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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가라유키상. 일본인에 의해 해외로 팔려나가 강제로 매춘을 했어야 했던 일본 여인들

by 사탐과탐 2022.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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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본에서는 형편이 어려운 여인들에게 취업을 시켜준다고 사기를 친 후 해외로 팔아넘겨 강제로 매춘을 시켰던 사업이 유행했었습니다.
이렇게 팔려간 여인들을 가라유키상 이라고 불렀었는데요.이런 불법행위를 일본정부는 오히려 적극 권장하며 외화를 벌어다주는 애국행위 라면서 선전까지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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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세기 일본의 작은 시골마을에 한 남자가 나타납니다.

그는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며 누군가를 찾는 듯했죠.

그렇게 마을을 돌던 그 남자는 어느덧 한 누추한 집에 다다르게 되었고 그 집으로 들어가 무슨 대화를 나눈 뒤 그 집의 딸을 데리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해외에 취업을 알선해 주는 일을 하는 남자였고 그렇게 그 집에 선금을 지불한 뒤 딸을 취업시켜 주겠다면서 데리고 나온 것이었죠.

그렇게 그 남자를 따라나온 그녀는 큰 배를 타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며 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 문제 없이 정상적으로 보이는 이 일은 알고 보면 너무나도 크나큰 문제가 있었죠.

 

사실 이 남자는 취업을 알선해 주는 업자가 아니고 취업 사기를 쳐 그렇게 데려온 여성들을 해외에 매춘부로 팔아먹는 남자였던 것입니다.

이런 남자들을 '제겐' 또는 '핀푸'라고 불렀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들은 농촌이나 어촌 등을 돌아다니며 가난한 가정의 딸들을 타깃으로 삼아 14세~16세 소녀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 준다고 제안했고 급여를 먼저 지급해 주는 조건을 내세워 제안에 수락하면 일정 금액을 소녀의 부모에게 제공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는 딸을 그 남자의 처분대로 맡기겠다고 약속하는 증서에 서명을 했고 또 제겐은 이 소녀들을 포주에게 넘기면서 차액을 챙기는 것이었죠.

 

이렇게 취업한다고 믿고 아무것도 모른 채 외국으로 향하는 배에 오른 여성들은 외국에 도착하는 순간 자신들이 속았다는걸 눈치채지만 이미 그 상황을 탈출하기에는 늦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주가 시키는 대로 매춘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부모가 받은 돈과 제겐, 핀푸에게 들어간 수수료, 외국까지 오는데 드는 비용 등은 모조리 그 여성의 빚이 되어 거부할 수 없는 덫에 빠져버린 것이죠.

 

그렇게 속아서 머나먼 타국으로 가게 된 여성들은 지옥과 같은 현실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외국으로 나가 매춘행위를 하는 여성을 일본에서는 가라유키상이라고 불렀죠.

그런데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가라유키상이 되어 해외로 가서 매춘행위를 한 여성들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조선, 중국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나라로 가게 되었는데요.

인도, 시베리아, 홍콩, 필리핀, 인도네시아, 만주 등은 물론이고 하와이나, 캘리포니아, 아프리카까지 그리고 서구 유럽이나 미국 군대가 주둔해 있고 수요가 많았던 곳으로 흩어졌습니다.

또한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에도 역시 가라유키상들이 존재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가라유키상들은 외국에 나가 일본인 선원들을 상대하면서 외화가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외국인을 상대로 영업도 하면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역할까지 했습니다.

백인을 상대할 때는 일본인들보다는 더 비싸게 요금을 받았는데요.

 

이렇게 그녀들이 벌어들이는 외화는 실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죠.

하지만 그녀들의 생활은 너무나도 피폐했는데요.

수입의 반을 포주가 차지했고 거기서 또 빚을 갚는데 반을 썼으며 그 반 남은 거에서 생활비도 쓰고 가족에게 보내고 하다 보니 손님을 얼마 못 받은 달에는 생활이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또한 주 1회에 실시하는 성병검사와 월 1회 실시하던 검사 비용 모두 가라유키상 본인들이 부담해야 했고 이것도 포주가 뻥튀기를 했었기 때문에 실제 드는 돈에 2배를 냈어야 했죠.

게다가 휴일도 없었기 때문에 너무 힘들어 쉬고 싶어도 쉬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일본인들은 서양인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열등한 존재로 여겼기 때문에 일본인이나 서양인들 외에 중국인이나 동남아시아 남자들을 상대해야 할 때는 그만큼 굴욕감도 느꼈다고 하죠.

