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역사 탐구

조선시대 미라. 수백 년 전에 묻혔던 무덤에서 보존 상태가 좋은 미라가 발견되는 이유

by 사탐과탐 2022. 3. 6.
반응형
수백 년 전에 묻혔던 조선시대 때의 무덤에서 유독 미라가 많이 발견되는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보존 상태까지 너무 좋아서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하죠.
조선시대 미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죽은 사람의 몸이 특별한 약품 처리를 받거나 극도로 건조하고 추운 공간 또는 밀폐된 공간에 보관되면서 썩지 않고 보존된 시신을 미라라고 부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라라고 하면 이집트를 떠올리시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미라가 발견된 기록이 생각보다 많다고 하죠.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조선시대의 미라들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죽은 사람이 언젠가는 다시 부활한다고 믿었죠.

때문에 다시 부활할 그때를 대비해서 시신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시신의 심장을 제외한 다른 내장을 모두 제거한 후 미라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방법 외에 극도로 건조하거나 추운 공간 또는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서도 미라가 만들어진다고 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미라들이 바로 공기가 차단된 환경에서 만들어진 경우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조선시대 무덤들의 특별한 제작 방식 때문이라고 하죠.

조선시대에는 무덤 안으로 물이 스며드는 것과 해충이 시신을 손상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 관의 사방에 두껍게 석회를 칠하는 회묘방식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거기에 추가로 관속에 숯을 넣기도 했는데요.

사람이 죽은 후 몸속에 있던 수분이 어느 정도 이상 빠져나가면 시신이 더 이상 썩지 않으면서 미라화가 진행되는데.

회묘방식으로 제작된 무덤에 들어간 석회와 숯이 시신에 물기가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죠.

 

게다가 석회는 물과 반응해서 열을 내뿜는 특성이 있는데 관에 칠해져있던 석회가 주변의 물기를 빨아들이는 과정에서 섭씨 200도나 되는 열을 내뿜으면서 관 내부를 살균하고 건조시켜 자연적으로 미라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미라들은 이집트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체적인 특징은 물론 입고 있던 옷과 장신구에 몸속에 있던 기생충이나 배설물까지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학술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1965년 광산 김씨의 무덤들이 모여있는 광주 무등산에서 임진왜란 당시 큰 활약을 했던 의병장 김덕령의 무덤을 선산으로 이장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김덕령 장군의 시신이 미라 상태인 채로 발견되었죠.

문중 사람들은 시신에 김덕령 장군의 한이 서려 있어 미라가 된 것이라 생각하며 사진기를 가지고 와서 촬영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사진기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힘들게 사진기를 구해왔을 때는 이미 시신이 공기 중의 세균과 접촉해서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고 하죠.

이에 후손들도 어쩔 수 없이 시신을 화장한 후 묻어버렸다고 합니다.

다만 당시에 발견됐던 김덕령 장군의 의복 등은 보존처리가 되어서 현재 충장사에 전시되어 있다고 하네요.

 

2001년 11월에는 학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어린이 미라가 발견된 것이죠.

당시 경기도 양주에서 도로 공사를 위해 그곳에 있던 무덤을 이장하던 중 어린이 미라가 발견됐다고 합니다.

미라는 300여 년 전에 땅속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며 땋은 머리카락에 손톱과 발톱까지 남아있을 정도로 시신이 잘 보존되어 있는 상태였다고 하죠.

 

이빨과 골격 상태 등을 분석한 결과 이 미라는 5살의 소년으로 밝혀졌습니다.

이후에 이뤄진 DNA 검사를 통해 이 소년이 해평윤씨 가문의 종친인 ‘윤호'라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족보상의 기록으로 봤을 때 윤호는 자신의 형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늦둥이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조사 결과 윤호가 사망한 원인은 ‘천연두’로 추정되며 주변 흙에서 나온 꽃가루를 봤을 때 어느 따뜻한 봄날에 땅에 묻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하죠.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바로 이 아이가 입고 있던 옷이었습니다.

