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역사 탐구

임꺽정. 의적으로 알려져있지만 그냥 나쁜 도적에 불과했던 인물

by 사탐과탐 2023. 11. 12.
반응형
의적으로 알려져있지만 그냥 나쁜 도적에 불과했던 인물 임꺽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주 어릴적 드라마 임꺽정 마지막회 때 임꺽정이 죽는 모습을 보고 울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조선시대 3대 도적으로 홍길동, 장길산과 함께 임꺽정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원래 도적하면 정부에서 보낸 토벌군이 나타나면 바로 도망쳐버리거나 토벌당하기 마련이고 세력이라 해봤자 기껏해야 수십명이 무리지어 다니는게 다였지만 이 임꺽정 세력은 얼마나 대단했는지 수차례나 토벌군과 맞붙어 이겼을 정도였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임꺽정의 모습은 탐관오리를 혼내주고 빼앗은 재물을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의적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임꺽정의 모습은 완전 딴판인데요

 

오늘은 조선 명종때의 도적, 임꺽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임꺽정의 출생과 가족관계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있지 않지만 그는 경기도 양주에서 백정으로 살았죠

백정이라 하면 대개 가축들을 도축하는 도축업자로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임꺽정은 버드나무 가지나 지푸라기 등을 엮어 여러 도구를 만들던 고리백정이었습니다

 

당시 황해도의 황무지에는 엄청나게 넓은 갈대밭이 있기도 했고 명나라와 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황해도를 거쳐가야 했기 때문에 임꺽정은 짚신과 삿갓 등을 만들어서 상인들에게 팔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곳으로 이사를 갔던 것이죠

그런데 이때 조선 조정에서는 황해도 황무지를 개간한 사람에게 그 땅의 주인이 되도록 해주었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자 눈 돌아간 양반들은 너도나도 할것없이 황해도 황무지로 몰려들었던 것입니다

양반들이 황해도에 도착해서 본것은 드넓은 갈대밭이었는데 이때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갈대로 먹고사는 백성들이 있다고 하던데 백성들에게 이 갈대를 팔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렇게 조정에는 개간한다고 말한 뒤 개간은 하지 않고 갈대를 팔기 시작했으며 갈대는 주인이 없어서 아무나 잘라서 쓰면 되었기 때문에 임꺽정 입장에서 갑자기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상황은 정말 열받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조선은 명종이 어린나이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고 외척이던 윤원형이 권세를 얻어 온갖 악행을 일삼던 시기였죠

그러다보니 지방 관리들의 부패는 말도못할 지경이었고 심지어 '도적이 조정에 있는셈'이라고 명종실록에 적혀있을 만큼 백성들의 삶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편이 되어주는 관리도 몇몇 있었는지 갈대로 먹고 사는 백성들이 있으니 그들이 먹고 살수 있도록 황해도의 갈대밭을 다시 백성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오기 시작했죠

 

그런데 더 어이없는 점은 명종이 이 상소를 보고나서 황해도 갈대밭을 내수사(조선 왕실 재산을 관리하던 기관) 에 귀속시키라 명했는데 갈대를 쓰려면 세금을 내라는 의미였던것입니다

원래 악랄함 그 자체였던 양반들은 그렇다치고 백성들을 보호해주고 생각해줘야 하는 왕까지 그러니 분노가 치밀었던 임꺽정은 결국 도적이 되는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라고 추측하고 있죠

 

사실 그가 정확히 언제, 무엇때문에 도적이 되었는지는 알수가 없는데요

그가 도적이 된 이유로 추측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당시 백정이라 하면 최악의 욕이라고 했을정도로 같은 천민들사이에서도 더 더럽고 추악한 취급을 받았었는데 그 역시 백정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차별을 받았고 그로 인해 그는 도적이 된것으로 추측 하는 것이죠

그 외에도 임꺽정이 을묘왜변에 참전해 큰 공을 세웠지만 백정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상을 받지 못하고 개무시 당했는데 격분한 임꺽정은 도적이 되었을 것이다 등등의 이야기가 있지만 정확히는 알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임꺽정은 핍박받고 먹고살기 힘들어 분노에 차있던 백성들을 선동해 함께 도적이 되었고 황해도와 함경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죠

