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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갈리아 원정. 삼두정치의 한 축이었지만 기반이 없었던 카이사르가 최고 권력자가 될수있었던 전쟁

by 사탐과탐 202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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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두정치의 한 축이었지만 기반이 없었던 카이사르가 최고 권력자가 될수있었던 전쟁 갈리아 원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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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카이사르(또는 율리우스 시저) 로마 제국의 기초를 쌓은 인물이죠

후대의 지도자들이 그의 강력한 권위를 빌리기 위해 칭호에 카이사르의 이름을 딴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러시아에서는 그의 이름을 따서 황제를 '차르'라 불렀고 독일에서는 황제를 '카이저'라고 불렀습니다

 

살아생전에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지만 그가 죽은 후 카이사르의 이름은 영원히 황제를 의미하게 되었죠

그만큼 생전에 어마어마한 권력을 누리던 카이사르였지만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순조롭지만은 않았습니다

커다란 야심에 비해 세력이 부족했던 카이사르에게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릴 기회를 가져다준 사건이 있었죠

 

바로 기원전 58~51년까지 8년 동안 치러졌던 갈리아 원정입니다

갈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카이사르는 지지기반을 쌓고 로마제국에서 벌어진 내전까지 승리하게 되면서 마침내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되죠

로마 뿐만아니라 유럽의 역사를 바꿔버리는 계기가 된 갈리아 원정 그 자세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카이사르는 기원전 100년에 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당시에 로마는 명목상일 뿐이지만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공화정의 형태를 띠고 있었죠

이 공화정 말기에 카이사르는 당시 유력했던 두 인물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연합하며 삼두정치(3명의 강력한 개인이 지배하는 정치)의 한 축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카이사르는 셋 중에서 가장 입지가 약했기 때문에 나머지 둘을 따라잡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죠

때마침 중세 최고의 용병이라 불리던 '헬베티 족'이 갈리아 지역에서 로마의 식민지 한 곳을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요

 

거대한 갈리아 땅의 수많은 부족들 중 고작 한 개의 부족이 공격해온 것일 뿐이었지만 카이사르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자신의 명성을 드높일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급하게 헬베티 족이 출현했다는 장소로 달려가죠

강력한 헬베티 족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급히 달려온 카이사르 군단에게는 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그 당시 로마군은 갈리아의 군대와 싸워서 이긴 적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죠

수차례의 갈리아 원정에서 처참한 패배만을 겪었기 때문에 로마는 인근의 갈리아족과 적당한 협상을 시도하며 전쟁을 피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카이사르가 이길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죠

하지만 카이사르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는데 바로 '필룸'이라는 투창을 사용하는 전술이었습니다

 

이 필룸의 특징은 창 중간에 동그란 추가 달려 있었다는 것인데요

로마군이 던진 필룸은 상대 병사의 방패에 꽂히게 되는데 이때 투창에 달린 추의 무게 때문에, 적군은 들고 있던 방패를 놓치게 됩니다

게다가 방패에 부딪힌 필룸은 창날이 쉽게 구부러져 버렸기 때문에 투창 공격을 받은 적 병사가 필룸을 주워서 다시 쓸 수도 없었죠

 

그렇게 로마군은 먼저 투창으로 공격을 한 후 방패가 없어져 방어가 약해진 적에게 돌격하는 전술을 사용하며 승리하게 됩니다

카이사르는 포로로 붙잡힌 헬베티족에게 어째서 이곳을 공격했느냐 물었고 헬베티 족은 "우리가 있던 험준한 알프스산맥은 추워서 살 곳이 못 된다

그래서 따뜻한 남부에 자리를 잡고 갈리아 지역 전체를 통일하려 했다"라는 대답을 하는것이었죠

 

개개인의 전투력이 강한 갈리아가 하나로 뭉쳐진다면 로마에게는 큰 위협이 될 것이라 생각한 카이사르는 즉시 로마에 있는 원로원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갈리아가 통일되기 전에 로마가 먼저 그들을 쳐야만 한다"라며 원로원을 설득한 카이사르는 겨우 4개 군단인 2만의 군대를 가지고 갈리아 원정을 떠나게 되죠

기원전 58년 그의 나이 42세 때의 일이었습니다

 

