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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오키나와 학살 사건. 일본이 자국민에게 자행했던 악행을 덮기 위해 저지른 역사왜곡

by 사탐과탐 2022.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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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당시 미국과 일본은 오키나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군은 자국민들에게 말도 안되는 악행을 저질렀죠.
역시나 일본답게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또다시 역사왜곡을 하게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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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일본 오키나와를 가보신 적 있으신가요?

오키나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아름다운 휴양지라던지, 일본의 최남단에 있는 섬이라던지 맛있는 음식들, 해외여행 이런 것들이 떠오르는데요.

하지만 사실 오키나와에서는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일본군의 참혹한 악행이 벌어진 과거가 있었습니다.

 

더 역겨운 사실은 이런 일본군의 만행을 일본 스스로 감추고 왜곡시키고 있다는 점인데요.

최근 일본의 사회교과서의 내용 때문에 미국인들이 분노해 마지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 사회 교과서에는 태평양 전쟁에 대한 책임을 미군과 연합군에게 떠넘기는 내용이 들어있었고 이곳 오키나와에서 자신들이 행한 만행까지 미군의 탓으로 돌리려는 내용이 들어 있었던 것이죠.

 

아름다운 휴양지로만 알고 있던 오키나와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오키나와는 17세기 초까지만 해도 일본이 아닌 ‘류큐(琉球)' 라는 나라였습니다.

그들은 중국과 대만, 조선, 일본을 오가는 중계무역으로 번성을 이루었던 나라였죠.

그리고 중국 명나라와 무역을 활발히 했으며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던 나라였기에 오히려 일본보다는 중국에 가까운 나라였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다 일본이 1609년 류큐왕국을 침략했고 전쟁에서 패배해 그렇게 일본의 속국이 되어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죠.

시간이 흘러 19세기 메이지 시대에는 아예 오키나와현으로 강제로 편입되어 류큐왕국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오키나와는 일본이지만 일본이 아닌 애매한 곳이 되어버렸는데요.

 

그 이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이곳 오키나와에서 대규모 전투가 일어나면서 일어나면 안 되었을 잔인하고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게 되었죠.

미군은 일본의 영토였던 아오지마를 점령한 이후 일본의 본토로 쳐들어가기 위해 규슈 지역에 폭격을 가할 수 있는 오키나와섬을 다음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무려 18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이끌고 오키나와 섬으로 상륙을 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죠.

 

그렇게 1945년 4월 1일,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이던 더글라스 맥아더의 명령하에 미군과 연합군 18만 대군은 오키나와에 상륙을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군과 약 83일 동안 처절한 전투를 벌이게 되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당시 오키나와를 지키고 있던 일본의 제32군의 목표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일본 본토와 천황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이 더욱더 컸죠.

그러다보니 일본군 32군의 목표는 바로 최대한 시간을 버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군은 오키나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최대한 오랫동안 미군의 발목을 붙잡아 놓는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목표 아래 오키나와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하게 되었죠.

일본군은 오키나와의 주민들을 긴급 의용대로 징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린 소년에서부터 70대 노인까지 마구잡이로 일본군에 끌려가게 되었죠.

 

일본군의 잔학성은 여기서 나타나게 되는데요.

그들은 의용대로 끌고 온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폭탄을 건네주고 미군의 탱크로 뛰어들어 자폭하게 하거나 심지어 어린 여자아이들에게는 죽창을 손에 쥐여줬으며 전투 중 최전방에 그들을 세워 총알받이로 내몰았습니다.

 

그들은 앞에서는 미군들의 총알에, 뒤에서는 일본군의 총알에 맞아 죽어나가고 있었죠.

일본군의 이런 잔인하고 상상을 초월할 악행에 전 세계 전쟁 역사상 유례없는 말도 생겨났는데요.

그것은 바로 '인간방패(human shields)' 였습니다.

 

차마 아이들을 죽이면서까지 전투를 할 수 없었던 미군은 어떻게 국가가 이렇게까지 할 수가 있냐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고 그 정도로 이 인간방패의 참상은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잔인무도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던 일본군은 계속해서 후퇴를 거듭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더욱 끔찍한 짓까지 하게 됩니다.

 

일본군은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미군에게 붙잡히게 되면 "남자는 사지를 찢겨서 죽게 되고 여자는 강간당한 후 죽게 된다"라는 말을 하면서 그럴바에는 천황을 위해 영광스럽게 자결하라며 주민들에게 수류탄을 나눠줬죠.

만약 이를 거부하거나 도망칠 경우에는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 처형되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수류탄을 건네받은 주민들은 동굴 안에 단체로 모여 수류탄을 터트리기도 했고 불발일 경우에는 농약이나 극약을 먹으면서 그렇게 죽어갔죠.

