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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오노다 히로. 일본이 패망한 줄 모르고 필리핀 정글에서 30년 동안 홀로 전쟁 했었던 개민폐 패잔병

by 사탐과탐 2022.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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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다 히로는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망한 줄 모르고 필리핀 루방섬에서 홀로 30년 동안이나 전쟁을 치룬 패잔병이었습니다.
눈과 귀를 닫은채 오로지 자신만의 잘못된 신념으로 30년 동안 필리핀 주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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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죽지세로 청나라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제국은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에 솔로몬제도, 파푸아뉴기니 외에 여러 지역까지 병력을 보내 그곳을 장악했고 그리고 미국, 영국, 네덜란드, 호주 등의 군대와 크고 작은 전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기 시작했고 1945년 8월에는 소련까지 일본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더더욱 전황은 불리해졌으며 결국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원자폭탄을 맞고 1945년 8월 15일, 일본제국의 히로히토 천황은 무조건 항복을 공식 선언했죠.

 

그러자 여러 지역에 걸쳐 흩어져있던 일본군 패잔병들은 버려지다시피 하며 낙오 돼버렸고 그중엔 항복 소식을 듣지 못한 채 계속해서 전쟁 임무를 수행하는 일본군도 있었으며 항복 소식을 들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그 소식을 믿지 못하고 미쳐날뛰는 일본군도 있었습니다.

 

사실 당시엔 핸드폰이나 티비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연락하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속으로는 썩어 곪아버렸을지 몰라도 겉으로는 멀정하게 잘 돌아가던 나라가 갑자기 항복해 패전했다는 것이 일본군에게는 믿어지지 않을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많은 수의 일본군은 이 일본의 항복 소식은 적국인 미국이 자신들을 항복시키려고 퍼트린 교란작전이며 유언비어라고 믿었고 계속해서 전투를 지속하는 등 항복한 일본 정부를 곤란하게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나 포로가 된 일본군 포로들은 수용소를 거쳐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일부는 항복을 거부한 채 곳곳에 숨어들어 여전히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었죠.

그중에 정말 골 때리는 인물이 한 명 있었으니 그는 바로 일본군 부대의 정보장교였던 오노다 히로 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일본이 항복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무려 30여 년간 필리핀 정글에 숨어지내며 결사항전(?)을 했는데요.

그는 약 30년간 정글 속에서 지내면서 온갖 못된 짓과 이상한 짓은 다했고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었죠.

 

오노다가 필리핀 루방 섬에 파견된 것은 1944년 9월이었습니다.

그는 250명의 훈련도 되지 않은 오합지졸을 이끌던 지휘관이었는데요.

그들의 임무는 미군의 공격을 지연시키기 위해 활주로를 파괴한 뒤 미군의 발목을 최대한 묶는 것이었죠.

 

오노다의 부대장이던 요코야마 시즈오는 오노다 일행에게 "항복은 물론 옥쇄도 허락하지 않는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버텨야 한다. 병사가 단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하더라도 야자수 열매라도 먹으면서 버텨라." 라고 했다고 합니다.

(옥쇄: 명예나 충절을 위해 깨끗이 죽는 것)

부대가 몰살 당한다 하더라도 절대 미군에 투항하지 말라는 뜻이었죠.

 

그렇게 오노다는 1945년 3월이 되어서야 루방 섬에 상륙했고 미군과의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당연히 미군과 쨉도 안되던 일본군은 오노다의 부대만 남기고 주력부대는 모두 후퇴를 하게 되었는데 이 어처구니없는 오합지졸 부대는 첫 전투에서 207명이나 전사하는 바람에 고작 43명 밖에 남지 않았고 그렇게 살아남는 43명은 정글 속으로 뿔뿔이 흩어져 도망을 치고 말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정글 속으로 흩어져 사라져버린 43명은 각자 알아서 숨어지내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흘러 8월이 되자 일본이 항복하고 만 것입니다.

