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역사를 바꾼 세번의 U턴 중 한번이 이때 일어났다
전두환과 하나회가 일으킨 군사반란 12.12 군사정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여러발의 총성이 울리고나서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 대통령이 가슴과 머리에 총을 맞았고 병원으로 이송 중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로인해 10월 27일 새벽 4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고 이후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되었으며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이 계엄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죠
하지만 별로 정치에 야망이 있지 않았던 최규하는 정치에 휘말리기를 꺼려했기 때문에 부분 계엄을 선포했고 그렇게 계엄 사령부가 권력의 중심이 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계엄사령부 합동수사 본부장으로 임명되어 10.26 사건 수사 총책을 맡게된 국군 보안 사령관 전두환이 권력의 핵심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전두환은 합동 수사 본부장으로써 합법적으로 중앙정보부와 검찰, 경찰 등 모든 정보 및 수사기관을 지휘, 통제할수 있게 되면서 전두환에게 모든 정보가 집중되었고 막강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전두환의 힘은 더욱 강해졌죠
이후 전두환은 수사를 명목으로 수많은 정치인들의 비리를 캐내기도 하고 10.26 사건의 수사 내용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편집한뒤 보고했으며 점점 자신에게만 유리한 쪽으로 수사를 해 나갔습니다
또한 사건 수사를 빙자해 오탁근 검찰총장과 윤일균 중앙정보부 부장 직무대리, 그리고 손달용 치안본부장 등을 보안사로 부른 뒤 협조 하지 않으면 10.26 사건의 책임을 물어 체포하겠다고 협박해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면서 전두환은 중앙정보부, 검찰, 경찰, 그리고 헌병까지 장악하게 되죠
심지어 각 정부 부처의 차관들을 불러들인 뒤 이것저것 지시를 내릴정도까지 선넘는 행동을 하자 계엄사령관이던 정승화는 전두환을 불러 "당신은 군인이지 정치인이 아니다" 라고 충고했을 정도였습니다
한편 정치적으로 야망이 컸던 전두환은 계엄사령관이던 정승화와 가깝게 지내고 싶어했는데요
전두환은 박정희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김계원을 조사하던 중 비서실 금고에서 나온 9억원을 찾아낸 뒤 박근혜에게 6억원을,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5천만원을, 그리고 정승화 계엄사령관에게 2억을 건네주었죠
당시 당시 은마아파트 31평 아파트가 약 2천만원 정도했으니 2억이라는 돈은 은마아파트를 10채나 살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2023년 현재 은마아파트 31평 매매가 = 24억 정도 단순 계산으로 당시 2억 = 현재 240억원 정도)
대통령 비서실 금고에서 나온 돈을 마음대로 쓰고 있는 전두환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던 정승화는 오히려 전두환을 나무란뒤 돌려보냈죠
이후 정승화는 전두환의 월권행위를 더이상 두고볼수 없다고 생각해 노재현 국방장관을 찾아가 전두환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전두환에게 5천만원이라는 거액을 받았던 노재현은 오히려 전두환을 옹호하고 나섰죠
그러나 정승화는 포기하지 않고 노재현을 찾아가 처벌을 요구했으며 결국 전두환을 동해안 경비 사령관으로 보내버리고 군내 비밀 사조직인 하나회에 속해있으면서 군의 요직을 맡고 있던 인물들 역시 한직으로 좌천시켜버릴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전두환의 보직 이동 계획은 군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던 하나회에 의해 전두환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고 그대로 있다간 좌천될것이 틀림없었던 전두환은 먼저 선수쳐 정승화를 체포하고 군부를 장악할 계획을 세우게 되죠