그런데 그녀들이 남자를 평가한 것을 보면 또 내용이 다른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가라유키상들은 가장 역겨운 고객으로 일본인 남성을 꼽았고 중국인은 충분히 친절하다라고 평했으며 영국인이나 미국인은 두 번째로 좋은 손님 그리고 원주민 남성들이 가장 빠르고 잘했다고 평가했죠.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점은 이렇게 속아서 억울하게 끌려온 여자들을 감싸주거나 보호해 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것인데요.

 

이런 식으로 여성들을 매춘부로 쓰기 위해 일본에서 해외로 보내는 행위는 엄연히 불법이었지만 일본 정부나 경찰들은 이를 묵인해버린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서구 열강들을 따라잡는데에는 엄청난 돈이 필요했는데 이 가라유키상들의 억울함이나 아픔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해외로 가 막대한 외화를 벌어다 주는 애국자라고 치켜세워주면서 중요한 돈벌이 수단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녀들을 그 정도로만 생각하다 보니 일본 정부에서는 그녀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 또한 못 가도록 막기도 했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을 낭자군이라는 이름으로 선전하면서 이러한 행위를 독려하기까지 했는데요.

1910년 이후 1920년 매춘행위가 금지되기 이전까지 세계 곳곳에 분포되어 있던 가라유키상은 50만 명이 넘는 수준이었고 그녀들이 벌어들이는 돈도 너무나도 막대해서 그녀들의 인권은 철저히 무시된 채 정부에서도 나몰라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910년에는 일본 전체 수출금액의 10%를 차지했을 정도로 어마무시한 규모였죠.

심지어 당시 지식인들도 '가라유키상들이 해외로 나가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한다' 라고 주장하기도 했죠.

그들이 몸을 팔아 벌어들이는 돈으로 군함이나 대포 등을 구입했고 일설에 의하면 이 가라유키상들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치를 수 있는 전쟁비용을 마련했다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국제적으로 평가가 급상승하기 시작하자 일본 정부에서는 가라유키상을 애국자라 치켜세울 때는 언제고 이제는 '일등국 일본의 수치'로 여기면서 비난 여론이 거세지기 시작했죠.

거기다가 1920년 매춘 금지령이 떨어지자 해외에 가라유키상들이 있던 일본의 유곽들도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다보니 가라유키상들은 대부분 일본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 돌아온 일본 내에서는 온갖 멸시를 받으며 쓰레기 취급을 받았고 그렇게 사회적으로 매장되어가기 시작했죠.

한편으로 일본으로 돌아가 봤자 생계가 막막하거나 일본에 어떠한 연고도 없던 사람들은 그냥 현지에 남아 계속해서 매춘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들이 살았던 해외 각지에는 아직도 그녀들이 세상을 떠나고 묻힌 무덤과 묘비가 남아있기도 한데요.

이보다 비참한 경우는 말라리아나 현지에 있는 풍토병, 성병이나 폐병 등에 걸려 더 이상 매춘을 할 수 없는 가라유키상은 바다나 정글에 그냥 버려진 경우도 많았다고 하죠.

 

어쨌든 그렇게 자신과 같은 나라 사람들에게 속아 해외로 팔려간 뒤 나라의 재정에 엄청난 보탬이 된 가라유키상들은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들에 의해 무참히 버려졌습니다.

하지만 더 열받는 것은 성노예로 끌려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일본이 이 가라유키상 프레임을 계속 씌우려는 것이죠.

 

일본의 주장에 의하면 전선으로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들이 가라유키상과 비슷한 형태로 모집되어 일반인 브로커들이 여성들을 끌어모아 군대에 있던 위안소로 보낸 것이라며 전혀 강제성이 없었고 여성들 자발적으로 간 것이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말 그대로 업자가 중간에서 수수료를 받으면서 여성들을 공급한 것이고 여성들은 스스로 전선을 다니며 매춘으로 돈을 벌었다는 것이죠.

 

이에 일본 역사학회나 역사학 단체 등에서도 위안부를 강제로 끌고 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늘 그랬듯 일본 정부는 자신들이 듣기 싫은 건 무시하고 귀를 닫아버렸습니다.

벽에 대고 말해도 이보다는 답답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일제가 자국의 빈곤한 하층민들을 속여 어린 여성들을 외국으로 팔아넘긴 것만 봐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처우는 더 열악하고 잔인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국민들에게도 저러는데 한국인들에게는 뭐 더 이상 말하면 입만 아프죠.

 

빈곤층 여성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돈 벌게 해주겠다며 속여 외국으로 팔려가 국가에서도 버림받았던 일본의 가라유키상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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