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에 등장하지 않다가 61세에 혜성같이 나타나 고려를 구해낸 영웅이자 죽기 3개월전에야 비로소 은퇴할수 있었던 고려 현종의 황희 강감찬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강감찬은 거란을 물리친 장수로 기억돼 있기 때문에 그가 무예가 뛰어났던 무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강감찬은 정식으로 무관직에 봉해진 적이 없었고 오히려 문과에 장원급제해 문하시중까지 오른 문관 출신이었는데요
때문에 실제 강감찬은 전쟁에 나가서 적군을 물리친 업적만 세운 것이 아니라 고려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이끈 8대 국왕 현종이 나랏일을 다스리는데 큰 도움이 됐던 명재상이기도 했죠
그럼 지금부터 고려의 영웅 강감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강감찬의 젊은 시절 이름은 강은천으로 그는 948년 12월 27일 지금의 서울시 관악구에 위치한 금주낙성대에서 태어났죠
그의 아버지는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우면서 삼한벽상공신에 임명된 강궁진이었습니다
'고려사' 열전에 따르면 강감찬은 젊은 시절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생각지 못했던 기발한 생각을 해내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 능력을 발휘해 983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가 급제한 983년 이후 1009년에 예부시랑이 될 때까지 그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다는 것인데요
때문에 강감찬과 당나라 최고의 명장이었던 곽자의의 삶이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그전까지는 역사서에 거의 등장하지 않다가 60세가 다 된 나이에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 등장해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면서 나라를 구한 점 80세가 넘도록 오래 살면서 신하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점등 둘이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하죠
다만 강감찬의 젊은 시절에 대한 기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용재총화'나 '동국여지승람'등의 조선시대 야사집을 보면 여러 지방 관직을 돌아다니는 강감찬의 모습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강감찬은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만능 해결사'로 활약하며 온갖 기발한 계책을 꾸밀 줄 아는 인물로 나온다고 하죠
그중 가장 유명한 일화인 개구리 퇴치 설화와 호랑이 퇴치 설화에 대해 잠깐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개구리 퇴치 설화는 그가 다스리는 고을에 사는 백성들이 개구리가 너무 시끄럽게 울어대서 도저히 잠을 못 자겠다며 하소연을 하자 강감찬이 백성들을 위해 개구리들을 쫓아내 줬다는 이야기인데요
강감찬이 개구리를 퇴치한 방법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해져 내려온다고 하죠
부적을 썼다는 썰도 있고 연못마다 약을 풀어서 개구리들이 잠들게 만들었다는 썰도 있으며 심지어 개구리들에게 계속 울어대면 내가 도술을 써서 연못의 물을 몽땅 없애버리겠다는 협박편지를 썼다는 썰도 있습니다
백성들 몰래 밤에 부하들을 시켜 대나무 장대로 연못을 마구 휘젓게 해서 아예 개구리들이 울어댈 틈을 주지 않았다는 썰도 있죠
호랑이를 퇴치한 설화는 그가 지금의 서울시에 해당하는 남경의 판관으로 일할 때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남경 주변에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들을 해치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하루는 강감찬이 고을 아전에게 삼각산에 가면 늙은 중 한 명이 바위 위에 앉아 있을 테니 그에게 내가 써준 편지를 준다음 데리고 오라는 명을 내리죠
명령을 받은 아전이 삼각산에 가보니 정말로 그 자리에 노승이 있었고 아전은 강감찬이 써준 편지를 노승에게 전했습니다
편지를 읽은 노승은 머리를 숙이더니 그 길로 아전을 따라 강감찬 앞에 와서 머리를 조아렸다고 하죠
그런데 강감찬은 갑자기 그 노승에게 왜 사람들을 해쳤냐고 꾸짖더니 5일의 시간을 줄 테니 너의 동족들을 데리고 떠나라며 고함을 쳤는데요
그 모습을 보던 아전은 강감찬이 대체 왜 죄 없는 노승에게 저러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는데 이때 강감찬이 노승에게 이제 그만 본모습을 보이라며 호통을 쳤다고 하죠
그러자 노승은 갑자기 호랑이로 변해 포효하기 시작했는데 그 소리가 남경 밖까지 들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광경을 본 아전은 넋을 잃고 땅에 엎드렸지만 강감찬은 침착하게 "그만두어라"라는 한 마디를 할 뿐이었고 그 말을 들은 호랑이는 다시 노승으로 변해서 강감찬에게 공손히 절을 하고는 다시 물러갔다고 하죠
이튿날 늙은 호랑이 한 마리가 수십 마리의 호랑이들을 이끌고 강을 건너는 것이 남경 사람들에게 목격되었고 남경은 그렇게 호랑이에 대한 공포에서 해방되었다고 하네요
그렇게 지방 관직을 전전하던 강감찬은 강조의 정변으로 젊은 현종이 왕으로 즉위하고 나서는 출세길에 올랐죠
1010년 요나라의 성종이 40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침공하자 많은 신하들이 괜히 저항했다가 피를 보지 말고 항복할 것을 주장했지만 강감찬은 홀로 현종에게 항복하지 말고 몸을 피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 후 강감찬은 하공진이라는 인물을 보내 요 성종을 설득해 거란군이 스스로 물러가게 만들었죠
