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의 개망나니 아들인 임해군이 저지른 악행은 너무나도 많죠.
재상이었던 유희서를 정말 어이없는 이유로 해치고 왕족이라는 이유로 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 가족과 사건을 수사했던 포도부장을 가해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조선시대 권력의 힘으로 찍어눌러 유희서 살인사건을 은폐시킨 이야기입니다.
선조 36년인 1603년 8월 21일, 조정에 한 가지 보고가 올라오면서 온 조정이 난리가 나게 됩니다.
이 일로 인해 대소신료들과 선조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두 달여의 기간 동안 조정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죠.
그 일은 바로 조선의 재상이던 유희서가 포천으로 휴가를 갔다가 도적떼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유희서는 전 영의정 유전의 아들로 당시 최고 명문가이던 문화유씨 가문이었죠.
보고에 따르면 유희서는 집안의 경사가 있을 때 조상 무덤을 청소하고 제사를 지내는 일인 '소분 (掃墳)'을 하기 위해 휴가를 내고 포천에 머물고 있었는데 21일 날 밤 도적 30여 명이 갑자기 그의 집으로 들이닥쳐 그를 찔러 죽였으며 다른 값비싼 물건은 그대로 둔 채 그의 말과 옷만 가져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포도대장 변양걸은 즉시 종사관과 포도부장들을 현장에 파견했고 검시관과 의생 등도 서둘러 포천으로 향했죠.
며칠의 시간이 흘러 조사를 마친 종사관과 포도부장이 돌아와 변양걸에게 보고를 했는데 사망원인은 유희서의 왼쪽 가슴에 난 자상 때문이었다는 것과 함께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바로 이 사건은 우리가 나서면 안 될 거 같다는 소리를 하면서 발을 빼자는 것이었죠.
그러자 변양걸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종사관이 유희서가 살해당한 이유가 첩이던 애생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더 의아해진 변양걸은 그게 무슨 말이냐며 '도적 30여 명이 한 게 아니란 말이냐', 또한 '첩이랑 관련이 있던말던 조사는 해야 할 거 아니냐' 라며 그들을 다그치니 그제서야 종사관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죠.
애생은 의주의 기생인데 유희서가 첩으로 들였고 워낙 미모가 출중했던 기생이다 보니 여러 양반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었는데 최근에 임해군과 간통을 하던 사이였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유희서가 임해군에게 거센 항의를 하자 이에 열받은 개망나니 임해군이 자신의 종들을 시켜 도적으로 가장한 채 유희서를 살해했다는 것이었죠.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큰 죄를 지었더라도 왕의 아들을 함부로 잡아 가두거나 신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높은 신분일 경우에는 의금부에서 조사를 했었기 때문에 변양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했던 것이죠.
그래서 수사가 지지부진하고 있던 사이 유희서의 아들이던 '유일'은 혼자 나름대로 범인 색출에 나서고 있었습니다.
유일은 몰래 아버지의 첩이던 애생의 뒤를 밟았는데 그녀가 임해군과 그렇고 그런 사이인 것을 알아내게 되었죠.
또한 임해군의 종이던 '설수'라는 놈이 김덕윤, 춘세, 황복 등과 함께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것도 알아냈습니다.
유일은 설수와 김덕윤 패거리를 경기도 광주목사에게 고발했고 광주목사는 이 용의자들을 잡아 포도청으로 이송했죠.
그리고나서 변양걸은 형조에 유희서를 죽인 범인들을 잡았다고 보고하면서 그들을 심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설수와 김덕윤 패거리는 고문도 하기 전에 범행 일체를 낱낱이 자백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설수의 입에서 사실 임해군이 시켜서 했다는 소리까지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변양걸은 김덕윤 패거리의 한 명인 박삼석을 심문했는데요.
그는 임해군의 종이 아니었는데도 임해군이 이 사건의 배후라고 한 것입니다.
이에 변양걸은 더 이상 사건을 파헤치다가는 큰일이 날 수도 있겠다 생각해 의정부에 즉각 보고를 했죠.
그러자 조정이 또 한 번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먼저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임해군을 처벌해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왔고 뒤를 이어 홍문관과 유림에서도 같은 내용의 상소가 빗발쳤죠.
