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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현숙공주 독살미수사건. 남편이 여자에 미쳐 바람 피우자 아내인 공주가 독살 자작극까지 펼쳤던 이야기

by 사탐과탐 2021.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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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숙공주의 남편인 부마 임광재는 타고난 바람둥이였었는데요.
공주인 아내 외에는 여자를 건드려서는 안되는 부마 신분인데도 여자에 미쳐 바람을 피우고 심지어 첩까지 끼고 살자 질투의 화신인 현숙공주가 독살 자작극까지 펼쳤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조선판 사랑과 전쟁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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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저희 채널에서는 부마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부마란 공주나 옹주의 남편을 지칭하는 말로 그들은 공주와 결혼하면 부와 명예는 가질 수 있었으나 관직에 나아가 강한 권력을 휘두르거나 다른 양반 남자들처럼 첩을 두거나 하지는 못했고 평생 동안 아내인 공주를 떠받들고 살아야 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행여나 부마가 첩을 둔다거나 바람을 피다 걸리면 장인어른인 왕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는 그런 위치였죠.

요즘 같으면 평생을 놀고먹어야 하는 부마 자리를 마다할 남자가 많지 않을 것 같지만 당시에는 벼슬길에 올라 자신의 뜻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던 때라서 부마가 되는 것을 싫어한 경우도 많았었습니다.

 

오늘은 그런 부마 임광재와 그의 아내이던 현숙공주의 무시무시했던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요.

여주인공인 현숙공주는 질투의 화신이었고 남주인공인 임광재는 여자에 환장한 개망나니였던 이야기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세조 10년인 1464년 2월, 훗날 예종이 되는 세자와 소훈 한씨의 사이에서 예쁜 딸이 태어났죠.

그녀가 바로 현숙공주 인데요.

시간이 지나 예종이 왕위에 오르고 소훈한씨가 안순왕후가 되면서 그녀는 공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고작 6살의 나이밖에 되지 않았을 때 아버지 예종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죠.

 

이후 친척 오빠이던 성종이 왕이 되었고 예종의 아들이던 제안대군과 현숙공주는 성종의 보살핌 아래 부족한 것 없이 사랑받으며 예쁘게 잘 자랐습니다.

시간이 지나 현숙공주가 시집갈 시기가 되자 부마 간택이 이루어졌고 그렇게 임광재와 혼인을 하게 되었죠.

하지만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 될 줄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현숙공주의 남편인 임광재는 총명하고 문장을 좋아해 성종이 토지와 미포(米布) 등을 자주 하사하기도 했을 정도로 그를 많이 총애했다고 하죠.

하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여자를 엄청 밝힌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마인 임광재는 왕의 사위라는 권위와 성종의 총애를 등에 업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다녔는데요.

 

수시로 기생집에 드나들면서 기생들과 관계를 맺기 일쑤였고 마음 내키는 대로 여자들을 강간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현숙공주 몰래 첩을 두기도 했죠.

또한 장원서 제조로 있으면서 별좌의 노비와 간통을 하기도 했으며 존금이라는 여자를 첩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부마는 첩을 들일 수도 없고 바람만 피다 걸려도 목숨이 날아갈 수 있을 만큼 위험한 행위였지만 워낙 여자를 좋아하던 임광재는 현숙공주 몰래 계속해서 여자와 놀아났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그만큼 현숙공주의 질투심도 상상을 초월했는데요.

어쩌다 여종이 미소 지으며 임광재와 대화를 하기만 해도 그 여종을 끌고 와 직접 몽둥이를 들고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패버리기도 했을 정도였죠.

그러다보니 여종들은 현숙공주가 무서워 임광재와 대화하는것 조차 꺼려 하며 그를 피해 다니기까지 했는데요.

 

그러니 당연히 둘 사이는 굉장히 좋지 못했으며 자식 또한 없었습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결국 남편 임광재가 허구헌날 여자와 놀아나고 다니며 심지어 첩까지 여럿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현숙공주는 엄청난 분노에 사로잡히게 되는데요.

 

그러던 성종 25년인 1494년 어느 날 온 조정이 발칵 뒤집어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현숙공주의 여종인 '청옥'이 공주의 어머니이던 안순왕후를 찾아와 현숙공주의 유모 '대이'와 대이의 아들 '이근수', 그리고 보모였던 '소비', 이 셋이서 짜고 공주가 먹을 음식에 독을 타 그녀를 죽이려 했다는 것이죠.

