복한 '진평'이 항우와 범증의 사이를 갈라놓는 이간책을 쓰면서 결국에는 항우가 범증을 내치게 되고 이에 상심한 범증은 고향으로 내려간 후 병에 걸려 죽고 말았죠

 

그 후에도 항우는 유방과의 싸움에서 계속 승리를 거뒀지만 항우가 유방과 대치하는 틈을 타 하북지역을 평정한 한신까지 합세하자 결국 해하라는 지역에서 유방이 이끄는 한나라군의 포위망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게다가 한나라군 참모 장량의 계책으로 사방을 포위한 한나라 병사들이 초나라 진영을 향해 초나라의 민요를 들려주자 고향에 있는 가족생각이 난 병사들은 밤을 틈타서 대부분이 한나라에 항복해버렸죠

 

그렇게 항우의 곁에는 수백 명의 병사밖에 남지 않았고 궁지에 몰린 항우는 자신들의 고향인 강남으로 가기위해 오강이라는 지역으로 향합니다

눈앞을 가로막는 모든것을 처부수는 항우의 압도적인 무력 덕분에 100만에 달하는 한군들의 포위망을 돌파하는데는 기적적으로 성공했지만 그과정에서 많은 병사들이 죽으면서 이제 항우의 곁에 남은 것은 단지 28명뿐이었죠

 

이후에도 한의 관영이 이끄는 정예병 5천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항우는 그들을 단 28기의 병사만으로 격파하였고 마침내 오강에 도착해 그때까지 자신을 따르던 병사들 26명을 모두 강남으로 향하는 배에 태웠습니다

몇 천 명을 상대로 싸워 겨우 두 명만이 죽고 그들을 돌파해버린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병사들은 모두 배에 탔지만 항우는 처음 회계에서 거병할 때 자신을 따른 8천의 강동출신 젊은이들을 모두 잃고 이제 오직 26명만 살아남았으니 스스로가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기며 병사들만을 떠나보냈죠

 

이후 항우는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수백 명을 죽인 후 많은 부상을 입게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감합니다

전술적 영역에서 항우는 최고이자 최강의 지휘관 중 한 명이었으며 그 천부적인 군사적 능력으로 거병 후 고작 2년만에 진의 멸망을 확정지은 후 유방을 포함한 모든 제후들을 무릎 꿇리고 중국의 패자로 군림했죠

 

인류 역사를 통틀어도 이토록 단기간에 항우만큼 무지막지한 전공을 쌓아올린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특히 항우 개인의 무력과 카리스마는 세계사를 통틀어도 최강의 자리를 다툴 정도인데요

 

역사서인 사기에서 항우는 엄청난 패기와 카리스마로 군중들을 제압했고 전투에서는 그야말로 누구도 당할수없는 최강자였다고 합니다

마지막 해하 전투에서는 실제로 항우가 큰 소리를 지르며 돌진하니 모든 적군들이 놀라서 엎드리며 길을 터주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죠

 

지금까지 중국 역사상 최강이라 불리는 항우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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