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된 후 정치를 잘하던 목종이 갑자기 동성애에 빠지게 되는데요.
자신의 애인에게 나랏일을 다스리게 하는 등 고려 사회에 위기를 불러일으키다 최후에는 신하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은 목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려의 7대 왕인 목종은 왕으로 즉위한 후 몇 년 동안 비교적 나라를 잘 다스렸지만 어느 날부터 갑자기 정치에 흥미를 잃은 채 동성애에 빠졌고 자신의 애인에게 나랏일을 다스리게 하는 등 고려 사회에 위기를 불러일으키다 최후에는 신하의 손에 폐위당하게 되죠.
13년의 재위 기간 중 초반에는 나름대로 정치를 잘해나갔던 목종이 어째서 갑자기 엇나가기 시작한 것일까요?
목종의 이름은 왕송으로 980년에 고려 5대 왕인 경종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2살이 되던 해에 갑자기 아버지인 경종이 사망하게 되죠.
원래라면 왕송이 왕위를 계승해야 했지만 그의 나이가 너무 어렸던 관계로 그의 당숙인 성종이 고려의 6대 왕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성종은 왕송이 어머니인 헌애왕후와 함께 궁안에서 살도록 배려해 주었고 왕송이 10살이 되던 해에는 한때 자신의 군호였던 '개령군'을 물려주며 그가 자신의 뒤를 이을 것이라는 사실을 선언했죠.
그리고 자신의 누나이자 경종의 네 번째 비였던 헌정왕후가 사망했을 때는 왕송에게 제사를 맡기며 그가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마침내 5년 뒤 성종이 중병에 걸리자 왕위를 이어받은 왕송은 17살의 나이로 고려의 7대 왕 자리에 오르게 되죠.
그런데 아들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태후 자리에 오른 목종의 어머니 헌애왕후가 스스로 천추궁에 사는 자신을 천추태후라 부르게 하면서 어린 아들을 대신해 섭정을 하겠다고 나섰는데요.
바로 이 천추태후가 훗날 목종의 큰 걸림돌이 됩니다.
목종은 재위 초반에는 여러 방면에서 의욕적으로 나랏일을 돌봤다고 하죠.
하지만 기록에는 그의 어머니 천추태후가 섭정을 맡았다고 되어있기 때문에 목종이 이룬 업적들의 전부 또는 대부분이 사실 그녀의 업적이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훗날 벌어진 강조의 정변 당시 기록을 보면 천추태후는 종교와 관련된 정책을 제외하면 그냥 아들을 조금 도와준 수준일 뿐 실권은 목종이 다 쥐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죠.
15세가 되면 관례식을 하며 성인으로 대우받았던 당시 사회상으로 봤을 때 17살에 그가 왕위에 오른 후 이루어진 일들은 대부분 목종의 업적이 맞다고 볼 수 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다만 천추태후도 친인척들을 동원해 목종의 즉위를 도왔고 이후에도 의욕적으로 종교 정책에 나서는 등 아들에게 꽤나 도움이 됐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하네요.
목종이 선대왕인 성종으로부터 후계자로 인정받은 장소가 바로 서경이었기 때문에 그는 왕이 된 이후 서경에 많은 우대를 해줬다고 하죠.
서경의 각종 세금을 감면시켜주거나 죄인들을 사면해 주는 일이 여러 번 있었으며 서경의 관리들과 군인들도 자주 진급시키거나 포상을 해줬다고 합니다.
또 오랫동안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50세 이상의 남자들에게 모두 벼슬을 내리는 등 재위 기간 내내 서경을 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죠.
목종은 당시의 토지제도였던 전시과를 개정하고 여러 주요 지역에 성을 쌓거나 보수했으며 많은 공사에 동원돼 힘들어하는 병사들은 잡일을 면제해 주는 등 국방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거란에도 수차례 사신을 보내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송나라에도 주인소라는 관리를 보내.
"우리나라는 송의 풍속을 사모하는데 거란에게 위협당해 방해를 받고 있다"라고 하는 등 송나라와 요나라 양국 사이에서 무난한 외교정책을 펼쳤다고 하죠.
흉년이 들었을 때는 백성들의 세금을 줄여주기도 하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창고의 곡식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백성들을 괴롭히는 관리를 유배 보내기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나름대로 정치를 잘해나가던 목종이었지만 섭정을 맡은 그의 어머니 천추태후가 권력에 대한 욕심을 놓지 않으며 불행이 시작되었는데요.