하지만 선조의 무거운 입은 열릴 기미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며칠간 계속해서 올라온 상소문은 산처럼 쌓여있었고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생각한 선조는 마침내 포도청에 이 사건에 대해 조금의 의혹도 없도록 철저히 조사하라는 명을 내렸죠.
그러자 포도대장 변양걸은 차마 임해군을 잡아오지는 못하고 그의 가노들을 모조리 잡아와 포도청에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잡혀온 가노들 모두가 사건의 배후는 임해군이라고 자백하는 것이었죠.
이에 임해군은 변양걸에게 서찰을 보내 자신은 범인이 아니고 유일이 자신을 무고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겉으로는 엄정한 수사를 하라고 명했던 선조도 임해군을 잡아들여 조사하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있었죠.
그렇게 조사를 이어오던 어느 날 밤. 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희서 살해범인 춘세와 황복 등이 감옥 안에서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었죠.
또한 임해군이 이 사건의 배후라고 말했던 사람들 역시 차례대로 죽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임해군이 범인이라는 것을 증언해 줄 사람 모두가 죽고 없어져 버린 것이었는데요.
증인의 입을 막기 위해 옥에 갇혀있던 사람을 죽인 것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죠.
그런데 이 사건이 있은 후부터, 사건이 묘하게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사헌부에서는 관리 소홀에 대해 포도청과 전옥서의 관리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면서 적과 내통해 증인들을 죽여 입을 막으려 한 포도청과 전옥서 관리들을 잡아들여 이일을 행한 배후를 캐내야 한다고 하는 것이었죠.
그러자 선조는 이일에 관련된 포도청 종사관들과 전옥서의 관리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렸고 그렇게 종사관을 포함해 포졸들은 모조리 잡혀와 가혹한 고문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포도청에서 의금부로 이첩을 했죠.
그런데 여기서 또 어이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의금부에서 임해군의 가노 설수를 심문할 때 설수가 갑자기 그전에 했던 자백은 고문에 의해 억지로 한 자백이라고 하며 증언했던 모든 걸 뒤집어 버린 것이죠.
또한 용의자와 증인 모두가 죽임을 당해 없어진 상황이 되자 임해군은 선조에게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고 잡아떼며 이 사건은 변양걸과 유일이 짜고 자신을 음해하려는 것이고 그들을 조사해 보면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임해군의 주장에 선조는 변양걸을 잡아 조사하라는 명을 내렸으며 피해자 유희서의 아들인 유일도 왕자를 무고한 자가 되어 잡혀 들어오게 되었죠.
선조의 의중을 알아차린 승정원은 임해군은 무죄다 라고 가닥을 잡아 변양걸을 집중 추궁했고 유일의 사주를 받고 임해군을 범인으로 몰았다는 혐의가 씌워졌습니다.
심지어 피해자의 가족이던 유일은 의금부에서 지독한 고문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의금부에서도 마찬가지로 사건의 진범이 임해군이라는걸 알면서도 유일에게 잔인한 고문을 가했죠.
그러자 유일은 지독한 고문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임해군을 모함했다는 거짓 자백까지 해버렸습니다.
이렇게 피해자의 가족이 권력에 의해 가해자가 되어버렸죠.
유일의 자백으로 인해 선조는 유일에게 임해군을 무고한 죄로 사형을 선고했고 포도대장이던 변양걸은 파직당한 뒤 장 90대를 맞고 먼 곳으로 유배를 보내졌습니다.
하지만 유일의 어머니가 선조에게 부탁해 유일을 살려달라 간청했고 선조는 죽은 유희서를 생각해 특별히 유일의 목숨만은 끊지 않겠다는 명을 내렸죠.
그리고 장 1백 대와 3천 리 먼 곳으로 유배형이 내려졌습니다.
이렇게 재상이던 유희서 살인사건은 마무리되었죠.
결국 이 사건의 진범인 임해군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채 피해자의 가족이던 유일만 유배를 떠나게 되었으며 수사를 담당한 변양걸 역시 파직당하고 유배를 가게 된 것입니다.
비록 피해자들이 가해자가 되어 처벌받고 끝이 났지만 시간이 흘러 임해군은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자 역모에 연루되어 귀양을 갔다가 결국 사약을 받고 죽게 되는 최후를 맞이하죠.
선조 때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던 것 같네요.
왕이 아들의 죄를 덮어주면서 죄 없는 피해자들만 더 큰 피해를 받았던 재상 유희서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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