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 일어나고나서 조선군도 일본군에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바다에서는 이순신이, 땅에서는 권율, 신립, 곽재우 등이 있었는데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당시 무력으로 따지면 손에 꼽히던 인물이 있었죠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무력 최강자는 누구였을까요?
시대를 불문하고 싸움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것은 항상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중 하나입니다
현대에 와서는 각종 격투기 선수들의 이름이 그 후보로 오르고 있으며 과거에는 주로 전쟁에서 활약한 장수들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었죠
오늘은 우리나라의 역사 그중에서도 임진왜란 시기 활약했던 장수들중 가장 용맹한 장수는 누구였는지 한번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첫번째는 명나라가 인정한 용장 한명련입니다
실록에 따르면 1593년 12월 3일 선조가 좌의정 윤두수에게 여태 싸운 장수들중 가장 높은 공을 세운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윤두수는 그 중에서 한명련이 제일 용맹하게 싸웠다고 대답하죠
그리고 1594년 선조가 이원익에게 한명련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이원익은 "그가 거느린 병사들은 매우 지쳐있는 상태임에도 항상 눈앞에 적을 둔것처럼 엄중한 경계태세를 취할만큼 평소에 병사들을 잘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신이 그를 불러다 재주를 시험해 보았는데 말달리고 칼 쓰는 재주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습니다
게다가 높은 계급을 가진 당상관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늘 병사들과 어려움을 함께 했는데 천한 병사들과 같이 구른다고 비웃는 다른 관리들에게 부끄러운줄 알라며 오히려 그들을 꾸짖기도 했다 하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1597년 9월 7일 권율이 보고한 한명련의 전공을 살펴보면 한명련은 공주 회덕 지방에서 왜적의 선봉과 만나게 되자
과감히 돌격해서 무려 2백명에 가까운 적을 베었는데 적의 수가 워낙 많았던 데다가 날도 어두워져서 왜적의 머리는 6개 정도만 베어왔다고 하죠
며칠후 소초평에서도 수없이 많은 왜구들을 참살했다는 기록이 실록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외에도 임진왜란 당시 실록의 기록을 살펴보면 한명련이라는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적들의 머리를 벤 것이 매우 많았다 참살한 바가 매우 많았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오죽하면 치열하게 파벌싸움을 하던 동인과 서인들도 한명련의 무예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칭찬하는 기록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권율도 한명련의 무예를 높이 샀기 때문에 그를 특수부대의 대장으로 삼아서 써먹으려고 했는데 부하장수였던 김응서가 먼저 한명련을 빼돌려 자기 직속부하로 편입시킨채 내어주지 않자 크게 화를 내며 선조에게 이를 비난하는 장계를 올렸다고 하죠
명나라의 제독 마귀도 조선 최고의 장수로 이순신과 권율, 정기룡 그리고 한명련을 꼽았다고 합니다
왜란이 일어날 당시 한명련의 직급이 졸병이었는데 불과 2년 만에 정3품 별장이 됬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많은 공을 세운 것인지 짐작할수 있죠
두번째 인물은 왜군들이 보는 앞에서 왜적의 배를 갈라 생간을 철근같이 씹어먹으며 그대로 돌격해 적들을 두려움에 벌벌 떨게 만들었다는 정기룡 장군입니다
정기룡 장군은 7일 동안 25개의 왜군 부대 9천에 가까운 군사를 고작 7백의 병사로 휩쓸고 다녔다고 하죠
처음으로 왜군과 만난 거창 전투에서 수십명의 기병을 이끌고 구로다 나가마사의 선봉 500명과 싸우게 되는데 많은 왜적들을 보고 병사들이 두려워하는 가운데 정기룡 장군이 혼자서 말을 몰아 돌진했고 적들의 한가운데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수십 명의 왜적을 쓰러트려버렸다고 합니다
왜군들은 정기룡 장군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놀라며 달아났고 용기를 얻은 부하들이 합류하며 결국 전투는 조선군의 승리로 끝났죠
이어진 금산 전투에서는 돌격명령을 받은 정기룡 장군이 적군 한가운데로 뛰어들어가 50여 명의 왜적들을 쓰러뜨리는 동안 본진에 있던 정기룡의 상관 조경이 매복해 있던 왜적들에게 기습당해서 사로잡히는 일이 발생했는데요
