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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면신례. 허참례, 조선시대에 있었던 왕따, 집단 따돌림과 같았던 잔인하고 경악스러운 악습

by 사탐과탐 2022.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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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신입 관리에게 행해지던 면신례와 허참례라고 하는 관습이 있었는데요
관습, 관례라고 하기엔 너무 잔인무도했던 악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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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왕따라든지 학교폭력, 집단 따돌림 문제가 뉴스에 자주 나오고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인데요

이런 악행들은 과거부터 근절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남을 괴롭히던 악습이 계속돼 오고 있죠

 

오늘은 면신례라고 하는 관리들의 집단 따돌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면신례는 군대나 대학에서 군기를 잡는다고 신입들을 괴롭히거나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 신입에게 술을 과도하게 강요하다 사망 사고가 일어나는 것과 비슷했었는데요

 

현재의 괴롭힘 수준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인무도하지만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면신례는 고려시대 때부터 행해져 왔죠

고려 말 권문세족의 자식들이 음서제도를 통해 관직에 올랐고 이들 중에서는 젊다 못해 어린애들도 수두룩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기존에 관리들은 부모빽으로 들어온 사람을 탐탁지 않아 하면서 그들의 기를 꺾고 상관에게 복종시키기 위한 명목으로 이 면신례가 시작되었죠

이런 가혹하고 혹독한 신고식은 점점 악습으로 변질되고 말았는데요

 

조선시대에 새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나 처음 관직에 나간 사람을 '신래(新來)' 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신래들이 신입을 면한다 해서 면신례라고 한 것이죠

 

우선 신참들은 자신의 상관들을 찾아가 인사를 해야 하는데 신참들은 얼굴에 분칠을 하고 누더기 옷을 입은 채 다 같이 선배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자신의 명함을 돌렸습니다

이를 '회자'라고 불렀는데요

 

문제는 이 명함 가격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두껍고 큰 종이에 자신의 이력을 적은 것이 일종의 명함이었죠

그러나 당시 종이 가격은 너무너무 비쌌을 뿐만 아니라 선배들 모두에게 돌리려면 수십 장을 만들어야 했으니 집안의 기둥뿌리가 뽑힐 정도로 많은 돈이 들었던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어쨌든 이때 일부러 만나 주지 않는 선배들이 있기 마련이었는데 이럴 땐 하인들에게 뇌물도 줘야 하고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다

겨우겨우 인사를 드릴 수 있었죠

거기다가 신입이 오면 창고에 가둬 늦은 밤이 돼야 겨우 풀어주기도 하고 미리 준비해온 통나무를 들어보라 시키는 못돼 처먹은 선배들도 있었습니다

 

회자가 끝난 후에는 그 집단에 참여를 허락한다는 뜻인 '허참례(許參禮)'를 했어야 하는데 허참례는 별게 아니라 신참들이 선배들을 모두 모셔다가 거창하게 술상을 차려 대접해야 했던 것인데요

문제는 허참례에 들어가는 비용이었죠

 

선배들에게 기생을 한 명씩 안겨줘야 하고 최고참인 선배에게는 기생 둘을 붙여줘야 했습니다

거기다가 이때 대접해야 하는 술상이 말 그대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렸어야 했던 것이죠

 

허참례와 회자는 최소 10일에서 50일까지 걸렸는데 그 사이에 수시로 선배들에게 잔치를 벌여줬어야 했고 이 때문에 웬만한 부잣집이 아니고서야 집안 전 재산이 거덜 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경우는 신입 동기들이 많을 경우인데요

허참례 비용은 개개인마다 내는게 아니라 신입들끼리 돈을 모아 냈어야 했기 때문에 급제한 동기들이 많으면 그나마 부담이 덜했다고 하죠

 

허참례를 끝내기 전에는 동료 관리로 인정하지 않아서 자리에 합석하지도 못했죠

허참례는 고위관료들도 예외가 없었는데요

관직이 아무리 높더라도 처음 출근하는 부서에 가면 허참례를 하기 전까지는 자신보다 낮은 관리들에게 인사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아랫사람들에게 반말까지 들어야 했는데요

성종 시기 정2품이던 변종인이라는 사람이 새로운 부서로 첫 출근을 했을 때 하급관리들은 그에게 인사는 커녕 존댓말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이름까지 부르며 온갖 모욕을 줬던 것이죠

이유는 바로 허참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변종인은 성종에게 이러한 사실을 보고하자 어처구니없어하던 성종은 그에게 모욕을 준 하급관리들을 모조리 파직 시켜버렸죠

그러자 사간원 관료들의 상소와 항의가 빗발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오랫동안 행해져온 관습과 관행을 행했다는 이유로 파직 시킬 수는 없다는 내용의 상소였죠

 

그러자 성종은 어쩔 수 없이 파직된 하급관리들을 다시 복직시켜 주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허참례가 끝나면 이제 진정한 면신례를 행하는데요