원래 섭정을 맡은 사람은 왕이 성인이 되면 섭정을 그만두고 물러나는 것이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목종이 즉위한 이후 천추태후는 성종시절 자신과 불륜을 저질렀다가 성종에게 들켜
궁에서 추방당한 후 유배를 갔던 김치양이라는 인물을 다시 개경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다시 관계를 맺게 되면서 김치양에게 인사권을 포함한 대부분의 실권을 아낌없이 내줬다고 하죠.
처음에 목종은 자신의 권력까지 침범하는 김치양을 경계하며 여러 차례 그를 내치려는 시도를 했지만 어머니인 천추태후의 반대로 목종의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보이는 권력욕에 염증을 느낀 목종은 결국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정치에 점점 관심을 끊었는데 상심에 빠져있던 그가 새롭게 눈을 뜬것이 바로 동성애였다고 하죠.
그가 사랑에 빠진 대상은 유행간이라는 사람이었는데요.
외모가 무척 아름다웠던 그는 목종의 많은 사랑을 받게 되고 합문사인이라는 벼슬자리까지 받으며 벼락출세를 하게 됩니다.
게다가 유행간은 유충정이라는 또 한 명의 미남을 목종에게 소개해 줬는데 목종은 그와도 거리낌 없이 동성애 행각을 벌였다고 하죠.
이때부터 목종은 일을 처리할 때마다 유행간에게 먼저 의견을 물었다고 하는데요.
고려사 열전의 유행간 편을 보면 '목종은 용모가 아름다운 사내였던 유행간을 매우 아껴서
용양의 관계까지 맺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 용양이란 남색(동성연애)을 했다는 의미라고 하죠.
이후 유행간은 목종의 측근이 되어 별다른 공이나 재주가 없으면서도 높은 벼슬에 올라 목종의 곁에서 정사를 좌지우지했는데 성품이 오만해서 신하들을 깔봤으며 고개와 눈짓으로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리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고려는 천추태후의 애인인 김치양과 목종의 애인인 유행간의 농간으로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죠.
목종과 동성애를 즐긴 유행관과 유충정은 모두 호족 출신이었는데 유행간은 고려의 명장 유금필의 일족이며 유충정은 목종의 증조모인 충주 유씨의 일족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부 역사가들 중에서는 목종이 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 단순히 연애의 목적만이 아니라 천추태후와 그녀를 지지하는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의견도 있다고 하네요.
그러던 와중에 천추태후가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게 되자 그 둘은 후계자가 없던 목종의 다음 왕 자리에 자신들의 아들을 올리려는 음모를 꾸미게 되죠.
당시 목종이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던 인물은 천추태후의 동생 헌정왕후의 아들인 대량원군이었는데 이 대량원군이 바로 훗날 고려역사상 최고의 성군이라 불리는 현종입니다.
하지만 당대의 권력자인 김치양과 천추태후가 다음 왕위에 욕심을 드러내면서 대량원군은 바람 앞에 촛불이나 다름없이 위태로운 신세가 되었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목종이 병에 걸리자 이를 기회라 여긴 김치양은 대량원군에게 여러 차례 자객을 보내며 그를 죽이려 했지만 다행히 그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목숨에 위협을 느낀 대량원군은 목종에게 자신을 도와달라는 편지를 보냈지만 목종의 애인인 유행간이 도중에 편지를 가로채버리면서 그렇게 대량원군의 편지는 목종에게 전해지지 못하는듯했죠.
그런데 목종의 또 다른 애인이었던 유충정은 평소 목종이 자신보다 유행간을 더 신임하는 모습에 큰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는데요.
때문에 목종의 환심을 사기 위해 유행간이 가지고 있던 대량원군의 편지를 몰래 빼돌려내 목종에게 전하게 되고 마침내 목종도 모든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목종은 곧바로 절에서 지내고 있던 대량원군을 궁으로 불러들여 그를 보호하는 한편 서경의 도순검사 강조에게 대량원군을 보호할 것을 명하며 개경으로 그를 불러들이게 되죠.
그런데 강조가 왕명을 받고 개경으로 향하던 도중 당시 고려 조정에 깊은 원한을 품고 있던 위종정과 최창이라는 인물이 강조를 찾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강조에게 목종은 이미 죽었고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정권을 장악했다는 거짓말을 하게 되죠.
이들의 말을 믿은 강조는 곧바로 군사들을 끌고 개경으로 진격합니다.
평주 지방에 이르렀을 때는 강조도 목종이 죽지 않았다는걸 알게 됐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라며 그대로 정변을 일으켰는데요.
이후 강조는 김치양과 유행간 등을 모두 죽여버리고 목종마저 폐위시켜버린 후 대량원군을 왕으로 추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폐위된 목종은 충주로 내려가던 길에 강조가 보낸 자객의 칼을 맞고 세상을 떠나게 되죠.
지금까지 동성애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고려의 왕 목종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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