이 사실을 알게 된 정기룡 장군이 혼자서 말을 달려 적진에 침입해 조경을 잡고 있는 적을 베어버리고 조경을 겨드랑이에 낀 채 가로막는 왜군들을 모두 돌파하며 탈출에 성공합니다
단신으로 상관을 구출해오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마치 주군의 아들을 구해온 삼국지의 명장
조자룡을 보는 거 같다며 감탄했다고 하죠
이때부터 정기룡 장군은 조선의 조자룡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세번째 인물은 웅치와 이치 전투의 영웅 황진 장군입니다
황진은 신기에 가까운 활솜씨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행적을 기록한 무민공실기에 따르면 황진이 일본에 통신사로 따라간 시절 일본인들이 조선 통신사의 기를 죽일 목적으로 50보 떨어진 곳에 과녁을 세워놓고 이를 쏘아 맞췄죠
그런데 이를 본 황진이 그 과녁 옆에 훨씬 작은 과녁을 세우고 명중시킨 다음 화살 두발을 연속으로 쏘아서 날아가는 새 두 마리를 떨어뜨리자 이를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감탄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한달 뒤 왜군 6군단 총사령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15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전주로 진격하기 시작합니다
왜군들이 전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웅치와 이치라는 두 고갯길을 넘어야 했는데 고바야카와는 부하인 안코쿠지를 시켜 웅치를 공격하고 자신은 이치로 쳐들어갔죠
안코쿠지의 군대가 웅치의 수비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후 잠시 쉬는 틈을 노린 황진은 새벽에 기습을 시도해서 3천명의 왜군을 섬멸하는 대승을 거두고 도망가는 왜군들까지 추격해서 박살을 낸후 왜군 본대와 싸우기 위해 이치 고개로 향합니다
본격적인 이치 고개의 전투가 시작되자 황진은 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샀던 일본도 2자루를 휘두르며 왜군들을 마구 베고 다녔는데 상대가 멀리 있을때는 강궁을 쏴서 백발백중의 활솜씨로 적을 사살해버렸다고 하죠
일본군이 황진을 포위해 죽이려 했지만 황진의 무용이 워낙 뛰어나 감히 그를 당해내지 못했고 결국 조총으로 일제사격을 가해 황진을 부상입히게 됩니다
하지만 황진의 맹활약에 힘입어 결국 이치 고개의 전투에서는 조선군이 승리하게 되죠
이후 벌어진 수원 전투에서도 갑작스러운 왜군의 기습을 당하자 조선군 장수들이 급히 퇴각했는데 전방에 나가있던 황진만 혼자 남아 왜군에게 포위되고 말았는데요
왜군들이 황진을 사로잡기 위해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오던중 황진은 오히려 앞으로 돌격해 왜군들을 베기 시작했죠
하루도 아닌 무려 이틀 동안 혼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마침내 왜군의 말을 빼앗은후 주변의 왜군들을 마구 베어내는 무쌍을 찍으며 본진으로 귀환했다고 합니다
황진이 활솜씨뿐만 아니라 근접전과 기마술에도 능했음을 알수있는 기록이죠
다음 해에 벌어진 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10만명에 가까운 왜군에게 포위당한 상태에서 눈부신 활솜씨를 보여주며 크게 활약했는데요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황진에게 화살을 갖다주는 사수만 2~3명이 있었는데 그들이 쉴틈이 없을 정도로 황진은 쉴 새 없이 활시위를 당겼다고 하죠
어찌나 빨리 활을 쏘는지 앞서 쏜 화살이 적병의 몸에 맞기도 전에 그다음 화살이 날아갔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투가 벌어진지 8일째에 황진이 시체더미 속에 숨어있던 왜군의 저격에 당해 전사하면서 수비병들의 사기가 크게 꺾이며 결국 진주성이 함락당하게 되죠
황진 장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순신 장군도 "황진이 죽었으니 나랏일이 어긋나게 되었구나"라며 탄식했다고 합니다
선조수정실록에도 "왜란이 일어난 이후로 모든 장수 가운데 병법에 능하고 병사들 앞에서 솔선수범하며 옛날 중국 명장의 풍도가 있는 자로는 모두가 황진을 으뜸으로 꼽았는데 재주를 다 발휘하지 못하고 죽었으므로 조야에서 애석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라고 되어있으니 황진 장군의 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죠
앞서 소개해 드린 세명의 장군들 모두 기록만 봐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무쌍을 보여준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과연 이중에서 어떤 장수의 무력이 가장 뛰어났던 것으로 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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