이때는 음식 대접은 물론이고 벌칙도 가중되었죠

선배들이 신입들에게 시키던 벌칙도 어마 무시했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뇌물을 받는건 기본이었고 얼굴에 붓으로 낙서하기나 몸에 진흙 바르기, 옷을 찢거나 매질하기, 흙탕물에서 구르기, 동물 울음소리 내기 등이나 여름에는 땡볕에 서있게 하거나 겨울에 얼음물에 몸 담그기 등은 그나마 할만한 것들이었죠

 

심한 경우도 많았는데요

더러운 것을 만지게 한 뒤 그 손을 씻은 물을 마시게 하거나 온몸을 숯검댕으로 만든 뒤 그 씻은 물 마시기, 얼굴에 똥칠하고 광대놀음 시키기 등은 참기 힘든 잔인한 괴롭힘이었죠

또한 선배가 웃으라 하면 웃고 울라 하면 울고 하며 마치 바보처럼 행동했어야 했기에 신입들의 자존감 마저 바닥을 치게 만들었습니다

 

거기다가 술을 억지로 많이 마시게 해 과도한 음주로 인한 경우나 그리고 선배들이 강요한 괴상한 짓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그대로 시행하다가 심할 경우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죠

심지어 재산을 모두 잃는 사람도 생겼고 면신례를 하다가 병을 얻어 관직에 나아갈 수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면신례를 통과한 신참만이 비로소 선배들에게 조직의 일원으로 인정받았죠

이런 식으로 신참들은 목숨을 걸고 면신례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있는데요

일단 선배들의 요구를 거절했다가는 심하게 매질을 당하거나 똥물을 끼얹져지기도 했습니다

선배들에게 매질을 당해 사망한 신입도 있을 정도였죠

 

그리고 면신례를 치르지 않은 신입들은 선배들이 함께 일하는 것조차 거부했습니다

한마디로 출근을 못하도록 막거나 면신례를 안한 신참 외엔 모두가 출근 거부를 한 것이죠

이에 상관이 출근을 안한 선배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면신례를 안한 신참이 인품에 문제가 있다거나, 사람이 이상하다거나 지체가 낮다거나 하며 그런 자와는 일할 수 없다는 식으로 우겼기 때문에 어떤 관청에서든 발조차 붙일 수 없거나 집단 따돌림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 유명한 율곡 이이도 면신례를 거부하다가 오랫동안 왕따를 당했다고 하죠

또한 면신례의 통과 순서는 승진 순서에도 영향을 주기도 했는데요

면신례를 거부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어도 승진은 커녕 관리 대접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고려 말 충신으로 일컬어지는 정몽주의 증손자 조차도 면신례를 행하다 세상을 떠나기도 했죠

처음 음서제도로 인해 면신례가 생겼다는 말은 말 그대로 명분일 뿐 이제는 신참을 이용해 자신들이 이득을 보는 것이 목적이 되었고 이로 인해 이런 악습이 사라지기는 커녕 더 지독해지고 있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면신례 때문에 아예 관직에 나아가는걸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크고 작은 말썽이 끊임없이 일어났죠

면신례를 치르다가 전 재산을 탕진하는 경우도 있었던 만큼 엄청난 비용이 들었는데, 이 비용은 결국 고스란히 백성들의 부담이 되었습니다

 

지방 수령으로 발령 난 관리들은 면신례를 치르느라 날린 재산이나 진 빚을 백성들을 수탈하며 메꿔나갔던 것이죠

또한 지방의 서리, 별감 등 중인들 사이에서도 유행하면서 지방 아전들의 백성들을 향한 수탈은 수령보다 더 가혹했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면신례는 부정부패의 원흉이 되고 말았죠

 

사태가 이 지경까지 되다 보니 사헌부에서는 면신례를 금지해야 한다며 상소를 올리기도 했고 조정 역시도 면신례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는데요

왕이나 고위 관료들은 면신례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더 이상 하지 말도록 명했습니다

하지만 면신례를 시행하던 대부분의 관청들은 이를 관행이라며 버티기도 하고 몰래몰래 시행하기도 하는 등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죠

 

나중에는 장군들과 장교들뿐만 아니라 일반 병사들까지 이를 따라 해버리며 수많은 폐단들이 계속해서 보고되자 결국 면신례를 법으로 금지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를 어기다 적발될 시,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을 뿐만 아니라 만약 금품이나 뇌물을 받은 자는 최소 장 60대에서 최대 100대를 때리고 3000리 밖으로 유배형에 처하기도 했지만 이 악독한 신고식은 사라지지 않았죠

 

중종실록에는 면신례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오랑캐의 나라에서도 면신례와 같은 미개한 풍습은 없으며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다' 라고 말이죠

날이 가면 갈수록 악독해지고 잔인해지는 왕따나 집단 괴롭힘은 없어져야 할 너무나도 무식한 일인 건 맞다고 생각되네요

 

조선시대에 있었던 악습, 면신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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