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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검계. 지금 조폭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개막장이었던 조선시대 범죄조직

by 사탐과탐 2022.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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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조폭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상상 그 이상으로 개막장이었던 조선시대 범죄조직인 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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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은 범죄조직이 있습니다

남미의 마약 카르텔이나 러시아의 레드마피아, 중국의 삼합회 등이 있고 우리나라에도 수없이 많은 조직폭력단들이 있었죠

그런데 이런 범죄조직들은 현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먼 옛날에도 존재했었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그중에서도 조선시대에 있었던 범죄조직으로 현대의 조폭이나 마피아 이상으로 막장이었다고 하는 '검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고려 말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정변으로 인해 왕이 교체되는 사건이 많았기 때문에 그 정변의 중심에 있었던 군부는 이후로 꾸준하게 왕실과 조정의 견제를 받아왔죠

이로 인해 조선사회에서는 무를 천대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무보다는 문을 더 높게 쳐주는 풍조가 생겨났으며 무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단순한 유희거리 또는 특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 정도로 취급받았습니다

 

몸과 마음을 단련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권장되던 활쏘기나 민간에서 놀이로 유행했던 씨름과 택견 정도를 제외하면 백성들에게 무술을 연마하는 것 자체가 인기가 없었던 데다 집단으로 모여서 무술을 연마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반역을 꾸미는 것으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에 무술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런 상황 속에서 무 그 자체를 숭상한다고 주장하는 검계라는 집단이 나타났습니다

검계가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숙종 때 처음으로 조정에서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하죠

숙종 10년인 1684년 2월의 실록을 살펴보면 당시 좌의정이었던 민정중이 숙종에게 "백성들 중 몇몇의 무뢰배들이 검계라는 조직을 만들어 사사롭게 무술 훈련을 하거나 패악질을 부리고 있다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외적보다 더 골치 아픈 근심거리가 될 수 있으니 포도청에 일러 이들을 잡아서 귀양보내거나 참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는 청을 했다고 하죠

사실 검계가 무를 숭상한다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폭력을 좋아하는 건달들의 집단에 불과했습니다

 

당시에 그들이 주로 했던 짓들만 살펴봐도 양반을 죽이고 재물을 훔쳐 가거나 부녀자를 겁탈하는 등 현대의 조폭보다 더한 반사회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죠

이들은 가지고 다니기 좋도록 짧게 만들어진 창포검이나 언뜻 보면 대나무 지팡이처럼 생겼지만 그 안에 칼이 들어있는 죽장도 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무기들을 가지고 수시로 칼부림을 했다고 하는데요

 

게다가 정상적인 옷을 입기를 거부하고 특이한 옷차림을 하고 다녔습니다

비단옷 위에 일부러 허름한 옷을 걸치고 다니고 얼굴을 가리는 기다란 삿갓을 눌러쓴 채 눈 부위에만 구멍을 뚫어서 다녔다고 하죠

그리고 일반 백성들이 평소에는 가죽신을 신다가 비가 오는 날에는 나막신을 찾았던 것과 반대로 검계의 조직원들은 날씨가 맑은 날에는 나막신을 신고 비가 오면 가죽신을 신는 등 자신들이 특별하다는 티를 내지 못해 안달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조직폭력배들이 몸에 문신을 하듯이 이들은 몸에 칼자국이 없는 이는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러 자신의 몸에 칼자국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네요

이런 멍청한 짓을 해준 덕분에 훗날 검계의 조직원들을 잡을 때 칼자국이 난 사람들 위주로 조사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하죠

 

검계는 주로 기루에서 먹고 자며 살인이나 강도, 약탈, 겁간 등을 밥 먹듯이 해서 나라에서도 큰 골칫거리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일부 기록에서 검계가 조직원들에게 권하는 행동강령을 보면 다음과 같죠

'양반을 죽이고 재물을 갈취한다 부녀자를 잡아다 강간한다

현대의 조직폭력배들도 대놓고 이런 미친 짓을 시키지는 않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검계 중 일부는 주막이나 기생집에서 일하는 기생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녀들의 뒤를 봐주는 기둥서방 역할을 하거나 도박 또는 고리대금업 등의 돈놀이로 많은 돈을 번 사람들도 있었죠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영조가 아직 세제였던 시절 세제궁의 별감을 지냈던 표철주입니다

표철주는 몇만 금이나 되는 재물을 가진 부자로 평소에 늘 황금색 바지를 입었는데 비가 와서 옷이 젖으면 즉시 새 바지로 갈아입을 만큼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고 하는데요

 

