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정치를 없애고 조선의 운명을 바꿀수도 있었던 왕자 문효세자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만약 그가 살아남아서 다음 왕위에 올랐다면
그의 이복동생인 순조가 너무 어린 나이에 왕이 되면서
조선후기 세도정치가 시작되는 비극을 피할 수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과연 그는 어떤 인물인지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문효세자는 정조 6년인 1782년인 9월 7일 새벽에 창덕궁 연화당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정조는 나이 30살이 다 되어가도록 자식이 없었는데
왕비인 효의왕후는 불임인 데다가 정조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간택후궁인 원빈 홍 씨는 입궁한 지 1년 만에 죽었으며
두 번째 간택후궁인 화빈 윤 씨는 상상임신을 한 탓에
첫 임신소식이 들리고 30개월 후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 상황에서 중궁전 나인이었던 성덕임이
3번이나 임신을 한 끝에 드디어 아들을 낳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첫아들을 얻은 정조는 크게 기뻐하며 성덕임을 정 3품 소용에 임명하려 했고
신하들도 9월에 영조와 정조가 태어났는데 이 달에 아들이 태어났으니
이것은 대단히 좋은 징조라며 기뻐했다고 하죠
비록 문효세자가 장남이기는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정조는 문효세자를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 없었는지
상상임신한 지 20개월이 지난 화빈 윤 씨가 아들을 낳기를 기다렸지만
신하들은 이미 윤 씨가 아들을 낳을 거란 기대를 버린 후였습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윤 씨가 아들을 낳는다고 하더라도
이미 장남이 있는 상태에서 다른 아들을 후계자로 지명하면
중종의 아들 복성군이나 선조의 아들 영창대군 때와 같은 혼란이 일어날까 봐
소용 성씨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자는 의견이 퍼지고 있었죠
결국 신하들의 의견을 이기지 못한 정조도
더 이상 화빈 윤 씨에게 가망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는
문효세자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게 됩니다
이때 영의정 서명선이 후계자가 된 문효세자의 어머니인
성덕임의 지위가 낮으면 곤란하다고 생각했는지
성덕임에게 소용보다 더 높은 지위를 내리자는 의견을 냈는데요
하지만 정조는 아직 성씨의 소용책봉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인데
그 상태에서 또다시 직급을 올리는 것은 너무 무리라는 생각을 했는지
책봉이 이루어진 후에 얘기를 하자며 거절했죠
하지만 원자의 생모인 그녀를 언제까지 그대로 놔둘 수는 없다는 의견이 계속 나오면서
성덕임은 정 3품 소용이 된 지 2개월 만에 정1품 의빈으로 계급이 오르게 됩니다
다만 그녀는 궁녀의 신분으로 왕의 승은을 입은 승은후궁이었기 때문에
화빈 윤 씨와는 달리 일반 후궁의 신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하네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문효세자의 나이가 3살이 되었고
이미 정조의 나이가 30대라는 사실에 초조해하던 신하들은
하루라도 빨리 왕세자 책봉을 해달라며 정조를 재촉했습니다
원래 정조는 문효세자에게 조금 더 시간을 주려했지만
워낙 신하들의 뜻이 확고한 데다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기에
결국 신하들의 뜻대로 문효세자를 왕세자로 책봉하게 되죠
그렇게 문효세자의 책봉식이 창덕궁 인정전에서 치러졌는데
당시 문효세자의 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책봉식에 참석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문효세자는 생후 22개월 만에 왕세자가 되었죠
정조의 차남인 순조가 11살의 나이로 왕세자가 된 것에 비하면
훨씬 빨리 왕세자가 된 것인데요
정조는 하나뿐인 아들을 끔찍이 아껴서
새로운 세자궁인 중희당을 지어줄 정도였다고 하죠
그도 그럴만한 것이 문효세자의 어머니인 성덕임부터가
정조가 무려 15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맺어진 여인이었는데
30이 넘은 나이에 오랫동안 마음에 두었던 의빈에게서 아들이 나왔으니
아마도 정조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문효세자를 얻은 순간이 아니었을까 짐작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10대에 어머니 혜경궁 홍 씨의 나인으로 궁에 들어온 성씨를 보고
첫눈에 반한 정조의 첫사랑은 15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마침내 그 사랑의 결실이 아들로 나타난 것이니까요
이제 이대로만 흘러가면 문효세자는 아무 문제 없이 왕이 될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1786년 4월부터 조선 전역에 유행병이 돌기 시작하며 비극이 시작되었죠
결국 문효세자는 1786년 5월 11일 만 3살의 나이에 홍역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같은 해에 의빈 성씨 또한 사망하게 되면서
정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을 4년의 시간이 끝나게 됩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 정조가 죽은 후 문효세자가 무사히 왕위에 올랐다면
수렴청정을 받지 않고 직접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나이인 19세가 되었을 테죠
그랬다면 그의 이복동생인 순조가 너무 어린 나이에 왕이 되면서
영조의 계비였던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고
이후 안동 김 씨로 대표되는 세도정치의 시기가 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워낙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탓에 문효세자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었는지
왕이 된 후에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조선의 멸망을 불러왔다는 세도정치를 피할 수 있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그가 왕이 된 조선이 더 나았을 거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죠
어쩌면 조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었을지도 몰랐던 문효세자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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