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 뿐만 아니라 온갖 범죄수사 및 치안활동을 했었던 조선시대 여형사 다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003년 티비에서 방영된 드라마 다모가 큰 인기를 끌면서 조선 여형사 다모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죠
다만 조선시대에 관한 기록 중 가장 믿을만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인데 유교 사회였던 조선의 사대부들이 기록한 실록에는 여종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갖고 있는 데다가 사회적으로도 천시당하는 직종이기도 했던 다모에 대한 내용이 그리 많이 기록돼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자료가 많이 부족한 형편이라고 하는데요
오늘은 성종실록과 선조실록 등 각종 기록에 짧게나마 기록돼있는 다모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남녀유별 사상에 의해 내외법이라는 관습법이 있었기 때문에 여성이 관련된 범죄가 발생했을 때 대부분이 남성으로 이루어진 수사기관에 의한 수색과 체포에는 한계가 있었죠
때문에 이런 경우에 동원된 것이 바로 의녀와 다모인데요
조선전기의 의녀는 서울지역의 경우 국가의료기관인 혜민서에서 공노비 중 13세 이하의 여자종을 뽑았고 지방의 경우는 충청도와 경상도, 전라도의 여자종 중에서 각각 2명씩을 올려보내 필요한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교육만 이수 받는다고 해서 모두 의녀가 되는 것은 아니었죠
매달 치르는 시험에서 합격을 해야만 의녀가 될 수 있었고 의녀교육도중 3번 낙제를 한 낙제생은 혜민국의 다모가 되었습니다
다모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조선왕조실록 중 세조 때부터이며 3번 낙제한 의녀 교육생이 다모가 되는 제도는 성종 대에 와서 완전히 정착된 것이라고 하죠
조선 전기의 의녀는 왕과 왕비를 치료하거나 의원들을 보조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지만 그 이외에도 수색 임무나 해결되지 않은 사건을 수사하는데도 참여했고 남성들이 손대기 힘든 부녀자의 사체를 확인하거나 혼인을 할 때 지나치게 호화로운 혼수품이 있는지 단속하고 사대부 부녀자들을 호송하는 업무에도 차출되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제12대 왕인 연산군 때부터 의녀들은 기존의 업무보다는 연회에 불려 다니는 일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고 조선후기가 되면서부터는 의녀들을 가리켜 의녀기생이라고 부르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의녀가 기생이나 다름없게 바뀌면서 궁궐이나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기생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자 국가에서도 경찰력이 필요한 업무에 의녀를 투입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졌죠
이때 사람들 사이에서 비록 의녀보다 자질은 떨어지지만 의녀를 대신해서 범죄수사 등에 다모를 투입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오면서 조선 중기 이후부터 의녀를 대신해 여형사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 것이 바로 다모입니다
조선 전기의 의녀가 임시적으로 사건이 발생했을 때만 형사 업무를 보는 형태였다면 조선 중후기의 다모는 오로지 수사업무에만 종사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죠
육전조례에 의하면 다모는 사헌부에 1명, 병조에 7명 훈련도감에 4명, 그리고 정조 때 장용영에 2명이 배치된 것으로 보입니다
병조에 배치된 다모는 주로 치안활동에 동원되었고 조선시대 수도의 경비를 맡아보던 훈련도감에 배치된 다모는 국왕이나 왕비 그리고 공주나 옹주 등의 경호에 차출되었다고 하죠
그리고 오늘날의 수도방위사령부 역할을 하던 장용영에 배치된 다모들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현장에서 부상자들을 돌보기 위해 배치된 것으로 짐작됩니다
다모의 주된 업무는 여성과 관련된 범죄수사나 정보수집 또는 여성 피의자를 수색하거나 여성의 시체를 검사하는 일 그리고 세자빈 후보로 간택된 규수의 평소 행실이 어땠는지 조사하는 일까지 도맡아 했으며 조선말기에는 나라의 허락을 받지 않고 술을 만드는 밀주를 단속하는 일에도 동원되었다고 하네요
이처럼 조선중기부터 다모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포도청에는 다모들이 거처하는 '다모간'이라는 장소가 만들어지기도 했죠
다모는 염탐이나 수색 그리고 범인을 체포하는 임무 등을 맡기 위해 일반 여성과는 다른 배짱이나 체격조건이 요구되었습니다
