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왕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습니다.
정치에 밀려난 왕자들은 일부로 술과 기생에 빠져 방탕하게 살기도 했었죠.
그 외에도 살아남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했었는데요.
조선시대 왕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과거의 왕들은 자식을 굉장히 많이 두었었는데요.
조선시대 왕들 역시 자식을 굉장히 많이 낳았죠.
조선왕조 500년간 실제로 재위에 올랐던 왕은 27명이었고 사망 후 추존된 왕은 5명이었는데 그들의 자식만 해도 총 268명이나 되었습니다.
태종은 29명의 자식을 낳았고 성종 28명, 선조 25명, 정종 23명, 세종 22명의 자식을 두었죠.
하지만 이들 중 왕이 된 사람은 태조 이성계를 빼고 고작 26명 밖에 없었다는 뜻인데요.
그렇다면 왕이 되지 못한 이 많은 왕자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예전 왕의 자식들은 지금의 형제자매와 같은 느낌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사이가 좋을 때도 있었지만 서로 죽고 죽이는 경우도 많았죠.
왕비의 첫째 아들인 적장자는 원자라고 불렀고 10세 정도가 되면 세자로 책봉 되었죠.
세자는 동궁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세자가 거처하는 곳을 동궁(東宮)이라 불렀기 때문이죠.
왕이 살던 곳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동궁이라고 불렀는데요.
'장차 보위를 이을 뜨는 해' 라고 해서 세자의 거처를 해가 뜨는 방향인 동쪽에 둔 것이었습니다.
그 외에 자식들은 차별이 심했는데요.
아들이냐 딸이냐의 차별도 있었고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서 그들은 완전히 다른 취급을 받았습니다.
왕비의 소생과 후궁의 소생을 정확하게 구분하기 시작한 것이죠.
첩의 소생이면 본처의 소생보다 당연히 처우가 달라야 하는 것이 도리라는 성리학적인 사상이 뿌리 깊이 박혀버린 것입니다.
그 외에 왕비가 낳은 아들들은 모두 대군(大君)으로 불렸고 왕의 첩인 후궁들이 낳은 아들들은 군(君)으로 불렸습니다.
이렇게 급을 나눠 놓았으니 나이가 많은 군은 자신보다 어린 대군에게 비록 어린 동생이었어도 존칭을 썼어야 했죠.
딸들도 마찬가지로 서로 다르게 불렀는데요.
왕비가 낳은 딸들은 공주(公主), 후궁이 낳은 딸은 옹주(翁主)라고 불렀죠.
세자는 남자형제들과는 형제 사이기도 했지만 잠재적 경쟁자이기도 했습니다.
세자는 자신이 첫째가 아닌 경우이거나, 자신이 서자인 경우 그리고 자신의 능력이 형제들보다 딸리거나 할 경우에는 형제들이 자신의 위치를 노리는 정적이 될 수도 있어서 이런 경우에는 형제자매들과 굉장히 좋지 않은 사이가 되기도 했죠.
서자이던 광해군이 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인 경우가 이러한 경우입니다.
그러나 세자와 형제들이 친하게 지내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자신이 왕비의 소생인 적장자에 첫째 아들이며 심지어 왕이 될 재능마저 출중하면 세자 자리가 굳건했기 때문에 형제자매와의 관계도 친밀하게 지내는 경우도 많았죠.
조선 초 태종은 왕권 강화와 안정을 도모하고 행여나 부모형제간에 있을 처참한 살육전을 없애기 위해서는 세자를 제외한 왕자들과 부마들의 모든 권한을 빼앗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자를 제외한 왕자들은 왕의 8촌 이내 친족은 벼슬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인 '종친불사(宗親不仕)' 제도를 실시하면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 당했죠.
행여나 왕자들이 정치에 관련된 말을 하기라도 하면 삼사의 대간들의 상소가 빗발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왕도 신하들도 왕자들의 힘이 커지는걸 경계했죠.
그렇다보니 대군이나 군, 공주, 옹주들은 나이가 차서 결혼을 하게 되면 모두 궁 밖으로 나가서 살았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언제든지 왕이나 세자의 위협이 될 수 있었던 존재이기도 했기 때문에 항상 누군가에게 감시를 당하며 살았고 감시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모든 왕족은 한양 안에서만 살아야 했죠.
다른 지방에 갈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왕의 허락이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혹시나 세자 자리를 위협할 만한 왕자가 지방에서 정권을 뒤집을만한 세력을 키우는걸 염려했었기 때문이죠.
