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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로스차일드 가문. 베일에 쌓여있는 전세계 최고의 부자 가문

by 사탐과탐 2022.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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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쌓여있는 전세계 최고의 부자 가문 로스차일드 가문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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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6월.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남쪽 워털루에서는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과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이 최후의 전투에 임하고 있었습니다

이 전투의 승패에 따라 유럽의 판도가 갈릴정도로 매우 중요한 전투였기 때문에 모든 유럽의 이목은 이곳에 집중되어 있었죠

 

게다가 런던 증권거래소 에서는 수많은 투자자들이 이 전투의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만약 영국이 이기게 되면 투자한 영국 국채로 인해 돈벼락을 맞지만 지게 된다면 투자한 국채는 휴지조각이 되버렸기 때문이죠

당시 네이선 이라는 사람도 이 전투의 결과를 다른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누구보다도 빨리 이 전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정보원들을 시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죠

이날 저녁이 되자 프랑스군의 패색이 짙어졌습니다

영국이 전투에서 승리한 것이었죠

그러자 그곳에 파견되어있던 네이선의 정보원은 급하게 런던으로 향했고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네이선은 정보원이 보낸 편지를 볼수 있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편지를 확인한 그는 런던의 증권 거래소로 달려가 영국의 국채를 팔아치우기 시작했죠

네이선의 이런 모습에 영국이 졌다고 생각한 다른 투자자들도 조금이라도 손해를 덜보려고 앞다투어 영국 국채를 팔아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영국의 국채가 나왔기 때문에 이전 금액의 5%정도 밖에 안되는 가격이 되어버렸죠

 

이 모습을 잠자코 구경하던 네이선은 헐값이 되어버린 국채를 다시 모조리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투자자들이 어리둥절해 있을때 영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승전보를 전했고 그렇게 영국 국채의 가격은 엄청나게 치솟아 버린것이죠

네이선은 이때 영국 국채로 20배의 차익을 챙겼다고 합니다

 

이 남자의 이름은 '네이선 로스차일드'로 이때 엄청난 거액을 벌면서 자신의 가문이 세계적으로 최고의 갑부 가문이 되는데 밑거름이 되었죠

 

오늘은 이 로스차일드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방금 말한 이 워털루 전투로 인해 네이선이 엄청난 돈을 번 사건은 거짓이라는 주장도 있긴 한데요

로스차일드 가문을 이야기 할때 빠져서는 안되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죠

이 가문의 총 재산은 무려 6경원에 달한다는 소문이 있을만큼 어마어마한 재산이 있을것이라 추정이 되는데 워낙 베일에 쌓여있는 가문이라서 정확한 가문의 재산은 알수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들은 JP모건과 골드먼삭스의 대주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의 영향력이 어느정도 인지 현재까지도 잘 모른다고 하죠

독일계 유대인 가문이던 로스차일드는 18세기 초까지만해도 별로 인지도도 없고 존재감도 없던 가문이었죠

하지만 1744년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가 태어난 뒤로 360도 바뀌어 전세계를 호령하는 가문이 되었습니다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전용 주거지역이던 '게토' 라는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의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는데요

게토에서 고물상과 환전상을 하던 그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과 거래를 트면서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마이어의 성실함과 똑부러지는 일처리 능력을 마음에 들어한 프리드리히 대왕은 그에게 장부 관리를 맡겼습니다

하지만 얼마안가 프로이센은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의 전투에서 패했고 프리드리히 대왕은 나폴레옹을 피해 외국으로 도망을 쳤죠

이때 마이어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재산을 철저히 숨겨 놓은채 자신의 재산은 프랑스에 의해 몰수되어 버린것입니다

 

그러나 훗날 다시 돌아온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숨겨놓았던 재산을 동전 한닢까지 빠짐없이 돌려주자 그의 진실함과 정성에 감동한 대왕은 그를 가문의 재산 관리를 시키기에 이르렀죠

이 무렵 마이어는 은행을 설립해 떼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재산은 모두 잃더라도 고객인 프리드리히 대왕의 재산을 지켜준것이 소문이나 마이어의 고객들은 귀족들과 왕족들이었는데요

 

그는 죽는한이 있더라도 자신에게 이익을 주거나 은혜를 베푼 사람들을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귀족들에게 신뢰를 얻을수 있었죠

마이어는 이때부터 다섯 아들들을 다른 외국으로 보내 다국적 금융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또한 비록 현재 열악한 환경인 게토에 살고 있지만 그의 다섯 아들들에게는 귀족사회의 사교술과 처세술을 가르쳤는데요

 

장차 그들이 상대해야할 고객은 높은 상류층 귀족들과 지도자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섯아들이 실무를 보기 시작했을때 유럽의 어떤 귀족이나 왕족들에게 뒤쳐지지않는 학식과 사교술을 보여줄수 있었죠

로스차일드 가문의 문장에는 5개의 화살을 쥐고 있는 주먹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화살들은 다섯 아들들을 상징하는것이죠

그리고 라틴어로 협조 'Concordia’, 완전 'Integritas’, 근면 'Industria’ 이라고 적혀있는데요

하나의 화살은 쉽게 부러트릴수 있지만 5개의 화살은 부러트리기 힘들기 때문에 5형제가 하나로 뭉치면 결코 부러지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 5형제들은 훗날 신속한 정보력과 형제간의 강력한 결속력으로 19세기 유럽의 돈줄을 거머쥐게 되죠

아무튼 마이어는 당시 유럽 경제의 핵심부였던 독일 프랑크푸르트,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오스트리아 빈, 이탈리아 나폴리에 다섯 아들들을 보내 로스차일드 은행을 설립하게 됩니다

 

