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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의경세자. 아버지가 왕위를 찬탈한 것에 대한 하늘의 벌인가? 일찍 요절해버린 비운의 왕세자

by 사탐과탐 2024.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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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왕위를 찬탈한 것에 대한 하늘의 벌인가?
일찍 요절해버린 비운의 왕세자 의경세자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선 왕조의 역사에는 수많은 비극적 인물들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의경세자는 좀 더 특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조의 장자로 태어나 첫번째 왕위 계승자였던 그는 불과 2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며 '비운의 왕세자'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죠

오늘은 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세자, 의경세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의경세자는 1438년(세종 20년) 9월 15일, 아버지 수양대군(훗날의 세조)과 어머니 정희왕후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탄생은, 왕실의 일반적인 관례를 깨는 것이었는데요

 

당시 왕실 법도상 왕자의 부인은 출산을 하려면 궁 밖으로 나가야 했지만

세종과 소헌왕후의 특별한 사랑을 받던 정희왕후는

궁 안에서 의경세자를 낳을수 있었던 것이죠

 

세종은 첫 손자인 의경세자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였습니다

 

손수 '현동'이라는 아명을 지어주고 직접 안고 다니며

다른 왕손들과는 다르게 대했다고 하죠

 

의경세자의 이름은 처음에 '숭(崇)'이었다가

나중에 '장(暲)'으로 고쳤으며, 자는 '원명(原明)'이었습니다

 

그렇게 의경세자는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존재였죠

 

의경세자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온 것은 1455년

그의 나이 18세 때였습니다

 

아버지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으로부터

강제로 왕위를 넘겨받아 세조로 즉위하면서

의경세자는 왕세자로 책봉되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때 그의 부인 한씨도 함께 세자빈으로 책봉되었습니다

 

세자로서의 의경세자는 학문을 좋아하고 성실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하루에 세 번씩 서연관을 불러 강론을 들었고

의문나는 점이 있으면 반드시 물어 확실히 이해하려 했다고 하죠

 

또한 세조가 '병진(兵陣)'은 우리 가업이니

알지 않으면 안 된다며 준 병법서들을

열심히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의경세자의 세자 시절은 안타깝게도 오래가지 못했죠

세자에 책봉된 지 2년 4개월 만인 1457년 9월 2일(음력, 세조 3년),

그는 불과 2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의경세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요

 

실록에는 구체적인 병명이 나와 있지 않지만

그가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아 잔병치레가 잦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죽기 전 얼마 동안 병석에 누워있었고,

21명의 승려가 경회루에서

그의 병 치유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는 기록도 있죠

 

한편, 야사에서는 의경세자가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원혼에 시달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나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른데요

의경세자는 오히려 단종보다 먼저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어찌됐든 의경세자는 한창일 젊은 나이에 요절해버리면서

세조와 조정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세조는 아들의 죽음을 매우 애통해했고

직접 여러 차례 묘자리를 찾아다니며 슬픔을 달랬다고 하죠

 

실록과 여러 기록을 봤을때

의경세자는 준수한 외모와 훌륭한 성품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체격이 준수하고 숙성하며 용모가 단아했다고 전해지죠

또한 온량 공경하며, 학문을 좋아하고 해서를 잘 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의경세자의 학구열은 대단했었다고 하죠

 

그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이해하고 적용하려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서경'을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직접 '간의대'에 올라가 천체를 관찰하며 검증했다고 하죠

 

그리고 의경세자와 세조의 관계는 매우 가까웠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세조는 아들의 교육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고

직접 사부와 빈객, 서연관을 선임하여 가르쳤습니다

 

또한 세조는 의경세자에게 병법을 가르치며

훗날 왕위에 오르게 되면 왕가의 전통을 이어가기를 바랐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세조의 의경세자에 대한 사랑은 그의 병환 때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세조는 의경세자가 병들었을 때

자신의 옛 집으로 보내 치료하게 했고

직접 거처를 옮겨 아들을 돌봐주기까지 했죠

 

이는 당시 조선시대 임금으로서는 이례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의경세자에 대한 당대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는데요

 

실록에는 "시종한 여러 신하들이 마음 아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그가 세상을 떠났을때 그를 알던 모든사람이 슬퍼했었다고 합니다

 

 

또한 명나라에서 온 사신들도

의경세자의 의관과 예법의 자상함을 칭찬했다고 하죠

 

그의 인품과 학문에 대한 평가는 사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성종 때 그를 추존하는 과정에서

신하들은 그의 덕망과 학식을 높이 평가했는데

이것이 그가 왕으로 추존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되었죠

 

의경세자의 죽음 이후

그의 부인인 한씨(훗날의 인수대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그녀는 남편이던 의경세자가 죽어서 궁을 나와야 했지만

세조와 정희왕후의 배려로 정빈궁이라는 별도의 거처를 받았죠

 

인수대비는 궁 밖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왕실의 주요 행사에 참여하며 영향력을 유지했습니다

 

그녀는 학식이 상당히 높았고

시아버지 세조와 함께 불경을 번역하는 작업에도 참여했을만큼

뛰어난 능력을 지닌 여인 이었죠.

 

이러한 그녀의 능력과 영향력은 후에

아들 성종이 왕위에 오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한편 의경세자는 생전에 세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요

 

장남 월산대군, 차남 자을산군(훗날의 성종),

그리고 명숙공주입니다

 

의경세자의 요절로 왕위 계승권은

동생인 예종에게 넘어갔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죠

 

형 의경세자와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예종이 재위 2년 만에 사망하자

당시 13세였던 의경세자의 차남

자을산군이 성종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이는 정희왕후의 결정과 인수대비의 영향력이 작용한 결과였죠

결국 성종의 즉위로 의경세자의 혈통이 다시 왕통을 잇게 되었고

훗날 의경세자를 추존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의경세자의 추존은 아들 성종이 즉위한 후에 이루어졌는데요

 

1470년(성종 1년)에 의경왕으로 추존되었으며

1475년에는 의경대왕으로 다시 추존되었죠

 

최종적으로는 '회간선숙공현온문의경대왕'이라는 긴 시호를 받았고

묘호는 '덕종'으로 정해졌습니다

 

의경세자의 추존은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왕이 되지 못하고 죽은 세자가 임금으로 추존된 사례입니다

 

단순히 왕족에 대한 예우를 넘어

왕조의 정통성과 연속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의미도 가지고 있었죠

 

비록 의경세자의 생애는 짧았지만

그의 영향은 굉장히 오랜시간 지속됐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의경세자는 젊은나이에 왕위에 오르지 못한채 세상을 떠났고

이후 동생인 예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면서

그의 후손들 역시 왕위 계승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운명의 아이러니로 인해 예종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의경세자의 아들 자을산군이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죠

 

그렇게 비록 동생 예종의 직계는 끊기게 되었지만

예종 이후의 왕들은 모두 의경세자의 직계 후손이 되었습니다

 

세조와 함께 의경세자는 조선 왕조의 중시조가 되었죠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의경세자나 소현세자 효명세자 등

뛰어난 능력을 가졌던 세자들이 만약 왕위에 올랐다면

과연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지금까지 본인은 왕이 되지는 못했지만 후손들이 조선의 왕조를 이끌게 되었던 의경세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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