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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사자왕 리처드 1세. 십자군 전쟁에서 일당백 이상의 무쌍을 펼쳐 적군에게 악마로 불려진 남자

by 사탐과탐 2022.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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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에 예루살렘을 정복했던 살라딘은 엄청난 명장이었죠.
그런 살라딘 조차 연전연패하며 도저히 이길수 없었던 남자가 있었는데요.
그는 바로 잉글랜드의 국왕으로 사자의 심장을 가진 사자왕 리처드 1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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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뛰어난 무력을 가진 사람은 누구인가 예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는 주제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소드마스터라 불리는 척준경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고 옆 나라 중국에서는 초패왕 항우를 들 수 있겠죠.

 

서양에서도 이들처럼 어마어마한 무력으로 소문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잉글랜드의 국왕인 사자왕 리처드인데요.

리처드가 직접 뛰어드는 전장에서는 도저히 그를 막을 수가 없어서 상대편에서 "그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사자의 심장'이라는 칭호를 붙여줄 정도였죠.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수만 명이 싸우는 전장을 단 한 사람의 힘으로 뒤집어버릴 능력을 가졌다고 알려진 사자심왕 리처드의 이야기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리처드는 1157년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2세와 프랑스의 아키텐공국 출신인 엘레오노르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1살 때 어머니로부터 아키텐 영지를 물려받았으며 1172년에는 프랑스 중서부 지역에 있는 푸아티에를 다스리는 공작이 되었죠.

당시 부왕 헨리 2세에게는 리처드를 포함해 모두 네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다른 형제들은 내버려 둔 채 유독 막내아들 존을 편애했다고 하는데요.

 

게다가 왕비 엘레오노르가 중간에서 계속 이간질을 하는 바람에 부자 사이는 물론 형제들 간에도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고 하죠.

1183년 리처드가 다스리고 있던 가스코뉴의 주민들이 그의 가혹한 통치방식을 견디지 못해 폭동을 일으키자 장남인 청년왕 헨리와 사남 제프리가 그들과 합세해서 리처드를 몰아내려고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6월 11일 맏형 청년왕 헨리가 갑자기 죽어버리면서 리처드에게 대항하던 세력은 무너져내렸고 그때부터 리처드는 잉글랜드의 왕위 자리에 가장 가까운 후계자가 되었죠.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헨리 2세가 왕위를 계승하는 조건으로 아키텐을 존에게 양도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요.

하지만 아키텐 영지는 리처드에게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는 명령을 거절했고 부당한 명령을 내린 아버지에게 불만을 품게 되죠.

 

결국 1188년 헨리 2세와 프랑스의 필리프 2세가 한창 싸우던 중에 리처드는 아버지를 배반하고 필리프에게 합류하게 되는데요.

1189년에 힘이 다한 헨리2세가 시농에서 병으로 사망하면서 리처드는 마침내 잉글랜드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게 되죠.

 

리처드가 왕위에 오르자마자 한 일은 바로 제3차 십자군 원정에 참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제3차 십자군이란 '이슬람의 옹호자'라고 알려진 살라흐 앗 딘(살라딘)에게 정복당한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독교의 연합군을 말하는데요.

예루살렘이 이슬람군에 함락됐다는 소식이 유럽에 전해지자 교황 그레고리오 8세는 성지를 탈환해 줄 것을 잉글랜드와 프랑스에 호소했죠.

 

당시 잉글랜드의 왕실 금고나 세금만으로는 원정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리처드는 자신이 갖고 있던 영지와 관직 등을 팔아서 십자군 원정을 위한 자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자금이 모이자 그는 병력을 모아 함선을 타고 원정을 떠나게 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힘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1191년 8월에 벌어진 케사레아 전투였는데요.

리처드가 이끄는 부대와 살라딘의 정찰대가 충돌해 전투를 벌이던 도중 리처드군의 후방에 있던 부르고뉴공의 부대가 살라딘의 투르크군의 매복에 당하게 되죠.