10.26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정승화가 시해 장소에 함께 있었던걸 꼬투리 잡아 잡아들일 예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전두환은 하나회 조직원들과 함께 12월 12일, 일명 '생일집 잔치' 작전을 실행하기로 했죠
하지만 전두환과 하나회에 가장 큰 걸림돌이 있었는데요
계엄사령부에 합동수사본부가 소속되어 있었고 정승화는 계엄사령관이었기 때문에 전두환의 직속 상관이었던 것이죠
이는 지휘체계상 부하이던 전두환이 함부로 상관인 정승화를 체포 할수 없었던 것입니다
전두환이 합법적으로 정승화를 체포하기 위해서는 계엄사령관보다 위에 있던 노재현 국방장관이나 최규하 대통령의 허락이 필요했던 것이죠
하지만 만약 미리 국방장관이나 대통령의 재가를 받을려고 했다가 정승화에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도리어 정승화에게 공격을 당할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결국 전두환은 정승화의 체포와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받는일을 동시에 진행해버리기로 마음 먹습니다
전두환은 어차피 최규하 대통령은 정치에 크게 야망이 없는 인물이라 결제 서류만 내밀면 바로 결제를 해줄것이라 믿었죠
그리고 또 다른 걸림돌이 있었으니 바로 특전 사령관 정병주 소장, 수도 경비 사령관 장태완 소장, 그리고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 준장이었습니다
이들은 친 정승화로 알려진 인물들이었는데 정승화를 체포할때 그들이 체포사실을 안다면 저항할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들을 미리 어딘가로 유인해 낸 뒤 잡아둘려는 생각을 했죠
그렇게 전두환은 며칠 전부터 그들에게 연락해 12월 12일 저녁에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79년 12월 12일 저녁이 되었고 전두환은 급히 움직이기 시작했죠
전두환과 함께 하기로 한 하나회 소속 지휘관들은 각자 준비를 마친뒤 장세동 보병 대령이 단장이던 수도경비 사령부 30경비단에 모두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걸림돌려 여겨지던 3명의 장군들도 우국일 보안사 참모장의 접대를 받으며 전두환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먼저 식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전두환은 대통령의 서명을 받기위해 최규하에게로 허삼수 대령이 이끄는 합수부 수사관들은 정승화에게로 동시에 찾아갔죠
허삼수는 급히 보고 드릴게 있어서 방문하겠다고 미리 정승화에게 연락했던 덕에 아무런 의심없이 총장 관저에 들어갈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승화를 만나 대통령 시해 사건에 관련해 추가 조사를 해야한다며 함께 합수부로 같이 가자고 말했죠
그러자 정승화는 노발대발 하며 거절했는데 이때 허삼수는 이미 수사를 위해 강제로 연행할수 있는 대통령의 허락을 받았다는 뻥을 치며 그를 끌고 가려 했습니다
그러자 정승화는 진짜 대통령 허락이 있었는지 확인 해야 겠다며 부하에게 전화를 걸어보라 지시했는데 합수부 장교가 이를 제지 하는 과정중에 권총을 발사해버렸고, 총격끝에 정승화는 체포되어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게 되었죠
한편 대통령의 사인을 받으러 갔던 전두환은 생각치도 못한 장벽에 막혀있었는데요
바로 최규하 대통령이 노재현 국방장관과 상의를 한후에 검토하겠다고 말하며 정승화 체포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에 전두환은 계속 설득을 했지만 최규하는 같은 말만 반복하며 절대 허락해주지 않고 있었죠
그렇게 정승화의 체포는 법적으로 위법한 행동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한편 오지않는 전두환을 기다리던 3명의 장군들은 먼저 식사를 하려고 하고 있었죠
그때 총리공관에서 총격이 발생했고 계엄사령관 정승화가 납치되었다는 전화를 받게 됩니다
그 즉시 장태완은 수도경비 사령부로, 정병주는 특전사령부로 그리고 김진기는 육군본부로 향했죠