임꺽정은 힘이 굉장히 셌다고 하는데요

이후 그가 맨몸으로 관군과 싸움을 할때 관군중 한명의 팔을 잡아 휘둘렀는데 그대로 관군의 팔이 탈골되어 쭉 늘어났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어쨌든 당시 황해도 일대에서는 백성 한명이 도적이 되면 100명이 따라서 도적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임꺽정 무리에 합류하는 백성들이 많아졌죠

심지어 임꺽정은 아무 백성이나 받아주지 않고 힘이 굉장히 세거나 활을 잘 쏘는 등의 특출난 점이 있거나 아니면 계책을 잘내는 명석한 사람들로만 도적단을 구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세력이 커진 임꺽정 패거리는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까지 내려와 세력을 떨치며 관아를 습격해 관리들을 죽여버리고 부잣집 양반들의 재물을 약탈했습니다

 

뿐만아니라 농가와 민가에 불을 지르고 백성들의 재산을 모조리 빼앗아 버렸던 것이죠

만약 백성들이 자신에게 개기기라도 하면 사지를 찢어 죽여버렸을 정도로 극악무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눈독 들이는 물건은 바로 명나라에서 수입한 물품을 한양으로 옮기던 상인들의 짐이었죠

이때 임꺽정이 어디에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면 임꺽정이 두려워 그 일대를 지나치는 사람이 없었고 그러다보니 교통과 유통이 마비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한 임꺽정은 백성들에게 빼앗았으면 빼앗았지 재물을 나눠주는 등의 의적 활동을 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고 하죠

그러다보니 그냥 극악무도한 도적패였던 임꺽정을 고발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요

임꺽정은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거나 자신이 왔다 간것을 관리들에게 알려준 백성은 기어코 찾아가 그들을 죽여버렸다고 하죠

심지어 어떤 고발자는 배를 갈라 죽여버렸을 정도로 잔인무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임꺽정에게 고을이 약탈을 당했다 하더라도 백성들은 임꺽정의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도 않았다고 하죠

뿐만아니라 고을의 수령들 조차 임꺽정이 두려워 그들을 잡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으며 약탈을 당했더라도 조정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일부 백성들이 임꺽정 무리가 자신의 고을을 습격할때 그들을 도와주기도 했는데 탐관오리에 의해 착취당하던 자신들을 임꺽정이 처치해줬기 때문에 도움을 준것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자신이 죽임을 당할까봐 무서워서 도와준것이 더 큰 이유였습니다

 

이후로도 임꺽정 무리는 여러 지역에서 출몰하기 시작하면서 조선 전역을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것이죠

그러다 도적패 무리나 가족들이 잡히기라도 하면 관아에 들이닥쳐 건물을 불지르고 붙잡힌 일당을 구해내기까지 했으며 관군들을 살해하고 군마를 훔치기까지 했습니다

거기다가 임꺽정의 행동은 더욱 대담해졌는데 심지어 조정에서 파견된 고위관리 행세를 하여 고을 수령들에게 접대를 받기도 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만큼 임꺽정은 용맹하기도 하고 굉장히 교활하기도 했는데 추격해온 관군과 맞붙어서 승리를 거두고 유유히 사라지기도 했으며 눈 덮인 산에서 관군들에게 쫓기게 되자 신발을 거꾸로 신어 발자국을 도망치는 방향의 반대로 향하게 했고 그렇게 관군이 그를 쫓다가 길을 헤매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임꺽정 무리를 잡아들이려고 개성부의 포도관 이억근이 포졸 20여명을 이끌고 임꺽정이 머물고 있던 곳을 공격했는데 오히려 화살을 맞고 죽어버리는 일이 생겨버렸는데요

 

