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역사 탐구

연개소문. 능력은 뛰어났지만 끝없는 욕망이 가득했던 인물

by 사탐과탐 2023. 11. 12.
반응형
능력은 뛰어났지만 욕망이 가득했던 인물 고구려를 구하기도 했고 죽이기도 한 연개소문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수양제가 고구려를 침략하고 대패한 이후 그 영향으로 인해 수나라가 멸망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고조 이연이 당나라를 건국했죠

이후 당나라와 고구려는 서로 사이 좋게 지냈는데요

622년에는 수나라와의 전쟁때 발생한 양측 포로와 유민들을 서로 교환하기도 했으며 고구려 지도를 당나라에 보내주기도 하는 등 전쟁할 뜻이 없다는 의사를 표시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당고조 이후 황제가 된 당태종은 북쪽에 있던 돌궐과 서쪽에 있던 투르판을 복속시킨 이후 다음엔 동쪽에 있던 고구려로 눈을 돌렸죠

그때 고구려를 지배하고 있었던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연개소문 이었습니다

연개소문이 지배하던 고구려는 당태종의 공격을 두번이나 막아내지만 이 연개소문의 아들들 때문에 고구려가 멸망하고 말죠

 

오늘은 고구려 말기에 최고 권력자이던 연개소문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연개소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고구려의 최고 관직인 대대로와 막리지를 역임했었습니다

그렇게 연개소문은 당시 고구려의 최고 가문에서 태어났던 것이죠

그리고 또한 당시 고구려에서는 아버지의 관직을 아들이 이어받는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연개소문은 가만히만 있어도 고구려의 고위 관리가 될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 연개소문 입장에서는 어이없는일이 벌어지는데요

연개소문의 아버지가 죽고나서 그의 자리를 물려받으려고 하니 다른 귀족들이 그가 너무 잔인하고 포악한 성격을 가졌다는 이유로 관직을 물려받는것에 반대하고 나섰던 것이죠

사실 말로만 성격이 이상하다고 한것이지 다른 귀족들은 연씨 가문에 권력이 몰리는것을 경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한 성깔하던 연개소문은 뒤집어 엎어버릴줄 알았지만 귀족들 앞에 납작 엎드려 싹싹 빌었고 그렇게 겨우 관직에 오를수 있었죠

그런데 이후 당나라의 힘이 점점 커지자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 고구려 영류왕은 당나라의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 천리장성을 쌓고 있었는데 이곳의 감독관으로 연개소문을 임명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미 무시못할 정도의 큰 세력으로 성장하기도 했고 당나라와의 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연개소문을 평양성에 가만히 둘수 없었던 영류왕의 조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여러 귀족들과 논의해 연개소문을 죽여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하지만 연개소문 암살모의는 이미 연개소문이 조정 깊숙히 자신의 세력을 심어두었었던 덕에 그의 귀에도 들어가고 말았는데 이에 연개소문은 대담하게도 자신을 죽이려한 모두를 자신이 먼저 죽여버려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642년 10월, 연개소문은 평양성 남쪽에서 군대 열병식이 있다고 하여 성대하게 술과 음식을 차린뒤에 연회를 즐기며 열병식을 구경하러 오라고 대신들을 초대했죠

그리고 열병식이 시작되었고 얼마안가 연개소문의 부하들이 연회장으로 뛰어들어와 갑자기 대신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해치려했던 대신들을 모두 제거해버린 연개소문은 즉시 병력을 이끌고 영류왕이 있던 궁으로 쳐들어갔고 이때 경비병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일부러 창고에 불을 지르기 까지 하는 치밀함도 보였죠

그렇게 큰 저항없이 왕이 거처하는 궁내로 신속하게 들어갈수 있었고 거기서 만난 영류왕을 죽여버린것입니다

 

