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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카와시마 요시코. 불미스러운 일을 겪고 남장을 하고다니며 일제의 스파이 노릇을 한 여인

by 사탐과탐 2022.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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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본명은 아이신기오로 셴위로 마지막황제 푸이의 사촌동생이었습니다
그녀는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일제의 스파이가 되죠
카와시마 요시코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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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일어나면 총알이 빗발치기도 하지만 뒤에서 은밀히 이루어지는 첩보와 정보전도 장난아닌데요

그만큼 전쟁시에는 스파이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긴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독립운동가들을 잡기위해 밀정을 독립군 내에 심어놓기도 했죠

오늘 이야기할 이 인물도 바로 중국에서 활동하던 일본의 스파이 였습니다

그녀는 당시 '동양의 마타하리' 라고 불리기도 했죠

그의 이름은 바로 '카와시마 요시코' 였습니다

 

중국에서는 그녀를 친일파 한간이라고 온갖 욕을 해댔지만 정작 요시코 자신은 한족이 아닌 만주족이라고 하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한간이라는 비난을 거부했다고 하죠

(한간(漢奸) : 청나라 때 지배민족인 만주인과 내통한 한인을 일컬은 데서 비롯하여 중국에서 외국침략자와 내통한 자를 이르는 말. 매국노, 스파이, 민족 배반자)

 

그런데 또 특이한 점은 그녀는 사형을 당해 세상을 떠났지만 살아있다는 의혹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입니다

이름만 봐서는 일본인 같은데 중국에서 매국노라고 불리던 그녀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요시코는 원래 청나라 황족인 숙친왕의 14번째 딸이었죠

그리고 그녀의 원래 이름은 '아이신기오로 셴위' 였습니다

바로 청나라 황족이었던 것이죠

그녀가 아직 어린나이 였을때 신해혁명이 일어나면서 청나라 황실이 몰락해 버렸는데요

 

당시 청나라 황실 내부에서는 '위안스카이와 타협해 선통제 푸이를 폐위시키자' 라는 강화파와 '위안스카이를 물리치고 청황실을 보전하자' 라는 강경파가 대립하고 있었죠

하지만 결국 어전회의에서 강화파가 이겨 선통제는 폐위되고 말았습니다

이 결정에 반발한 숙친왕은 청나라를 부활시킬려면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강경파들을 이끌고 베이징을 탈출해 랴오닝성 뤼순으로가 일본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다시 청나라를 부활시키고 선통제를 복위시킬려는 복벽운동을 추진했죠

 

이때 숙친왕은 일본의 카와시마 나니와 라는 인물과 교섭을 진행했습니다

그를통해 일본정부의 지원을 받아 복벽운동을 성공시킬려고 했고 나니와 역시도 청나라 황실을 부활시켜 러시아가 계속 밀고 내려오는것을 막아야 한다며 일본 정부를 설득하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날 나니와는 숙친왕에게 딸을 일본으로 유학 보내는게 어떻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최고의 교육을 받게 해줘야 한다는 조건으로 그녀의 딸인 아이신기오로 셴위를 일본으로 보내게 되었죠

일본에 도착한 그녀는 카와시마 나니와와도 친밀하게 지내며 결국 그의 양녀가 되었고 이름을 카와시마 요시코로 바꾸게 된것입니다

청나라 부활을 위해 거의 팔려가다시피 일본에 온것이죠

 

이후 요시코는 일본식 교육을 받기 시작했으며 서서히 일본화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8세가 된 어느날, 친아버지 숙친왕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요시코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려면 다시 중국으로 넘어 가야했기 때문에 다니던 마츠모토 고등여학교에 장기휴학 신청을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시 학교에 복학하려 하니 새로바뀐 교장이 그녀를 탐탁치 않게 여겨 복학에 필요한 서류가 없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며 요시코를 받아주지 않았죠

 

그래서 그녀는 결국 자퇴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요시코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적도 있는데요

다행히 죽기전에 발견되어 목숨은 건졌지만 이후 심경의 변화가 컸던것인지 남장을 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그는 죽기 전까지 남자행세를 하며 살았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이유와 남장을 하게 된 계기가 양아버지였던 카와시마 나니와에게 몹쓸짓을 당했고 그것에 대한 충격으로 처음엔 죽으려 했고 이후엔 여성의 모습을 포기했다는 설이 있죠

또다른 설로는 어릴때부터 여러모로 남자같은 행색이었다던지 양성애자 이거나 레즈비언 이었다 라는 설이 있긴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고 처음말한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합니다

 

어쨌든 남장을 한 이후부터 말투도 남자같이 했으며 이름도 요시오, 료스케와 같은 남자이름을 쓰기도 했다고 하죠

그녀는 1927년 결혼을 하긴 했지만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고 결국 사실상 파혼상태에 이르렀다고 하죠

요시코는 1930년 상하이로 넘어오게 됩니다

 

거기서 우연히 어느 일본군 장교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일본 관동군 참모소속 정보장교였던 것이죠

이때 만난 정보장교는 요시코가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할줄 알았고 청나라 황족 출신인데 일본식 교육을 받았으며 일본인 양부도 있고 미모도 뛰어났기 때문에 스파이로써 가치가 있겠다 생각해 그녀를 포섭했고 그때부터 요시코는 관동군의 스파이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녀는 중국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정보를 일본에 넘기는 스파이 활동을 이어나갔죠

