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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개짐. 천조각을 잡귀 쫓는 부적으로 여겨졌던 조선시대 여인들의 피묻은 생리대 이야기

by 사탐과탐 2021.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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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조선시대의 생리대는 너무 열악한 천조각으로 되어있었는데요.
개짐, 월경포, 월경대, 달거리포, 서답 등으로 불렀죠.
심지어 여인들의 피묻은 개짐을 잡귀를 쫓고 마을을 지키는 부적으로 여겨졌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개불알꽃' 이라고 아시나요?

과거에 여자들이 산에 나물을 캐러 가면 나물도 캐지만 이 개불알꽃을 찾기도 했다고 합니다.

개불알꽃이 핀 걸 발견하면 여자들이 서로 그 꽃을 따려고 마구 뛰어갔는데요.

 

그 꽃을 따서 샘물에 담가 먹으면 그달의 '달거리'양이 먹은 개불알꽃의 꽃잎 크기만큼 줄어든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다보니 개불알꽃은 언제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현재도 당시에도 여성들은 한 달에 한 번씩 걸리는 마법이 굉장히 고통스럽고 짜증 나는 것이었죠.

 

(개불알꽃(복주머니란)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오죽하면 꽃잎을 먹고서라도 조금이나마 양이라도 줄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은 매달 잊지도 않고 찾아오는 마법 때문에 이에 필요한 도구를 마련해놓았어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생리대이죠.

 

생리대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었습니다.

약 5천 년 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이집트 여자 미라의 질에서 나무껍질 섬유와 마를 이용한 탐폰과 같은 것이 발견된 것이죠.

탐폰은 바로 생리혈을 흡수하기 위해 질속에 삽입하던 여성 위생제품인데요.

고대 이집트 미라에서도 발견이 되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 조선시대 때 여성들은 어떤 생리대를 사용했을까요?

조선시대에는 생리대를 '개짐'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외에도 '월경포, 월경대, 달거리포' 등으로 부르기도 했죠.

또한 충청도, 경상도 인근에서는 '서답'이라고 부르기도 한 이 생리대는 주로 광목천을 사용했는데요.

 

딸이 생리를 시작하면 어머니가 미리 마련해둔 광목천을 딸에게 주며 사용하는 방법과 보관방법, 세탁 방법 등을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생리를 하는 것이 부끄럽고 숨겨야 하는 것이라 여겼고 개짐 역시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될 물건으로 생각하고 있었죠.

 

(개짐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다보니 낮에는 남자들의 눈이 있으니 오직 밤에만 몰래 나가 빨아야 했는데 빠는 도중에 남자들 소리가 나면 급하게 부랴부랴 숨기기도 했었습니다.

또한 일반적인 빨래와는 다르게 개짐에는 혈흔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좋은 세제가

있는 것도 아닌 과거에는 빨래조차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죠.

 

그래서 사용한 개짐은 잿물에 넣어 삶아 빨거나 오줌에 담궈놓고 핏물을 먼저 빼기도 했으며 뜨거운 수증기를 쏘인 후 세탁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거쳐 빨래한 개짐은 밤에 널어놓았다가 날이 밝아 사람들이 깨기 전에 먼저 일어나 걷었죠.

 

이 개짐은 그냥 천일뿐이었기 때문에 개짐을 착용할 때는 끈을 달아 몸에 고정시키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흘러내리기 일쑤였고 그러다보니 요즘으로 치면 '거들'과 같은 '다리속곳'이라는 것을 입기도 했죠.

하지만 다리속곳 역시나 굉장히 불편하긴 마찬가지라서 매달 생리를 하는 날이면 엄청 큰 고역이었습니다.

 

(다리속곳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나 굉장히 독특한 점이 있었는데요.

개짐을 부적처럼 사용한 적도 많다는 것이죠.

어쩔 때는 상여 앞에 세웠던 깃발인 공포(功布)를 차지하기 위해 동네 여자들이 싸우기도 했습니다.

아들을 많이 낳았던 남자 상여의 공포는 아들을 낳게 해준다는 속설이 있었기 때문이죠.

 

또한 생리를 한다는 것이 바로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걸 의미하기 때문에 자식을 많이 낳았던 여자의 피가 묻은 개짐은 아들을 낳거나 많은 자손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도 했습니다.

거기다가 개짐에는 온갖 잡귀를 쫓아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도 했죠.

 

그리고 산삼을 캐러 다니는 심마니들은 아내의 개짐을 필수로 챙겨 산에 올랐습니다.

그 이유는 여자를 좋아하는 산신을 꾀어 산삼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고 짐승들과 잡귀도 내쫓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월남전에 파병된 국군들 중에서는 여성의 생리대를 가지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이와 비슷한 이유에서였습니다.

 

거기다가 지독한 가뭄이나 홍수, 또는 역병이 돌때 마을 여성들의 개짐을 장대에 걸어 마을 입구에 내걸거나 마을의 큰 나무에 걸기도 했으며 개짐을 장대에 걸어 치켜세운 뒤, 흔들면서 마을을 행진하기도 했는데요.

과거에는 병이나 가뭄, 홍수 등과 같은 악재들이 귀신의 소행이라 믿었고 그런 귀신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여자들의 개짐이라 믿었던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다보니 마을에 무슨 안 좋은 일이나 위급한 일이 있으면 여성들의 속옷이나 개짐을 걸어두고 액막이 부적처럼 사용하기도 한 것이죠.

즉 여성들의 생리와 개짐에는 잡귀들을 내쫓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마을의 입구에 걸어두고 귀신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여성들이 하는 생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했는데요.

생리를 하는 여자가 있으면 부정을 탄다며 집안 제사 때 격리가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몸에 착 달라붙은 팬티가 없었던 과거에는 정말 생리대를 착용하기가 엄청 불편했을 것 같기도 하네요.

생리를 하게 되면 쥐어짜는듯한 복부 통증과, 메스꺼움, 가슴 통증, 편두통, 우울증이 동반하면서 극도로 예민해진다고 하는데 그걸 매달 겪고 있는 여성들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 생리대, 개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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