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일어나면 인명피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파괴된다는 것인데요
과거 전쟁이 일어났을때 목숨걸고 문화재를 지켰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르던 어느날 세계적인 랜드마크이던 에펠탑이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 폭파될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뿐만아니라 히틀러는 프랑스 사람들의 자존심이라고 할수도 있었던 파리 자체를 초토화 시킬 생각으로 루브르 박물관, 노트르담 대성당, 콩코드 광장 등 파리 내의 유명한 유적지와 문화유산에 폭탄을 설치해 놓았던 것이죠
그리고나서 히틀러는 나치의 파리 주둔군 사령관이던 디트리히 폰 콜티츠에게 연합군이 파리로 밀려 들어오기 전에 모조리 파괴시켜버리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무려 9차례나 콜티츠에게 전화해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라고 물었죠
하지만 파리의 수많은 유적지를 폭파시켜 버리는것은 인류와 역사에 씻을수 없는 죄를 짓는것이라 생각한 콜티츠는 히틀러의 명령을 거부했고 그렇게 수많은 파리의 문화유산들은 파괴를 피할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유적지들을 보호하기 위해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거나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켜낸 사람들은 굉장히 많은데요
당연히 우리나라에도 여러 전쟁속에서 소실될뻔했던 문화유산을 지켜낸 의인들이 많죠
오늘은 이런 문화유산을 지켜낸 의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발발했고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은 순식간에 파죽지세로 한양으로 치고 올라오게 되었죠
이때 전쟁의 화마를 피하지 못한 여러 문화유산중에는 조선왕조실록도 있었죠
당시 조선왕조실록은 한양의 춘추관과, 충청도의 충주사고, 경상도의 성주사고, 그리고 전라도의 전주사고, 이렇게 네군데에서 보관하고 있었는데요
그 중 춘추관과 충주사고, 성주사고에서 보관중이던 실록은 왜군에 의해 불타버리고 말았죠
그리고 왜군은 전주사고가 있는 전주로 진격해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주사고에는 조선왕조실록 뿐만아니라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등 1322권의 책과 태조 이성계의 어진 등이 보관되어 있었죠
이 전주사고를 관리하고 있던 사람은 참봉직에 있던 오희길이라는 인물이었습니다
얼마안가 이곳도 초토화되어 모조리 불탈것이라고 생각한 오희길은 왜군들이 들이닥치기전에 실록과 어진 등을 안전한 곳으로 숨겨야겠다 마음먹고 유생 손홍록에게 도와달라고 급보를 보냈죠
오희길의 다급한 연락을 받은 손홍록은 흔쾌히 도와주기로 했으며 근처에 살던 유생 안의와 집안의 노비들과 함께 말을 타고 전주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왜군이 당도하기 전에 전주에 도착한 손홍록과 안의는 오희길과 함께 60여개의 실록 궤짝을 짊어지고 한여름의 무더위와 싸우며 밤낮으로 걷고 또 걸었죠
그렇게 다다른 곳은 내장산에서도 험준한 산세를 자랑하던 금선계곡의 용굴암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왜군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그들은 여러 장소로 옮겨다녔으며 1년이 넘는시간동안 아침저녁으로 불침번을 서면서 태조의 어진과 실록 등 여러 문화재를 지켰죠
더 놀라운 점은 당시 손홍록은 56세, 안의는 64세의 노인이었던 것입니다
오희길과 손홍록, 안의, 그리고 여러명의 노비들 덕분에 4대 사고(史庫)에 있던 실록 중 유일하게 전주사고의 실록만 임진왜란의 화마를 피해 현대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죠
이때 소실을 피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국보 제 317호이고 조선왕조실록은 국보 제 151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명산인 지리산에는 천년고찰 화엄사가 있는데요
화엄사는 1500여년전 백제시대때 만들어졌지만 임진왜란때 승병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타버렸죠
그러다 인조와 숙종때 다시 지어졌는데 이때 현존하는 최대의 목조건물인 각황전이 건립되었습니다
그런데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지리산과 이 화엄사가 남부군 빨치산들의 본거지가 되어버린것이죠
그러자 유엔 사령부에서는 당시 제18전투경찰 대대장이던 차일혁 총경에게 빨치산들의 은신처 역할을 하고 있던 화엄사를 모조리 태워버리고 빨치산을 소탕하라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차일혁 총경은 역사에 남을 명언을 남기며 이 명령을 거부했죠
그는 "절을 불태우는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을 다시 짓는데는 천년이 걸려도 부족하다" 라고 말한 뒤 각황전의 문짝 하나만 떼어내서 불태우는것으로 상부의 명령을 대신했습니다
그렇게 화엄사는 전쟁의 화마를 피해갈수 있었죠
차일혁 총경은 빨치산 남부군 토벌작전에서 70명으로 2000여명의 적을 무찌르는 등의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이때 상부의 명령을 거부한 대가로 훈장은 커녕 한직을 전전하며 살다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의 중요한 문화유산을 지켜낸 일은 또 있는데요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퇴로가 막힌 북한군은 경상남도 합천에 팔만대장경이 보관 되어있던 해인사로 몰려갔죠
