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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합스부르크 가문.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병 때문에 멸문 당해버린 세계 최강의 명문가

by 사탐과탐 2022.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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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가문은 한때 세계를 제패할 정도로 세력이 엄청났었습니다.
하지만 수백년 동안 이어진 근친혼으로 인해 대를 거칠수록 유전병(주걱턱)이 점점 심해지고 결국 가문 스스로 멸문 당해버리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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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지배층들은 자신들의 고귀한 혈통을 지키기 위해 근친혼을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 성골 귀족들과 고려 초기의 왕족들 간에 근친혼이 이루어졌다가 고려 말이 되어서야 그 풍습이 사라졌다고 하는데요.

 

서양에서도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의 왕가에서 근친혼이 이루어졌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가문이 바로 합스부르크 가문이죠.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광범위한 영토를 갖고 있던 왕가 중 하나였지만 순수 혈통을 지키겠다며 근친혼을 고집하다 몰락의 길을 걷게 된 합스부르크 가문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합스부르크 가문은 10세기까지만 해도 알프스산맥 근처에 있던 시골 귀족 가문에 불과했습니다.

이 합스부르크 가문이 자신들이 살고 있던 지역을 벗어나 유럽의 지배자로 떠오르게 된 계기는 13세기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자리가 20년간이나 비어있었던 것이 그 시작이었는데요.

 

12세기 후반부터 교황들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들 간에는 끊임없는 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죠.

때문에 교황들이 황제를 견제하고 길들이기 위해서 시도 때도 없이 황제를 파문해 버린 끝에 더 이상은 대를 이을 후계자를 찾을 수 없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게 20년간 황제가 나오지 못하며 정세가 혼란해지자 이제는 교황이 제발 누구든 황제가 되어달라고 애원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당시 투표권을 가지고 있던 제후들은 자신이 황제를 하기는 싫지만 다른 사람이 황제가 되면서 세력이 커지는 것 또한 원하지 않았는데요.

 

고민 끝에 그들이 내린 결론은 별 볼일 없는 가문의 가주를 바지 사장으로 세우자는 것이었죠.

이 바지 사장으로 선택받은 인물이 바로 당시 합스부르크 가문의 가주인 루돌프 1세였습니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시골 가문의 백작에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어버린 루돌프 1세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할 줄 아는 야심가였는데요.

 

그때부터 루돌프 1세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지를 늘려가기 시작했죠.

험난한 스위스의 산골짜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드넓은 평야지대를 원했던 그의 눈에 띈 것이 바로 옆 동네에 있던 오스트리아 공국이었는데요.

 

루돌프 1세는 황제라는 자신의 지위를 비롯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며 오스트리아 공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마침내 1278년 오스트리아 공국과 형제국인 슈타이어마르크 공국까지 차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루돌프 1세가 정복 사업을 벌이고 있는 동안 스위스에 있던 세력들이 합스부르크 가문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데요.

 

그렇게 빈집털이를 당한 합스부르크 가문은 본거지를 아예 오스트리아로 옮겨버리게 되죠.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은 다른 나라의 권력자 가문들과 정략결혼으로 맺어지면서 계속해서 세력을 늘려가기 시작했는데요.

그 결과 1363년 무렵에는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를 비롯한 독일 남동부 일대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토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점점 힘을 키워가던 합스부르크 가문은 막시밀리안 1세 시절 스페인 왕국과 헝가리 왕국 그리고 크로아티아 왕국 등과 혼인 동맹을 맺게 되죠.

그런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합스부르크 가문과 동맹을 맺었던 이들 가문의 대가 모두 끊겨버리면서 그 가문들의 영토가 모조리 합스부르크의 소속이 되어버렸는데요.

 

그렇게 뜻밖의 행운을 맞은 합스부르크 가문이 성장한 끝에 16세기 카를 5세가 스페인의 왕위에 오르면서 마침내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좋은 일이 있으면 꼭 나쁜 일도 같이 따라오기 마련이죠.

카를 5세가 왕위에서 물러난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은 두개로 나누어져 버리게 되는데요.