더욱더 비극적인 사실은 수류탄이든 극약이든 죽기 위한 물품들이 다 떨어지게 되자 살아남은 사람들은 가족들끼리 돌이나 죽창, 몽둥이, 농기구 등을 사용해 부모가 자식들을 죽이고 남편이 아내를 죽이는 너무나도 끔찍한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심지어는 절벽에서 뛰어내려 사망한 사람도 수없이 많았죠.

그렇게 오키나와 주민들은 자국의 군대에 의해 영광스러운 자결을 가장한 학살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일본군은 오키나와 방언을 사용하는 원주민들은 미군의 스파이로 몰아 죽이기도 했죠.

 

거기다가 미군에 의해 몰릴 대로 몰린 일본군은 주민들과 함께 동굴에 숨어들었는데요.

미군에게 들킬 것을 염려한 일본군은 세 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이 혹시나 울까 봐 입을 틀어막아 살해했고, 목을 조르거나, 주사를 놓아서 죽이기까지 했죠.

그런 지옥 같은 현장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주민들은 차라리 미군에게 맞아 죽겠다고 동굴 밖으로 뛰쳐나왔는데요.

 

그들을 막고 있던 건 미군이 아니라 일본군이었다는 데에서 더더욱 배신감을 느꼈고, 이렇게 동굴 밖으로 뛰쳐나온 사람들은 오히려 살아남았다고 하죠.

이때 살아남은 한 할아버지는 가족들을 죽이고 나서 자신도 죽으려고 하다 실패해 살아남게 되었고 평생을 씻을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군이 굳이 주민들의 죽음을 강요한 이유가 더욱더 가관인데요.

그 이유는 바로 오키나와 주민들에 대한 차별과 불신 때문이었다고 하죠.

일본군의 수뇌부들은 오키나와 사람들의 천황에 대한 충성심이 낮아 미군의 포로가 되면 군사 기밀이나 군사시설의 위치 등을 발설할 것을 두려워했고 그래서 오키나와 주민들을 해쳤던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게 83일간 계속되었던 오키나와 전투는 1945년 6월 23일, 일본군 제32군 사령관 우시지마 미치루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일본군이 패전하면서 끝이나게 되었죠.

그렇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무참히 죽임당한 이 사건이 끝나고 두 달도 안 되어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군의 강압에 못 이겨 의용군이 되어 최전방으로 몰린 주민들의 수와 일본군들에게 강요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주민들의 수는 14만 명이 넘을 것이라 추산하고 있죠.

이는 미군 전사자 1만 명과 일본군 전사자 8만 명을 합친 수보다 월등히 많은 규모이고 당시 오키나와 인구의 4분의 1이 그렇게 죽어갔다고 보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오키나와는 잠깐 미국의 통치하에 있다가 1972년이 되어서야 다시 일본으로 편입되었는데요.

그래서 현재까지도 오키나와에는 많은 수의 미군기지가 있다고 하죠.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입니다.

 

일본의 사회 교과서에 '미군이 상륙해서 주민들이 집단으로 자결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라고 적고 있는 것이죠.

바로 주민들의 죽음은 미군탓이다라고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포로가 된 오키나와 주민들이 미군에 협조할 것이 두려웠던 일본군에 의해 강압과 강요에 못 이겨 학살 같은 자결을 했던 것인데 말이죠.

 

이들은 자국의 역사조차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당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오키나와 주민들도 아직 살아있고 미군의 기록도 남아있기도 하지만 일본 정부와 일본 우익세력은 그것들은 공식적인 일본군의 문서 기록이 아니라며 인정하지 않고 발뺌하고 있는 상황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심지어 처음에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집단 자결 자체를 교과서에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오키나와 주민들의 거센 항의와 요구에 마지못해 싣게 되었고 그런데 그 짓을 강요한 일본군은 쏙 빼버리고 집단적인 자살이 있었던 건 맞다 라는 식으로 언급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오키나와 주민들은 집단 소송을 벌였고 대규모 집회를 여는 등 거세게 반발하자 그제서야 '일본군이 관여했다' 라는 문구를 집어넣기는 했지만 일본군이 강제로 시켰다 라는건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하죠.

 

그리고 이 오키나와 전투에는 강제로 징용된 한국인도 약 1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고 현재 오키나와에 조성되어 있는 평화공원에는 고작 600여 명의 한국인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자꾸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일본이 제국주의 시절, 자신들이 행했던 악행을 사실대로 털어놓는 그런 날이 올까? 하는 의문이 드네요.

일본 오키나와에 있었던 일본군이 자국민을 살해한 사건 오키나와 학살사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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