카이사르가 거느린 병력은 갈리아의 부족 하나의 군대보다 적을 정도로 작은 규모였지만 그는 로마군의 우수한 장비와 자신의 탁월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갈리아 지방을 정복해 나가기 시작했죠

부족 단위로 살아가는 갈리아의 분열 상황을 이용해서 영리하게 그들을 하나씩 따로 격파해버린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때 당시에는 전방에 있던 병사가 죽으면 뒤에 있던 병사가 나서며 그 자리를 채우는 방식으로 전투가 진행되었죠

하지만 카이사르의 로마군은 일정 시간을 싸운 뒤 지휘관이 신호를 보내면 앞에서 싸우던 병사가 뒤로 빠지고 다음열이 싸우도록 했는데요

지금의 프로 스포츠팀처럼 로테이션을 돌렸던 것이죠

 

이렇게 로테이션을 돌려버리니 상대편은 점점 지쳐가는데 로마군은 비교적 쌩쌩한 상태로 싸울 수 있었고 전투는 로마군에 유리하게 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갈리아 족은 평균적으로 로마 사람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클 정도로 체격이 컸는데 이렇게 체격 차이가 있으니 갈리아 군대와 싸우면 매번 불리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카이사르 군은 이 문제를 반복된 훈련을 통해 만든 로테이션 전술로 극복해버립니다

 

이렇게 갈리아를 정복했지만 기원전 51년이 되자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하죠

거기다가 갈리아의 영웅이라 불리는 베르킨게토릭스라는 인물까지 등장하며 카이사르군에 맞섭니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을 지켜보던 베르킨게토릭스는 먼저 현재의 상황을 철저하게 분석했죠

갈리아가 패배한 이유는 첫 번째로 부족 간에 단합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족 간에 연합은 하지 않고 따로따로 싸우다 각개격파 당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둘째로 로마군의 조직력과 전술은 직업군인들이 철저한 훈련을 받고 전투를 치르며 쌓인 경험의 결과이므로 단기간에 따라잡긴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먼저 분열된 부족들을 하나로 모은 후에 로마군의 약점을 노려 공격하는 전략을 짰던것이죠

 

로마군은 보병 중심이기 때문에 발이 느리고 병력의 수가 적으며 멀리 원정 나왔기 때문에 군량을 보급하기 힘들다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르킨게토릭스는 로마에게 군량을 대주던 부족들을 설득해서 마을에 있는 군량을 모두 태워버리고 부족민들에게는 따로 보상을 해줬는데요

덕분에 로마군은 부족해진 식량을 구하러 사방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죠

 

안 그래도 발이 느린데 숫자마저 줄어든 로마의 보병들은 갈리아 기병들에게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고 식량을 구하러 나온 병사들은 모두 적군의 공격을 받아 죽음을 맞게 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카이사르는 드넓은 갈리아 한복판에서 굶어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죠

식량이 15일 치 정도밖에 남지 않자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써봤지만 결국 방법을 찾지 못해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카이사르에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는데요

 

그 당시 로마군을 상대로 도시를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갈리아인들은 도시를 완전히 불사르고 그곳의 주민들을 이주시키는 방식으로 로마군이 식량을 구하는 것을 차단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꼭 말 안 듣는 사람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죠

당시 아바리쿰이라는 도시가 있었는데 이 도시는 갈리아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었던 것입니다

 

도시의 주민들은 아름다운 아바리쿰을 절대 불태울수 없으니 자신들이 직접 도시를 지키게 해달라고 했죠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그들의 태도에 베르킨게토릭스도 결국 그 요구를 승낙하게 됩니다

하지만 식량을 애타게 찾던 카이사르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죠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한 카이사르는 그 소식을 듣는 즉시 모든 병사들을 이끌고 아바리쿰으로 달려갑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결국 치열한 전투 끝에 그곳을 함락시킨 뒤 무려 2년이나 쓸 수 있는 식량을 확보하게 되죠

자신의 작전이 물거품으로 끝나버렸지만 베르킨게토릭스는 포기하지 않았고 이번에는 주변 부족에 지원을 요청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부족민들이 그의 지원에 호응하며 달려왔고 덕분에 엄청난 대군을 거느리게 되며 자신감을 얻은 베르킨게토릭스는 로마군에 기습공격을 시도하게 되죠

 

