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21대 국왕이었던 영조는 사도세자를 죽인 비장한 아버지였었는데요.
영조에게는 사도세자가 있기 이전에 효장세자라는 끔찍이도 아끼고 예뻐했던 아들이 있었습니다.
1728년 11월. 영조의 외아들이었던 효장세자가 갑자기 병들어 쓰러지더니 시름시름 앓다가 불과 열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왜 죽었는지 이유도 모른 채 사랑했던 아들이자 후계자를 잃은 영조의 비통한 마음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었죠.
그렇게 자식을 잃고 애절하게 통곡을 한 영조를 본 신하들까지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훔쳤을 정도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2년 뒤인 1730년 3월. 온 조정이 발칵 뒤집어지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바로 효장세자가 어떻게 죽어갔는지 이유가 드러났던 것이죠.
이에 눈 뒤집힌 영조는 사건에 연루된 모든 사람을 죽여버리는 등 온 조정에 피바람이 불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난리가 났던 것일까요?
영조의 외아들인 효장세자의 이름은 이행입니다.
영조가 연잉군인 시절에 동궁전 나인이던 정빈이씨를 사가로 불러 첩으로 삼았고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효장세자였죠.
훗날 연잉군이 왕세제가 되었을 때 어머니 정빈이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이행은 고작 3살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 연잉군이 영조로 즉위하면서 이행은 경의군에 봉해졌고 이후 7살이 되었을 때 왕세자로 책봉되었죠.
효장세자는 어린 나이임에도 매우 의젓한 모습을 보였고 아버지인 영조를 닮아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대했으며 심지가 굳고 효성 또한 지극한 영조에게는 완벽했던 아들이자 세자였습니다.
그리고 서연에도 열심히 참여해서 훗날 왕이 될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었죠.
시간이 지나 효장세자가 아홉 살이 되자 영조는 성품이 온화하고 조신한 이조 참의 조문명의 딸을 세자빈으로 맞아들였습니다.
총명하고 흠잡을 곳 없는 아들과 착한 며느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정치의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죠.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728년 3월. 이인좌 등 남인과 소론 강경파들은 밀풍군 이탄을 왕으로 옹립하려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죠.
다행히 영의정 이광좌와 병조판서 오명항 등이 발 빠르게 움직여 반란을 한 달여 만에 진압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인좌의 난이 있고 나서부터 궁에는 좋지 않은 일이 연달아 이러나게 되었죠.
갑자기 화순옹주가 홍진과 함께 하혈 증세로 병들어 앓아눕게 되는가 하면 그 해 11월이 되자 효장세자 또한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몸 져 눕더니 시름시름 앓다가 얼마 안 가서 10살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나버린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하나밖에 없었던 영조는 엄청난 충격에 빠지게 되었죠.
슬픔에 가득 차있던 영조는 죽은 왕세자의 시호를 '효장'으로 정했고 아들을 가슴에 묻게 되었습니다.
효장세자의 갑작스런 죽음에 세자빈 조씨 또한 큰 충격을 받았죠.
단 한 번의 합방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작 14세의 나이에 과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후로 그녀는 죽을 때까지 영조의 병수발을 들면서 홀로 살아야 했고 이를 불쌍히 여긴 영조가 현빈조씨에게는 정말 잘 대해 주었다고 하죠.
그렇게 효장세자가 죽고 2년이 지난 1730년 3월. 영조는 궁 내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어느 전각 아래에 뭔가를 묻어놓은 흔적을 발견합니다.
그곳을 파보니 뼈조각 등 온갖 흉물스러운 물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상한 느낌을 받은 영조는 즉시 의금부에 조사를 명했죠.
이 흉물들을 묻어놓은 것은 바로 '매흉'이라고 불리는 저주 행위로 '매흉'이란 왕과 세자 등 왕실의 가족들의 전각 아래나 일정한 장소에 흉한 물건을 묻어 놓고 그들을 병들게 하거나 죽기를 바라는 저주의 일종이었습니다.
또한 화흉(和兇)은 이 저주물들을 왕실 가족에게 몰래 먹여 독살하려는 것을 말했죠.
