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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착호갑사. 조선 최강의 호랑이 전문 특수부대 (feat.조선의 강철부대)

by 사탐과탐 2022.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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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병력을 움직이려면 항상 보고후에 움직였어야 하지만 워낙 사안이 급박한 경우에는 먼저 병력을 움직이고 후에 보고하기도 했죠
호랑이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발생한 호환이 발생하면 이 최강의 특수부대 착호갑사가 먼저 출동해 호랑이를 잡았다고 합니다
조선의 강철부대 착호갑사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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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그 어떤 지역에서도 최상위 포식자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 최강의 맹수중 하나죠

현재 우리나라의 산속에서는 더이상 호랑이를 찾아볼수 없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호랑이에 대한 기록을 많이 볼수있습니다

 

특히 17~19세기에는 불을 질러 풀과 나무를 태워버리고 농사를 짓는 화전농법이 많이 쓰이면서 주변환경이 파괴되자 먹을것이 없어진 호랑이들이 사람이나 가축을 덮치게 되었죠

그렇게 조선 팔도의 백성들이 호랑이로 인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반대로 그런 호랑이들을 사냥하고 다니던 조선의 몬스터헌터들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착호갑사입니다

조선왕조실록 1402년 5월의 기록을 보면 경상도에서만 석 달 동안 수백명이 호랑이에게 물려죽었다는 내용이 있으며 숙종실록 1701년에도 강원도에서만 호랑이에게 300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특히 해안가에 있는 지역에는 나라에서 관리하는 말들을 기르는 목장이 있었는데 이곳에도 툭하면 맹수가 침입하는 사건이 자주 일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해당 지역의 수령이 군사들을 끌고 가려면 상부의 결재를 먼저 받아야만 했기 때문에 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죠

 

한번은 목장에 호랑이가 나타나자 고을의 수령이 상부의 결재를 받지 않고 군사들을 풀어 호랑이를 제거했는데 해당 지역의 감사가 그 죄를 물어 왕에게 보고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에 벌을 받을것을 두려워한 수령들이 호랑이로 인한 피해에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태종 이방원이 만일 호랑이를 잡아야하는 위급한 일이 생기면 그 고을 수령이 먼저 군사를 동원해 호랑이 사냥을 하고 일이 처리된후에 감사에게 신속하게 보고하게 하라는 명을 내렸죠

 

이후 감사가 병조에 사실을 알리면 병조가 사실을 조사한 후에 국왕에게 보고하는 절차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철저한 보고체계를 만든 이유는 혹시라도 보고 없이 군사를 동원할수 있게하면 반란을 일으키는데 병사들이 이용될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이후부터는 호랑이가 나타나면 인근 지역의 수령들이 지방군을 끌고 호랑이 사냥을 할수있었죠

세종 16년 12월에도 전라도 백야곶 목장에 호랑이와 표범이 나타나자 순천부사가 병사들을 거느리고 잡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무서운 맹수인 호랑이를 상대하는 일이다보니 먼저 창질을 하거나 화살을 쏴서 호랑이를 잡은 병사에게는 잡은 마리수를 계산해서 벼슬을 높여줬다고 하네요

 

한반도는 비록 면적은 좁지만 국토의 70% 가 산과 숲인 데다 강수량도 풍부하기 때문에 맹수의 숫자가 많았던 편이라고 하죠

신석기 시대~청동기 시대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반구대 암각화에 호랑이 그림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봐서 호랑이는 이미 그 시절부터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조선왕조 실록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내용만 살펴봐도 25대 국왕인 철종 때까지 조정으로 보고된 호환 사망자만 무려 3,989명이며 늑대에게 죽은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하니 기록되지 않은 피해는 훨씬 더 컸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때문에 세종은 즉위 한지 3년째 되는해에 호랑이와 식인 맹수들을 처리할 특수부대를 모을 것을 명했다고 하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날렵하고 강력한 맹수를 상대하는것은 전쟁 경험이 많은 군인들도 꺼려하는 일이었고 자칫 잘못하면 산 채로 온몸을 뜯겨 먹힐수도 있었기 때문에 지원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고 하죠

이에 조정에서는 비록 신분이 비천한 자라 하더라도 특수부대의 임기를 마치면 종 4품에 해당하는 관직을 내리겠다고 발표하며 신분제가 엄격한 당시 조선에서는 드물게도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팔다리가 성하게 남은채로 살아남아야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천민들조차 지원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최하층 천민들과 식인 맹수에게 가족과 친구를 잃고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들이 지원을 하게 되는데요

어렵게 구한 지원자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바로 뽑아주지는 않았죠

특수부대를 선발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혹독했다고 합니다

 