이후 영류왕의 시신을 토막내서 도랑에 버려버렸죠

이때 죽은 대신들은 100여명에 달했고 연개소문은 그렇게 정변을 일으켜 하루아침에 고구려 최고 권력자로 자리잡습니다

그리고 영류왕의 조카였던 고보장을 보장왕으로 옹립하고 자신은 스스로 대막리지가 되어 군사권과 인사권을 독차지 해버렸죠

 

그리고 자신의 아들들에게도 높은 관직을 주어 고구려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관복을 온통 금으로 장식했으며 자신이 행차할때는 호위병들이 엄중하게 대오를 이루어 다니게 했고 자신이 길을 지날때는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알렸는데 연개소문 행차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두려워서 숨기 바빴다고 하죠

그렇게 쿠데타를 일으키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날 신라의 권력자이던 김춘추가 찾아옵니다

 

당시 신라는 백제의 공격을 받아 여러 성도 빼앗기는 등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김춘추는 신라와 고구려가 동맹을 맺어 함께 백제를 공격하자고 하는것이었죠

그러자 연개소문은 원래 우리의 땅이던 죽령 땅을 돌려준다면 동맹을 맺어 군사를 동원하겠다고 했는데요

연개소문은 쿠데타를 일으킨지 얼마 되지 않았던 상황에 외교로써 빼앗겼던 한강 유역을 다시 되찾으면 당시 불안한 상황도 안정시킬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김춘추는 단호하게 이를 거절했고 그렇게 고구려와 신라의 동맹은 맺어질수 없었습니다

이때 연개소문의 선택은 훗날 고구려의 운명을 뒤바꾸는 선택이 되어버리죠

어쨌든 얼마안가 더 큰일이 벌어지는데요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 고구려를 정벌하겠다고 선언했던 것이죠

 

당태종은 중국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을 평정하려는 야심이 있었는데 그 중 북쪽의 돌궐과 서쪽의 투르판을 평정한 뒤 다음 목표로 고구려를 삼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했고 어처구니 없게도 당태종은 전쟁을 일으킬 명분으로 고구려 왕을 시해한 연개소문을 벌한다는것을 내세워 645년 4월, 20만이 넘는 병력을 이끌고 직접 고구려를 침공했던 것이죠

 

더 어이없는건 당태종 자신도 쿠데타를 일으켜 형과 동생을 죽이고 황제가 된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1차 여당전쟁이 시작되었고 당나라 군대는 고구려의 요동성과 백암성을 함락시키면서 순조롭게 진격하고 있었죠

요동성은 수나라와의 전쟁때도 함락된적이 없었던 난공불락의 성이었는데 당태종에 의해 허무하게 함락되어 버리자 연개소문도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당나라군은 뒤이어 안시성으로 진격했는데요

안시성의 성주와 백성들은 목숨걸고 죽어라 싸운 끝에 당나라 군을 막아내는데 성공하게 되죠

그리고 점점 겨울이 다가오고 식량 마저 부족해지자 어쩔수 없이 당나라군은 전군 퇴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이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해 들어가 도망치던 당나라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죠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온 당나라군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연개소문은 그만큼 권위가 급상승했으며 쿠데타 이후 불안불안했던 연개소문의 입지가 굳건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연개소문은 대대로 라는 고구려 최고 관직에 있었는데요

그런데 문제는 대대로의 임기가 3년이라는 것이었죠

권력에 대한 욕망이 그칠줄 몰랐던 연개소문은 결국 태대대로 라는 임기가 없고 대대로 보다 더 높은 관직을 새로 만들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또한 첫째아들 연남생이 18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 왕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시는 높은 자리인 중리대형 이라는 관직을 내렸죠

(중리대형 : 현재 대통령 비서실장급의 직책)

심지어 몇년후에는 군사를 통솔하는 대장군직까지 겸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연개소문은 다른 아들들에게도 높은 관직을 내려주며 연씨 집안이 고구려를 장악하다시피 해버린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한편 당태종은 여전히 고구려 침공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신라의 김춘추가 당태종을 찾아와 함께 동맹을 맺어 백제와 고구려를 공격하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648년 당나라는 고구려를 치기 위해 신라와 손을 잡게 되었죠

