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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국공내전. 원래 민주주의로 시작했던 중국이 결국엔 공산주의가 되어버린 내전.

by 사탐과탐 2022.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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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최후의 내전, 국공내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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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언제부터 지금과 같은 공산주의 사회가 된 것인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중국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공산주의 사회였던 것은 아니었고 지금의 체제로 굳어지게 된 것은 바로 1927년부터 약 23년간 공산당과 중화민국 사이에서 벌어졌던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를 거두게 되면서부터였죠

 

오늘은 국공내전에서 어떻게 공산당이 극적인 승리를 거두고 지금의 중국을 만든 것인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911년에 신해혁명이 일어나면서 1912년에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건국됐죠

중화민국의 초대 대총통이었던 위안스카이는 중앙 정부를 장악한 후 국회를 무시한 채 독재 정치를 폈고 이에 반발하던 국민당은 계축 전쟁을 일으켜 2차 혁명에 나섰지만 2달 만에 진압당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전국 각지에서 위안스카이에게 반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열강들마저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자 궁지에 몰린 위안스카이는 3달 만에 화병으로 죽고 말았는데요

그렇게 중국은 또다시 여러 세력들이 패권을 노리는 혼란의 시기를 맞게 됩니다

한편 중국에서도 1920년 소련의 영향을 받아 공산당이 설립됐죠

당시 서방 국가들에 의해 고립되어 있던 소련은 자신들이 중국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중국공산당에 명령을 내려 그들이 국민당에 협력하도록 지시했고 중국의 공산당원들은 공산당의 당적을 가진 채 국민당에 입당하는 형식으로 서로 힘을 합치게 되죠

이것을 1차 국공합작이라고 부릅니다

이후 국민당은 소련의 원조로 군대를 기르며 국민혁명에 나섰고 공산당은 이에 협력하면서 중국은 국민당의 주도하에 통일되는 듯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공산당이 몰래 음모를 꾸며 국민당을 잡아먹으려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공간(국민당과 공산당)의 갈등이 끓어올랐고 이런 갈등은 쑨원이 사망한 후에 폭발하게 됩니다

1926년 중산함 사건이 터지면서 장제스가 공산당원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하고 자신에게 적대적인 소련 고문들을 강제 귀국시킨 사건이 벌어진 것이죠

 

그렇게 국민당을 장악한 장제스는 1926년 국민혁명군을 이끌고 청나라가 멸망한 이후 중국의 실질적인 지배자 노릇을 하던 북양군벌들을 정벌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민당의 1차 북벌을 시작합니다

북벌이 성공을 거두면서 장제스의 힘이 더욱 커지자 공산당은 국민당의 좌파세력과 연합해서 장제스를 군사 독재자라 비판하며 그를 끌어내리려고 했죠

 

이에 우파들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결국 장제스가 4.12 상하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난징 정부를 세우면서 공산당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게 됩니다

얼마 후 공산당은 난창과 추수, 광저우, 창사 등의 지역에서 폭동을 일으켜 중요 도시를 장악하기 위한 반격 작전을 펼쳤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죠

 

이후 상하이에 있던 중국 공산당은 마오쩌둥이 이끌던 강서성 중앙 소비에트를 중심으로 중화 소비에트 공화국의 건국을 선언하고 농민들을 병사로 징집하면서 내전을 계속해나갔습니다

하지만 중화 소비에트 공화국 주석인 마오쩌둥과 상하이의 임시 당중앙의 대립이 심해지면서 결국 마오쩌둥은 주석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고 오토 브라운과 28인의 볼셰비키라 불리는 소련 유학파들이 공산당을 이끌게 되죠

 

하지만 1933년 시작된 장제스의 제5차 초공작전(중국 공산당을 섬멸하기 위한 국민당의 군사작전)에서 국민당에게 연달아 패배하며 공산당은 멸망할 위기에 몰리게 됩니다

이에 중국 공산당은 남아있는 병력과 당원들을 모아서 서부로 이동하기 시작했는데요

도중에 국민당의 병사들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군벌들과도 끊임없는 전투를 벌이면서 중국 북서부의 산시성 옌안까지 겨우 도착하게 되죠

 

그러던 중에 1937년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자 그때까지 서로 싸우던 국민당과 공산당도 처음에는 힘을 합쳐 일본군에 맞서게 됩니다

전쟁 초반에는 서로 협력하며 핑싱관 전투 등에서 일본군을 수차례 격퇴하기도 했지만 일본군이 산시성을 공격해서 타이위안시를 점령한 후부터 공산당은 갑자기 국민당과의 협력을 중단하고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는데 집중하기 시작했죠

 

마오쩌둥은 일본군과의 전투를 최대한 피하고 자신들의 지배영역을 늘리는데 집중할 것을 명령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공산당은 자신들의 영역을 늘리는 과정에서 일본군을 싸울 준비를 하고 있던 국민당 유격대나 국민당 부대들을 습격하는 만행도 거리낌 없이 저질렀죠

