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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홍윤성. 계유정난을 성공으로 이끈 공으로 막 나간 살인마 정승

by 사탐과탐 2021.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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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성은 수양대군을 도와 계유정난을 성공으로 이끌어서 보위에 오를 수 있게 했었습니다.
그 공을 인정받아 2등 공신이 되었으며 세조는 홍윤성이 뭔 짓을 하던지 눈감아 줬습니다.
세조를 등에 업은 홍윤성은 온갖 악행을 저지르기 시작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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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되고 싶었던 수양대군은 자신을 도울 인재들을 영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홍윤성이라는 무인의 기질이 뛰어난 사내에게 찾아가 자기의 뜻에 따라 반란을 일으킬 의사가 있는지 슬쩍 떠보았죠.

그러자 홍윤성은 "장부라면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라며 한치의 망설임 없이

수양대군에게 힘이 되어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준비를 착착해 가던 수양대군에게도 고민은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자신을 도와줄 무인들이 많지 않자 계유정난이 있던 당일에도 결단을 못 내리고 있던 세조에게 홍윤성은 "군사를 일으키는데 가장 난관인 것이 바로 결단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며 수양대군을 부추겼고 계유정난을 일으킬 수 있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죠.

 

수양대군 (영화 관상)

 

이러한 공적 덕분에 계유정난이 성공한 이후 홍윤성은 2등 공신이 되었으며 강력한 권세를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성격이 포악하고 또라이 기질이 다분했던 홍윤성은 역모로 왕을 갈아치웠다는 세간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온갖 패악질을 해댔죠.

 

무고한 사람들을 하도 많이 죽여서 야사에서는 홍윤성을 살인마 정승이라 불렀을 정도였습니다.

그건 다 세조가 너무 홍윤성을 오냐오냐했기 때문이기도 했죠.

 

그가 얼마나 안하무인 격이었냐면 자신의 집 앞으로 누군가가 말을 타고 지나가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해 집 앞을 감시하고 있다가 말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종들을 시켜 그 사람을 두들겨 팼습니다.

자신의 집 앞에 흐르는 한강물에 말을 목욕 시켜도 쫓아가서 두들겨 팼을 정도였죠.

 

그리고 홍윤성이 정승의 자리에 오르자 자신들의 고을에서 정승이 나왔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 홍산 사람들은 노비 두 명을 홍윤성에게 선물로 바쳤죠.

 

그러자 홍윤성은 그 노비들이 튼실하지 못하다고 화를 내며 노비를 고른 담당자였던 나계문을 잡아다가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팼습니다.

그래도 화가 안 풀렸는지 나계문 소유의 산에 있는 나무까지 모조리 베어버렸죠.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집 노비인 김석을산을 시켜 3명의 종들과 함께 나계문을 발가벗긴 후 때려 죽여버렸습니다.

 

홍윤성 (드라마 한명회)

 

하지만 홍윤성의 권세가 두려웠던 현감은 홍윤성의 노비였던 김석을산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폭행에 가담한 나머지 3명만 체포하여 조사하는척 했지만 홍윤성 집의 종들이 떼로 몰려와서 이들을 데려가도 그냥 모른척하고 있었죠.

 

그러자 나계문의 아내 윤덕녕은 억울함을 풀기 위해 관찰사에게 하소연했지만 관찰사는 오히려 정승을 무고했다며 윤덕녕을 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이후 풀려난 윤덕녕은 온양 온천에서 요양 중인 세조를 직접 찾아가 울면서 호소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세조는 크게 노하여 김석을산을 능지처참하고 함께 폭행에 가담한 3명의 종들은 참수했으며 사건을 은폐하려 든 현감과 아전들 또한 죄다 곤장을 쳐서 유배 보내고

관찰사도 잘라버렸죠.

그리고 나계문의 아내 윤덕녕에게 지아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 노력함이 가상하다고 10섬의 쌀을 내리며 칭찬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일을 일으킨 장본인인 홍윤성은 벌주지 않았습니다.