이번에는 당나라와 신라 두나라의 공격을 동시에 받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연개소문에게는 뜻밖의 좋은 소식이 들려오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갑자기 649년에 당태종이 세상을 떠나고 만것이었죠

<자치통감>에 따르면 죽기전 당태종이 남긴 유언으로 "다시는 요하를 넘지마라", "요동을 공격하지마라" 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약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660년 어느날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연개소문에게 들려오게 되는데요

그 소식은 바로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했다는 소식이었죠

 

백제가 멸망했다는 것은, 다음 타깃으로 무조건 고구려가 될것이 자명했고 심지어 이제는 육로를 통해 공격해 오는것과 함께 바닷길로도 평양성을 곧장 쳐들어 올수도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렇게 1년후인 661년, 당나라는 20만 대군을 동원해 또다시 고구려를 침공했고 그렇게 2차 여당전쟁이 시작되었죠

이번에 당나라는 바다를 건너 평양성 부근으로 바로 공격해 들어오고 또한 압록강을 건너 육로로도 병력을 진군시켰습니다

 

이때 연개소문은 3만의 병력을 아들인 연남생에게 주어 압록강 방어의 총지휘관으로 삼았는데요

문제는 연남생에게는 전쟁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결국 당나라군에 의해 처참하게 대패하고 말았고 심지어 3만의 병력이 전멸하다시피 해버렸던 것이죠

그렇게 결국 당나라군이 평양성을 포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연개소문은 직접 평양성 방어에 나서게 되었죠

당나라 군은 무서운 기세로 평양성을 공격해댔지만 연개소문은 잘 막아내었고 겨울이 올때까지 전쟁을 질질 끌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당나라에는 보급문제가 굉장히 심각했기도 했고 겨울을 버티기도 힘들었는데 연개소문은 이것을 간파했던 것이죠

 

또한 속전속결을 원하던 당나라 였지만 연개소문이 당나라의 공격을 잘 막아내었고 연개소문의 시간끌기 작전이 제대로 먹혀 전투가 지지부진 해지다보니 당나라군 기강이 해이해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662년 1월, 당나라군이 굉장히 지쳐있다는것을 확인한 연개소문은 즉시 모든 병력을 이끌고 성문을 나와 당나라군을 공격하기 시작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에 당나라군은 우왕좌왕 하며 속수무책으로 당할수 밖에 없었고 당나라군을 이끌던 방효태가 고구려군에 의해 전사했으며 그가 데리고왔던 13명의 아들들까지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1,2차 여당전쟁 모두 패배를 당한 당나라는 이후 무력으로 고구려를 정복하는것이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결국 당나라군이 먼저 타협을 보자며 손을 내밀었고 그렇게 고구려가 받아들이면서 두나라 사이에 평화가 찾아오게 되었죠

 

그런데 문제는 666년 어느날, 고구려의 최고 권력자이던 연개소문이 죽고 말았는데요

죽기 직전 연개소문은 세아들에게 "물에서 사는 고기처럼 사이좋게 지내고 권력을 다투지 마라. 서로 싸우면 주변의 웃음거리가 될것이다. 서로 도우며 살거라" 라며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하지만 결국 형제들의 사이는 틀어져 첫째아들인 연남생은 당나라로 망명하게 되었으며 이후 당나라군이 다시 고구려를 침략해올때 앞장서서 길안내를 해줬다고 하죠

 

그렇게 결국 나당연합군에 의해 668년 고구려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연개소문이 죽고나서 고작 2년만에 벌어진 일이었죠

하지만 연개소문이 살아있었다 하더라도 워낙 연씨 집안에서만 해처먹다보니 썩을대로 썩은 고구려의 멸망은 불가피 했을것으로 여겨지네요

 

지금까지 고구려의 마지막 최고권력자 연개소문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사탐과탐 다른 포스팅은 어떠세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