이때 고려의 명장 양규는 본국으로 돌아가던 요나라군의 뒤를 쳤는데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끝에 고려는 승리를 거두고 요나라는 큰 피해를 입은 채 물러났다고 합니다
이후 강감찬은 한림학사와 중추원사, 이부상서등의 관직을 거쳐 지금의 수상자리에 해당하는 문하시중까지 올랐으며 함경도 쪽으로 파견되어 여진의 침입을 대비하기도 했죠
현종 10년인 1019년 거란이 3차 침공을 해오자 강감찬은 고려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거란을 막을 작전을 직접 지휘하기 시작했습니다
거란군의 총지휘관인 소배압은 2차 침입 때 자신들이 실패했던 이유가 너무 시간을 많이 끌었기 때문이라 판단하고는 기병 중심의 10만 병사만을 이끌고 빠르게 진격해서 고려의 국왕 현종을 사로잡아 전쟁을 끝내버리려 했죠
때문에 중간에 있는 요새들을 모두 무시한 채 오로지 왕이 있는 개경만을 노리고 진격해 왔는데 그 소식을 들은 강감찬은 침착하게 거란군이 지나쳐온 요새의 병사들에게 요새에서 나와 적이 본국으로부터 식량을 보내는 길을 차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강감찬의 작전이 성공하면서 식량이 부족해진 거란의 선봉대는 어쩔 수 없이 주변에서 식량을 구하기 위해 병사들을 나눌 수밖에 없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강감찬은 유격대를 보내 여러 개로 나뉘어진 거란의 부대를 각개격파해 버렸죠
그렇게 고려군의 유격전 때문에 2만 명에 가까운 병사들이 죽기는 했지만 아직 8만의 병력이 남은 거란군은 텅 빈 개경을 약탈하면 병사들이 먹을 식량을 구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개경으로 들어갔죠
그런데 고생 끝에 겨우 도착한 거란군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텅텅 비어있는 식량창고와 흙으로 메워져 있는 우물들 그리고 약탈을 하지 못하도록 새카맣게 타버린 백성들의 집이었습니다
거란군이 개경에서 물 한 모금 쌀 한 톨 얻지 못하도록 고려에서 개경의 외곽지역에 청야전술을 써버린 것인데요
거란군은 현종이 이번에도 개경을 버리고 도망갈 거라 생각했지만 현종은 개경의 성벽밖에 있는 모든 물자를 불태운 후 성에 남아서 거란군과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도망치지 않고 함께 수도에 남은덕분에 고려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지만 그동안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한 거란군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진 상태였죠
결국 더 이상은 가망이 없다는 걸 깨달은 거란군은 후퇴를 시작했지만 강감찬을 비롯한 고려인들은 그들을 얌전히 살려 보낼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후 고려군은 곳곳에 병사들을 보내 거란군을 결국 한 곳으로 몰아넣었는데 그 지역이 바로 귀주였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걸 깨달은 거란군은 강을 등뒤에 둔 배수진을 친 채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는데 강으로 뒤가 막혀있어 도망갈 곳이 없어진 거란군과 싸우면 고려군으로서도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어진 상황이었는데요
그런데 이때 강감찬이 보낸 김종현이 이끄는 1만의 부대가 갑자기 강 건너편에서 나타났습니다
김종현의 군대는 강을 건너 거란군의 등뒤를 쳤고 앞뒤로 공격을 받은 거란군은 그대로 무너져버렸으니 이 전투가 바로 역사에 길이 남을 귀주대첩이었죠
처음 출발할 때 10만이나 되던 거란군은 겨우 수천 명만이 살아 돌아갔으며 거란은 이 전투 이후로 다시는 고려를 공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그렇게 거란을 성공적으로 물리친 강감찬이 군대를 이끌고 돌아오자 국왕 현종은 황해도까지 나와 화려한 무대를 꾸민 후 병사들을 위로하고 강감찬에게는 여덟 종류의 금꽃을 머리 위에 직접 꽂아주며 계속해서 강감찬의 공을 칭찬해 줬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나이 70이 넘은 강감찬이 바라는 것은 이제 그만 관직에서 물러나 편하게 쉬는 것뿐이었죠
하지만 현종은 강감찬의 은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앞으로도 열심히 일을 해달라는 듯 그에게 궤장(임금이 국가에 공이 많은 늙은 대신에게 하사하던 궤와 지팡이)까지 하사했죠
그리고는 특별히 3일에 한 번씩만 출근해도 된다는 명을 내렸는데 다시 말하면 못해도 3일에 한 번은 꼭 얼굴을 보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이 황희정승의 퇴직을 허락하지 않은 일화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텐데요
그런데 세종대왕도 황희의 나이를 생각해 한 달에 두 번만 나오면 된다고 했는데 강감찬은 그것보다 훨씬 많은 날을 출근하게 된 것이죠
그렇게 강감찬은 그 후로도 12년을 더 일해야만 했고 1031년 현종이 승하한 후 3개월 뒤 자신도 세상을 떠나면서 그제서야 퇴직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강감찬은 살아있을 때 문하시중이라는 최고위 관직과 왕족과 개국공신을 제외하면 신하가 받을 수 있는 최고위 작위인 후작 위까지 받으면서 그야말로 모든 것을 누렸던 사람이지만 역사 속의 수많은 다른 권신들과는 다르게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 숙청되지 않고 평안한 말년을 보냈으며 죽은 후에도 구국의 영웅대접을 받으면서 한국사에 손꼽히는 인생의 승리자로 평가받는다고 하네요
사탐과탐 다른 포스팅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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