대형 맹수들은 일반 화살로 맞추기도 어렵고 맞추는데 성공한다해도 별 타격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무거운 강노나 대형목궁을 사용해야만 했죠

지원자들은 이 거대한 무기를 들고 다니기위해 양손에 50근(30kg)에 해당하는 물건을 들고 백걸음을 한 번도 쉬지않고 갈수있는 체력과 근력이 있어야 했으며 150보 밖에 있는 표적을 정확히 맞추는 사격술 또한 갖춰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기가 없는 위급상황에서의 대처능력을 보기위해 맨손 격투로 5명과 싸워 이겨낼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는데요

그리고 도망가는 맹수를 쫓아가거나 몰이를 하기 위해 말을 타고 싸우는 마상격투술 능력까지 필요로 했죠

 

그 외에 화살을 맞은채로도 달려드는 호랑이를 상대하기 위해 창과 검을 사용한 전투에 능숙해야 했으며 창을 던지는 투창능력까지 갖추고 있어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토록 까다로운 선발 시험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에게는 무시무시한 마지막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죠

바로 고대로마의 검투사들처럼 실제로 호랑이와 싸워서 호랑이를 죽인 사람만이 최종 합격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인데요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호랑이에게 물어 뜯기면서 큰 부상을 당했고 심지어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까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말로만 들어도 시험을 치를 마음조차 들지 않는 무시무시한 과정이지만 기어이 이런 혹독한 선발과정을 통과하는데 성공한 인간병기들이 있었죠

총 40명의 합격자가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최초의 착호갑사라고 합니다

 

갑사란 조선 초기의 전문 직업군인이자 뛰어난 무인 집단으로 성종때 경국대전이 반포될 무렵에는 그 수가 무려 1만 4,800명이나 됐는데요

갑사에는 왕의 근위대나 기마 부대 북방 변경 수비대등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호랑이를 전문으로 잡는 갑사들을 착호갑사라 불렀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착호갑사들은 사람을 해치는 식인 맹수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리면 전국 팔도 어디가 됐든 즉시 달려갔다고 하죠

이들은 오직 호랑이만을 잡기 위해 만든 특수부대인만큼 왕명이 없어도 움직일 수 있는 특권이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인조반정때도 이를 이용해 반정군이 광해군을 속일수 있었다고 하네요

 

이들은 효율적으로 호랑이를 사냥하기 위해 각자 역할을 나눠서 맹수의 흔적을 추적하고 덫을 설치하는 레인저 역할을 하는 조와 무겁고 거대한 철궁을 들고 원거리에서 화살을 날리는 저격조 그리고 맹수를 몰아넣기 위해 위협사격을 하는 화력담당조 마지막으로 창과 칼을 들고 호랑이와 근접전을 펼치는 조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역할을 나누기는 했지만 위급상황에서는 다른조의 빈자리를 채울수있을만큼 모든 부대원이 다방면으로 뛰어난 전투기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네요

무사히 사냥을 마치면 공격한 순서와 잡은 호랑이의 크기에 따라 포상을 받았는데 호랑이의 크기는 대 중 소 세 등급으로 나누었다고 하죠

 

그리고 호랑이는 포악하고 덩치가 커서 단번에 죽이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런 점을 고려해서 세 번째로 명중시킨 사람까지 포상을 줬다고 합니다

물론 제일 먼저 명중시킨 사람이 가장 큰 상을 받은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그중에서도 호랑이에게 치명상을 입힌 착호갑사는 호랑이 가죽을 포상으로 받았다고 하네요

 

초대 착호갑사 40명은 워낙 출신이 비천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멸시를 당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난후에는 400명 가까이 늘어난 착호갑사들이 식인맹수를 무찌르고 귀환하면 백성들이 줄지어 서서 그들을 향해 환호를 보냈으며 착호갑사중 일부는 궁궐 호위에 선발되기도 했죠

 

착호갑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후대에는 인조반정에 동원되는 등 정치적으로 그들이 이용되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지만 오랜시간동안 호랑이에게 목숨을 잃거나 재산피해를 당했던 수많은 백성들에게 착호갑사는 그야말로 영웅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조선후기에 접어들어 총포술이 발달하게 되면서 기존의 화살과 창을 쓰는 착호갑사가 아니더라도 총을 쓰는 포수들이 호랑이 사냥을 할수있게 되자 더이상 착호갑사를 둘 필요가 없어졌죠

 

그렇게 민간 사냥꾼들이 착호갑사를 대신하게 되면서 착호갑사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조선의 몬스터 헌터라 불리는 착호갑사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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