때문에 극도로 분노한 국민당에서는 공산당에게 하라는 일본과의 전쟁은 안 하고 도대체 뭐 하는 짓이냐며 여러 차례 항의했지만 공산당은 그들의 항의를 무시한 채 영토 확장에만 집중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렇게 외적이 침입한 상황 속에서 비열하게 자신의 이익만 챙긴 덕에 훗날 국공내전에서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승리할 수 있게 되죠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난 후 공산당과 국민당 정부 간의 회담이 열렸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서로 간의 갈등은 점점 심해졌고 머지않아 한 하늘에 하나의 태양만을 남겨둬야 하는 상황이 찾아왔습니다

 

장제스는 1946년 3월 마침내 공산당에 대한 공격 명령을 내리게 되죠

내전 초기 국민당은 자신들의 지배 영역 내에 있는 각종 요충지를 장악한 공산당을 완전히 몰아내지도 않은 채 무리한 공격을 시도했는데요

그렇게 자신들의 후방을 안정시키지도 않은 채 무모한 전투를 한 결과 만주에서 대패하게 되죠

 

당시 공산당은 머릿수 자체는 100여 만으로 크게 불어났지만 전쟁에 사용할 중화기가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장제스가 준비만 잘하고 공격하면 충분히 유리한 상황으로 이끌 수 있었는데 성급한 판단으로 자신들의 무덤을 판 셈이죠

 

이후 공산당은 소련의 협조로 만주의 일본군 무기들을 대량으로 넘겨받으며 무장을 몇 배로 강화하게 됩니다

1946년 6월 국민당의 병사들인 국민혁명군은 본격적으로 공산당이 점령한 지역을 침공하며 내전을 다시 시작했죠

초기에 국민혁명군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병력과 장비, 보급 등 모든 면에서 공산당보다 우세했기 때문에 내전은 머지않아 끝날 것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1947년 3월에 후쫑난이 지휘하는 20만의 병력이 공산당의 수도였던 옌안을 점령해버리기까지 하자 내전은 이대로 공산당의 패배로 끝나는듯했죠

하지만 국민혁명군은 적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리지도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많은 지역의 영토를 동시에 점령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병력이 지나치게 분산돼버리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결국 공산당을 섬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국민당이 진격을 멈춘 채 먹기 좋은 표적으로 바뀌어버리자 처음엔 정신없이 밀리던 중공군은 전열을 재정비한 후 국민혁명군에 대한 반격을 시작했는데요

1947년 하반기부터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한 공산당은 1948년 초 무렵에는 만주의 99%와 허베이의 대부분을 장악하게 됩니다

 

1948년 11월 공산당의 사령관인 린뱌오가 지휘한 동북 인민해방군이 만주에서 중화민국 국군을 격파하는 것을 시작으로 힘의 균형이 깨지면서 분위기가 점점 공산당 쪽으로 넘어갔죠

그 결과 1949년 1월 31일 인민해방군은 베이징을 점령하고 4월 23일에 국민당 정부의 수도 난징을 함락시킨 후 5월 27일에는 중국 대륙의 최대 도시인 상하이까지 손에 넣게 됩니다

 

마침내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은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졌음을 선포하고 국가 주석에 취임했죠

이후 인민해방군은 광저우를 접수한 후 11월 30일에는 중화민국 정부의 임시수도였던 충칭마저 함락시켰고 이후 장제스가 타이완으로 탈출하게 되면서 국공내전은 국민당의 완전한 패배로 끝이 나게 됩니다

 

국민당이 공산당에게 패배한 데에는 국민당 정부의 부패함, 전략적 실책, 심리전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부패한 지도층에 실망한 중국인들이 그들에 대한 지지를 거둔 것이었죠

중일전쟁이 끝난 뒤에 국민당 정권은 경제를 다시 살리기 위한 정책을 추진했지만 실망스러운 결과만을 보이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2차 국공내전까지 터지면서 사회가 더욱 혼란해졌고 물가마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게 되는데요

때문에 국민당 정부에서는 자본가들을 탄압하면서까지 경제개혁을 시도하려고 했지만 이 또한 참혹한 실패로 끝나면서 친미 자유주의자들의 반발만 사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게다가 부패한 국민당의 장군들이 전쟁물자와 군자금을 횡령하면서 최전선에서 싸우는 병사들에게는 색소를 탄 가짜 약과 개돼지도 먹지 않을 썩은 쌀과 모래를 섞은 식량을 지급했기 때문에 굶어죽거나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는 병사들이 많았다고 하죠

굶주림과 질병을 참다못한 병사들은 결국 민간인을 약탈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국민당에게서 떠나게 됩니다

 

심지어 몇몇 간부들은 미국이 지원해 준 군사장비마저 공산당에 팔아넘기는 등 온갖 비리를 저질렀기 때문에 이 꼴을 본 미국의 한 군사 전문가는 "이런 군대가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죠

 

지금까지 국공내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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