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30년후엔 명나라 황제가 된 자수성가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 주원장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 인물들이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인생역전 스토리를 많이 볼수있죠
한국의 역사에서는 특히 고려의 무신정권 시기에 천민 출신들이 높은 벼슬을 차지하고 귀족이 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났으며 옆나라 중국에서는 매우 불리한 환경에서 태어났던 사람들이 가장 존귀한 신분인 황제가 되는 일도 있었는데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또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명나라의 황제 자리에까지 오르며 역사에 길이 남은 인물이죠
바로 자수성가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홍무제 주원장입니다
주원장은 1328년 9월 18일 원나라 호주 지방의 종리현에서 가난한 농부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중 그가 태어난 것을 기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하죠
당시 주원장의 집안 사정이 워낙 좋지 않았던 탓에 그의 부모는 가뜩이나 배고픔과 영양실조로 얼굴이 누렇게 뜬 자식들을 보며 매일 눈물을 흘리던 상황에서 먹여살려야 할 입이 하나 더 늘었다는 부담감에 한숨을 내쉬었다고 합니다
주원장이 태어난 시기는 원나라 말기였는데 당시 나라꼴이 워낙 막장이었기 때문에 각지에서 도적들이 들끓으면서 어릴 때부터 험한 생활을 했다고 하죠
하루에 한끼를 제대로 먹을까 말까 하는 생활속에서 몸이 약해져있던 상황에 천연두까지 걸리며 한때는 목숨이 위태로워지기도 했지만 기적적으로 병을 이겨내며 살아남았습니다
다만 이때의 후유증으로 얼굴이 곰보가 되는것을 피할수는 없었다고 하네요
주원장은 소년 시절 지주의 소를 치는 목동을 하기도 했었는데 하루는 너무 배가 고파 친구들과 송아지 한 마리를 몰래 잡아먹어버렸는데요
그리고 소의 꼬리만 남겨서 바위틈에 끼어놓고는 지주를 찾아가 송아지가 아무리 당겨도 나오지 않는다며 얼렁뚱땅 넘어가버리려 했지만 지주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금방 사실을 알아채고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범인을 찾기 시작했죠
이때 주원장이 총대를 메고 나서며 친구들 몫까지 지주에게 몽둥이로 개맞듯이 맞게 되죠
이 때 당시의 친구들이 바로 훗날 명의 건국 공신이 되는 서달, 탕화, 주덕흥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17살이 되던 해에 심한 가뭄에다 전염병까지 겹치면서 주원장의 부모와 큰 형이 모두 죽음을 맞게 되죠
그는 어떻게든 죽은 가족들의 장례라도 치러보려고 했지만 가족들을 묻을 땅조차도 구하지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이때 마을 사람들중 유계조라는 사람이 땅을 내주면서 간신히 가족들을 땅에 묻을수 있었다고 하죠
그는 훗날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에도 이때의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었는지 자신들을 위해 땅을 내준 유계조에게 의혜후라는 작위를 내리면서 보답했습니다
이후 주원장은 황각사라는 절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그가 황각사 생활을 할때 가장 힘들었던 일이 바로 사천왕상의 다리 사이에 있는 먼지를 청소하는 것이었다고 하죠
그래서 주원장은 황제가 된 이후 모든 절의 사천왕상을 청소하기 쉽게 반드시 한 발을 들고 있는 모양으로 만들도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절 또한 형편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주원장은 황각사에 들어간지 불과 50여일 만에 다른 사람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동냥을 하는 탁발승이 되었습니다
이때 주원장은 부잣집 대문 앞에서 목탁을 치며 염불을 외는 자신이 무척이나 초라하고 비굴하다고 느꼈는데 이 때 느낀 굴욕감은 황제가 되고 나서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게 되었다고 하죠
그렇게 4년간의 구걸생활을 하던중 어렸을적 그와 함께 목동 노릇을 했던 죽마고우 탕화가 그에게 편지를 한통 보냈습니다
당시 홍건적을 이끄는 곽자흥의 세력에 들어오라는 내용이었죠
마침 근처의 반란군이 황각사를 불태워버렸기 때문에 갈 곳도 없어진 신세가 된 주원장은 고민 끝에 곽자흥의 밑으로 들어가게 되는데요
이때 그의 나이 25세였습니다
주원장은 처음에는 일개 병사에 지나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공을 세우면서 승승장구한 끝에 오직 본인의 실력만으로 곽자흥 군단의 2인자 위치까지 오르게 되죠
