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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정조대. 중세시대 남편들이 며칠에서 몇 년 동안 집을 떠나 있어야 할 때 아내들에게 채웠던 족쇄

by 사탐과탐 2021.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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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에 남편들은 며칠씩 집을 떠나있을 때 아내들에게 이 정조대란 것을 채웠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 재미있게 봐주세요.

 

 

예전에 중세 유럽에는 코드피스라는 남자들만의 독특한 거시기 가리개(?) 같은 것이 있었는데요.

이번에는 더 황당무계한 아이템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오늘 이야기할 이것은 바로 '정조대'라는 것이죠.

 

정조대란 여성의 중요 부분을 막을 수 있는 잠금장치인데요.

말 그대로 정조나 순결, 동정을 지키기 위해 성행위나 자위행위를 못하게 하려고 만든 것입니다.

그 외에도 성폭행이나 성적 유혹 행위를 막기 위한 목적도 있었죠.

 

정조대의 유래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많은 주장들이 있는데요.

고대 그리스에서 정조대가 처음 시작되었다고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여성들을 겁탈하려는 몹쓸 남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였다고 하죠.

당시 정조대의 재질은 두꺼운 가죽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자기 소유의 여자 노예들의 노동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여자 노예가 임신을 하면 안 되었기 때문에 이 정조대를 착용시키기도 했죠.

이런 정조대는 시간이 흘러 중세가 되자 이때부터는 대장장이에게 자물쇠를 채울 수 있는 쇠로 된 정조대를 주문해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은 그냥 넘어갔지만 아내가 바람피우는 것은 강력하게 금지시키고 있었죠.

하지만 성욕이라는 것이 금지 시킨다고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라서 아내들의 불륜은 오히려 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중세 유럽의 귀족 남자들이 일 때문에 장기 출장을 가거나 사냥을 갈 때 또는 전쟁터로 떠날 때, 영주들이 자신의 영지를 둘러볼 때 등 최소 며칠에서 몇 년까지 집을 떠나 있을 경우에 아내의 외도를 막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정조대를 아내가 착용하면 그걸 자물쇠로 잠근 뒤 그 열쇠는 남편이 보관했었는데 그렇다보니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지 않은 채 안심하고 외출을 했었습니다.

 

역사적인 근거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정조대의 유래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십자군 전쟁 때 만들어졌다는 것인데요.

중세 유럽에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자 얼마나 오랜 기간이 걸릴지 모르는, 전쟁터로 떠나던 기사들은 아내들이 행여나 바람을 피울까 봐 정조대를 제작해서 아내에게 채웠다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고통을 참아가며 남편이 돌아와 자물쇠를 풀어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전쟁터에서 죽기라도 하면 순교자가 되어 교회에서는 죽은 기사의 부인의 정조대를 특별히 풀어주기도 했죠.

 

만약 남편의 생사가 확인이 안된 여성들은 정말 최악이었는데요.

남편이 돌아오거나 죽음이 확인되기 전까지 계속 정조대를 차고 있어야 했기에 가난한 여성일 경우 정조대가 채워진 채로 고통 속에 살다가 사망하기도 했었죠.

 

나중에는 디자인이 점점 더 화려해지기 시작했는데요.

금과 은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아름다운 장식품이나 조각 등으로 정조대를 장식하기도 했죠.

그러다보니 정조대의 가격은 굉장히 비싸지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정조대를 주로 이용했던 고객은 바로 돈 많은 상인들이나 귀족, 왕족들이었는데요.

그래서 당시 귀족과 왕족의 남성들은 순결한 여자와 결혼을 원했기 때문에 여성들의 순결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이 정조대가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귀족 가문 처녀의 어머니는 딸이 어릴 적부터 정조대를 채워 길렀는데 정조대를 채워 애지중지 기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며 사윗감이 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통과한 남자에게 결혼식 당일 정조대의 열쇠를 건넸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아무튼 정조대를 풀려면 남편이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열쇠가 필요했는데요.

그렇다보니 화장실을 갈 때도 정조대를 벗지 못했었습니다.

아내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정조대는 여성에게 정말로 좋지 않은 악영향을 끼쳤죠.

 

정조대에 피부가 쓸리기도 했고 정조대가 채워진 그 부분이 가려워서 그 은밀한 곳을 문지르다가 피부에 물집이 생기거나 심지어는 욕창이 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정조대에는 작은 구멍이 두 개가 뚫려 있었는데 그 구멍의 주위에는 뾰족한 가시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손가락이든 무엇이든 그곳에 넣었다간 찔리거나 긁혀 큰일이 날 수도 있는 모양이었죠.

 

이 구멍의 용도는 바로 대, 소변을 보는데 사용되는 용도였기 때문에 위생에 있어서는 최악이었습니다.

소변을 봤을 때 제대로 흘러나가지 못했고 대변은 거의 정조대 안에서 난리가 났으며 풀 수도 없었기 때문에 처리하기도 굉장히 어려웠죠.

 

거기다가 중세시대엔 목욕을 하면 모공이 넓어져 역병이 쉽게 침투한다고 생각했고 목욕을 하면 죽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잘 씻지도 않았는데 그 덕분에 정조대는 완전 세균 덩어리라고 생각해도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정조대 안에 머물러 있던 대변에 있는 세균으로 인해 피부병이나 질염, 골반염, 방광염, 요로 감염 등에 걸리기 쉬웠죠.

그만큼 비위생적이고 비인간적이던 정조대를 아내에게 그리고 딸에게 채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돈 많은 귀족 남자의 아내들은 그대로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정조대를 만들어낸 대장장이들을 찾아가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열쇠를 만들어 달라고 한 것이죠.

 

덕분에 대장장이들은 많은 돈을 벌수 있었는데 열쇠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으면 엄청나게 비싼 금액을 받고 열쇠를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귀족 부인들은 돈을 많이 들여서라도 정조대 자물쇠를 푸는 열쇠를 만들었는데요.

 

아내들은 남편이 떠나고 나면 곧바로 열쇠를 주문해 정조대에서 해방되어 마음껏 놀았죠.

그리고 남편이 돌아올 때가 되면 다시 정조대를 채워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감쪽같이 연기를 했던 것입니다.

 

아내의 외도를 막기 위해 정조대를 만들어 채우는 남편이나 또 그 정조대를 풀어 외도를 한 아내나 정말 못 말리는 부부가 많기도 했나 보네요.

현대 영어에서 정조대라는 단어는 과잉보호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너무 오버해서 무언가를 보호하려고 어이없는 행동을 하거나 그런 사람을 조롱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현재까지도 유럽에서는 정조대를 주문 생산하고 있는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제품은 자물쇠를 채울 수도 있지만 전자 장치를 결합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라고 하죠.

 

남자들이 함부로 바람을 피우지 못하게 하기 위한 남자들의 정조대도 여전히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걸 사는 사람이나 사용하는 사람이나 참 대~단한 사람들인 것 같네요.

 

코드피스와 함께 유럽에 있었던 독특한 문화, 정조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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