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노비로 태어난 한 '도리' 라는 여자 아이는 그녀의 어머니가 노비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노비 신세가 되었는데요.
훗날 집 주인에게 끔찍하게 당해버리는 일이 발생했지만 하소연은 커녕 되려 맞아 죽어야 했던 말도 안되는 사건이 일어났죠.
때는 성종 5년인 1474년 10월, 한 마을의 나무꾼들이 나무를 하러 홍인문 밖 야산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올랐을 무렵 앞에 무언가 사람의 형체 같은 걸 발견했죠.
그렇게 두려운 가슴을 안고 다가가서 보니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도 참혹하게 죽어있는 시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무꾼들은 놀라 자빠지며 산을 부리나케 뛰어내려와 한성부에 신고를 했고 그렇게 조선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이 만 천하에 드러나게 되었죠.
다행히 10월이라 날씨가 쌀쌀해서 그런지 시신이 많이 부패하진 않았던 덕분에 시신을 검시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일단 시신의 성별은 여자였고 온몸은 피멍투성이었으며 오른쪽 가슴에 버드나무 잎사귀 모양의 상처가 있었죠.
버드나무 잎사귀 모양의 상처는 사람이 살아있을 때 칼에 찔리면 그 모양이 된다고 검시를 한 의생이 말했습니다.
거기다가 가슴에는 검붉은색의 징그러운 상처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불로 지진 상처였죠.
심지어는 그 시신의 음부에도 불에 지져진 상처가 있었으며 며칠을 굶다가 죽었는지 모를 정도로 깡마른 시신의 몰골은 그야말로 참혹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리고 검시를 하는 동시에 탐문수사를 벌여 그 젊은 여자 시신이 누구인지 알아내게 되었죠.
그 시신은 바로 참봉직에 있는 신자치의 여종 '도리'였습니다.
도리는 신자치의 집에서 거느리는 여노비의 딸로 태어났죠.
노비종모법에 따라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간 도리는 태어나자마자 신자치의 노비가 된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도리도 점점 자라며 용모가 아름다워지기 시작했고 여자로서의 몸매로 변하기 시작했죠.
그런 도리를 눈여겨보고 있던 주인 신자치는 어느 날 갑자기 도리를 방으로 부르더니 강제로 강간을 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노비는 주인의 재산이나 소유물 정도에 불과했으니 누구에게도 신고나 하소연을 할 수 없었고 주인인 신자치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도리는 밤마다 주인 신자치의 방에 들어가 함께 밤을 보내야 했고 그렇게 그녀는 마치 노리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던 도리에게 갑자기 신자치의 아내 숙비와 그의 친정어머니 막생이 오더니 "니까짓 년이 감히 나리께 꼬리를 치다니 니년을 도저히 살려둘 수가 없다" 라고 하며 잔혹한 고문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죠.
도리는 피해자였지만 주인을 꼬셨다는 죄가 덮어씌워져 버렸고 그렇게 신자치의 아내에게도 혹독한 괴롭힘을 당한 것입니다.
도리에겐 이보다 억울한 일은 없을 정도였죠.
신자치의 아내 숙비는 남자노비들을 시켜 몽둥이로 도리를 엄청나게 구타를 가했고 머리카락을 마구잡이로 잘라버렸으며 얼굴과 온몸을 할퀴고 꼬잡아 뜯기도 했습니다.
거기다가 도리를 묶어놓은 뒤 시뻘겋게 달궈져 있던 인두로 몸을 지져버리기까지 했죠.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았던 숙비는 도리의 음부에도 빨갛게 달궈져 있던 인두를 갖다 대 버렸고 그 지독한 고통을 참지 못한 도리는 혼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숙비는 도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꽁꽁 묶어 창고에 가둬놓고 물 한 방울 주지 말라는 명을 내렸죠.
그렇게 창고에 가둬진 채 치료도 받지 못했으며 몇 날 며칠을 물 한 방울 먹지 못하고 쫄쫄 굶은 도리는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도리가 죽었다는 보고를 받은 숙비는 노비들을 시켜 그녀를 아무 야산에 갖다 버리고 오라고 명령했죠.
그래서 노비들은 그녀의 시신을 홍인문 뒤쪽에 야산에 가져가 그냥 버려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성부에서는 이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되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형조에 사건을 보고하지 않았고 그렇게 신자치와 아내 숙비 그리고 어머니 막생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사건이 덮혀버렸죠.
