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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경종. 장희빈과 숙종의 첫째 아들이었지만 이복동생 연잉군에게 점점 밀리다 갑자기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불행한 왕

by 사탐과탐 2021.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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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과 장희빈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이었지만 훗날 어머니는 죽고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또한 이복동생이던 연잉군에게 점점 밀리다 갑자기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은 불행한 왕 경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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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장희빈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숙종의 총애를 받아 후궁의 자리에서 중전의 자리까지 올랐던 여인이었으며 아들을 낳아 세자 자리까지 올렸던 대단한 인물이었죠.

 

오늘은 그런 장희빈의 아들이자 조선시대 역대 왕들 중 굉장히 불행했던 왕인 경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경종은 숙종의 맏아들로 태어났는데요.

 

숙종이 당시로 치면 꽤 늦은 나이인 28살의 나이에 낳았던 첫 아들이었기도 했고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던 희빈장씨가 낳은 떡두꺼비 같은 자식이었기에 경종은 부모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숙종은 경종이 태어난 지 100일도 채 되지 않았을 때 그를 원자로 책봉했을 정도로 기뻐해 마지않았죠.

또한 인현왕후가 폐서인 되어 궁에서 쫓겨난 뒤 어머니였던 장희빈이 중전의 자리에 올랐고 경종도 서자에서 적장자가 되어 어릴 땐 그나마 괜찮은 세자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어머니 장희빈이 숙종의 눈밖에 나게 되어 후궁으로 강등되고 숙빈최씨가 연잉군을 낳았으며 인현왕후가 복위하면서 그의 자리가 위태로워지기 시작했죠.

또한 장희빈의 지지세력인 남인들에게서 조차 마음이 떠난 숙종은 경종이 세자 자리에 있는걸 마음에 들어 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보니 숙종은 은연중에 계속해서 연잉군을 세자로 삼고 싶어 하는 뜻을 내비치곤 했죠.

하지만 세자였던 경종이 딱히 뭘 잘못했다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무난하게 생활했기 때문에 폐세자 시킬 명분이 하나도 없었으며 그리고 정치적인 부담감도 작용해 결국 경종을 폐세자 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던 경종이 14세가 되었던 해에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한 사건으로 인해 그는 어머니가 죽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때 세자였던 경종이 대신들에게 찾아가 어머니를 죽게 내버려 두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지만 대신들에게 돌아오는 말은 "이게 다 세자 저하를 위한 것입니다"라는 말밖에 없었고 어머니 장희빈이 죽임을 당하는데 아무 힘도 쓰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든든한 버팀목이던 어머니가 죽임을 당하고 아버지 숙종의 눈밖에 났으며 배다른 동생에게 세자 자리를 흔들리고 있으니 그가 받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했죠.

이런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그는 비만에다가 병약하여 항상 몸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또한 심한 우울증에 고통받았고 성격마저 내성적이고 소극적이게 변해갔죠.

 

그러다보니 숙종이 병으로 앓아누웠을 때 대리청정을 맡은 적이 있는데 신하들이 하는 말에 모든 대답은 "그대로 시행하라", "따르지 않겠다", "유의하겠다" 이 세 가지 말만 했다고 합니다.

이 정도로 엄청나게 몸을 사렸던 경종은 뚜렷하게 잘한 점도 없었지만 못한 것도 없어서 숙종이 연잉군을 세자로 삼고 싶다 하더라도 경종을 폐세자 할 명분이 없었죠.

 

그렇게 1720년 숙종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드디어 경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동생에게 세자 자리를 빼앗기지 않은 채 왕위에 올랐지만 그를 지지해 줄 세력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기에 왕권이 굉장히 약했었죠.

또한 오랜 지병으로 몸 상태가 굉장히 좋지 않아 허구한 날 병석에 드러눕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두 명의 아내가 있었지만 자식은 없었고 심지어는 그가 성 불구였다는 썰까지 있었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가장 유명한 야사로는 장희빈이 죽기 전 세자를 보고 싶다 하여 데리고 왔는데 장희빈이 갑자기 전주이씨 집안의 대를 끊는다며 경종이 기절해버릴 정도로 그의 뽕알을 꽉 쥐었고 그렇게 성불구가 되었다는 썰도 있죠.

하지만 그가 성불구였다, 아니었다는 확실히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어쨌든 그가 자식을 낳지 못하자 조정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노론 중신들은 경종에게 연잉군을 세제로 삼으라고 압박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노론의 극심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그는 연잉군을 세제로 삼게 되었는데요.

