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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숙직상궁. 조선시대 임금의 잠자리를 감시하고 코치하던 8명의 감독관

by 사탐과탐 2021.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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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임금은 왕실의 법도 때문에 많은 제약을 받았었는데요.
잠자리까지 숙직상궁 8명에게 감시당하며 이런저런 코치 받아야 했죠.
숙직상궁의 임무는 오로지 왕실의 후사를 위해 임금의 잠자리를 감독하는 역할이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있을 때 누군가가 주위에서 은밀히 소리를 들으며 이래라 저래라 코치를 하고 있다면 어떠실거 같으신가요.

당연히 누구나 어이가 없고 소름 돋아 할 것 같은데요.

 

조선시대에는 성관계를 가질 때 이런 낮 뜨겁고 불편한 코치를 받던 존재가 있습니다.

이 불쌍한 사람은 바로 왕이었죠.

무려 8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주위를 빙 둘러싸서 남녀의 은밀한 소리를 들으며 이래라 저래라 코치를 했었는데요.

그 8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바로 숙직상궁들이었습니다.

도대체 그들은 왜 이렇게까지 했던 것일까요?

 

조선시대의 궁녀들은 모두 왕의 여자였지만 아무리 왕이라고 해서 아무 여자와 그냥 마구잡이로 잠자리를 가질 수는 없었습니다.

왕은 왕실의 법도를 따라야 했으며 왕비든 후궁이든 아니면 다른 여자들과의 잠자리를 가질 때에도 엄격한 규칙과 법도에 따라야 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왕의 잠자리를 관장하는 '대전상궁'이 점이나 운세를 보고 어떤 날, 몇 시에 어떤 여인과 관계를 맺었을 때 왕자를 낳을 수 있느냐가 고려되어야 할 것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었죠.

이런 운세나 점 같은 것은 사람에 따라 해석이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에 대전상궁의 주관적인 의지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그러다 보니 권세를 한번 잡아 보려던 대신들은 대전상궁에게 뇌물을 주고 자신의 딸의 처소로 왕이 찾아가도록 유도하기도 했죠.

덕분의 대전상궁의 권력은 굉장히 강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왕비와의 잠자리에 비해서 후궁들과의 잠자리 규칙은 비교적 쉬웠는데 많은 왕들이 엄격한 법도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왕비와의 잠자리보다 그나마 괜찮았던 후궁들과의 잠자리를 더 선호하게 되었죠.

 

아무튼 왕의 파트너와 날짜가 정해지면 대전상궁의 지휘에 맞춰 어린 생각시들이 이부자리를 각각 2벌씩 준비해 주고 촛불 5개와 타구 등을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왕과 왕비가 방에 들어가면 숙직상궁을 제외한 나머지 궁녀들을 다 물러가라 이른 뒤 60~70대의 숙직상궁 8명은 우물 정(井)자의 형태로 침실 주위를 빙 둘러 앉았죠.

 

그리고 촛불을 다 끈 뒤 왕과 왕비의 성관계가 시작됩니다.

한마디로 왕과 왕비가 잠자리를 가질 때 숙직상궁 8명은 그들의 소리를 들으며 코치를 한 것이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왕과 왕비는 나라의 종묘와 사직을 위해 후사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늙은 상궁들의 코치 속에 왕자를 낳기 위한 중요 국가 행사 하나를 치루는 것이었습니다.

방문은 다 닫혀있고 누구도 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빙 둘러앉은 8명의 숙직상궁들에게는 모든 소리가 다 들렸죠.

 

이들의 임무는 이러했습니다.

관계를 맺는 두 사람이 쾌락에 빠져들지 않고 지극히 이성적으로 왕자 생산만을 위한 관계가 되어야 했기 때문에 숙직상궁들은 아무리 왕이라도 과감히 간섭을 했죠.

왕과 왕비가 성관계를 하는 도중에 왕이 너무 흥분을 하거나 과한 몰입을 하면 "전하, 옥체를 생각하시어 이제 그만하시옵소서" 라며 제재를 가하기도 했습니다.

아니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라던지 자세에 대한 코칭을 한다던지 여러 방면으로 왕의 성관계를 도왔죠.

 

그리고 어쩔 때 왕의 체력이 딸릴 때를 대비해서 살아 있는 닭을 준비해뒀다가 응급처방으로 왕에게 닭의 피를 먹일 때도 있었습니다.

또한 왕의 나이가 어릴 때는 옷 벗기는 순서까지도 가르쳐 줬을 정도였다고 하고 남녀의 성관계에 대한 자세한 것까지 모두 가르쳐 줬다고도 하죠.

숙직상궁들에겐 왕자 생산의 목적이 아닌 성적 쾌락을 추구한다거나 심하게 몰입을 하거나 흥분을 하면 언제든지 왕의 행동에 개입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왕은 상궁들의 지시를 철저히 따라야 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만약 왕이 이러한 상궁들의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규칙을 어기게 됐을 경우에는 신하들의 상소가 빗발쳤다고 하죠.

장희빈과 숙빈최씨의 남편이던 숙종의 경우에는 '미인을 경계하라'는 상소를 받기도 했습니다.

 

원칙적으로 왕에게는 쾌락을 추구하는 성관계는 허용되지 않았지만 일부 왕들은 이런 법도와 규칙을 못마땅해 했고 후궁이나 궁녀와의 관계를 맺을 때는 자기가 내키는 대로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왕비와의 잠자리에서는 이런 낮 뜨거운 규칙을 따라야 했죠.

궁녀는 모두 왕의 여자이니 언제든지 누구와도 성관계를 할 수 있겠다 생각해서 '우와 왕 되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면 너무나도 큰 경기도 오산이죠.

 

나라의 최고의 권력을 가졌던 왕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중요한 사생활 마저 마음대로 누리지 못한 불쌍한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왕의 잠자리 코치, 숙직상궁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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