또한 주인이 자신의 노비를 죽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빈번하게 있었던 일이었던 만큼 굳이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다른 노비들은 도리가 불쌍해서 도와주고 싶더라도 노비가 주인을 고소할 수 없었던 법 때문에 억울해도 그냥 입다물고 있는 수밖에 없었죠.
괜히 관청에 주인을 고발을 했다가는 자신만 처벌받을 뿐이었던 것인데요.
하지만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나무꾼들과 여러 목격자들에 의해 이 사건에 대한 소문은 일파만파 걷잡을 수 없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은 결국 사헌부 감찰이 알게 되었고 그렇게 성종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죠.
사건의 모든 전말을 들은 성종은 분노해 마지않았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는가 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즉시 신자치의 아내 숙비와 친정어머니 막생을 잡아들이라 명했습니다.
의금부에 잡혀온 숙비와 막생은 그렇게 국문을 받기 시작했는데 두려움에 벌벌 떨던 둘은 조사를 받자마자 모든 범죄행각을 자백했죠.
그리고 그 둘의 처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성종과 정창손, 신숙주, 한명회 등, 대신들이 의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은 신자치는 공신의 아들이니 고신만 거두고 칠거지악의 하나인 질투를 한 아내 숙비와 그녀를 도와준 친정어머니 막생은 외지로 부처 시키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결국 신자치는 경상도 안음에 그리고 숙비와 막생은 경상도 산음에 부처시키는걸로 결론이 나게 되었습니다.
(고신(告身) : 조선시대 관리로 임명된 자에게 수여한 증서)
애초에 신자치가 도리를 강간하지만 않았다면 그 누구도 처벌을 받거나 죽지 않았을 텐데 결국 이 모든 일의 원흉은 신자치였지만 공신의 아들이니 고신만 거두자고 하는 것도 정말 어이가 없는 노릇이죠.
어쨌든 그들이 서로 너무 가까운 곳에 부처 되었으니 이 부부를 떨어져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아내 숙비와 친정어머니 막생은 충청도 진천으로 옮겨지게 되었죠.
그렇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도리의 사건이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조선 세종 때에 있었던 권채-덕금이사건과 이 신자치-도리 사건은 굉장히 유사한 사건인데요.
조선시대에는 이렇게 남자들이 자기집 여노비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그리고 그 집의 여주인은 남편에게 강간당한 여종에게 어떠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 노비들은 정말 개돼지 취급도 못 받았던 것 같은데요.
덕금이와 도리 사건과 같이 여노비들이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그대로 주인에게 강간당하거나 죽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일은 워낙 흔해서 드러나지 않았거나 그냥 흐지부지 되었던 경우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을 거라고 생각되죠.
심지어 조선 중기의 문신 성여학이 지은 <속어면순>에는 '십격묘법'이라는 글이 실려있는데요.
이 글을 보면 당시 양반 남자들이 어떻게 여노비들을 대하고 봐왔는지 대충 알 수가 있죠.
그 내용을 보면 기가 차는데요.
굶주린 호랑이가 고기를 탐내듯이 (아호탐육:餓虎貪肉)
백로가 물고기를 노리듯이 여종을 훔쳐보고 (백로규어:白鷺窺魚)
여우 같은 늙은 아내가 잠들었는지 확인한 뒤에 (노호청빙:老狐聽氷)
추운 날 매미가 껍질을 벗듯 여종의 옷을 벗긴다. (한선탈곡:寒蟬脫穀)
고양이가 쥐를 놀리는 것처럼 희롱하고 (영묘농서:靈猫弄鼠)
무서운 매가 꿩을 낚아채듯 여종을 덮친다. (창응포치:蒼鷹捕雉)
옥토끼가 방아를 찧듯이 사랑을 나누고 (옥토도락:玉兎搗樂)
용이 구슬을 토하듯이 정액을 배설한다. (여룡토주:驪龍吐珠)
소가 달을 쳐다보듯이 헐떡거리면서 (오우천월:吳牛喘月)
늙은 말처럼 집으로 돌아온다. (노마환가:老馬還家)
이런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충격적인 내용 조차도 당시 양반가에 널리 퍼져있었다고 하며 그만큼 당시 양반 남자들에게 여종들은 성적 유희의 대상 그 이상 그 이하도 되지 않았던 것이죠.
이 글을 보면서 서로 공감하며 히히덕 거리던 위선 가득했던 양반 남자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과거에 남자든 여자든 노비로 태어난다는 것은 정말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겠네요.
남주인에게는 강간을 당하고 여주인에게는 심한 폭행과 고문 심지어 비참하게 죽임까지 당한 여노비 도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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