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지바르 전쟁은 역사상 가장 짧은 전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잔지바르 전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프리카 대륙 동쪽에는 탄자니아 라는 나라가 있는데요.
탄자니아 옆에는 잔지바르라는 작은 섬이 하나 있습니다.
이 잔지바르 섬에서는 전 세계 역사상 최단 시간의 전쟁이 벌어졌죠.
이 전쟁 기록은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짧았고 앞으로도 아마 절대 깨지지 않을 기록으로 여겨지고 있는데요.
이 전쟁은 바로 영국과 잔지바르와의 전쟁으로 단 38분 동안만 전쟁을 했던 것입니다.
대체 당시 이곳 잔지바르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이곳 잔지바르는 1503년부터 포르투갈의 영토였죠.
지리적으로 위치가 좋아 노예무역과 중개무역이 발달했던 곳이라 오랫동안 서구 열강들의 지배를 받아온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오만이 이 땅을 차지하게 되면서 잔지바르 술탄국으로 독립하게 되죠.

그들은 노예무역으로 많은 이익을 내고 있었는데요.
서구 열강들끼리 아프리카를 나눠먹은 회담인 베를린 회담을 거치고 나서 잔지바르는 대체로 노예무역 폐지에 강경했던 독일과 등을 지고 영국과 친하게 지내다가 1890년에는 영국의 보호령이 되기에 이르렀죠.
당시 잔지바르의 술탄은 '하미드 빈 투와이니'로 영국의 식민 경영에 협조적인 인물이었으며 사실상 잔지바르는 영국의 식민지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던 1896년 8월이 되자 갑자기 하미드 술탄이 급사하게 되는데요.
그가 죽고 나자 그의 조카이던 '할리드 빈 바르가시'는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후 스스로 술탄의 자리에 오르게 되죠.
당시 영국은 계속해서 식민 정책에 협조적인 인물이 술탄이 되기를 바랐지만 새로운 술탄이던 할리드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영국에게는 눈엣가시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자신들에게 호의적이고 협조적이던 인물인 '하무드 빈 무함마드'를 술탄으로 옹립하기 위해 할리드에게 술탄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압박을 넣기 시작했죠.
그리고 얼마 안 가 술탄자리에서 물러나라는 협박을 했지만 할리드는 영국의 요구를 거절하는 동시에 전군을 집결시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할리드가 집결시킨, 잔지바르의 군대였는데요.
전국의 모든 병사들을 집결 시켰지만 고작 2800명 밖에 되지 않았고 심지어 700여 명만 훈련을 받은 정규군이었을 뿐 나머지는 총만 든 오합지졸 병력이었던 것이죠.
게다가 그나마 한척 있던 군함은 과거에 영국이 쓰던 배를 사들여 왕실 요트로 쓰던 것에 대포 2문만 달고 급하게 군함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에 영국군은 할리드에게 모든 병력을 철수시킨 뒤 술탄자리에서 내려오라 했지만 이 요구 역시 할리드는 거부했죠.

이렇게 할리드가 전쟁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을 때 영국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는데요.
때마침 헨리 로슨이 이끄는 군함 5척은 크리켓 경기를 하기 위해 잔지바르섬 근처로 집결해 있던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운동경기 하러 왔다가 전쟁을 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영국군 해병대 2개 대대인 900여 명 규모의 병력도 유사시에 잔지바르에 상륙해 작전을 수행할 만반의 준비 태세를 마친 후였습니다.
1896년 8월 27일 오전 9시가 되자 할리드는 영국에게 선전포고를 했고 이 소식을 접한 영국군은 잔지바르를 향한 발포 명령에 9시 2분이 되자 일제히 할리드의 궁궐과 잔지바르의 군함에 포격을 개시했죠.
영국군의 무자비한 함포사격에 궁궐은 얼마 안 가 무너지고 말았고 하나밖에 없던 허접한 군함은 침몰해 버렸습니다.
또한 잔지바르 병사 500여 명도 순식간에 전사하고 말았죠.
깜짝 놀란 할리드는 황급히 독일 영사관으로 몸을 피했고 9시 40분 영국군에 항복의 의사를 전했습니다.
그렇게 약 38분 만에 이 전쟁은 끝이 나고 말았죠.
이 전쟁에서 잔지바르의 피해는 500여 명의 인명피해와 군함 한척 그리고 술탄의 궁궐이 파괴되었지만 영국군의 피해는 고작 부상자 1명이었습니다.
이후 영국은 독일 대사관에 할리드를 내놓으라 했지만 독일은 이를 거부했고 그로부터 약 1개월 후인 10월 2일, 할리드는 몰래 잔지바르를 탈출해 다르에스살람 이라는 곳으로 도망갔죠.

그곳에서 1916년까지 살다가 훗날 영국군에 다시 잡히게 되었지만 몸바사에서 살수 있도록 허가를 받게 되었고 그곳에서 살다가 1925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전쟁에 승리한 영국은 여느 승전국과 마찬가지로 전쟁 배상금을 물어내라고 할리드에게 요구했는데요.
그런데 전쟁비용으로 크게 든 것이 없었기 때문에 고작 38분간 포격을 가했던 포탄 값만 물어내라고 했죠.
그리고 고작 38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분쟁이라든지 전투라든지 하는 명칭으로 불리지 않고 전쟁으로 불리는 이유가 있는데요.
바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대로 선전포고도 했고 양국의 군대가 투입되어 교전도 있었으며
한 나라의 지도자가 항복까지 하며 전쟁의 구색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죠.
어쨌든 이후 잔지바르는 67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이때 받았던 영국에 대한 공포와 충격이 컸던 탓인지 영국에 저항하거나 반란을 일으키는 행동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이 잔지바르 전쟁은 역사상 가장 짧은 전쟁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가 되어있죠.
이 기록은 앞으로도 절대 깨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네요.
전 세계 전쟁사 통틀어 가장 짧고 어처구니없는 전쟁 잔지바르 전쟁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세계역사 탐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카트리나 2세. 러시아의 자긍심으로 불리는 완벽한 군주였던 동시에 200여 명의 애인을 둔 여제 (0) | 2022.03.26 |
---|---|
마젤란. 최초로 세계 일주를 한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2% 부족한 인물 (0) | 2022.03.25 |
퐁파두르 부인. 20년 가까이 베르사유 궁전 내의 실세로써 루이 15세가 찐으로 사랑했던 여인 (0) | 2022.03.03 |
베를린 회담. '아프리카의 분할' 이라고도 불리는 최악의 회담 (0) | 2022.02.26 |
백인 노예. 이슬람 해적에게 납치되어 물건처럼 팔려나갔던 백인 노예들의 삶 (0) | 2022.02.18 |
살라딘. 예루살렘을 정복해버려 유럽 전체와 맞짱 떴던 이슬람의 영웅 (0) | 2022.02.06 |
메디치 가문. 르네상스 시대와 이탈리아 피렌체를 있게 한 세계 최고의 가문 (0) | 2022.02.04 |
사자왕 리처드 1세. 십자군 전쟁에서 일당백 이상의 무쌍을 펼쳐 적군에게 악마로 불려진 남자 (0) | 2022.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