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는 10대 시골소녀만 탐하고 위생관념이 아예 없었던 마오쩌둥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바로 마오쩌둥이죠.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사람이자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수천만명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역사상 전무후무한 학살자 중 한 명입니다.
하지만 그는 살아 있을 때까지만 해도 정말 국민들에게 신으로 추앙받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는데요.
황제보다 더 큰 권력과 힘을 휘두른 그에게 경악스러운 사생활이 있었습니다.
바로 지나칠 정도로 병적인 여성편력과 지금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너무나도 더러운 위생관념이죠.
그의 이런 추악한 사생활은 마오쩌둥을 20년이 넘도록 돌봐온 주치의 리즈수이가 쓴 기록 때문에 세상에 까발려지고 말았습니다.
리즈수이는 "마오쩌둥은 항상 여자들을 노리개로 삼았고 그의 생활은 극도로 문란했으며 여자들을 끼고 놀면서 희롱하는게 유일한 취미였다" 라고 말할 정도였죠.
심지어 마오쩌둥의 경호를 맡았던 왕둥싱은 인생 막판에 어떻게 그렇게 집요하게 그토록 큰 정욕을 드러낼 수 있나? 라고 말했을 정도였죠.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마오쩌둥은 항상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살았고 심지어 여자들은 그와 악수라도 한번 한다 치면 악수한 손은 일주일간 씻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 손을 한번 잡아보려고 먼데 살던 친척들이 일부러 찾아오기도 했다고 하죠.
그만큼 마오쩌둥의 손잡는 것 하나도 영광스러울 정도로 신격화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상황이 그 지경이다 보니 공산주의 활동 초기부터 여자를 밝힌 마오쩌둥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 돼버린 것이죠.
마오쩌둥은 자신의 그런 사생활에 대해 전혀 수치심도 없었는데요.
하루는 동료에게 "나는 기껏해야 40일 정도만 짹쓰를 참을 수 있다" 라는 소리를 한 적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아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놓고 바람을 피기 시작했는데요.
국민당의 맹렬한 공격을 뚫어내고 연안으로 이동한 대장정이 끝나자 그곳으로 몰려드는 여자들과 밤낮없이 방탕하게 놀아나기 시작했죠.
당연히 이 사실을 안 아내 허쯔전은 그에게 화를 냈지만 그는 곧장 허쯔전과 이혼을 해버렸고 얼마 안 가 장칭과 재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장칭의 괴랄맞은 성격을 알게 된 마오쩌둥은 그녀는 내팽개치고 다른 여성들에게만 자신의 성욕을 풀어댔죠.
마오쩌둥이 특별히 좋아하던 여자 스타일은 따로 있었는데요.
교육수준이 낮고 시골에서 올라온 순박하면서도 어린 10~20대의 어리고 예쁜 여자들이었습니다.
어리고 경험이 적은 여성들은 다루기가 쉬웠고 멋도 모른채 자신이 시키는건 다했기 때문에 그가 원하는 모든 욕구를 채우기엔 충분했기 때문이었죠.
그와 반대로 나이 든 여성들은 세상물정에 너무 밝은데다가 순진하고 순박한 맛이 없다는 이유에서 꺼려 했습니다.
1949년 국민당을 몰아내고 중국 전체를 자신의 손아귀에 거머쥔 마오쩌둥은 황제보다 더 큰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성욕을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마구 충족 시킬 수 있게 된 것이죠.
마오쩌둥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은 그가 더 기뻐할 수 있도록 순진한 시골 여자들로 구성된 문화 공작대를 만들어 매일 밤 공연을 열었고 그의 경호를 맡고 있던 왕둥싱과 예쯔롱은 마오쩌둥이 좋아할 만한 여성들을 선별하고 여자를 끊임없이 보충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는데요.
일단 마오쩌둥에 대한 경외심과 숭배하는 마음이 투철했어야 했으며 출신성분이 확실한 가난한 농민 출신이어야 했죠.
그리고 학력이 낮고 어리고 순진하며 정치 노선이 바르고 마오쩌둥에게 절대적으로 충성 및 숭배하는 여성들은 그들에게 선발당해 밤마다 그에게 바쳐졌습니다.
예쯔롱의 집은 마오쩌둥의 저택 단지 안에 있었는데요.
선발된 여자들은 예쯔롱의 집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마오쩌둥의 아내인 장칭의 방에 불이 꺼지고 그녀가 완전히 잠이 들면 그제서야 아무도 모르게 식당을 지나 마오쩌둥의 침실로 안내되었죠.
그리고 그와 뜨밤을 보내고 나서, 새벽에 다시 몰래 빠져나왔습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어느 날 새벽에 잠에서 깬 장칭은 남편이 다른 여자들과 방탕하게 놀아나고 있는걸 목격하고 분노가 폭발해 마오쩌둥에게 불같이 화를 냈는데요.
마오쩌둥은 격분해 소리치는 장칭을 피해 조용히 방을 나와 한밤중에 베이징으로 떠나버렸다고 하죠.
그 이후로 그는 장칭과 따로 살게 되었는데요.
이후 마오쩌둥은 제대로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더욱더 어리고 예쁜 여자들을 찾게 되었죠.