상황을 알게 된 리처드는 즉시 그를 구하러 나섰는데요.

 

리처드가 천둥과 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혼자 투르크군에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그들을 베어내기 시작했고 리처드의 위용을 본 투르크군은 뒤도 보지 않고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렇게 후방에 있던 부대는 리처드왕이 보여준 초인적인 힘 덕분에 위기를 벗어났다고 하죠.

 

바로 다음날 살라딘과 리처드의 군대는 아르수프 근처의 숲에서 만나게 되는데요.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던 도중에 리처드군의 한 부대가 살라딘군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리처드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병력을 그쪽으로 보내고 자신은 혼자 칼을 빼든 채 살라딘의 부대로 돌격해버렸는데요.

 

리처드는 엄청난 괴성을 내지르며 투르크군들을 마구 쓰러뜨리기 시작했는데 그 누구도 감히 리처드의 상대를 할 수 없어 속절없이 당할 뿐이었다고 하죠.

마치 낫으로 곡식을 베듯 동료들의 머리를 베어버리는 리처드의 모습에 겁을 먹은 투르크 군들은 그가 돌진하는 곳을 피해 다니기 바빴다고 합니다.

 

리처드의 초인적인 무력을 뼈저리게 느낀 투르크 병사들은 이후 그가 병사들을 이끌고 공격해올 때마다 무조건 길을 터주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하죠.

살라딘이 어떻게든 무너지는 군대를 수습해 보려고 했지만 한 번 기울어진 전투를 뒤집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고 하네요.

그날의 전투에서 십자군의 전사자 수가 700여 명 정도였던 것에 비해서 살라딘군은 무려 7000여 명이나 되는 전사자가 나왔을 만큼 큰 패배를 당했다고 하죠.

 

그리고 마침내 리처드가 서양 역사상 최고의 무신이라 인정받게 되는 야파 전투가 벌어지게 되는데요.

1192년 살라딘이 야파 요새를 침공하자 그곳을 지키던 십자군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명장 살라딘의 공격을 버텨내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십자군은 살라딘에게 항복을 요청하게 되는데요.

이에 살라딘은 최대한 빨리 요새를 비우고 물러나라는 말을 전하죠.

 

한편 야파요새의 상황을 들은 리처드는 크게 분노하며 군대를 소집해서 수십 척의 배를 몰고 야파요새로 달려오는데요.

그리고 리처드의 지원군을 본 야파요새의 수비병들은 살라딘의 서기관인 바하 앗딘에게 항복을 취소한다는 편지를 보내게 되죠.

십자군의 행태에 분노한 살라딘은 요새에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요새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고함을 지르며 리처드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상하게도 리처드의 부대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는데요.

알고 보니 살라딘군의 함성 소리와 그들의 깃발이 펄럭이는 소리 때문에 리처드가 요새 수비병들의 구조 요청을 듣지 못했던 것이었죠.

 

이때 사제 한 명이 바다로 뛰어들어 리처드가 타고 있던 배까지 헤엄쳐 가게 되는데요.

간신히 배에 오른 그는 리처드에게 애타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제서야 사태를 알게 된 리처드는 즉시 요새를 구하기 위해 출진했습니다.

 

먼저 리처드는 해안가를 지키고 있던 살라딘군에 돌격했는데요.

자신의 무기로 유명한 덴마크산 도끼를 휘두르며 적군을 마구잡이로 베어버렸고 기가 질린 수비병들은 해안을 리처드군에게 내주고 물러났습니다.

리처드는 곧바로 80여 명의 부하들만을 데리고 야파요새를 공격하고 있던 살라딘군에 돌격해 6만여 명의 투르크 병사들을 모조리 몰아내버렸는데요.

 

80명으로 6만 명을 박살 내버린 것도 너무나 믿기 어려운 일인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리처드가 제대로 된 전투장비도 아닌 배에서 신는 슬리퍼를 신은 채로 그 일을 해냈다는 것입니다.

전투가 끝난 직후 살라딘이 보낸 전령에게 리처드는 웃으며 물었죠.