민속연구가 김화진의 말에 따르면 포도청에서 다모를 뽑을 때는 우선 키가 5척(약 155cm)을 넘어야 하고 쌀 5말(40kg)쯤은 가볍게 들 수 있어야 했으며 막걸리를 마실 때도 세 사발 정도는 숨도 안 쉬고 단번에 마셔야 할 정도가 되어야 다모가 될 자격이 있는 것으로 봤다고 하죠
뜬금없이 왜 주량에 관한 내용이 있나 의아해하시겠지만 옛날에는 술을 많이 마시는 것도 건장함의 기준으로 봤다고 합니다
또 평소에 남편이나 시아버지의 이름도 막 부를 정도로 모든 면에서 남성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을 골라서 다모로 채용했다고 하죠
예전에는 내외의 법도가 엄해서 남자들은 남의 집 안마당인 내정까지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여성들로 이루어진 다모가 대신 내정까지 들어가서 조사를 하거나 그 집의 종이나 식모들을 설득해서 몰래 정탐을 하게 시키는 일도 있었습니다
보통은 돈으로 그들을 매수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종이나 식모의 약점을 잡고 어거지로 정탐을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네요
다모는 대개 역적모의를 하는 집에 많이 출동을 했죠
이때 다모는 치마속에 두 자쯤 되는 쇠도리깨와 오랏줄을 감추고 조사를 하다가 틀림없이 죄를 지은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되면 치마속에 숨기고 있던 쇠도리깨로 벽의 위쪽에 자그맣게 만든 창문인 들창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죄인을 묶어서 왔다고 하니 죄인들에게는 다모가 마치 저승사자처럼 느껴졌을거 같습니다
송사 김화진 선생의 말에 의하면 예전 포도청이나 의금부의 직위에 대한 제도를 살펴봤을 때 다모가 정식으로 등록된 것은 아니었지만 역사상 중요한 사건이 터졌을 때는 다모가 곧잘 등장했다고 하죠
선조 22년에 정여립이 난을 일으켰을 때 억울하게 잡혀와서 죽은 최영경이란 인물을 문초하는 기록에도 다모가 그를 잡아왔다는 대목이 있으며 인조반정 때 공을 세워 후에 영의정 자리까지 지낸 심기원이 역모를 꾀한 혐의로 체포되었을 때 그리고 인조반정 때의 일등공신인 김자점이 효종 시절 역모를 꾀했을 때도 두 사람의 집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먼저 다모가 정탐을 하고 난 다음에 나장과 포교를 인도해서 범인을 잡아들였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부사관과 같은 신분인 조선의 포교들은 범인을 찾기 위해 사람들을 검문할 때 자신이 관에 소속되었다는 증표로 통부라는 신분증을 꼭 가지고 다녀야 했죠
마치 현대의 경찰들이 범인을 체포하기 전 경찰관 신분증을 보여주듯이 포교가 사람을 잡아가려고 할 때 상대방이 거부하거나 니가 뭔데 이런 짓을 하냐고 항의하면 이 통부를 보여줬다고 하는데요
이 통부라는 것은 길이가 두 치쯤 되고 두께가 한 푼쯤 되는 단단한 나무에 포도대장의 수결을 새긴 것을 반으로 갈라서 반쪽은 포도대장이 그리고 반쪽은 포교가 가지고 다녔다고 합니다
반면에 포교의 지휘를 받는 포졸이나 다모는 가장 천대받던 7가지의 국역 종사자라는 뜻을 가진 '칠반천역'이었기 때문에 포교들과 같은 신분임을 증명하는 통부를 주지는 않고 대신 '부신'이라는 패를 차고 다니게 했다고 하죠
특히 다모는 쇠도리깨의 때리는 부분에 은실을 박은 것을 소지하고 다녔는데 이것이 바로 다모의 신분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 도리깨 덕분에 다모는 고관의 집에도 들창문을 부수고 들어갈 수 있었고 만약 도리깨로 살인을 한다 해도 목숨을 잃지는 않고 유배를 가는 정도의 처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다만 이런 특혜에 비해 받는 급료는 무척이나 적었는데 포도청에 소속된 다모는 포졸과 동일한 하급관리이기 때문에 최저생활을 겨우 면할 수 있을 정도의 박봉만을 받고 일했다고 하네요
일반백성들의 경우에야 포교나 다모가 자신을 체포해도 당신이 뭔데 나를 체포하냐고 대드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고 오히려 포교나 다모가 쇠도리깨를 들고 들이닥치면 순순히 체포당하거나 도망가기에 급급했다고 하죠
이들이 들이닥쳤을 때 도망가기는커녕 오히려 호통을 치는 사람들은 바로 양반이었습니다
그래서 양반을 잡으러 갈 때 포교들은 지금의 체포영장과 같은 자주통부라는 것을 따로 준비해 가야 했으며 다모의 경우에는 은실이 박힌 도리깨를 증표로 썼다고 하죠
이처럼 다모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형사로서 그 기능을 발휘했으며 조선후기에 접어들어서는 지방관아에까지 다모가 배치된 것으로 짐작됩니다
하지만 고종 31년에 갑오개혁과 함께 한성부에 경무청이 설치되면서 포도청과 함께 다모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다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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