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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셰르파. 이들이 없었다면 에베레스트 등반은 꿈도 꾸지 못했을 히말라야 원정대의 숨은 조력자

by 사탐과탐 2022.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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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르파는 히말라야 원정대의 숨은 조력자인데요
그들이 없었다면 에베레스트 등반은 꿈도 꿀 수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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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맥인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로 ‘눈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워낙 높다 보니 산 정상 부분이 1년 내내 만년설로 뒤덮여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지어진 것인데요

 

히말라야산맥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8,848m)를 포함해 8,000m급 산이 14개, 7,000미터 급 산은 30여 개나 있기 때문에 매년 전세계의 수많은 등산가들이 이곳을 오르기 위한 도전을 하고 있죠

까마득히 높은 히말라야의 산들을 오르기 위해서는 강한 체력과 정신력은 기본에 어떤 존재들의 도움을 반드시 받아야만 합니다

 

그 존재들은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셰르파이죠

세상의 많은 직업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항상 웃는 얼굴로 고객들을 맞이해야 하며 언제 어떤 문제가 갑자기 생길지 모르는 서비스직은 정말 힘든 직업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된 서비스업종 중에서 출근할 때마다 목숨 걸고 일해야만 하는 무시무시한 직업이 바로 히말라야산맥 등반의 가이드 노릇을 해주는 셰르파이죠

 

‘셰르파’는 티베트어로 ‘동쪽(셰르)에서 온 사람(파)’이라는 뜻인데요

셰르파 족이 약 500년 전에 동쪽에 있는 티베트에서 네팔 산악지대로 이주해오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구르카와 함께 네팔의 양대 초인 민족이라 불린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셰르파들은 초창기에는 외국 원정대의 짐을 운반하는 단순한 일만 했지만 그 후로 등반 기술을 익히며 이제는 사실상 대원 역할까지 수행한다고 합니다

험난한 고산지대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길 안내를 해주며 요리까지 해주는 셰르파의 존재는 히말라야 원정대에게 필수적이라고 하죠

 

인류가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한 것이 1953년인데 이 셰르파들이 없었으면 에베레스트 등반은 21세기가 되어서도 성공은 커녕 시도조차 하기 힘들었을 거라고 합니다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라는 사람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던 인물인데요

 

그는 당시 텐징 노르게이라는 셰르파의 도움을 받았는데 "노르게이가 없었다면 나는 산을 오를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며 노르게이야말로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올랐을 사람이다" 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는 중에 힐러리가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에 빠진 적이 있는데 그와 등산용 밧줄로 연결되어 있던 노르게이가 끌어내준 덕분에 겨우 살아났다고 하죠

 

이후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도 노르게이가 쭉 앞서가다가 정상을 몇 걸음 앞두고 힐러리를 30분가량 기다려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최초 등정만 해도 대단하지만 그들이 산을 올라가면서 개발한 루트인 남동릉 루트는 지금까지도 가장 많은 등반가들에게 길잡이 노릇을 해주는 코스라고 하죠

이처럼 히말라야의 위대한 산악인 곁에는 항상 위대한 셰르파가 함께 있었다고 하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셰르파들의 등반 능력이 대체 어느 정도인지 잘 알려주는 사건이 2021년 초에 있었습니다

현지시간 1월 16일 오후 5시쯤 산악 역사상 처음으로 겨울철 K2 등정에 성공한 사람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죠

해발 8,600m의 K2는 에베레스트 다음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높은 산인데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에베레스트보다 더 오르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곳입니다

 

특히 겨울철에는 K2 정상 부근에 시속 200km 이상의 강풍이 몰아치고 기온은 영하 60도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세계 어떤 원정대도 겨울 K2 등반을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죠

그러한 이유로 겨울에 관광객들이 오지 않자 심심함을 참지 못한 셰르파들이 자신들끼리 모여 우리가 동네 뒷산에 놀러 가듯 마실을 갔는데 그 산이 마침 K2였고, 그들은 그렇게 세계 최초로 겨울 K2 등반에 성공하는 위업(?)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셰르파들이 히말라야 원정대들을 처음으로 돕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반인데요

1920년대에 서구 강대국들이 히말라야 탐사대를 국가적으로 지원했던 시기가 있었죠

탐사대가 해발 7, 8천 미터가 넘어가는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고산지대에서도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로 정찰과 길 안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셰르파족’이 높은 고도에 잘 적응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러 나라의 원정대가 이들을 정식으로 고용한 것이죠

 

셰르파족은 태어나는 곳이 고산지대인 탓에 저지대에 사는 일반인과 달리 산소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앤드루 머레이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셰르파는 일반인과 달리, 힘을 쓸 때 지방보다 포도당을 더 많이 이용해 산소를 덜 쓰면서 더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다"고 했죠