"당신들의 그 대단하다는 술탄은 어째서 내 모습만 보면 도망치는 거요?

난 갑옷은 고사하고 배에서 신는 신발을 신고 싸우러 왔는데 말이요"

 

심지어 리처드가 데려간 80명도 제대로 된 무장을 한 기병이 아니었고 그들이 데려간 말의 수는 고작 3마리에 불과했다고 하죠.

놀랍게도 이와 같은 내용은 양측의 역사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리처드가 자신의 부대를 박살 내는 모습을 직접 지켜 본 살라딘은 "저 자야말로 사탄이라 부를만한 인물이다!"라며 경악했고 그의 서기관 바하 앗딘은 "저 자는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답했다고 하죠.

이때부터 리처드의 적들은 그를 악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기록들만 보면 살라딘이 별 볼일 없는 인물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 살라딘은 이슬람을 통일하고 기독교 군을 상대로 예루살렘을 점령하는 등 엄청난 공들을 세운 명장이었습니다.

또한 프랑스와의 전쟁에서도 언제나 승리를 거둘 정도로 지휘능력도 굉장히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처럼 살라딘은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 못지 않는 성웅으로 통하며 서구권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명장이었는데요.

이런 살라딘이 더 많은 병력을 이끌고도 리처드에게 연달아 패배를 당한 것을 보면 그만큼 리처드가 괴물 같은 무력을 가진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놀랍게도 살라딘은 자신을 몇 번이나 패배시킨 리처드를 상대로 한나라의 군주다운 품격을 몇 번이나 보여줬는데요.

이후 벌어진 전투에서 리처드의 말이 화살에 맞아 쓰러지자 살라딘은 "저토록 용맹한 전사가 말에서 떨어져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하며 리처드에게 날쌘 아랍의 명마를 보내줬다고 하죠.

 

그리고 리처드가 무더운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열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듣자 그를 공격하기는커녕 리처드에게 얼음과 과일 그리고 자신의 편지를 든 의사 한 명을 보내주기까지 합니다.

편지에는 "그대는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봤던 사람들 중 최고의 전사요. 속히 쾌차하기를 기도하겠소"라고 써져있었고 편지를 본 리처드도 크게 감동하며 살라딘을 가리켜 자신이 상대한 이들 중 가장 '위대한 숙적'이라 칭했다고 하죠.

 

리처드가 본국에 사정이 생겨 어쩔 수 없이 귀환을 하게 되자 살라딘에게 3년 안에 다시 돌아와 꼭 예루살렘을 되찾겠다는 편지를 보냈고 살라딘도 "나에게서 예루살렘을 뺏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그대뿐일 것이다"라며 답장을 보냈다고 하네요.

 

하지만 아쉽게도 이 둘의 대결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못했는데요.

얼마 후 살라딘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리처드 또한 전쟁에서 석궁을 맞고 상처가 악화되면서 사망했기 때문이죠.

 

리처드는 뛰어난 무력뿐 아니라 전술과 전략에도 밝았고 공성전에도 강했으며 병참과 보급 능력도 뛰어났다고 하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한마디로 야전 사령관으로서의 역량은 당대 최고라는 평을 들을 정도였죠.

게다가 그는 적의 전술을 빠르게 파악해 신속하고 과감한 결단을 보여 주었으며 탁월한 전술 감각을 가지고 있어 중요한 승부처에서 번뜩이는 계책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살라딘의 서기관인 바하 알딘은 '리처드는 가장 전투가 치열하게 펼쳐지는 곳에 반드시 나타났으며 그렇게 격렬한 전투를 직접 치르는 중에도 독수리처럼 예리하게 작전 지시를 할 수 있었다'는 기록을 남겼다고 하죠.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무장으로서의 능력과는 다르게 그가 나라를 다스리는 능력은 너무나도 부족했기 때문에 리처드의 영지들은 그의 어머니인 알리에노르 대비가 주로 맡았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서양의 무신이라 불리는 사자왕 리처드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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