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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백인 노예. 이슬람 해적에게 납치되어 물건처럼 팔려나갔던 백인 노예들의 삶

by 사탐과탐 2022.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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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노예라고 하면 흑인 노예가 떠오르실텐데요.
사실 백인들도 수백 년에 걸쳐 노예 생활로 고통받았다고 합니다.
그 배후에는 바르바리라는 이슬람 해적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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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노예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마, 흑인 노예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거나 우리나라에 있었던 노비들이 떠오르실 것 같은데요.

수천 년 동안의 인류의 역사 속에서는 흑인들뿐만 아니라 황인들, 심지어 백인들까지 노예였던 경우도 많았습니다.

 

또한 흑인들만 노예무역의 상품이 된 건 아니었죠.

16세기부터 19세기 이후까지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흑인 노예들을 사고파는 노예무역에 열중하고 있을 때 이슬람 국가이던 모로코와 오스만제국 그리고 현재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등의 지역에서는 백인 노예들이 사고 팔리며 노예무역이 왕성히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당시엔 흑인 노예들 못지않게 백인 노예들도 굉장히 많았었죠.

오늘은 이 백인 노예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7~8세기 경 이슬람의 우마이야 왕조는 현재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인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을 차지했고 아프리카 북부와 현재의 파키스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는 나라였습니다.

 

이때 이 이슬람 세력이던 우마이야 왕조와 여러 유럽의 기독교 세력은 오랜 기간 피 튀기는 전쟁이 지속되고 있었고 전쟁 과정 중에 수많은 백인 노예들이 생겼죠.

이때부터 백인 노예들은 흔하게 있었던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또한 북아프리카에서 활동하던 이슬람 해적들은 수백 년에 걸쳐서 이탈리아의 아말피, 제노바 같은 해안 도시들과 프랑스의 해안 도시들을 비롯한 지중해를 접하고 있는 유럽 대륙의 연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약탈을 일삼았으며 그 과정 중에 수백만 명에 달하는 백인들을 노예로 잡아갔죠.

또한 지중해를 다니는 유럽의 상선들이나 여러 배들도 습격해 피해가 이만저만한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잡혀간 백인들이 노예생활을 하다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각 나라들의 힘이 약한 탓에 저항도 잘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요.

이렇듯 유럽 백인들은 배를 타고 지중해를 가로질러야 할 때 이슬람 해적들에게 습격당해 팔려가지 않을까 하고 두려움에 떨어야 했죠.

 

이런 이슬람 해적들의 횡포가 나날이 심해지자 1390년에는 십자군을 끌고 가 해적의 주요 도시를 공격했지만 실패하기도 했었습니다.

또한 이슬람 국가들이 의도적으로 해적들을 지원해 그들의 힘은 나날이 강해졌죠.

 

시간이 흘러 스페인의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2세는 레콩키스타를 완수하게 되면서 스페인 전역에 있던 무슬림들을 추방하기에 이르렀는데요.

이 무슬림들은 갈 데 없어지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북아프리카로 갈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당시 해적들의 소굴이었던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의 지역으로 수많은 무슬림들이 흘러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의 해안가를 바르바리(Barbary)라고 불렀는데요.

이곳에서 날뛰던 이슬람 해적들을 백인들은 '바르바리 해적' 이라고 부르게 되었죠.

이 바르바리 해적들 때문에 백인 노예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배로 갈수 있는 곳은 어디든지 가서 약탈과 납치 등을 일삼았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오스만 제국의 후원을 받으며 더욱 힘이 강력해진 그들은 터키의 사략해적이라고 불릴 정도였죠.

오스만 제국은 바르바리 해적들을 정식 해군으로 삼아 서유럽의 나라들을 견제하는데 이용했고 이에 해적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면서 16세기부터 약 300여 년간 그들은 약 150만 명에서 200만 명에 달하는 백인들을 잡아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해적들은 오스만 제국의 지원을 받은 바르바리 해적들은 범선 제조 기술까지 배우게 되어 스페인과 이탈리아 해안 지대뿐만 아니라 아일랜드, 영국, 아이슬란드, 노르웨이까지 활동 범위가 넓어졌으며 그만큼 이 바르바리 해적들은 백인 노예의 공급처 역할을 톡톡히 했죠.

해적들에게는 백인노예들을 많이 잡으면 많이 잡을수록 더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최상급 상품 쯤 되었던 것인데요.

 

그렇게 지중해를 항해하는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유럽 국가들의 배들과 해안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그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1554년에는 이탈리아 남부에 비스테 라는 곳을 공격해 주민 7000여 명을 노예로 끌고 가기도 했고 1627년에는 아이슬란드의 한 마을을 침략해 400여 명의 주민들을 잡아가기도 했습니다.