그렇게 미군은 '일본이 항복했으니 도망간 일본군은 투항하라' 라고 적힌 전단을 루방 섬 정글에 살포했는데요.

 

43명 중 40명은 미군이 살포한 전단을 읽고 미군에 투항해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문제는 나머지 3명은 미군의 전단 내용을 믿지 않았던 것이죠.

그 세 명 중 한 명이 오노다히로 였고 오노다는 두 명의 동료와 정글에서 지내며 어처구니없게도 게릴라전을 계속 해댔습니다.

 

그러자 전쟁이 끝난 다음 해인 1946년 오노다와 부하 두 명을 구하기 위해 옛 부하들이 루방 섬까지 찾아가 어서 나와 일본으로 돌아가자며 몇 날 며칠을 소리쳤지만 오노다와 두 명의 부하는 간사한 미국군이 옛 부하들을 동원해 자신의 항복을 받아내려는 계략이라고 여겨 결국 나타나지 않았죠.

 

아직 홀로 전쟁 중이던 오노다와 일행은 정글 밖으로 빠져나와 필리핀 주민이 사는 마을을 습격해 마을 전체를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오노다는 생존을 위해 마을의 식량을 모조리 약탈해 가기도 했으며 여의치 않을 때는 서슴없이 주민들을 살해하기도 했죠.

 

이런 식으로 그는 약 30년 동안 필리핀 사람 30여 명을 살해했고 100여 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야자수 열매를 따던 필리핀인 소년을 토막 내 살해하기도 했는데요.

이때 그는 '거기 있었던 그들이 운이 없었던 것뿐'이라고 말했다고 하죠.

 

그는 정글에서 지내면서도 간간히 날아오는 전단이나 민가의 신문을 훔쳐봐 한국전쟁이 벌어진 것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믿지 않고 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관동군이 미군에게 반격을 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런 미친놈들에 의해 계속된 민간인 피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필리핀 정부는 일본 정부에 오노다 일행을 처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일본은 오노다의 형제를 루방 섬으로 보내 오노다를 설득하기도 했는데요.

오노다의 가족사진과 가족들이 보낸 편지를 전단으로 만들어 살포해 전쟁이 끝났으니 돌아오라고 호소했죠.

 

그러나 그것을 본 오노다는 더 큰 전투의지에 불타올랐는데요.

바로 불쌍한 가족들까지 동원해 자신의 항복을 받아내려는 미군의 계략이라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또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은 오노다 일행 3명은 계속해서 필리핀 주민들을 공격했기 때문에 필리핀 정부는 결국 이들을 토벌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렇게 토벌대를 섬으로 보내게 되었죠.

 

전쟁이 끝난 지 9년 만인 1954년에 남아있던 세 명 중 한 명인 시마다가 토벌대에 의해 사살되었고 그렇게 일제의 패잔병은 결국 두 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게릴라전을 펼쳤으며 지속적으로 필리핀 민가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는 암적인 존재들이었죠.

 

그러자 일본의 시민단체에서는 매년 루방 섬으로 사람을 보내 오노다를 찾았지만 그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러자 시민단체에서는 필리핀 일본대사관 이름으로 우편함을 설치 해놓고 일본에서 온 편지와 신문 등을 두고 갔지만 오노다는 이 마저도 미군의 함정으로 생각해 우편함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고 하죠.

 

또한 전쟁이 끝나고 20년이 지난 1965년에는 필리핀 마을을 약탈해 빼앗은 라디오로 전쟁이 끝났다는 뉴스를 들었지만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정글에서 나오는걸 거부했습니다.

이렇게 수십 년이 지나도록 필리핀 정글에 짱박혀 사는 패잔병에 대한 이야기가 일본에서 소문이 나자 일본인들은 그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오노다 구출 본부까지 결성되기도 했으며 오노다의 고등학교 동창생들까지 필리핀 현지로 데려가 추억의 교가를 부르게 하기도 했지만 오노다는 꿈쩍도 하지 않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리고 1972년에는 마지막 부하인 고즈카 까지 사망하면서 그는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단신으로 게릴라전을 열심히 수행하며 여전히 근처 민가들에게 많은 피해를 끼쳤죠.