 

이에 안순왕후와 성종은 그 즉시 용의자이던 대이, 이근수, 소비를 잡아들여 국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살이 찢어지고 피가 터지는 지독한 고문 가했지만 그들의 입에서 자백은 나오지 않았죠.

절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며 무지막지한 고문에도 모든 혐의를 부인할 뿐이었습니다.

 

열받은 성종은 영의정 이극배 등에게 이 현숙공주 독살 미수 사건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명령했죠.

그러자 용의자 세명을 비롯해 그 집에서 일하는 노비들이나 이 사건에 대해 알만한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기 시작했고 총 50여 명의 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잡혀와 모진 고문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몇 날 며칠 동안 잔인한 고문을 당하던 용의자 세명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며 그 외에도 10여 명에 달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죠.

하지만 사건에 대한 증거도 드러난게 전혀 없었을뿐더러 모든 사람들이 모른다고 하거나 혐의를 부인해 이 사건은 해결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부마인 임광재가 모든 일의 배후라고 생각한 성종은 잡혀온 자들에게 임광재에 대해 아는 것을 모두 말하라고 하면서 부마가 모든걸 사주했고 공주를 죽이려 했다는걸 자백하면 더 이상 고문도 하지 않고 살려서 보내주겠다고 회유했죠.

그러자 잡혀온 자들은 임광재가 첩을 거느리고 기생과 놀아나며 온갖 추악한 짓을 하고 다닌다는 사실들을 모조리 이야기했고 그렇게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성종이 알게 된 것입니다.

 

격분한 성종은 즉시 부마였던 임광재를 잡아들였고 부마의 직첩을 빼앗아 유배를 보내버렸죠.

그리고 이일은 질투가 심한 현숙공주와 이혼하고 싶어 했던 임광재가 유모와 보모 등을 회유했고 그리고나서 이 모든 사건이 발생되었다고 하면서 이 현숙공주 독살 미수 사건은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엄청난 반전이 있는데요.

이렇게 마무리가 된 사건이 조선왕조실록에는 다르게 기록이 된 것이죠.

사실 이 독살 미수 사건은 현숙공주가 스스로 저지른 자작극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질투심이 강하고 사나운 성격을 가진 현숙공주가 허구헌날 여자들과 놀아나는 임광재를 원망하고 미워하자 그녀의 유모와 보모는 "여자는 질투를 해서는 안 된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다", "못 본 척 넘어가라" 라면서 현숙공주에게 직언을 해주었고 그 말에 더 열받은 현숙공주가 유모와 보모 그리고 임광재까지 싸잡아 '모두가 나를 죽이려 한 범인이다'라는 자작극을 벌였다는 것이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리고 투기가 심하고 사나운 여성인 현숙공주 때문에 죄 없이 억울하게 죽은 자가 굉장히 많은 참혹한 사건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아무튼 대비전에 머물고 있던 공주는 임광재가 유배를 떠나는 날에도 나와 보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러자 조정 대신들은 남편을 공경하지도 않고 유배길에 오르는 남편을 마중 나가지도 않은 현숙공주를 비난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죠.

 

그렇게 임광재는 죽기 직전까지 유배지에서 살다가 유배 도중 병에 걸려 강릉으로 유배지가 변경되기도 했죠.

그러던 1495년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 뒤 임광재는 유배도 풀려나고 다시 직첩을 돌려받고 관직을 제수 받았지만 한 달 만에 병으로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현숙공주는 남편 임광재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7년이 지난 1502년에 39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죠.

 

부마가 되고 나서도 계속 여자와 놀아나며 첩을 거느리기까지 한 임광재 그리고 그런 남편을 미워하고 죽이고 싶어 했던 현숙공주, 결혼 전에는 서로 잘 먹고 잘 살다가 결혼 후부터는 서로 불행한 길로 접어들었던걸 보면 이 둘은 서로 만나지 말아야 했던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또 생각해 보면 이혼이라는 건 꼭 필요한 것 같기도 합니다.

서로 안 맞으면 헤어지는게 맞으니까요.

이혼만 가능했다면 현숙공주와 임광재 부부와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바람끼 많던 남자와 질투심이 심한 여자가 만나 결국에는 불행하고 비극적인 결말이 되어버린 현숙공주 독살 미수 사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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