주원장의 비범함에 반한 곽자흥은 자신의 양녀 마씨를 주원장과 결혼시키면서 그를 사위로 삼게 되는데 이 마씨가 바로 중국 역사상 가장 어진 황후로 평가받는 효자고황후라고 합니다
곽자흥은 평소 자신의 부하들중 머리가 좋은 팽대라는 인물을 우대한 반면 조균용이라는 부하는 산적 출신이라며 대놓고 무시했죠
이에 화가난 조균용은 어느날 곽자흥을 기습해서 사로잡은후 그를 감옥에 가둬버립니다
장인의 소식을 들은 주원장은 황급히 팽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팽대는 주원장과 함께 부하들을 끌고가 감옥에 있던 곽자흥을 구하게 되죠
이때의 일을 계기로 주원장은 자신을 보호할 사병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곽자흥에게 장인어른을 위해 병사를 모아오겠다고 얘기한후 자신의 고향인 종리로 돌아오게 되는데요
얼마후 주원장은 병사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는데 그 마을 출신인 주원장이 홍건군의 두목이 되어 돌아왔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퍼지자 목동 노릇을 하던 시절 같이 어울렸던 친구들인 서달, 주덕흥, 곽영 등이 그의 수하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렇게 700명이나 되는 병사들은 모은 주원장은 병사들을 이끌고 다시 호주성으로 돌아와 곽자흥에게 충성을 맹세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주원장을 의심하는 마음이 남아있었던 곽자흥은 사위의 변함없는 충성심에 크게 기뻐하며 그를 진무로 승진시켰습니다
이후 원나라에 반기를 들고일어난 3,000여명의 민병과 활비산에 주둔하고 있던 민병 800여 명을 추가로 받아들이며 병력을 늘리는데 성공한 주원장은 밤을 틈타 정원성 근처의 횡윤산에 있던 원나라 부대를 공격해서 원나라 장수 무대형의 항복을 받아내며 마침내 정원성을 손에 넣게 되죠
정원성이 함락되자 주변의 많은 세력들이 농민군을 거느리고 주원장에게 투항하러 오기 시작했는데요
이후 자신의 첫번째 참모인 이선장의 책략에 힘입어 안휘지역의 저주성까지 점령한 그는 장인인 곽자흥과 그의 병사 1만여 명을 자신이 있는 곳으로 불러들이게 되죠
그 시점에서는 이미 주원장의 세력이 곽자흥보다 강해져있었기 때문에 주원장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곽자흥을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그는 뜻밖의 행동을 보여주었죠
곽자흥이 입성하자마자 그에게 자신이 거느린 3만 대군을 즉시 넘겨준 것인데요
곽자흥입장에서는 자신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게 된 사위가 자신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보여준 것에 큰 감동을 느끼며 더욱 그를 믿게 됩니다
이후 주원장이 화주 지역까지 함락시키게 되자 곽자흥은 그를 최고 사령관인 총병관에 임명하고 화주를 지키게 했죠
그런데 얼마후 떠돌이 중에 불과했던 주원장의 비범한 능력을 알아보고 그가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던 곽자흥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전부터 이미 곽자흥의 후계자로 인정받고 있던 그는 주변의 추대를 받아 반란군의 지도자가 되었는데요
이후 여러 개로 나눠져있던 홍건적의 파벌을 통합하며 원나라 말기의 주요 군벌 세력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주원장은 단순히 영토를 점령한 것에 그치지 않고 여러 지역의 지식인, 사대부들과 교류를 하면서 그들의 조언에 따라 세력을 운영하는 한편 이들을 관리로 기용해서 효과적인 행정 정책까지 세우며 놀랄만한 성장을 이루게 되죠
그리고 이들에게서 상류층의 예법과 역사 유교 경전 등의 각종 지식을 배우면서 사실상의 제왕 수업을 받게 됩니다
1358년에는 원나라의 장군인 차칸 테무르가 강력한 세력을 가졌던 홍건군의 유복통을 박살낸후 창끝을 주원장의 세력으로 돌리면서 위기를 맞게 되었지만 마침 운좋게도 원나라 내에서 내분이 일어나면서 차칸테무르가 더이상 공격을 할수없는 상황이 되자 주원장은 더이상 뒤를 걱정할 필요없이 자신의 최대 숙적이었던 진우량과의 결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죠
그렇게 진우량을 파양호에서 꺾고 최강의 군벌로 등극한 주원장은 이후 장사성과 방국진 등의 군벌들까지 정리하며 장강 이남을 통일해버립니다
이후 서달과 상우춘에게 25만 대군을 주어 북벌을 개시했고 몽골 세력들을 중원에서 모조리 몰아내게 되죠
이후 1368년에 신하들의 권유를 받아 명나라의 초대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천민이나 다름없는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기까지 한 주원장이 오직 자신만의 힘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까지 오르는 인생역전의 성공신화를 쓰는데 성공한 것이죠
지금까지 자수성가의 끝판왕 주원장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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