그렇게 로스차일드의 금융제국이 완성된 것이죠

그들은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의 예금과 재산 등을 관리했으며 강한 신뢰와 왕족, 귀족들의 명성, 권위를 밑바탕삼아 점점 세력을 불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왕실이나 귀족, 대부호 가문들과 결혼하며 가문의 부와 명성을 쌓아갔죠

 

로스차일드 가문은 프랑크푸르트, 파리, 런던, 빈, 나폴리로 이어지는 정보망을 구축함과 동시에 유럽 각지에도 수많은 정보원들을 보내 각국의 정부보다도 더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수 있었으며 이 정보들 덕분에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수 있었습니다

처음 이야기한 워털루 전투에서도 다른 누구보다 빠른 정보 덕분에 영국 국채를 사들여 막대한 돈을 벌수 있었던 것이죠

 

그들은 금융업 외에도 다이아몬드, 와인, 미술품 등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며 철도의 시대가 열렸을때는 유럽의 철도사업에 막대한 자금을 대기도 했고 광산업과 철강제련업에도 진출했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인수한 와인공장에서 생산하는 와인 샤토 무통 로쉴드와 샤토 라피트 로쉴드는 한병에 수백만원이나 할만큼 최상급 와인으로 꼽힌다고 합니다

 

여기서 로스차일드를 프랑스어로 발음하면 로쉴드라고 하죠

또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기증한 미술품을 전시하는 로스차일드 홀이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미국의 남북전쟁, 크림전쟁, 프랑스 - 프로이센 전쟁때 에도 전쟁자금을 대기도 했을정도로 로스차일드 가문이 전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엄청났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리고 세계의 금광들을 사들인 로스차일드는 국제 금 가격을 마음대로 쥐락펴락 하면서

각국의 화폐 발행과 금 가격 등 중요 결정권을 그들이 주도하기도 했죠

거기다가 영국에서 수에즈운하를 사들일때도 엄청난 자금을 댔고 2차 세계대전이후 이스라엘 건국을 뒤에서 돕기도 했죠

콜롬비아대학에 사이먼 샤머 교수가 만든 책 ‘두명의 로스차일드와 이스라엘’에 따르면 이스라엘 영토의 80% 이상이 에드몽 로스차일드가 사준 땅이었다고 합니다

 

에드몽은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의 오형제 중 프랑스 파리로 갔던 막내 제임스의 아들이었죠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패배 직전까지 갈 정도로 전황이 불리해지자 미국을 참전시키기 위해 영국 외무장관 아서 벨푸어는 비밀리에 라이어널 로스차일드와 만나 전쟁 후에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건설하는것을 약속했고 당시 영국내 유대인들의 대표자격이던 월터 로스차일드 경에게도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세우는 것에 대하여 지지를 표하며 이를 성취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편지까지 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벨푸어 선언인데요

그렇게 로스차일드 가문에서는 막대한 돈을 들여 미국 정부에 로비와 압박을 가해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여하게 되고 훗날 이스라엘 건국을 지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미 영국은 1915년에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보장한다' 는 내용의 맥마흔 서한을 아랍권에 전달했던 것이죠

이는 결국 팔레스타인의 비극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후 시간이 흘러 히틀러가 나타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이는 로스차일드 가문에는 최악이 되었죠

히틀러가 점령한 오스트리아 빈에 있었던 로스차일드 가문의 사람들은

전재산을 빼앗겼고 감옥에 갇혔다가 겨우 목숨만 부지한채 추방되었습니다

에드몽, 로벨, 앙리 로스차일드 역시 프랑스 국적을 박탈당하고 전재산을 몰수당한뒤 추방당했죠

하지만 프랑스 로스차일드 외가 가문은 대부분 수용소로 끌려가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치에게 엄청난 피해를 받은 로스차일드 가문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철저히 베일에 쌓인 생활을 시작하는데요

그래서인지 로스차일드 은행과 본사 건물 외부에는 명패조차 달지 않았으며 가문의 재산은 비밀로 묻어둬 아무도 그 실체를 모른다고 하죠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는 유언을 통해 가족에게만 은행 및 여러 사업의 중요 임무를 맡기고 재산이 외부로 유출되는것을 막아야 하며 가문의 재산 규모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상속을 할때 변호사 마저 개입을 하지 못하게 하고 집안의 장자가 가업을 이어 받으라고 당부했다고 하죠

이후 은행의 요직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사람만 맡았고 친족끼리 결혼해 재산이 외부로 유출되는것을 방지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현재까지도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 규모가 정확히 얼마인지 알려진 게 없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유대인 자본에, 비밀주의, 로스차일드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 등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억측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와 같은 비밀결사단체도 이들이 만들었다고 하기도 했고 국제 정치와 경제를 어두운곳에서 자신들 마음대로 통제하고 조종한다고 하기도 하죠

 

거기다가 전세계에서 발생하는 분쟁과 전쟁들은 로스차일드 가문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일으킨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현재까지도 로스차일드에 관한 추측과 음모론이 끊이지 않고있죠

현재 로스차일드 가문의 사업은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규모가 작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엄청난 규모입니다

 

지금도 금융업과 주식, 농업, 광업, 서비스업, 와인 등 다양한 사업들을 이어나가고 있죠

로스차일드 가문은 UN을 비롯해 국제통화기금 IMF, 국제결제은행 BIS, 세계은행이라고도 불리는 국제부흥개발은행 IBRD 등 현재도 존재하는 국제금융기구들이 모두 로스차일드 가문의 작품이이라고 합니다

정보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도 할수 있을것 같네요

 

베일에 쌓여있는 세계 최고의 갑부 가문 로스차일드 가문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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