이때 노예로 팔아도 팔릴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노인들이나 몸이 허약한 사람들은 교회에 모두를 몰아넣은 뒤 밖에 불을 질러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죠.

 

노예로 끌려간 사람들은 가족들에게 연락해 돈을 주면 풀려나기도 했는데요.

아이슬란드에서 끌려갔던 올라프 에길슨 이라는 주교는 몸값을 내고 이듬해인 1628년에 풀려나게 되었는데 아이슬란드로 돌아온 뒤 노예로 생활하던 끔찍한 경험을 책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잡혀간 백인 노예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몸값을 낼 형편이 되지 않았죠.

이에 피해를 당한 국가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는데요.

몸값을 내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돈을 마련해 백인 노예들을 해방시켜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풀려나지 못한 노예들은 그대로 아랍인들에게 그리고 페르시아, 인도 심지어 중국까지 팔려가고 말았죠.

 

노예로 잡힌 백인 남자들은 강제로 온몸에 털을 모조리 밀어버린 후에 해적선이나 이슬람 배들의 노잡이로 쓰거나 이슬람권의 여러 노역장에 팔려가 죽을 때까지 착취를 당했습니다.

특히나 노동력으로 사용하기 위해 흑인 노예들은 여자보다 주로 남자들을 잡아왔던 반면 백인 노예들은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인기가 많았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남자들보다 납치하기가 쉬울 뿐만 아니라 당시 아랍 귀족들이나 왕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백인 여성을 첩으로 삼는 것이 유행이었기 때문이었죠.

물론 하녀로 삼아 집안일이나 여러 가지 일들을 시킨 경우도 있지만 당시 일부다처제이자 노예를 인정했던 이슬람 사회에서 그녀들을 첩이나 노예로 삼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잡혀온 백인 여자 노예 중 미모가 뛰어난 경우엔 매우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기도 했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럽의 백인들은 바르바리 해적이라 하면 공포에 질려 했으며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었다고 합니다.

또한 잡아온 백인들 중 이슬람으로 개종을 하면 같은 편으로 받아들여 함께 해적질을 하기도 했는데요.

 

이렇게 이슬람으로 개종한 백인이 해적 두목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죠.

팔려간 노예들은 이슬람교로 개종시키려는 무슬림들에 의해 심한 고문까지 받았는데요.

거꾸로 매달려 발바닥에 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매질을 당하기도 하고 불에 달군 쇠막대기로 몸을 지지기도 했으며 여러 사람들이 들고 바닥에 패대기치는 고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소설 <돈키호테>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도 1575년에 바르바리 해적들에게 노예로 끌려가 5년간 노예생활을 했으며 소설 <로빈슨 크루소>에 주인공인 로빈슨 크루소도 해적들에게 잡혀 노예생활을 겪었다고 소설에 나오기도 했죠.

 

그리고 일부 유럽인들은 복수를 하기 위해 해적단을 만든 뒤 이슬람 도시들을 공격하기도 했는데 해적들에게 복수를 한다기보다 똑같이 일반 도시를 공격한 뒤 아랍 일반인들을 잡아 노예로 팔았다고 하죠.

이걸 보면 바르바리 해적들이나 복수한답시고 만들어진 백인 해적단이나 하는 짓은 거기서 거기 같은데요.

 

어쨌든 시간이 흘러 19세기에 산업혁명에 성공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자꾸 약탈과 납치 등을 일삼는 바르바리 해적들에게 그동안의 앙갚음을 하듯 매섭게 해적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 트리폴리를 공격했던 1,2차 바르바리 전쟁을 시작으로 영국이 모로코를 공격해 해적의 수는 눈에 띌 정도로 크게 줄었죠.

 

하지만 완전히 소탕을 하진 못했는데요.

이후 1830년 프랑스가 바르바리 해적들을 소탕하기 위해 알제리를 공격해 식민지화 해버리면서 마침내 너무나도 지긋지긋하고 악독했던 바르바리 해적을 뿌리 뽑을 수 있었죠.

이후 프랑스는 알제리를 식민지로 만들고 나서 해적들에게 당해왔던 원한을 그곳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되갚아주었다고 합니다.

 

몸값이 비싼 백인노예들을 화이트 골드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이슬람 사람들은 백인노예들을 금이라고 부를 만큼 값비싼 물건쯤으로 여겼나 봅니다.요즘 이슬람교를 강경하게 믿는 몇몇 사람들을 보면 인정사정 없이 잔인한 행동을 많이 하던데 이 당시에도 그들은 굉장히 무서웠을 것 같네요.

 

흑인노예나 백인노예나 우리나라에 있었던 노비들이나 다들 비참한 삶을 살았던 건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백인 노예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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