그러던 1974년, 스즈키 노리오라는 탐험가는 그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그를 직접 만나 설득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즉시 루방 섬으로 향했는데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스즈키는 오노다를 만나게 되었고 그동안에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차분히 오노다에게 알려주었죠.

그러자 오노다는 그제서야 일본의 항복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함께 일본으로 돌아가자는 스즈키의 말에 또다시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는데요.

자신은 군인으로써 직속상관이 와서 항복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근무지를 이탈할 수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계속해서 설득을 했지만 완고한 그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고 결국 스즈키는 일본으로 돌아가 언론에 오노다가 현재 생활하고 있는 모습과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 등을 소개했죠.

일본 정부는 스즈키의 이야기를 듣고 오노다를 다시 일본으로 데려오기 위해 수소문 끝에 군을 전역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그의 옛 상관 다니구치 요시미에게 오노다를 설득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렇게 다니구치는 필리핀으로 날아가 오노다에게 투항 명령서를 건네주게 되었고 그날 밤 다니구치는 오노다로부터 밤새도록 30년 동안 모아놓은 루방 섬 정찰 및 전투 결과를 보고받았죠.

그리고 다음날 오노다는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일본도를 건네주며 정식으로 항복 의식을 취했습니다.

 

그는 투항 당시 30년 전 일본군 복장을 그대로 갖추고 있었고 30년 전 일본군에서 쓰던 99식 소총도 깔끔하게 정비되어 언제든지 사격이 가능했으며 500여 발의 총알과 대여섯 개의 수류탄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지니고 있던 일본도 역시 잘 갈았는지 칼날이 시퍼렇게 서있는 등 아직도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일본 제국주의 시절 군인의 모습으로 있었다고 하죠.

 

그렇게 30여 년간 그는 온갖 만행을 저질렀지만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은 오노다의 범죄를 사면해 주었고 22세에 일본을 떠났던 청년은 52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일본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패전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일본 국민들은 오노다를 보고 '살아있는 일본의 정신을 보았다' 라며 열광했고 '오노다야 말로 진정한 일본의 가치인 사무라이 정신을 가졌다' 라며 칭찬했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사실 그는 전범에 불과하고 수많은 필리핀 시민을 학살한 일개 범죄자일 뿐이었습니다.

망상에 사로잡혀 온갖 만행을 저질렀던 악질일 뿐이죠.

 

하지만 그는 일본으로 귀국 후 많이 발전을 한 일본을 보면서 옛날의 좋은 전통을 다 잃어버린 채 나약한 미국의 식민지가 되어 보인다고 말하며 개탄스러워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브라질로 결혼한 아내 마치에와 이민을 가 그곳에서 목장을 운영하였고 30년간 정글에서 누비던 경험 덕분인지 목장으로 큰 돈을 벌게 되었죠.

 

그리고 1984년에 일본으로 돌아와 자연학교를 설립하고 1996년에는 루방 섬을 다시 찾아가 현지 학교에 돈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쓰레기 인건 맞는게 아내와 함께 우익 활동가로 활동하면서 일본군 위안부의 책임을 부인하기도 했고 일본군이 자행한 난징대학살도 중국에서 조작한 것이라 주장하고 다녔죠.

그리고 그는 2014년 1월,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30년간 필리핀 정글 속에서 일본제국 군인으로 살며 온갖 피해를 끼쳤던 전범 오노다 히로는 일본 국민들에게는 사무라이 정신을 보여준 살아있는 영웅으로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여러 나라에서는 일제의 잔인한 범죄자에 불과할 것 같네요.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정글에서 30년이나 살았던 전범이자 살인마 오노다 히로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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