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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황산대첩. 나라를 멸망시킬 정도의 규모였던 왜구를 몰살시킨 이성계를 고려 최고의 영웅으로 만들어준 전투

by 사탐과탐 2023.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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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토를 유린하던 왜구들을 일거에 몰살시켜 이성계가 고려 최고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황산대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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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이성계의 신들린 활솜씨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오늘은 이성계의 최대업적 중 하나인 황산대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고려시대 때는 1350년 경 부터 거의 30년간 엄청난 수의 왜구들이 지속적으로 고려를 쳐들어와 수많은 백성들을 학살하고 약탈을 일삼았죠

왜구 문제는 고려의 정말 골칫거리였는데요

왜구들이 가장 많이 몰려왔을때 이성계가 황산대첩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왜구를 다 때려잡은뒤부터 왜구들은 급격하게 몰락했고 이후로도 과거처럼 고려를 전역을 유린하지는 못하는 수준까지 떨어지게 된 왜구 전쟁의 종결판이라 할수 있습니다

 

우왕때 고려는 왜구의 계속된 침략으로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있던 상태였죠

당시 왜구는 단순히 해안가 마을에 나타나 노략질을 일삼던 수십명의 해적들이 아닌 거의 수천명에서 많게는 1~2만명까지나 되는 대규모 병력이었으며 작은 나라 정도는 멸망시킬수 있을정도로 막강했습니다

1377년에는 개경의 방어를 담당한 고려 수군을 전멸시키다시피 하면서 개경이 위태로워질 정도였으며 1378년에는 수도 개경을 함락시키겠다고까지 했다고 하죠

 

그만큼 왜구는 한낱 해적이 아닌 고려의 운명을 좌우하던 그런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려도 가만히 있던건 아니었는데요

1376년 최영이 홍산대첩에서 왜구를 대파하기도 했지만 왜구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았고 1377년에는 32번에 걸쳐서 54군데나 되는 지역을 침략하고 약탈했죠

그렇게 고려는 왜구들에 의해 조운선이 털리기도 했고 수많은 고려 문화재들이 일본으로 옮겨졌으며 남자들은 죽이고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은 목에 밧줄을 엮어서 끌고가 노예로 팔아 먹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더 문제는 고려군이 강화도에 출현한 왜구를 치러 갔을때 양광도에서도 왜구가 나타나기도 했고 전라도와 서해도지역, 심지어 제주도에까지 모두 비슷한시기에 동시다발적으로 왜구들의 침략을 받아 온 고려가 난장판인 상태였던 것이죠

심지어 북쪽에서는 계속해서 홍건적과 여진족 등의 위협이 있는 상태라서 어딜 먼저 막아야 할지 모르는 골때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던 1380년 8월, 무려 500여척의 왜선을 타고 엄청나게 많은 왜구들이 진포로 들어왔죠

당시 배 한척에 30~40명이 탈수 있었다하니 최소 1만에서 최대 2만이라는 어마어마한 병력이 조선을 침략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고려 조정에서는 심덕부, 나세, 최무선에게 100여척의 전함을주고 진포로 쳐들어온 왜구들을 공격하라 명했죠

 

한편 왜구들은 진포에서 자신의 배들을 밧줄로 묶은뒤 기지로 삼았고 약탈을 하기 위해 상륙했을 때였습니다

때마침 나타난 고려군은 최무선이 개발한 화포를 이용해 왜구들의 배를 공격했고 이로인해 대부분의 왜구 함선들이 격침되거나 불에 타버렸으며 함선을 지키던 왜구들은 타죽거나 물에 빠져 죽기도 했죠

대략 30여년간 거의 두들겨 맞기만했던 고려가 마침내 왜구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전투였습니다

 

이 전투가 바로 진포해전이죠

이 소식을 들은 왜구들은 바다를 이용한 퇴각로가 막혀버리자 보복삼아 잡아놓았던 포로들을 무참히 죽여버렸고 이후 내륙의 옥주(충북 옥천)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고려 내에서 활동중이던 왜구들과 합세하면서 더욱 규모를 키웠죠

진포에서의 승리한 여운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려 백성들에게는 지옥이 펼쳐지기 시작했는데요