하지만 카이사르의 로마군은 이미 7년간의 수많은 전투를 경험한 역전의 용사들이었기 때문에 기습에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맞서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로마군은 갈리아 군의 기습을 막아낸 것도 모자라 베르킨게토릭스가 있는 본진으로 돌격해버렸죠

로마군의 날카로운 돌격에 당황한 베르킨게토릭스가 달아나자 병사들도 대장을 따라 도망가기 시작했고 로마군은 이들을 추격하며 개박살을 내버립니다

 

정신없이 도망가던 베르킨게토릭스는 근처에 있던 알레시아라는 요새로 들어간 뒤 문을 걸어 잠그고 버티기에 들어갔죠

카이사르는 즉시 모든 병사들을 동원해서 알레시아를 겹겹이 에워싸버립니다

베르킨게토릭스는 알레시아에 들어가기 전 모든 갈리아인들에게 호소문을 보냈는데요

그 내용은 자신들이 무너지면 갈리아 지역은 로마군의 말발굽에 짓밟히게 될 테니 병력을 일으켜 자신을 도와달라는 호소문이었죠

 

그의 간절한 외침은 많은 부족민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무려 26만명이나 되는 갈리아 부족 연합군이 사방에서 알레시아를 향해 달려오게 됩니다

요새를 포위하는 기지를 짓고 있던 카이사르는 갈리아 족들이 알레시아로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후방에도 방어기지를 만들었죠

시간이 흘러 마침내 26만 명의 갈리아 지원군이 로마의 포위망 가까이 도착합니다

 

카이사르가 이끄는 5만의 로마군은 알레시아 요새 수비병 8만 명을 포위하면서 동시에 26만의 연합군에게 포위를 당한 형태가 된 것이죠

마치 도넛처럼 포위당한 채 카이사르는 이곳에서 역사상 전무후무한 전투를 펼치게 됩니다

처음 전투는 기병대 기병의 전투로 시작되었는데요

 

로마군은 기병의 규모 면에서 불리했지만 용감히 싸워 갈리아 기병을 물리쳤고 외부의 지원군에 호응해 나온 요새의 수비병도 카이사르의 포위망을 뚫지 못하며 다시 요새로 물러났습니다

다음날 갈리아군은 한밤중에 공성병기를 이용해 공격에 나섰으나 로마군의 포위망을 뚫는 데 실패하고 엄청난 사상자를 내며 물러났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때도 요새안에서 수비군이 호응했으나 카이사르군의 단단한 수비를 뚫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전투 사흘째 되는 날 갈리아군은 6만의 병력을 따로 보내 포위망의 가장 약한 곳인 북쪽 진지를 공격하게 했죠

그와 동시에 다른 두 방향에서도 출격하며 총 세 방향에서 총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사방에서 적군이 밀려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카이사르는 높은 망루에 올라 전투 상황을 한눈에 보면서 지휘했죠

안팎에서 계속되는 갈리아군의 총공격에 포위망 몇 군데가 뚫렸지만 그때마다 카이사르가 적절하게 지원군을 보내며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전투를 지켜보던 카이사르는 가장 치열한 북쪽 전선에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뛰어들었죠

카이사르가 나타나자 갈리아군은 더욱 거세게 공격해왔고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습니다

그런데 이때 놀랍게도 카이사르가 몰래 매복시켜둔 로마의 기병대가 갑자기 적군의 뒤에서 나타났죠

 

앞뒤로 공격을 당한 6만의 갈리아군은 순식간에 박살이 나버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요새 수비병들은 황급히 성으로 들어가 버렸고 바깥에 있던 갈리아 지원군도 요새를 포기한 채 자신들의 땅으로 물러났죠

다음날 적장 베르킨게토릭스는 무기를 버리고 카이사르에게 항복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알레시아 전투가 카이사르군의 승리로 끝나게 되면서 결국 갈리아는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포로가 되어 로마로 보내진 베르킨게토릭스는 2년간 감옥생활을 하다 결국 화형에 처해지죠

이렇게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한 영웅이 되며 로마 민중들의 우상으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어마어마한 지지를 바탕으로 로마에서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게 되고 이후 벌어진 로마 내전에서도 승리하게 되면서 마침내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되죠

 

지금까지 카이사르가 자신의 능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게 된 갈리아 원정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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