그는 날마다 기생을 끼고 술독에 빠져 지냈으며 몸이 날렵하고 무예가 뛰어나 툭하면 사람들을 때렸다고 하죠

한나라 세제의 호위를 했던 표철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검계는 불한당 패거리이긴 하지만 무예실력은 뛰어났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숙종~영조대까지 훈련대장직을 지내면서 검계의 조직원들을 잡으면 모조리 죽여버리는 것으로 유명한 장붕익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조선왕조실록에서 영조 9년의 기록을 보면 검계의 암살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이 장붕익을 암살하러 그의 집에 몰래 잠입해 들어왔다가 발각되었고 분노한 장붕익이 직접 검을 휘둘러 암살자를 공격했지만 끝내 붙잡지 못했고 암살자는 유유히 벽을 타넘고 도망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한나라의 훈련대장을 상대로 맞서 싸울 만큼 검계가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죠

검계의 장기 중 하나가 바로 담을 타넘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현재 민속촌이나 일부 도시에 남아있는 한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조선 시대의 담장이란 것이 그리 높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의 키 정도는 되는 높이의 벽을 단숨에 타 넘었다는 기록을 봤을 때 이들은 매우 날렵한 몸놀림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럴만도 한 것이 검계들 중 상당수가 의금부의 하급직원인 나장이나 궁궐의 무예별감 같은 하급 무인 출신이 많았다고 하죠

조선 전기의 인물인 유자광 또한 검계는 아니지만 출세하기 전에는 궁궐을 지키는 하급 무사였는데 몸이 날래고 힘이 세서 담장을 훌쩍 넘어 다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게다가 유자광은 서얼로 태어나 집안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자 술과 여자에 빠져 망나니짓을 하고 다녔다는 기록으로 봐서 이름만 검계가 아니었을 뿐 하는 짓은 검계와 다를 바 없었다고 하네요

앞에서 언급했던 포도대장 장붕익은 이렇게 백성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다니는 검계를 무척이나 싫어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래서 틈만 나면 군사들을 풀어 행패를 부리고 다니는 검계를 잡아다가 모조리 죽여버렸기 때문에 당시 검계들이 제일 두려워하던 사람이 바로 장붕익이라고 합니다

후대의 인물인 이규상이 쓴 장붕익의 전기 '장대장전'에 따르면 검계의 나이 많은 깡패 중 하나가 후배들에게 말하기를 우리나라의 대장군 중 이완, 류혁연, 신여철 등 무서운 사람들이 많지만 장붕익은 그들 이상으로 무서운 사람이니 그 앞에서는 알아서들 기라며 훈계를 했다고 하죠

 

검계의 일원들은 모두 몸에 칼자국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끼리도 조직원임을 확인할 때 칼자국이 있냐 없냐를 살폈습니다

그래서 장붕익은 몸에 칼자국이 있는 사람이 보이면 일단 잡아들여서 족치고 봤는데요

수없이 많은 검계의 일원들이 장붕익에 의해 목숨을 잃었으며 죄질이 가벼운 단순 가담자들마저 발뒤꿈치의 힘줄인 아킬레스건을 자르는 무거운 벌을 받았다고 하죠

 

당시 검계의 일원이었던 표철주도 이런 장붕익이 무서워서 아예 한양을 떠났다가 장붕익이 죽은 1735년 이후가 돼서야 늙은 몸을 이끌고 겨우 한양으로 돌아왔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장붕익에게 얼마나 많이 시달렸으면 표철주는 꽤 나이가 든 노년에 이르러서도 주변사람들에게 "혹시 지금 장사또(장붕익)가 죽었는가, 살았는가?"라고 묻기도 했으며 "내가 아직도 안 죽고 있는 건 지하에서 그 인간(장붕익) 얼굴 보기 싫어서다."라는 말까지 했다고 하죠

 

그럴만도 한 것이 표철주는 젊은 시절 살림이 여러 만금이라 황금 투구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의 갑부였지만 그 재산이 불법 행위와 폭력으로 모은 것이기 때문에 그 둔중 대부분을 장붕익의 단속을 받고 몰수당하거나 한양을 떠날 때 도피 자금으로 써버렸다고 하죠

때문에 늙어서는 지금의 부동산 중개인과 비슷한 일을 하면서 겨우 먹고 살았다고 하네요

 

사실 아무리 표철주가 외지로 도망을 갔다 해도 장붕익이 잡으려고 마음만 먹었으면 결국 그를 잡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아마도 영조가 세제 시절 신임옥사로 인해 위태로운 처지였던 자신을 호위해 준 표철주의 공을 생각해서 굳이 그를 잡아들이지는 말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 아닌가 짐작되죠

결국 검계는 영조대에 이르러 남김없이 소탕되면서 더 이상 모습을 보기 힘들다가 조선이 본격적으로 막장화가 되는 순조 시절에 와서야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의외인 사실은 이들 검계의 뒤를 이은 조직이라 짐작되는 비밀결사 조직 검계단은 일본제국의 조선 지배에 맞서 저항활동을 펼쳤던 의로운 단체라는 것이죠

지금까지 검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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