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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는 왜 술먹을때 안주를 안먹을까? 이렇게 맛있는걸... 대체 왜?? 유럽에서는 술먹을때 한국과 정반대로 안주를 먹지 않는 이유  우리나라 사람들이 북미나 서유럽 지역에 여행을 가서 술을 마실 때 놀라는 것 중 하나가바로 와인을 제외하면 술을 마실 때 같이 먹을만한 안주가 거의 없다는 점이라고 하죠 실제로 유럽의 펍이나 주점에서는 대부분이 술만 파는 경우가 많으며 안주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고 합니다  그나마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몇몇 대도시의 술집 같은 경우에는 감자칩이나 나쵸 등의 작은 과자나 견과류 또는 감자튀김을 팔기도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칵테일에 치즈, 과일 안주 같은 것은 전혀 없다고 하죠  대도시나 각 나라의 수도 등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의 술집에서 안주를 파는 것도 한국으로 치면 이태원이나 인사동처럼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곳이기 때문에 손님의 기호.. 2024. 9. 17.
고국원왕. 최전성기로 갈 수 있었지만 거꾸로 고구려의 잃어버린 40년을 만든 왕 백제의 정복왕 근초고왕에게 원통하게도 전쟁터에서 전사해버린 고구려 비운의 왕이자 최전성기로 갈 수 있었지만거꾸로 고구려의 잃어버린 40년을 만든 고국원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오늘은 어쩌면 고구려의 최전성기를 먼저 이끌뻔했던 비운의 왕, 고국원왕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4세기 초반, 동아시아는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습니다중국 대륙에서는 진 왕조가 무너지고 5호 16국 시대가 도래했으며한반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패권을 다투며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었죠이러한 혼란의 시기에 고구려의 제16대 왕으로 즉위한 이가 바로 '고국원왕'입니다 331년, 아버지 '미천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고국원왕의 본명은 '사유' 또는 '쇠'였습니다미천왕은 낙랑군과 대방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고구려.. 2024. 9. 15.
을파소.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고국천왕에게 등용되어 한번에 고구려 최고 관직 국상에 오른 남자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고국천왕에게 등용되어 한번에 고구려 최고 관직 국상에 오른을파소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우리 역사에는 수많은 영웅과 위인들이 등장합니다그중에서도 한 시대에 이름을 알린 것도 모자라 나라의 운명까지 바꾼 이들이 있었죠고구려의 명재상 '을파소'가 바로 그런 인물 중 한 명입니다그는 2세기 말, 고구려가 집안싸움으로 진통을 겪고 있을 때 혜성처럼 등장했었는데요 을파소는 단순히 뛰어난 정치가였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정치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개혁가이기도 했습니다그의 업적 중 특히 주목받는 것은 '진대법'의 실시인데, 이는 당시로서는 혁신을 넘어 혁명적인 복지 정책이었죠 농사짓던 농부가 어떻게 고구려의 재상의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인지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을파소는 고구려 2.. 2024. 9. 11.
고발기. 형수와 동생에게 왕위를 빼앗긴 고구려 왕자 형수와 동생에게 왕위를 빼앗긴 남자 고구려의 왕자, 고국천왕의 동생 고발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2세기 말, 고구려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을 아우르는 강대국으로 성장하면서, 그 내부에서는 치열한 권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특히 왕위 계승을 둘러싼 갈등은 종종 피비린내 나는 비극으로 이어졌었죠이러한 고구려 역사의 한 장면을 장식한 인물이 바로 고발기입니다 고발기는 고구려 8대 신대왕의 아들이자, 제9대 고국천왕의 동생이었습니다그는 성격이 강하고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많은 귀족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합니다그러나 그의 선 넘은 야망으로 인해 모두에게 손절 당해버리고 결국 비극적인 최후로 이어지게 되었죠과연 고발기는 어떤 야망을 품었던 것일까요? 197년 5월, 고구려에 큰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9대 .. 2024. 9. 10.