어쩌다 왕의 허락을 받아 지방에 머물게 되더라도 그 지역의 수령은 1년에 두 번씩 왕자의 행적을 살펴 보고했어야 했습니다.
만약 왕자가 몰래 지방을 다녀왔을 때는 중벌에 처해졌고 왕자가 왔다간 지방의 수령에게도 책임을 물어 파직 시키기도 했죠.
이렇게 빡쌔게 이들을 감시한 대신 왕자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왕실 종친부의 최고의 명예직인 작위를 받고 나라에서 녹봉도 받았으며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재산을 줘서 부족함 없이 살도록 해주었습니다.
돈과 명예를 줄 테니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평생 놀고 먹고 조용히 지내라는 뜻이었죠.
하지만 여기에 더해 왕자들의 자식들, 자식들의 자식들, 그 자식들의 자식들까지 2대부터 4대까지 정치활동을 금지했었는데요.
그나마 다행인건 5대 후손들부터는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고 정부의 관료가 되어 출세할 수도 있긴 했죠.
그러나 10대 손이 넘어가기 시작하면 성은 왕족과 같은 전주이씨 이지만 거의 왕족 대우를 해주지는 않았고 역모에 휘말리는 등 온갖 풍파를 거치며 나중에는 왕족이라고 할 수도 없는 처지로 사는 왕족도 있었습니다.
강화도에서 농사지으며 살던 왕족, 철종이 그러했죠.
그렇다보니 왕자들은 학문을 멀리하고 예술이나 불교에 심취한 경우도 있었는데요.
이런 삶을 산 가장 큰 이유는 왕실과 신하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왕자들 중 총명 하다거나 엄청난 재능을 보이는 왕자들은 일단 세자 자리를 위협하는 인물로 찍혀 여차하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기도 했고 또한 만약 신하들 중 역모를 꾀하려는 사람들이 있으면 왕자는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신하들에 의해 다음 왕으로 옹립할 사람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타의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역모에 휘말리는 경우도 많았죠.
그러다 역모에 실패하기라도 하면 자신은 억울하게 죽임 당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설사 성공하더라도 왕권이 굉장히 약해 신하들에게 휘둘리는 경우가 많았죠.
또한 왕이나 세자가 급작스레 사망을 하게 되면 자신은 왕이 되기 싫어도 신하들에 의해 왕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왕자들은 일부러 어리숙한척, 멍청한척 하는 경우도 있었고 진짜 학문을 멀리해서 실제로 멍청한 왕자도 많았으며 신하들이나 왕족들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기 위해 연기를 하는 왕족도 많았죠.
제안대군 역시 멍청이인척 연기를 하며 목숨을 보존하려 한 것이라는 설도 많았고 조선 말 흥선대원군 역시 '파락호'에, '상갓집 개'라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감추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능력이 뛰어난 왕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펼쳤다간 골로가기 딱 좋으니 평생을 쥐 죽은 듯 조용히 사는 수밖에 없었죠.
그들은 돈도 많다 보니 허구헌날 기방에 드나들고 주색에 빠져사는 왕자들도 많았으며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왕자들도 많았죠.
임해군, 순화군은 왕자의 신분을 이용해 죄 없는 사람들을 마구 죽이기까지 한 왕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왕권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지만 않으면 조용히 잘 먹고 잘 사는데 부족함은 없었습니다.
왕자들에게는 많은 특권까지 있었는데요.
이들은 법을 어겼을 때도 왕의 허락이 없으면 조사를 받지 않았고 고문 또한 받지 않았죠.
하지만 반대로 이들에게 죄를 범하는 사람에게는처벌이 더 강해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부모 중 한 사람만 천민이면 그 후손은 천민이 되었지만 왕자들이 다른 천한 신분의 여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은 면천되어 천민이 되지 않았죠.
또한 왕자의 첩의 소생이라 할지라도 서자로 차별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연히 군역 역시 면제되었죠.
지난번에 소개해드린 공주의 남편인 부마들 역시 많은 제재를 받긴 했지만 부마들의 자식들은 관직에 나가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더 좋은 혜택을 받은 것에 비하면 왕자들의 자식들은 4대까지는 관직에도 들지 못했으니 차라리 부마들이 더 나은 것 같네요.
또한 부마들과 마찬가지로 야망 없이 유유자적하고 희희낙락하며 얇고 긴 삶을 원했던 왕자들은 왕이 되는 것보다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을 것 같기도 하죠.
나라의 지존이었던 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왕이 되지 못한 채 어쩌면 죽을 수도 있는 삶을 살았던 대군과 군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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