이때까지만해도 정승화를 납치한 것이 북한의 소행인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얼마안가 납치 세력은 합동수사본부, 즉 전두환과 그 일당들이 벌인 일임을 알게 되었고 진돗개 1호를 발령해 대응에 나섰죠
그리고 김진기 헌병감은 얼른 총리공관을 지키고 있던 헌병대에 전화를 걸어 전두환을 체포하라고 지시했지만 전두환은 이미 사태를 다 파악하고 총리공관의 경비병력을 제압해버린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전두환은 최규하 대통령을 감금하다시피 한채 계속해서 정승화 체포 동의안의 서명을 요구하고 있었죠
한편 수경사로 돌아간 장태완은 자신의 예하부대인 30경비단에 하나회 일당들이 모여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즉시 30경비단장 장세동에게 전화를 걸었는데요
그런데 장세동이 아닌 황영시와 유학성이 전화를 받더니 "30경비단으로 와서 얘기좀 하자, 그러면 정승화를 체포한 이유를 알게 될거다" 라고했고
이에 열받은 장태완은 "이 반란군 놈의 새끼들! 전차를 몰고 가서 네놈들 머리통을 다 날려 버리겠다!" 라며 소리질렀죠
그러나 이미 수경사 헌병단과 핵심 전투 병력인 30, 33경비단은 하나회(반란군) 측에 넘어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움직일수 있는 병력은 비전투 부대인 포병단과 방공포병단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수도기계화 보병사단과 26기계화 보병사단에 연락해 출동명령을 했지만 국방장관의 명령이 없어 출동하지 못한다는 대답이 돌아왔죠
당시 이미 대통령 최규하는 전두환에 의해 구금되다시피한 상황이었고 계엄사령군이자 육군참모총장인 정승화는 반란군에 의해 붙잡혀 있었으니 정상적인 명령을 통해 군을 움직일수 있었던 것은 국방장관인 노재현 뿐이었습니다
이에 장태완은 어쩔수없이 정병주 특전사령관에게 전화해 얼른 공수 여단을 투입해 보안사를 공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병주 특전사령관에게도 있었는데 1,3,5 공수여단의 여단장들이 연락이 안되고 오직 9공수 여단만 연락이 된것이죠
알고보니 1,3,5공수여단은 이미 반란군의 편으로 넘어가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급한대로 정병주는 인천 부평에 있던 9공수 여단을 출동시켜 보안사 합수부와 반란군 지휘관들이 모여있는 30경비단을 공격하라 명령했죠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수경사 사령부 통화는 보안사에 의해 전부 감청이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9공수 여단이 보안사를 공격한다는 소식을 들은 반란군은 엄청나게 당황했는데 1,3,5 공수여단이 서울로 진입하기도 전에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오는 9공수 여단이 서울에 더 빨리 도착할것 같았던 것이죠
심지어 육군본부 근처에 있던 한강 다리들을 모조리 막아버린 상태였기에 반란군이 육군본부나 국방부로 향하려면 위에 있던 행주대교를 통해 크게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와중에도 전두환은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 체포에 대한 서명을 계속 요구했지만 최규하는 노재현 국방장관의 동의 없이는 허가할수 없다고 버티고 있었죠
이때 진압군 쪽에서는 더 많은 진압군을 서울로 투입시키기 위해서는 국방장관의 허락이 필요했고 반란군 쪽에서는 최규하가 버티고 있으니 국방장관의 서명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때부터 양쪽 다 급하게 국방장관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노재현 국방장관은 어디서 뭘하고 있었냐 하면 참 골때리기 그지 없는데요
참모총장 공관과 국방장관 공관은 불과 100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공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노재현은 참모총장 공관에서 총소리가 나자 깜짝 놀라 급히 가족들만 데리고 부리나케 도망쳐 버린것입니다
이후 단국대학교 교내에 숨어있다가 부하의 집에 가족을 맡긴 뒤 다시 국방부로 돌아가 1층 계단 밑에 숨어있었던 것이죠.
