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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초야권. 중세시대 영주가 모든 신혼부부의 신부와 첫날밤을 먼저 보내는 미친 권리

by 사탐과탐 2021.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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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야권은 중세시대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영주만의 특권이었는데요.
결혼세를 못 내게 되면 신부는 첫날밤을 남편이 아닌 영주와 보내야 했었던 권리인 것이죠.
이게 말이 되나 싶은 중세시대의 초야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중세유럽에는 특이한 세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결혼세'이죠.

말 그대로 결혼할 때 내는 세금이었는데요.

 

당시에는 영주의 허락 없이는 결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서는 결혼세를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농민이나 평민들이 이런 세금을 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죠.

 

그래서 세금을 받는 영주들은 초야권이라는 것을 만들었고 결혼세를 내지 못하는 신부의 첫날밤을 영주와 보내게 함으로써 결혼세를 대체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초야권은 바로 '첫날밤에 대한 권리'라는 뜻으로 신부의 처녀성을 영주가 취하는 어처구니없는 권리인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초야권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수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배경으로 한 길가메시 서사시에 등장하는데요.

길가메시가 초야권을 주장하자 사람들이 신에게 도움을 요청해 신들은 길가메시를 벌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영주가 신부와 첫날밤을 보내면서 신부가 확실히 처녀였다고 확인 및 보증하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도 있죠.

바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인 영주에게 신부를 맡겨 신부가 과거에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신부가 그러했다면 신랑에게 결혼을 하지 말도록 말리기 위함이었다는 것이죠.

 

아무튼 이 초야권을 거부하면 벌금을 내야 했는데 1538년 스위스 주 의회의 포고문에 따르면 신랑의 벌금은 4마르크 30페니히를 내야 했다고 정해져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독일에서는 초야권을 거부한 신랑은 담요나 옷 상의 등을 벌금으로 바쳐야 했고 신부는 자신의 엉덩이가 들어가는 크기의 냄비나 자신의 엉덩이와 같은 무게의 치즈를 영주에게 냈어야 했죠.

 

이 벌금을 바치지 않으면 결혼 승인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중세유럽의 일부 지역의 경우에는 너무나 가난하거나 빚이 많았던 농민에 한해서만 초야권을 사용할 수 있다 라고 명시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결혼세를 내면 초야 의무를 대체할 수 있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초야권이 중세유럽 전역에 걸쳐 있던 권리는 아니었던것 같은데요.

이 중세시대 초야권에 대해서는 있었다 없었다 하며 여전히 팽팽하게 대립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기도 하는데요.

 

이 초야권이 엄청나게 과장되고 확대, 재생산된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가 바로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시기이죠.

당시 혁명을 성공 시키고 귀족들과 왕족들을 시민의 적으로 몰아가기 위해 초야권이라는 기득권들의 성착취는 시민들을 선동하기에 안성맞춤인 소재였던 것입니다.

 

초야권이 실제 존재를 했든 안했든 지금의 초야권에 대한 수많은 썰들은 이때 만들어지고 고착화 되었다고 보면 되죠.

당시 초야권 같은건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이러한데요.

일단 초야권이 있었다는 근거가 되는 기록이 없다시피 한 것입니다.

 

다만 일부 지역에는 교회에서 발급한 면죄부 종류 중에 초야권을 행사한 사람에게 준 면죄부가 있어서 있는 곳도 있었다고 여겨지고 있죠.

그러나 만약 초야권이 존재했다고 해도 과거 중세시대의 평민들은 요즘 사람들처럼 깔끔하고 아름답게 꾸미지도 않았고 잘 씻지도 못했으며 먹고살기 위해 아둥바둥 하던 사람이라 굳이 영주나 귀족들이 초야권을 행사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름난 가문들에게는 자기 가문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 있기도 한데 그런 기록에서 초야권에 대한 기록은 매우 적고 평민들 자체를 아주 미개한 존재라 여기면서 거의 짐승과 같이 보고 경계를 했으면 했지 그들을 매력적인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죠.