윤호는 옷감 전체에 솜이 가득 들어간 겨울옷을 입고 있었는데 분석 결과 부모가 한 땀, 한 땀 정성껏 바느질한 흔적이 보였다고 하죠.

 

전문가들이 이 옷을 복원하는 데에만 무려 한 달이 넘게 걸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발견 당시 아이는 위아래에 찢어진 천이 감싸져있는 상태로 발견됐는데요.

전문가의 분석 결과 바닥에 깔려있던 천은 윤호 어머니의 옷이고 이불처럼 덮여진 천은 아버지의 옷이었다고 합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가 차마 어둡고 차가운 땅속에 아이를 그대로 묻을 수 없어서 자신의 옷가지로 아이를 감싸준 것이었죠.

그렇게 윤호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옷에 감싸인 채로 영원히 잠들게 된 것입니다.

 

2002년에는 파평 윤씨 여성의 미라가 발견되었는데요.

이 미라는 친정에서 아이를 낳다가 난산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임신한 채로 발견된 미라라고 합니다.

그녀는 문정왕후의 오빠이자 윤원형의 형인 윤원량의 손녀이며 당대 최고의 세도가 가문답게 머리에 관을 쓴 채로 발견되었다고 하죠.

 

이 여성의 미라는 살아있는 사람의 CT나 MRI 사진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대단히 좋았을 뿐만 아니라 뱃속에 있던 태아까지 아무런 손상 없이 발견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2007년에는 강원도 강릉시에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최씨 장군의 미라가 발견되었는데요.

 

검사를 해본 결과 그 미라는 60대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장기 속에서 폐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주로 약으로 먹던 포황이라는 물질이 많이 발견된 것으로 봐서 생전에 폐가 안 좋았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2012년에는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260여 년 전 사망한 팔회당 이시항 선생의 미라가 발견되었죠.

 

영조 때 벼슬을 지낸 이시항 선생은 발견 당시 계급에 맞는 관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고 수염을 비롯한 머리카락도 온전히 남아있어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되었다고 합니다.

안동은 특히 오래전부터 세도가 가문이 많아서 장례를 치를 때도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기 때문에 보존이 잘 된 미라가 자주 발견되는 편이라고 하네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과거에는 미라가 발견되어도 제대로 연구할 수 없었던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미라를 발견한 사람들은 산소를 옮기려고 하는 후손들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연구자들에게 알릴 경우 시신이 훼손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후손들로서는 그것이 조상에 대한 모욕이자 불효라고 여겼던 것이죠.

 

때문에 미라가 나와도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리지 않은 채 그냥 다른 곳에 다시 매장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나마 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으면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하네요.

다만 2000년대에 들어서는 CT나 MRI 등 시신을 분해하지 않고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기술이 많이 나왔고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져서 시신을 기증하는 후손들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미라 연구 또한 고인의 신체를 다루는 것이므로 관련 연구자들은 미라 연구를 하기 전에 먼저 미라에 예를 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해부실습 같은 의료 교육 등에 사용되는 시신 기증자의 시신에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예를 표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인데 특히 미라의 경우는 당사자의 의사를 전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더더욱 그렇다고 하네요.

 

한편 조선시대 무덤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조선의 왕릉 가운데 세조 이후의 왕들과 왕비들의 시신이 미라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고 하죠.

일반 사대부의 묘에서도 잘 보존된 미라가 발견되는데 더 엄격하게 관리된 왕족의 무덤은 미라가 됐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입니다.

 

몇몇 왕들은 왕의 초상화인 어진도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왕릉에 잠들어있는 왕들의 얼굴을 생생하게 볼 수도 있게 되는 것이죠.

다만 조선왕릉의 발굴 조사는 왕릉의 제사를 맡은 전주 이씨 종약원이라는 단체에서 강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에도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안타깝게도 1인 가구 중 고독사한 사람이 미라화가 되어 발견되며 이슈가 되기도 했다고 하죠.

2013년에는 부산광역시의 한 주택가에서 발견 당시로부터 5년 전 고독사한 어느 할머니의 시신이 미라화된 채 발견되어 큰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평소 이웃들과의 왕래가 없었던 탓에 누구도 할머니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미라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