그녀는 푸이가 만주국의 황제가 된후 그의 아내인 완룽을 만주로 데려오는데 참여하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이때 요시코는 완룽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도 있기도 했죠

 

또한 중화민국의 여러 높은 지위의 거물들에게 접근해 고급정보를 빼내거나 거짓정보를 흘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1932년 상하이에서 한 일본인 승려가 중국인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을 빌미로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는 상하이 사변이 벌어졌는데 그때 배후가 바로 요시코 였다고도 하죠

또한 상하이 사변 당시 일본군과의 전투를 잘해오던 중국군이 갑자기 전군 철수를 하는 이해할수 없는 행동을 했는데요

 

이렇게 갑작스런 중국군의 철수의 이유도 요시코가 중국군의 방어선을 교란시키고 엄청난 병력의 일본군이 증파된다는 거짓정보를 중국군 지휘관들에게 흘리는 등 그녀 농간에 놀아났기 때문이다 라는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왕성한 스파이 활동을 하던 요시코는 어느 순간부터 방탕한 생활을 하고 예상치못한 돌발행동을 일삼았던 덕에 관동군은 더이상 그녀를 스파이로 이용하지 않았죠

 

요시코는 처음에 청나라 황실 부활을 위해 일본으로 떠나게 되었던 것인데 만주국이 일본이 세운 괴뢰국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면서 이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기 시작하자 관동군은 결국 그녀를 체포해 후쿠오카에 연금 시켜버리기 까지했습니다

1940년 풀려난 요시코는 다시 베이징으로 가 그곳에서 살게 되었죠

 

하지만 이후 그녀는 장제스의 부하와 인맥이 있다는 이유로 중일전쟁의 중재를 맡아보겠다며 일본 수상 도조 히데키에게 서신을 보내는 등 일본의 스파이 노릇을 이어나갈려고 했지만 일본측에서는 아무런 답변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결국 일본 제국이 패망하면서 요시코의 운명도 비참해지기 시작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요시코는 자신이 한 짓이 스파이 짓이라고 생각 못했는지 그녀는 중국과 일본간에 관계를 좋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자신은 별탈 없을줄 알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1945년 10월 그녀를 1차 상하이 사변 당시 관동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체포했으며 한간 혐의로 재판에 넘겨버렸죠

 

그러자 요시코는 자신이 일본국적이기 때문에 한간 혐의로 처벌 받을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그녀가 방탕하고 돌출 행동을 일삼을때 그의 양부였던 카와시마 나니와도 요시코와 손절해버린 상태였으며 끝까지 자신의 호적에 그녀의 이름을 올리지 않아 일본인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실상 그녀는 국적이 없는 상태였던 것인데요

 

하지만 재판부는 그녀를 중국계 혈통을 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인으로 간주해 사형을 선고했죠

요시코는 감옥에 갇혀있을때 온갖 핍박과 스트레스로 인해 41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머리카락이 백발이 다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다른 한간 혐의자가 사형 집행을 받는곳이 아닌 다른곳에서 따로 사형 집행을 해달라고 요구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1948년 3월 25일 베이징의 제1감옥에서 뒤통수에 사격을 당하는 형식으로 사형에 처해졌다고 하죠

 

그렇게 세상을 떠난 그녀의 시신은 본보기 삼아 많은 사람들에게 전시되었다가 그녀의 양부였던 카와시마 나니와가 시신을 수습해 일본으로 와 장례를 치르고 화장한 다음 한 불교사찰에 묻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시코의 죽음과 관련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는데요

그녀가 죽은것이 아닌 다른사람이 그녀를 대신해 사형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이죠

 

요시코가 이른 새벽 비밀리에 사형이 집행되었다는점과 사형 집행 후 그녀의 얼굴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기 때문에 시신이 요시코가 맞는지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실제로 중국 정부에서는 요시코의 가족들에게 금괴를 뇌물로 주면 그녀를 살려주겠다고 했고 그래서 가족들은 금괴 100개를 구해다 바친것이죠

 

이때 요시코는 다른 여죄수와 바꿔치기 된 후 풀려나 어딘가에 숨어서 조용히 살았다는 것인데요

이 이야기는 다름아닌 요시코의 유족들과 바꿔치기 된 여죄수의 유족들에게서 나온 증언이었던 것입니다

서로 만난적도 없는 두 유족들에게서 똑같은 증언이 나온것이죠

 

또한 요시코의 오빠도 "그녀가 죽었다고 확신은 못하겠다 어딘가에서 다른사람으로라도 살아 있기를 바란다" 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 그녀가 몽골로 도피한 뒤 소련에서 살았다, 중국 길림성 장춘에서 1978년까지 살았다 라는 등의 이야기가 많이 나돌았지만 확실한건 없다고 하죠

 

당시 유명한 일본 간첩이었던 만큼 반드시 죄에대한 대가를 받았어야 마땅한것 같네요

동양의 마타하리 라고 불렸던 청나라 황실출신 일본의 스파이 카와시마 요시코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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