의금부에서 조사를 시작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잡혀 들어왔고 고강도의 추국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2년 전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소론과 남인 세력이 영조와 세자를 해코지 할려던 짓임이 밝혀지게 된 것이죠.
그들이 이러한 짓을 한 목적은 오로지 소론과 남인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조와 노론세력을 반드시 제거해야 했던 것이죠.
그래서 제일 처음으로 어린 세자와 옹주들이 타깃이 되었습니다.
이런 엽기적인 일을 실행했던 사람들은 소론의 지시를 받은 박순정, 김순혜 등의 궁녀들이었는데요.
과부였던 이세정이 여러 무덤이나 길가에 거적으로 말아놓은 시체 혹은 불에 탄 사람의 해골 등에서 뼈 조각을 채취했고 가선대부 박도창은 이 뼈 조각과 흉물들을 궁내의 사람들과 결탁하여 여종 하복랑을 궁내로 들여보내 궁녀들에게 넘겨주었던 것입니다.
궁녀들은 모진 고문 끝에 사람의 뼛가루를 창경궁의 양화당, 동궁, 빈궁의 처소 아래에 묻었다는 것을 실토했고 심지어 그 흉물들을 갈아 음식에 타서 효장세자와 네 명의 옹주들에게 먹였다고 자백했죠.
또한 한 궁녀는 영조의 처소 부근의 땅을 식칼로 판 뒤 저주의 말을 읊으면서 인골을 묻었다는 자백도 했습니다.
심지어 매흉과 화흉을 직접 실행했던 궁녀 박순정은 효장세자가 두 살 때부터 일곱 살 때까지 보살폈던 세자의 최측근 궁녀였으며 효장세자의 몸이 안 좋아 지자 요양을 떠났을 때도 같이 가서계속 인골을 갈아 세자에게 먹이며 해코지를 한 것이었죠.
식사때마다 그런 비위생적인 흉물들을 먹었던 효장세자는 짧은 시간에 몹시 위독한 상태에 빠져버렸고 그렇게 왜 아픈지도 모른 채 죽음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영조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죠.
자신이 그렇게도 사랑했던 아들이자 세자의 죽음이 흉물을 먹어 독사했다는 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게 조정은 피바람이 불게 되었죠.
주모자였던 박순정과 이세정 그리고 그들을 도와줬던 궁녀들은 단 한 명도 남지 않고 모조리 처형 당했습니다.
그리고 소론과 남인의 수많은 사람들도 의금부로 잡혀와 고문을 받는 도중에 죽기도 하고 사형을 당하기도 했죠.
그런데 한참 매흉, 화흉 사건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던 가운데 또 한 번 영조를 놀라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19살밖에 안된 어린 환관 최필웅 등 여러 명이 한밤중에 궁궐의 담을 넘어 나갔다가 체포된 것이었죠.
매흉, 화흉 사건 때문에 부쩍 의심이 많아진 영조는 이 또한 관련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그들을 엄중히 심문하라 명했습니다.
그들은 불에 달군 쇠붙이를 몸에 지지는 고문인 낙형을 견디지 못하고 남인이던 박재창의 지시에 따라 행동했다고 자백했습니다.
그들의 자백에 의하면 박재창이 노비들을 궐내에 잠입시켜 미리 준비해놓은 화약을 터트려 궁에 불을 지르고 혼란을 틈타 자객을 보내 영조를 죽이려 했다는 것이었죠.
매흉, 화흉 사건이 마무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인이 일으키려 한 또 다른 역모사건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두 역모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는 1년 6개월이라는 엄청나게 긴 시간 동안 계속되었고 상궁, 궁녀, 내시 등과 소론, 남인 등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200명이 넘어 모두 처형 당해서 죽거나, 또는 고문당하다 죽게 되었죠.
한편으로 영조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정통성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했던 반대세력들을 일순간에 제거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남인과 소론은 완전히 폭망 상태에 이르게 되어 재기 불능 상태까지 되었고 이로써 노론의 일방적인 독주체제가 전개되었죠.
그놈에 권력이 대체 뭔지 그것을 잡기 위해 어린 세자와 옹주들에게 무덤에서 파온 썩은 뼈가루를 먹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조선시대 최악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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