 

왜구들은 충청북도에서 경상북도로 이동하면서 있던 모든 마을들에 들러 학살하고 약탈했으며 그들이 지나간 길은 초토화 되었고 처참한 피의 살육전이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상주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왜구들은 그곳에서 6일간 머물면서 상주 일대를 완전 초토화 시켜버렸죠

거기다가 그들은 제사를 지낸다며 너무나도 잔혹한 일을 벌였는데요

3살정도 되는 여자아이를 잡아다가 머리를 깎고 배를 가른뒤 깨끗히 씻긴다음 생쌀을 넣고 제사를 지냈는데 창자루가 갑자기 부러지자 이것을 안좋은 징조라 여겨 다른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선주와 경산부를 도륙해버린뒤 사근내역(현 경남 함양군)에 도착했죠

고려군은 그런 왜구들을 토벌하기위해 약 5천명~1만명 정도 되는 대군이 모였는데 이후 사근내역에서 벌어진 왜구와의 전투에서 처참히 박살나고 맙니다

왜군에 의해 박수경과 배언, 이 두명의 원수가 죽임당했고 500여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죽어나갔죠

그렇게 진포해전의 승전은 잊어버릴 만큼의 뼈아픈 패배를 맛봤으며 이 사건이 바로 사근내역 전투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자신들을 막는 고려군이 없어지자 왜구는 더욱 설치기 시작했는데 옥주에서 함양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을 불태워버리기까지 했죠

그리고 기세를 이어 남원산성을 공격했지만 겨우 왜구의 공격을 막아낼수 있었습니다

이후 왜구는 인월역이라는곳에 진을 쳤는데 이곳은 험준한 산이 사방에 둘러쌓여있어서 방어하기에 유리하고 공격하기엔 어려운 그런곳이었죠

 

그리고 왜구의 수장이던 아기발도는 "광주의 금성(담양)에서 말을 배불리 먹이고 북(개경)으로 치고 올라가겠다" 라고 말했는데 사근내역 전투이후 왜군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 했던 것입니다

만약 고려군이 또다시 패배한다면 수도 개경마저 위태로울 만큼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때쯤 드디어 이성계가 남원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사근내역에서 왜군과의 전투가 있기전 이미 고려 조정에서는 이성계를 양광 전라 경상 삼도순찰사로 삼아 왜구 토벌군의 지휘를 맡겼던 것이죠

하지만 이성계가 도착하기도 전에 사근내역에서 참패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이성계의 군대가 이동하는 길목마다 왜군에 의해 처참하게 도륙된 백성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못했고 이를 본 이성계를 비롯한 고려군은 분한 마음에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속히 이동해 남원에 도착한 이성계는 곧장 공격을 위한 준비에 나섰죠

 

그러자 아들 이방과를 비롯한 다른 장수들이 적군이 험지에 들어가서 지금 싸우면 불리하다, 나중에 나오면 싸우자고 말했지만 "드디어 적을 만났는데 싸우지 말라고? 개소리 집어치워" 라며 호통쳤다고 합니다

다음날 아침 이성계는 정산봉에 올라 적진을 염탐하고 지형을 분석하며 작전을 짜기 시작했죠

그리고 큰길 옆에 있는 작은 샛길을 보고 "적은 반드시 샛길로 나와 우리의 후방을 칠것이니 나는 마땅히 이길로 갈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이성계는 다른 장수들에게는 평탄한 길로 진군하게 하고나서 자신은 적군의 기습이 예상되는 샛길로 진군했죠

그리고 얼마안가 왜구의 기병과 마주치게 되고 그곳에서 그야말로 대 난전에 대 혈투가 벌어졌습니다

굉장히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다보니 지휘관이던 이성계도 몇번이나 위험에 처하기도 했는데요

 

적의 장수 한명이 창을 들고 이성계의 뒤쪽으로 다가가는걸 본 이지란은 이성계에게 뒤를 보라며 두번이나 외쳤지만 워낙 난전에다가 온갖 소리들로 시끄러웠던 탓에 이성계는 이지란의 외침을 듣지 못했던 것이죠

