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다 괴벨스는 세계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를 광적으로 짝사랑했던 여인이었습니다.
히틀러가 시켜서 사랑하지도 않는 나치의 선전장관이던 요제프 괴벨스와 결혼까지 했었죠.
히틀러는 이후로도 정치적으로 마그다를 이용했었는데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최악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를 사랑한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광적으로 그를 사랑했고 히틀러가 시킨 일은 모두 다 할 정도로 그를 추종했죠.
그녀는 바로 나치의 선전장관이던 요제프 괴벨스의 아내 마그다 괴벨스였죠.
그녀는 어쩌다 이런 역사에 악마로 이름을 남긴 이들과 결혼도 하고 사랑도 했던 것일까요?
마그다는 1901년 11월,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복한 엔지니어 집안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3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긴 했지만 성격이 매우 밝고 활달했기에 엄격한 카톨릭 학교에 입학했어도 학교생활도 잘하고 똑똑한 아이라고 칭찬이 자자했죠.
그렇게 잘 자라온 마그다는 20세가 되던 해 나이가 20살이나 차이가 나던 독일 최고의 재벌 귄터 칸트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둘은 아들까지 낳았지만 사업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남편 때문에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죠.
결혼을 하고 자식도 있었지만 외로움을 달랠 길이 없었던 그녀는 집으로 많은 사람들을 불러 호화스러운 파티를 자주 열었는데요.
허구헌날 열린 파티로 인해 많은 돈을 펑펑 써댔고 이러한 이유로 워낙 검소한 삶을 살았던 귄터와 자주 충돌이 발생하다 보니 그러다 결국 둘은 이혼을 하고 말았죠.
그렇게 이혼의 아픔을 겪은 그녀는 앞으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를린 체육관에서 나치당의 집회가 열리자 그녀는 친구와 함께 우연한 계기로 그 집회에 참가를 하게 되었죠.
거기서 '국가를 위해서라면 결혼도 하지 않겠다' 라는 히틀러를 보고 나서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은 마그다는 히틀러에게 흠뻑 빠져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그녀는 나치당에 지원했으며 히틀러가 참석하는 집회는 모두 쫓아다니기 시작했고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그의 연설과 행동을 보면서 점점 더 빠져들기 시작했죠.
그러다 마그다는 요제프 괴벨스의 비서로 일하게 되면서 꿈에 그리던 히틀러를 실제로 만나고 친해질 수 있었는데요.
그러나 얼마 후 마그다는 행복한 아리안족 가정을 만들어 달라는 히틀러의 요청에 1930년 12월, 자신이 사랑한 히틀러가 아닌 요제프 괴벨스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그에게 완전 푹 빠져버려 히틀러가 시키는 건 모두 다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죠.
하지만 마그다는 행복했습니다.
거의 매일 밤 나치당의 간부들과 히틀러가 괴벨스 집에 찾아와 회의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기도 했는데 그런 식으로나마 그를 자주 볼 수 있었던 이유에서였죠.
또한 괴벨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여섯 명의 아이들 이름도 히틀러에 H를 따서 이름을 지었을 정도였습니다.
히틀러 역시 그녀와 괴벨스의 자식들을 일부러 시간을 내서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할 정도로 친자식처럼 굉장히 사랑해 줬다고 하죠.
그렇게 히틀러와 마그다 서로 매우 가까워진 사이가 되자 히틀러는 그녀를 나치당의 영부인격으로 삼아 집회라던지 회의라던지 어디든 데리고 다녔습니다.
게다가 나치를 찬양하는 선전물에도 행복한 모습의 그녀와 괴벨스 부부가 출연하기도 했죠.
그러나 사실 그들은 말 그대로 쇼윈도 부부였습니다.
히틀러를 자주 만날 수 있었던 것만큼은 좋았지만 괴벨스와의 결혼생활 자체는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는데요.
그 이유는 애초에 히틀러의 부탁으로 결혼을 한 것이었고 괴벨스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기도 했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외도를 눈치챈 마그다가 괴벨스에게 따지자 오히려 적반하장격으로 그는 외도녀와 헤어질 수 없다며 마그다를 다그쳤죠.
이에 제대로 열받은 그녀는 남편의 불륜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는데요.
나치의 선전장관의 더러운 사생활을 폭로할 수 없고 이혼을 할 수도 없다는 히틀러의 말에 그녀는 모든 걸 포기하고 그렇게 히틀러가 원하는 대로 그냥 사는 수밖에 없었죠.
시간이 흘러 1939년 9월이 되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면서 그녀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는데요.
결국 1943년 나치 독일군은 스탈린 그라드 전투에서 패배해 버렸고 이듬해에는 연합군이 독일 영토 내로 진격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1945년, 소련군은 베를린을 포위해버리자 마그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총리관저 지하에 있는 방공호로 피신했죠.
그러자 히틀러와 괴벨스는 마그다에게 독일 남부로 도망치라고 했지만 그녀는 그들과 함께 죽기를 각오해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소련군은 총리관저에 맹공격을 퍼부었고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죠.
다음 날인 5월 1일, 괴벨스는 잠든 아이들에게도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주사를 놓은 후 마그다와 정원에 걸어 나와 마그다를 먼저 총으로 쏘고 나서 자신에게도 방아쇠를 당겼고 그렇게 둘은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사상 최악의 독재자에게 반해버려 평생을 그에게 끌려다니며 시키는 건 다하면서 이용만 당했던 인생을 살았던 것 같은데요.
스스로는 악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치에 협력했던 것 자체가 큰 죄일 것입니다.
어쨌든 나치와 히틀러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용서받지 못할 짓을 행하던 그런 사람들이었으니까요.
히틀러를 사랑해 그가 원하는 대로 이용만 당하다 결국에는 그의 몰락과 함께 자신도 몰락해 버렸던 마그다 괴벨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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