이 일로 인해 임꺽정이라는 이름이 명종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죠

상황이 이 정도까지 심각해지자 명종은 임꺽정 무리들을 일개 도적패가 아닌 나라를 어지럽히는 역적이자 국가의 적인 '국적(國賊)'으로 간주해 황해도에 있을 임꺽정 무리들을 잡아들이라 명했습니다

하지만 임꺽정의 거처라고 여겨지던 구월산과 봉산, 평산에 가봤지만 이미 임꺽정을 찾을수 없었고 이후 임꺽정이 출몰했다고 소식이 들리는 평안도, 함경도, 강원도 등에도 토벌대들이 들이닥쳤지만 임꺽정을 도저히 찾을수 없었죠

 

당시 임꺽정은 여러 지역에 정보원들을 두고 관군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듣고 있었으며 상인으로 변장해서 여러 지역을 다녔기 때문에 관군의 눈을 피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워낙 임꺽정이 신출귀몰하게 다니다보니 지방관들도 점점 임꺽정을 두려워 하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임꺽정의 세력은 계속해서 비대해져 갔죠

 

그러다보니 명종은 직접 어명을 내려 임꺽정이 활동중인 5도(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경기도, 강원도)의 모든 관청에 다른 업무는 일단 덮어두고 임꺽정을 잡는데 주력하라고 명할정도였습니다

조정에서 토벌군 장수들에게 계속해서 독촉이 들어오다보니 마음이 급했던 장수들은 아무 백성이나 잡아와 임꺽정 도적단 중 한명이라며 벌주고 고문하기도 했으며 그러다 걸려서 파직당하고 유배를 가기도 하는 등 조선 전체가 떠들썩 거릴 정도였죠

 

그렇게 임꺽정을 잡기위해 관군들이 고군분투 하는 와중에도 그는 여전히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약 3년동안이나 잡히지 않고 도적질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양에서 정보원 역할을 하고 있던 임꺽정의 최측근 중 한사람인 서림이라는 자를 체포하게 되었는데요

그리고 서림에게 임꺽정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면 풀어주기도 하고 벼슬까지 주겠다며 회유했고 결국 서림은 언제 봉산군수 이흠례를 죽이기로 했다고 실토했던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자 명종은 이때가 임꺽정 무리를 토벌할수 있는 기회로 여겨 그렇게 1560년 11월, 황해도 봉산으로 500명의 임꺽정 토벌대를 보냈죠

그리고 곧바로 임꺽정의 근거지로 공격해 들어갔지만 임꺽정은 유인작전을 펼쳐 토벌대를 거의 몰살시켜버렸습니다

그러자 명종은 최정예들로만 구성된 순경사라는 임꺽정 토벌 전담반을 창설해 임꺽정 무리를 추격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1561년 1월 3일, 황해도 서흥에서 임꺽정의 형 가도치와 부하인 김세준 등을 체포할수 있었죠

 

이후 1561년 9월, 평안도 의주에서 임꺽정이 붙잡혔다는 소식이 들렸고 얼마안가 한양으로 압송되었는데요

하지만 그 또한 임꺽정이 아니었으며 이후 임꺽정을 잡기위해 남치근이라는 인물이 서림과 함께 임꺽정을 추격하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임꺽정 무리 중 일부가 항복해 오면서 그가 어디있는지 위치를 알게 된것입니다

 

그렇게 관군은 신속하게 임꺽정이 있던 곳을 급습했고 여러발의 화살을 맞은 그는 결국 체포되었으며 체포된 임꺽정은 15일만에 죽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야사 <기재잡기>에 따르면, 임꺽정이 토벌군에 쫓겨 도망치다가 관군 복장으로 변장한 후 그곳을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때마침 서림이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임꺽정이다!" 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붙잡히게 되었고 이후 임꺽정은 "내가 잡힌 이유는 모두 서림 때문이다, 니가 어찌 그럴수가 있냐" 라며 서림을 질책하면서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죠

 

그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이라는 노래 4절에 '의적 임꺽정'이라는 가사로 나오는데 이 가사는 고쳐야 할것 같네요

지금까지 조선시대 최악의 도적 임꺽정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사탐과탐 다른 포스팅은 어떠세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