 

훗날 노론의 이건명, 윤양래 등이 청나라에 세제 책봉 승인을 받으러 갔는데 청나라에서는 왕이 아직 젊은데 왜 동생을 세제로 책봉하냐고 물으니 대표로 갔던 노론의 신하들은 "경종은 발기불능이라 자손을 둘 수가 없다" 라고 대답했다고 하죠.

사실 이는 신하들이 했던 거짓말이며 그가 성 불구가 맞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때의 일 때문에 그런 소문이 돈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기도 하죠.

 

그러나 사관이 실록에 쓴 글에 따르면 평소에는 소심하고 얌전하다가 한번 화가 나 신하들을 때려잡을 때는 확실히 잡았다 하면서 신하들이 그를 업신여길 때면 하룻밤 사이에 하늘과 땅이 뒤집히듯 피의 숙청을 하시니 전하께서 본성을 숨기고 계시는 걸 알겠다는 식으로 기록해 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왕권을 항상 위협하는 이복동생 연잉군과의 사이는 굉장히 좋았다고 하는데요.

끊임없는 이간질에도 흔들림이 없었으며 소론의 계속된 공격에서 연잉군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그를 지켜주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어쩌면 경종이 연잉군을 보호해 준 덕분에 연잉군이 다음 왕인 영조로 즉위하는데 큰 차질 없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야사에 따르면 경종이 또 병에 들어 앓아누워있을 때 연잉군이 병문안을 온 적이 있는데 그렇게 아픈 와중에도 "세제가 덥겠구나, 창문을 열어라" 라고 했다고 하죠.

 

그렇게 노론과 소론의 피 튀기는 정쟁에 치이던 경종은 결국 왕이 된 지 4년 만인 1724년에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그의 뒤를 이어 왕세제였던 연잉군이 영조로 즉위했습니다.

그러나 영조가 왕이 된 이후부터 그가 죽을 때까지 영조를 괴롭힌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요.

 

경종이 죽기 전인 1724년 8월 2일, 그는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죠.

식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으며 고열에 시달리거나 오한에 시달리기도 했고 의식을 잃는 경우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위독한 상태가 지속되어 오다가 8월 20일이 되었을 때 경종의 떨어진 입맛도 돋우고, 빨리 쾌차하라는 마음으로 연잉군이 가져온 게장과 생감을 그날 식사로 먹게 되었는데 이 두 음식은 한의학에서 굉장히 좋지 않은 궁합의 음식 조합이었던 것이죠

 

그렇게 식사를 하고 난 후부터 복통과 설사가 지속되다가 왜 이런 증상이 발현되었는지 이유를 찾던 의관들은 경종이 게장과 생감을 먹은 걸 알게 되었고 즉시 여러 탕약을 처방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으며 그로부터 4일 후인 24일부터는 아예 의식을 잃어버립니다.

 

그렇게 의관들이 심혈을 기울이며 경종이 다시 의식을 찾을 수 있도록 여러 치료를 하던 중에 연잉군이 갑자기 의관에게 빨리 인삼과 부자를 쓰라는 뜬금없는 지시를 내렸죠.

의관들은 연잉군의 지시에 처음에는 반대를 했지만 그가 너무 강력하게 명령하자 결국 연잉군이 시킨 처방대로 인삼차를 경종에게 먹였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자 처음에는 경종의 상태가 조금 호전되는 듯 보였지만 얼마 뒤 다시 병세가 굉장히 악화되었고 그대로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죠.

이에 연잉군이 가져온 게장과 감 때문에 경종이 사망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게 되었고 훗날 왕위에 오른 연잉군이 직접 자신은 경종을 독살시키지 않았다고 해명까지 해야 했으며 이 사건은 그의 치세 기간 내내 그를 괴롭히는 아킬레스건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종 독살설은, 현재까지도 치열한 논쟁거리가 되고 있죠.

어쨌든 경종이 어떤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을지 감히 상상도 못하겠네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엔 아버지 어머니 모두에게 사랑을 듬뿍 받던 왕세자였지만 시간이 지나 아버지에게도 버림받고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으며 친하게 지내던 이복동생과는 왕위를 놓고 다퉈야 했고 평생 노론과 소론의 당쟁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몸도 허약해 사는 동안 고생만 했으며 결국 후사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조선시대 가장 불행한 왕이었던 경종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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