한 연구원은 "셰르파들은 연비가 좋은 고효율 차량 같다"라며 "산소가 적더라도 더 많은 에너지를 얻어낼 수 있는 신체 조직을 가졌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수백 년간 고산지대에 적응하며 살아온 셰르파의 몸은 지방보다는 산소를 덜 쓰는 포도당을 주에너지원으로 사용하도록 바뀐 것이죠

어마어마한 양의 짐을 짊어진 채로 험난한 히말라야산맥을 제집처럼 누비며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셰르파들은 원정대에 필수적인 존재입니다

특히 여러 번 히말라야산맥을 제 집 드나들듯 다녔던 전문 산악인이 아니고서는 여전히 제대로 된 등산로가 많이 부족한 히말라야산맥을 오르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현지의 지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셰르파의 존재가 꼭 필요한 것이죠

 

이들은 대가를 받고 길 안내와 짐 나르기, 요리를 해주는데 이들이 원정대에게 너무 많은 도움을 주다 보니 셰르파에게 지원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이들에게 업혀서 산을 올라간 거나 다름없다는 말을 할 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이런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많은 돈을 내야 하죠

왜냐하면 셰르파들이 에베레스트 등반객을 안내하려면 짐을 대신 지고 베이스캠프까지 스무 번을 넘게 왕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등반을 할 때 법적으로는 한 사람당 20kg으로 들고 가는 무게가 제한돼 있지만 실제로 셰르파들은 그것의 3, 4배 정도의 짐을 들고 간다고 하죠

그 짐을 옮기는 장소가 바로 히말라야 산맥이란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고되고 위험성이 큰일이죠

하지만 실업률이 높은 네팔에선 셰르파가 굉장히 매력적인 직업중의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한 시즌인 두 달여 동안 셰르파가 등반객을 안내하고 버는 돈은 5000달러가량인데 이 금액은 네팔 1인당 국민소득인 750달러의 몇 배나 된다고 하니 셰르파 입장에서는 한번 일하고 나면 몇 년을 먹고 살 돈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무리 산을 잘 타는 셰르파들도 히말라야를 오르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 인데요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눈사태나 거대한 바람은 누구도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는 재난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히말라야 원정에 필수적인 존재라 볼 수 있는 셰르파들이지만 그들이 받는 대우는 그리 좋지가 않았다고 합니다

정상에 오르기 전까지는 돈도 못 받는 경우가 흔했고 원정대가 조난을 당했을 때에도 구조대가 셰르파는 버려두고 백인 등산가들만 구조한 후 서둘러 내려가는 일도 많았다고 하죠

 

2014년 4월에는 에베레스트 눈사태로 네팔인 셰르파 16명이 한꺼번에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네팔 정부측에서 사망자 유족들에게 지급한 보상금은 고작 415달러였습니다

이러한 사건에 크게 분노한 많은 셰르파들이 등반 거부까지 하며 자신들이 받는 부당함을 세상 사람들에게 호소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임금과 보험료를 올리고 셰르파의 인권을 개선하자는 여론이 국제적으로 퍼졌죠

 

거기에 텐징 노르게이나 앙체링같은 전설적인 셰르파들도 나서서 셰르파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요즘은 셰르파 고용 보호 법칙이 강화되면서 등산을 도중에 포기해도 셰르파에게 부분적으로 돈을 지급해야 하며 그들을 고용한 외국인이 셰르파들의 등반 장비 중 일부를 사주거나 도와주기도 한다고 하죠

 

하지만 이 일이 위험하다는 것은 여전한 사실입니다

2014년 아웃도어 전문매체인 '아웃사이드'의 조사에 의하면 셰르파라는 직업이 이라크 전쟁에 미군으로 참전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하는데요

2003년에서 2007년까지 이라크전에 참전한 미군 중 사망자가 335명인데 2004년에서 2014년까지 에베레스트에서 가이드를 하던 셰르파의 사망자 수가 4053명이나 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죽음을 끼고 산을 오르는 것이라 할 수 있죠

 

세계 최초로 8000미터급 고봉 16좌 완등의 위업을 남긴 엄홍길 대장 역시 수많은 셰르파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고 이에 대해 항상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고 합니다

엄홍길 대장은 에베레스트 등정할때 함께한 한 셰르파가 하산을 하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그에 대한 고마움과 죄송한 마음에 네팔에 16좌 완등을 상징하는 16개의 학교를 지어주겠다고 약속을 했던 것인데요

 

이 약속은 2019년에 16번째 학교가 지어지면서 지켜졌다고 하죠

엄홍길 대장은 16개의 학교를 지어줌으로써 자신을 도와준 셰르파들에 대한 고마움을 갚는 동시에 모든 셰르파의 자식들이 가난과 무지에서 벗어날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서비스 업종이라 할 수 있는 셰르파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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