단지 홍윤성을 불러다가 "걱정하지 말라, 김석을산이 스스로 한 짓이니 자네와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라며 안심시켰다고 합니다.

 

억울하게 노비들만 죽어 나간 것이죠.

 

이에 기고만장한 홍윤성은 홀로 사는 한 노인의 전 재산이었던 논밭을 그냥 강제로 빼앗아 버렸습니다.

노인이 찾아와 울면서 땅을 돌려달라고 호소했지만 홍윤성은 그 노인을 거꾸로 매달고

돌로 때려죽인 후 시신을 길바닥에 버려두었죠.

하지만 어느 누구도 감히 시신을 거두어가 장사 지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홍윤성의 보복이 너무나도 무서웠던 것이죠.

 

게다가 그는 모친상을 치르는 기간에 혼인을 하겠다며 양반가의 딸을 강제로 취하려다가 탄핵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세조는 홍윤성을 감싸줬습니다.

 

홍윤성은 어릴 때 숙부의 손에 자랐는데요.

그가 높은 자리에 오르자 어느 날 자신을 길러준 숙부가 찾아와서 벼슬자리를 하나 부탁하니 논 스무 마지기를 주면 벼슬자리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홍윤성과 숙부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고 결국엔 숙부를 때려죽이고 후원에 묻어 버렸죠.

 

홍윤성 (드라마 한명회)

 

이에 홍윤성의 숙모가 원한을 품고 세조에게 탄원했지만 공신을 죽일 수는 없다 하여 또 죄 없는 홍윤성의 종들만 죽이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세조는 홍윤성이 패악질을 하는 것도 다 술 탓이니 술을 금하라는 금주령을 내렸으나 홍윤성이 "신은 술이 없으면 죽습니다."라며 징징거리자 금세 금주령도 취소시켜 줬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세조가 직접 술고래라는 뜻의 경음당(鯨飮堂)이라는 별명도 내려줬다고 하죠.

 

또한 홍윤성이 평안도 군량미 30만 석을 횡령해 혼자서 다 해쳐먹었는데도 세조가 덮어주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공신이라며 지은 죄를 덮어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으니 하루는 술자리에서 세조가 홍윤성에게 자중하지 않으면 숙부를 죽인 죄를 물어 극형에 처하겠다고 꾸짖었는데 이 말을 들은 홍윤성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주상께서는 조카를 죽이시지 않았습니까"라고 대꾸했고 세조는 역시 배짱이 두둑하다고 하며 웃어넘겼다고 합니다.

 

세조 (영화 관상)

 

그렇게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먹고 잘 살던 그는 50세가 되고 병으로 드러누웠는데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의원들의 말을 듣자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라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결국에는 사망하게 되었죠.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기에 그의 엄청난 재산은 애첩이 모두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애첩은 홍윤성의 제사 한번 지내주지 않았고 물려받은 재산으로 풍족하게 살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그는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에 묻혔는데 생전에 저지른 악행이 엄청났기에 원한이 있던 사람들이 찾아와서 무덤 비석을 깨부수고 침을 뱉기도 했으며 심지어 무덤에 오줌을 누던 사람까지 있었지만 누구 하나 제지하거나 말리지 않았고 그대로 내버려 뒀으며 나중에 그의 무덤은 묘비문이고 뭐고 남아난 게 없었다고 하죠.

 

한참 뒤에야 조선 조정에서 죽은 이에게 너무하다고 다시 묘비문을 세워 줬지만 그마저도 관리가 안 되었으며 성종이 왕이 되고 나서 사림파가 집권을 한 후로는 그는 극악무도한 인물이며 권력을 남용한 대표적 인물이 되어 조선이 망할 때까지 지탄의 대상이 되었죠.

 

현재 그의 무덤은 향토유적 제49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2003년에는 무덤 앞에 있는 장명 등이 도난당하는 수모도 당했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무덤이 파헤쳐 지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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