그런데 독특한 사실은 왕둥싱과 예쯔롱에게 선택된 어린 여자들은 선택된 사실에 날아갈 듯이 좋아했다고 합니다.
숭배해 마지않던 마오쩌둥과의 잠자리도 가문의 영광이었지만 이는 엄청난 출세의 기회이기도 했던 것이죠.
어떤 여자는 그와의 관계가 주위에 소문이나자 무척 기뻐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마오쩌둥과의 관계를 맺은 여성들은 성격으로도, 성적으로도 점점 오만해지고 타락해가기 시작했죠.
자신이 선택된 이유는 남들보다 자신이 우월하고 특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오쩌둥의 생각은 그녀들과는 달랐는데요.
싫증이 나면 그냥 물건 버리듯 그녀들을 버렸습니다.
그렇게 버림받은 여자들은 그냥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기도 했지만 결혼 후라도 만약 마오쩌둥이 찾을 경우엔 그와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마오쩌둥은 더 강한 자극과 색다른 재미를 찾기 위해 때로는 유부녀와의 관계도 가졌죠.
자신의 부하와 아내 그리고 아내의 언니까지 집으로 초대해 밥을 먹고 부하만 집에 보낸 뒤 나머지 두 여자와 동시에 뜨밤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점은 아내와 처형을 빼앗긴 육군장교의 태도였는데요.
이 일을 치욕이라 느끼지 않고 오히려 마오쩌둥에게 아내를 바칠 수 있었던 것이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죠.
그의 성적 집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마오쩌둥은 자신의 침대를 정리 중인 젊은 남자 경호원을 보고 갑자기 덮쳐버리는 일이 발생한 것이죠.
그 모습을 본 리즈수이는 처음엔 마오쩌둥이 동성애자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마오쩌둥의 사생활은 경악스러운데요.
더욱더 충격적인 사실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오쩌둥의 말도 안 되는 위생관념이죠.
그는 평생 자신의 성기를 씻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리즈수이는 마오쩌둥의 건강을 염려해 거기를 씻어야 한다고 하자 마오쩌둥은 "매일 밤마다 여자의 몸 안에서 씻고 있다"라고 하며 그의 말에 딱 잘라 거절했다고 하죠.
심지어 그는 목욕과 세수도 잘 하지 않았는데요.
하인들에게 시켜 물에 적신 따뜻한 수건으로 몸을 닦을 뿐이었죠.
게다가 그는 양치도 제대로 하지 않아 차를 마실 때 그 차로 가글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치아가 변색되고 나중에는 많은 수의 이가 빠져서 윗 어금니는 단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하죠.
또한 늘 치석과 음식물이 많이 끼어 있어 잇몸에 고름이 찬 경우도 있었고 충치도 엄청 났다고 합니다.
리즈수이가 그에게 양치를 해야 한다고 권하자 호랑이는 양치를 하지 않아도 이가 날카롭다며 그마저도 거절했다고 하죠.
위생관념이 이따위인데다가 심지어 여성과의 잦은 성관계 때문에 그는 '트리코모나스'라는 성병에 걸리고 말았는데요.
이 병은 여성에게만 막대한 피해를 끼치지만 남자에게는 별다른 증상이 없었기에 마오쩌둥은 자신과 관계를 맺는 여성들의 건강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쾌락 추구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과 관계를 맺는 여성들 대부분이 이 병에 감염되고 말았죠.
그러나 이미 마오쩌둥을 구세주로 생각하던 여성들인데다가 그에게 성병이 옮은 것은 곧 그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일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랑으로 여겼고 더 큰 영광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마오쩌둥은 병에 걸린 여자들을 리즈수이에게 보냈는데요.
여자들은 이 또한 우월한 자신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혜택으로 여겼고 이것마저도 자랑거리가 되었죠.
하지만 문제는 여자들이 치료를 다 했다 하더라도 모택동이 이 병에 걸려있다 보니 관계를 맺으면 다시 걸리기를 반복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리즈수이는 더 이상 병이 퍼지는걸 막기 위해 마오쩌둥에게 치료를 해야 한다며 완쾌될 때까지 성생활을 중단해달라고 요구했는데요.
마오쩌둥은 자신은 이 병의 증세를 전혀 느끼질 못한다며 내가 괴롭지 않으면 문제 될게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리즈수이는 장칭에게 감염되면 어쩌냐며 그를 설득하려 했지만 장칭이랑은 잠자리를 안 한다며 웃어 넘겨버렸다고 하죠.
어쩔 수 없이 리즈수이는 혼자 알아서 마오쩌둥의 침실과 이불, 수건 등을 모조리 소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참모들에게 마오쩌둥의 병명을 이야기해주며 마오쩌둥의 수건을 쓰지 말고 개인적으로 수건을 따로 들고 다니며 쓰라고 하자 그제서야 참모들은 개인적으로 수건을 들고 다녔다고 하죠.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에다가 심지어 사생활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던 마오쩌둥의 삶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고 경악스러울 따름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역대 중국의 폭군이나 암군들 중에 마오쩌둥만큼 더 부족하고 개판인 지도자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러나 여전히 그를 숭배하고 좋아하는 중국인들을 보면 그 지도자에 그 국민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하죠.
지금까지 마오쩌둥의 경악스러운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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