이에 즉각 해인사에 폭격을 가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그러자 당시 폭격기 편대장이던 김영환 대령은 "북한군 소탕보다 사찰이 더 중요하다" 라고 하면서 사령부의 명령을 거부했죠
이는 즉각 사살 당해도 누구에게 하소연 할수도 없는 전시 상황에서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 한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도 절대로 해인사를 폭격하지 말라고 했으며 그렇게 김영환 대령은 목숨을 걸고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지킬수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한국전쟁이 발발했을때 주일공사였던 김용주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 하고나서 아직 많은수의 북한군이 있던 서울을 대대적으로 폭격한다는 소문을 듣고 유엔 사령부를 찾아가 지도를 펼친 뒤 덕수궁과 창덕궁, 숭례문을 표시하면서 4대문 안에 있던 문화유산을 보호해야 한다고 서울 폭격 계획을 철회해 달라며 간청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협의 끝에 최소한만 폭격하기로 합의를 본 뒤 훼손되어서는 안되는 곳을 지도에 선으로 죽죽 긋기도 하고 동그라미를 치기도 하면서 몇번이나 강조한 끝에 서울에 있던 수많은 문화재를 보호할수 있었죠
또한 당시 서울 수복작전에 참가한 '제임스 해밀턴 딜'은 북한군이 주둔해 있던 덕수궁에 포격을 가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한참을 기다린뒤 북한군이 덕수궁을 나와 을지로를 지나갈때 공격하면서 덕수궁을 지켰습니다
비록 전쟁 중이지만 한 나라의 왕궁을 함부로 훼손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였죠
하지만 1951년에 국군은 중공군에 밀려 또다시 후퇴를 하고 마는데요
당시 후퇴하던 국군 제 1군단에게 골치아픈 명령이 하달됩니다
그것은 바로 산속에 있는 민가나 절은 적의 은폐물이나 보급 기지 등으로 활용될수도 있으니 모든 사찰과 민가 등을 불태워 버리라 한것이죠
그러자 오대산에 입구에 있는 월정사의 스님들은 북한군이 절을 주둔지로 사용할수 없도록 절 건물 안에 모든 물품들을 꺼낸뒤 모든 문짝을 뜯어냈지만 결국 월정사는 국보 제48호인 '팔각 구층 석탑' 만 남기고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나서 국군은 오대산 중턱에 있던 상원사로 향했죠
상원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범종이자 국보 제 36호인 상원사 동종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상원사에는 다른사람들은 모두 대피한 뒤였고 한암스님만 남아있었는데요
상원사로 들이닥친 국군이 법당에 불을 지르려고 하자 한암스님은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한뒤 방에 들어가 옷을 정갈히 하고나서 법당안에 있는 불상앞에 앉았죠
그리고는 군인들에게 이제 불을 질러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본 한 장교가 한암스님에게 이러면 어떡하냐며 밖으로 나오라고 했지만 전혀 움직임이 없자 그를 끌어내려 했는데요.
그러자 한암스님은 그들에게 단호하게 말했죠
"당신이 장군의 부하라면 난 부처님의 제자요. 중이란 원래 죽으면 화장을 하는 법.
나는 여기서 힘 안 들이고 저절로 화장을 할 터이니 당신들은 명령대로 어서 불을 지르시오” 라고 하는것이었습니다
한암스님의 굳건한 모습에 놀란 군인들은결국 법당의 문짝만 뜯어내 불을 태운뒤 철수했죠
그렇게 한암스님 덕분에 상원사를 지켜낼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전쟁은 사람의 목숨 뿐만아니라 과거 역사로부터 지금까지 살아숨쉬는 삶의 흔적인 여러 유적과 문화유산까지 파괴 시키기도 하죠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 탈레반군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에 반한다는 이유로 불교 유적을 무차별적으로 파괴를 일삼기도 했었습니다
간다라 미술의 걸작품이자 크기가 53m나 되는 세계 최고의 인류 문화유산인 '바미안 마애석불 입상' 까지도 폭파시켜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죠
외세에 침입을 많이 받았던 우리도 소실된 문화재가 수없이 많은데요
고려 현종때 만들기 시작해 77년이라는 긴 세월 끝에 완성된 초조대장경은 1232년 몽골군의 침입으로 소실되었고 1866년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군에 의해 외규장각에 보관 되어있던 5천여점의 문서와 서적들 중 의궤 297권을 제외한 나머지것들은 모두 불태워지기도 했습니다
6·25 한국전쟁 때는 전 국토가 초토화되었으며 과거로 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수많은 사찰들이 잿더미가 되기도 했죠
하지만 이런 문화유산을 지키려고 했던 많은 사람들 덕분에 지금 여러가지 것들을 보고 느낄수 있는것 아닌가 싶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파괴되는 것이라는 점도 전쟁이 벌어져선 안되는 이유 중 하나로 칠수도 있겠네요
전쟁의 아비규환 속에서 목숨을 걸고 문화유산을 지켰던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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