그러자 이지란은 직접 활을 쏴 그 왜구 장수를 죽였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이성계의 말이 화살을 맞고 넘어지자 다른말로 바꿔타다가 왼쪽다리에 화살을 맞기도 했으며 수없이 포위당했다가 포위를 뚫었다가 하는 등 이성계도 정신없는 상황이었죠

 

그러다가 이성계는 갑자기 "겁먹은 자는 물러나라! 나는 적과 싸우다 죽을것이다!" 라고 외쳤는데요

이 소리를 들은 고려군은 사기가 올라 더욱 열심히 싸울수 있었습니다

한편 왜구에서 단연 눈에띄는 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적의 수장인 아기발도 였죠

그는 굉장히 용맹한 무사였는데 백마를 탄채 창을 휘두를때마다 수많은 고려군이 쓰러지니 나중에 고려군은 겁을 먹고 아기발도가 보이기만해도 뒤로 물러나기까지 했던것 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성계도 이 아기발도의 용맹함을 보고 감탄하며 이지란에게 그를 생포할수 있겠냐고 물었다고 하죠

그러자 이지란은 그럴려면 많은 희생이 따를것이라며 만류했고 그렇게 이성계는 그를 죽이기로 마음 먹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기발도는 갑옷도 입었고 얼굴까지 철가면으로 가리고 있었기때문에 화살로 그를 죽이기가 굉장히 난감했는데 이때 이성계는 이지란에게 자신이 투구끈을 맞춰 투구를 벗길테니 그때 얼굴을 쏘라고 했죠

 

이후 이성계는 아기발도의 투구끈을 맞췄지만 아기발도가 벗겨지려던 투구를 다시 붙잡아 쓰는것이었습니다

이에 이성계는 다시 투구의 꼭지를 맞춰 결국 투구를 떨어트렸고 이지란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기발도의 얼굴을 쏴 마침내 그를 죽일수 있었죠

여담으로 아까 이성계가 지형을 살피고 작전을 짜고 있던 그때 왜구의 수장이던 아기발도도

이성계가 설치한 진을 보고 있었는데요

 

이후 부하들에게 "저 장수는 지금까지 상대했던 장수들과 다르니 단단히 준비하라.

그리고 오늘 전투는 마땅히 각자 알아서 조심해야 할것이다" 라며 경고했다고 합니다

알아서 조심하라던 아기발도가 결국 이성계에 의해 죽임당한것이죠

이런 삼국지연의에서 나올법한 일이 벌어지자 왜구의 사기가 크게 꺾였으며 급속도로 전세가 고려군으로 기울어 왜구들은 타고있던 말들을 버린채 이리저리 흩어져 산속으로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그리고 고려군은 계속해서 왜구들을 추격해 대다수의 왜구들은 도주에 실패하고 죽임당하고 말았죠

이때 냇물은 왜구들의 피로 물들어 거의 일주일동안 붉은 빛이 빠지지 않아 사람들이 물을 마실수가 없을 정도였고 왜구들의 피로 물들어 빨갛게 변한 피바위 전설이 만들어졌습니다

거기다가 왜구 중 70여명만이 겨우 살아남아 지리산으로 도망갔으며 이성계는 도망친 왜구들에 대해서 "어차피 적의 정예군은 다 섬멸시켰다"라며 추격하지는 않았다고 하죠

 

그렇게 전리품으로 말 1600여필에 셀수 없을정도로 많은 무기까지 얻을수 있었고 마침내 고려군은 왜구의 정예군을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주었던 것입니다

이 전투가 바로 그 유명한 황산대첩(荒山大捷)이죠

대승을 거둔 이성계는 위풍당당하게 개경으로 귀환했는데 이때 최영은 이성계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공이 아니라면 나라에서 장차 누구를 믿겠소?"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황산대첩은 지속적으로 침략을 일삼던 왜구들에게 그야말로 치명적인 결정타를 날린것으로 이후 왜구들이 아예 침입을 안한것은 아니었지만 급격하게 몰락해 규모나 빈도면에서 현저하게 감소했으며 이 일로인해 이성계는 고려의 영웅이 되었고 이후 조선 건국의 초석이 되었던 전투가 되었죠

지금까지 이성계의 최고 업적 중 하나인 황산대첩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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