산상왕. 형수였던 우씨왕후에게 간택 당해서 한순간에 고구려의 왕위에 올랐던 인물 형수인 우씨왕후와 결혼해서 고국천왕에 이어서 고구려 왕위에 올랐던산상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구려의 제10대 왕인 '산상왕'의 이름은 고연우이며8대 국왕인 '신대왕'의 셋째 아들이었습니다 신대왕에게는 모두 네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가 9대 왕이 되는 고국천왕 고연무이고 둘째가 고발기 셋째가 고연우 넷째가 고계수였죠  신대왕이 죽은 후 고국천왕이 그 뒤를 물려받았고 고국천왕은 서기 197년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요 고국천왕이 후계자를 두지 않은 채 죽었기 때문에 왕후였던 우 씨는 형사취수제의 관습에 따라 왕의 동생인 고발기와 고연우 중 한 명을 선택해 그와 혼인하고 자신의 남편이 되는 사람을 왕으로 추대해야 했죠  그래서 우 씨는 고국천왕의 죽음을 비밀로 한채 신대왕의 둘째 아들인 고발기를 먼저 찾아.. 2024. 9. 9.
우씨왕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남편의 동생과 재혼했던 고구려의 왕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남편의 동생과 재혼했던고구려의 왕후 우씨왕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한국 역사상 가장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 여성 중 한 명을 꼽으라면 단연 고구려의 '우씨왕후'를 들 수 있습니다 그녀는 고구려 제9대 '고국천왕'과 제10대 '산상왕', 두 명의 왕을 남편으로 둔 유일무이한 왕후였었죠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라는 고구려의 혼인 풍습을 통해 한국사에서 보기 드문 왕후의 자리를 2대에 걸쳐 유지하며, 막강한 권력을 누렸던 여인이었습니다 단순히 형사취수제 때문에 그녀가 막강한 권력을 누린 것만은 아닌데요빠르게 정세를 읽는 능력과 빠른 판단력과 실행력 덕분에 그녀는 고구려 역사에 기록될 만큼 큰 업적을 남기게 되었죠지금부터 두명의 고씨 형제와 결혼해서 두번이나 왕후 자리에 올랐던 우씨왕후.. 2024. 9. 8.
고국천왕. 엄청난 피지컬+무력+두뇌+정치 완벽에 가까웠던 고구려왕 엄청난 피지컬+무력+두뇌+정치 완벽에 가까웠던고구려왕 고국천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고구려 내정의 최고능력자라고 하면 보통 소수림왕을 뽑는데사실 '고국천왕'도 소수림왕 못지않게 고구려의 토대를 닦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고국천왕은 고구려의 9대 국왕으로 계루부와 소노부 등 5개의 부가 연합해 만들어진 고구려에서 왕권 강화를 추구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죠  그는 명재상으로 불리는 '을파소'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를 중용해 나라를 잘 이끌었던 점이나 먹을 것이 없어서 어려워하는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한 정책인 진대법을 시행한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고국천왕은 179년~197년까지 고구려의 왕위에 있었는데 국천왕이나 국양왕이라는 칭호로 불린다고 합니다 국천이나 국양은 왕릉이 위치한 곳으로 고구려 전기 .. 2024. 9. 7.
의소세손.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정조의 형이었던 잊혀진 비운의 왕세손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정조의 형이었지만 운명을 달리한 비운의 왕세손의소세손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조선 역사에서 '의소세손'이라는 이름은 많은 이들에게 생소할 것입니다그러나 이 이름 뒤에는 조선 왕실의 희망이자 비극이 담겨 있는데요 의소세손은 영조의 첫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장남으로, 조선의 미래를 짊어질 인물로 기대를 받았었죠그는 정조의 친형이었으며, 만약 요절하지 않았다면 정조 대신 조선의 왕위에 올랐을 인물입니다 의소세손의 생애는 짧았지만, 그의 존재는 조선 왕실의 역학과 영조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하죠 1750년(영조 26년) 8월 27일,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의소세손이 태어났습니다 당시 영조의 나이는 57세로 조선 시대의 조혼 풍습을 고려하면 다소 늦은 나이에 .. 2024. 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