 

카를 5세가 중부 유럽 영토의 작위를 포함한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는 자신의 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 넘겨주고 나머지 전부(스페인+네덜란드 저지대+아메리카 대륙+필리핀)를 아들인 펠리페 2세에게 각각 나누어줬기 때문이죠.

그때부터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페르디난트 1세)와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가(펠리페2세) 둘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머지않은 1700년에 멸망했지만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이후로도 200년간이나 이어지게 되는데요.

결국에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 또한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는데 특이한 점은 그들이 멸망한 이유가 다른 왕조들처럼 혁명이나 외부의 침략 등이 아닌 자신들끼리 수십~수백 년간 반복한 근친혼 때문이라는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근친혼을 계속하게 되면 유전병과 기형이 대를 이어서 나타난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 있습니다.

삼촌과 조카가 결혼하는 등의 개족보 관계가 계속 이어지면서 유전적 결함이 쌓이며 유전병을 가진 후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요.

 

그들 가문의 유전병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주걱턱이었죠.

그래서 과거에는 주걱턱을 가리키는 용어가 '합스부르크 턱'이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합스부르크 가문 소속의 수많은 인물들의 초상화를 살펴본 결과 주걱턱 유전병의 시작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막시밀리안 1세였던 것으로 짐작된다고 하는데요.

 

사실 기록을 살펴보면 막시밀리안 1세는 근친혼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선조들의 계속된 근친혼 때문에 그가 주걱턱 저주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되고 만 것이죠.

막시밀리안의 아들 카를 5세는 잘생긴 외모 덕분에 미남왕이라는 별명까지 생겼지만 안타깝게도 그 역시 주걱턱의 저주를 피해 갈 수는 없었는데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헝가리의 왕이었던 루돌프 2세는 합스부르크 가문 사람 중에서도 유전병의 가장 큰 희생양이라 불린다고 하죠.

 

루돌프 2세는 주걱턱 외에도 어린 시절부터 심각한 우울증에까지 시달렸는데요.

그의 유전병 기형 증세가 특히나 심했던 이유는 바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합스부르크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라고 하죠.

16세기 스페인을 당대 세계 최강으로 만든 펠리페 2세도 주걱턱을 피하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성인이 된 후에는 수염으로 턱을 잘 가리고 다녀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하지만 어린 시절 초상화 속 그의 턱을 보면 펠리페 2세가 합스부르크 가문 사람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다고 하죠.

 

펠리페 2세의 손자인 펠리페 4세대에 와서는 주걱턱이 너무 심해져서 턱이 제대로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펠리페 4세는 평소에도 항상 침을 흘리고 있었고 음식조차 제대로 넘기지 못해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펠리페 4세는 생전에 두 번 결혼해서 13명의 자식을 얻었는데 그중에서 열 살을 넘긴 아이는 고작 세명뿐이었다고 하죠.

그 세 명의 아이 중 막내가 바로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의 마지막 왕 카를로스 2세였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는 세대를 거듭한 근친혼으로 인한 부작용을 몰아서 받은 탓에 그야말로 심각한 상태였다고 하죠.

턱뼈가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바람에 입을 제대로 다물 수 없었으며 그 때문에 침을 자주 흘리고 음식을 제대로 씹지도 못했습니다.

 

게다가 35세에 탈모가 와서 대머리가 되었고 상체에 비해서 하체가 지나치게 가늘고 짧았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다리가 상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어 다리를 절고 다녔다고 하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뇌기능이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발작 증세를 자주 일으키는 데다 지능까지 낮았기 때문에 그녀의 어머니 마리아나가 대신 나라를 맡아서 다스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카를로스 2세는 두 번이나 결혼했지만 자식을 얻지 못했는데 학자들은 그가 유전병으로 인해 정자가 없는 무정자증을 앓고 있었다고 예측하고 있죠.

그렇게 카를로스 2세를 끝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은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됩니다.

여담으로 프랑스의 유명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그녀는 하얗고 고운 피부에 탐스러운 금발머리를 가진 미인이었지만 그녀 또한 주걱턱의 저주를 피하지는 못했다고 하니 근친혼이 얼마나 무서운 부작용을 낳게 되는지 알 수 있죠.

 

지금까지 근친혼을 반복하다 자신의 후손들을 지옥에 빠트려버린 합스부르크 가문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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