한편 더이상 시간을 지체 할수 없었던 반란군측의 중장 유학성과 중장 황영시는 결국 육군본부로 전화를 겁니다
그리고나서 '서울 한복판에서 전쟁을 벌이자는거냐', '우리도 무력동원을 안할것이니 그쪽에서도 9공수여단을 부대로 복귀시켜라' '우리 말로하자' 라며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던 것이죠
하지만 육군본부의 수뇌부들은 반란군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렸고 서로간에 병력 동원을 하지 말자는 반란군의 신사협정 제안을 수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실질적인 진압군 최고 지휘관인 육군참모차장 윤성민은 서울로 진격하던 9공수여단에 무전을 해 다시 부대로 복귀하라 명령했고 그렇게 9공수여단은 신나게 서울로 오다가 U턴해 부대로 돌아가고 말았죠
9공수여단이 부대로 돌아가자 반란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약속을 지키지 않은 1공수여단은 그대로 서울로 진입해 곧바로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장악한뒤 숨어있던 노재현 국방장관을 체포 했으며 3공수여단은 특전사령부를 습격해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해버렸죠
심지어 5공수여단은 효창운동장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 하고 있었으며 최전방을 지키고 있던 9사단은 사단장 노태우와 함께 서울로 진격하는 중이었다고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건 수경사에 장태완 사령관 뿐이었죠
장태완은 행정병, 취사병 등과 남아있던 극소수의 전투병, 그리고 전차 4대만을 가지고 보안사를 직접 공격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믿을 사람 하나 없었고 장교들도 남은 병사들 마저 다 죽겠다고 설득했으며 반란군에 항복한 국방장관 노재현의 지시로 인해 결국 장태완도 저항을 포기하고 병력을 해산시킨뒤 허탈해 하며 사령관실로 들어간 이후 얼마안가 수경사로 피난 와있던 김진기, 윤성민 등과 함께 체포 되고 말았죠
국방장관 노재현이 도망만 다니고 숨어있다보니 정상적인 명령체계를 지키려던 사람들이 하극상과 더불어 명령체계를 무시해버린 반란군에 의해 제압 당해버린 꼴이 펼쳐져 버린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노재현은 체포 당하자마자 최규하 대통령을 찾아가서 정승화 체포 동의안에 서명을 하게 되었고 결국 끝까지 버티던 최규하 역시 서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최규하는 서명 밑에 서명시각을 12월 13일 오전 5시 10분이라고 적어 놓았는데요
이는 전날인 12일 밤에 이루어진 정승화 체포가 대통령의 재가 이전에 벌어진 불법 행위임을 명시하기위해 최규하가 기지를 발휘한 조치였다고 합니다
어쨌든 전두환의 반란은 작전개시 약 10시간만에 성공할수 있었죠
그렇게 하루아침에 세상이 뒤바껴버렸고 이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극심한 고문을 당한 뒤에 대장에서 이등병까지 무려 17계급을 강등 당한뒤 불명예 제대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장태완 사령관은 서빙고로 끌려가 수사를 받은뒤 소장으로 예편 당했으며 이에 충격을 받은 장태완의 아버지는 몇개월 뒤 세상을 떠났고 아내와 아들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을 맞이했죠
정병주 사령관 역시 현역 부적합 판정을 받아 강제 예편 당하고 말았고 1988년 10월 실종 되었다가 5개월 후인 89년 3월 양주군에 있는 빈 부대 막사에서 숨진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조사결과 자살로 마무리 지어졌지만 정병주가 절대 스스로 목숨을 끊을리 없다는 사람들이 많아 타살의혹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이끈 전두환은 이후 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었죠
한반도에서는 역사를 바꾼 3번의 U턴이 있다고 하는데요
첫번째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두번째는 10.26사건 이후 김재규가 중앙정보부를 가려다가 육본으로 유턴한것
세번째가 바로 9공수여단의 부대 복귀라고 합니다
9공수여단이 반란군을 제대로 제압 했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엄청나게 바꼈을것 같기는 하네요
지금까지 서울의 봄이 오나 했는데 전두환의 반란군이 온 12.12 군사정변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사탐과탐 다른 포스팅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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