거기다가 영주 입장에서는 굳이 더러운 평민 따위와 고귀한 귀족인 자신이 살을 맞대며 관계를 맺어줘서 그 평민 여자에게 은총을 내리는 일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리고 만에 하나 마음에 드는 평민 여자가 있으면 그녀의 부모를 꼬시던지 아니면 본인을 꼬시던지해서 돈 좀 주고 첩으로 삼으면 되었으며 지독히 가난한 평민 입장에서는 영주가 자신의 딸을 첩으로 삼는다고 하면 옳다구나 하고 영주에게 딸을 보내 가족들이 다 먹고 살수 있는 돈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이득이죠.

 

그러니 영주는 굳이 위생이 좋지 못하고 성병의 위험이나 후계자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는

초야권 같은걸 행사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세에는 전 유럽이 기독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교회에서 해주는 신성한 의식인 결혼식 전날에 영주가 신부의 첫날밤을 빼앗았다 라는것 자체가 기독교 10계명에 위배된다는 것이죠.

 

당시 교회의 힘이 막강한 시대여서 그랬다가는 영주는 파면을 당하거나 분노한 평민들이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초야권 자체는 거의 성폭행과 다름이 없어서 평민들의 반발을 사 반란이 일어날 우려도 있었기 때문에 굳이 이런 찝찝하고 위험한 일을 할 이유도 없었구요.

 

이러저러한 이유로 일부면 몰라도 유럽 전역에 걸쳐 초야권이 있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죠.

그래서 현대 역사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중세에 있던 결혼세에 대한 오해가 초야권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야권이 실제로 존재했고 실행되기도 했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바로 다른 영지의 남자에게 우리 영지의 여자가 시집을 가게 되면 우리 영지의 노동력이 상실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일정 금액의 세금을 부과했다는 것이죠.

이 세금을 결혼세라고 불렀는데 여자 쪽 영지의 영주는 그렇게 결혼세를 부과하면 대개 남자 쪽 영지의 영주가 결혼세 일부를 부담하고 나머지는 신랑이 되는 남자가 부담했다 라는 것이죠.

 

하지만 그마저 부담할 능력이 되지 않을 때는 여자 쪽 영주가 초야권을 행사한대신 결혼세를 받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같은 영지 내의 평민들끼리 결혼을 하는 경우에는 노동력 상실이 일어나지 않으니 결혼세를 부과하지 않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런데 확실히 중세에 결혼세가 존재하긴 했었는데 영주들이 결혼세를 안 내려는 농민들을 협박하기 위해 이 초야권을 들먹이기 시작했다는 말도 있는데요.

실제로 1500년대 말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한 영주는 초야권을 근거로 결혼을 앞둔 신부에게 성희롱을 했다가 농부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사료가 남아있다고 하죠.

 

그리고 벨기에와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등에서 15~16세기에 만들어진 법규를 보면 초야권을 연상시키는 내용들이 많다는 점이 그것이 실제로 있었다는 걸 말하고 있죠.

이렇듯 초야권은 중세 유럽에서 실제로 자행된 일은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기도 그런게 몇몇 지역에서는 확실히 존재 했다고 보는 근거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중세 유럽에서는 초야권이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단지 많은 중세 사람들이 초야권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고 하죠.

하지만 초야권 때문에 사건이 발생해 영주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일이나 초야권 때문에 폭동이나 반란이 일어났다는 기록 또한 없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 초야권처럼 폭압적이고 어처구니없는 일도 없기 때문에 많은 문학작품이나 문화작품의 소재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았죠.

그런데 실제로 존재했다면, 사랑하는 아내와의 첫날밤을 권력가에게 빼앗긴다는게 굉장히 충격적이긴 하네요.

중세시대에 있었던 충격적인 문화, 초야권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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