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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알카포네. 전설적인 마피아가 불우이웃을 돕고 유통기한을 만들어 신선한 우유를 공급하게 된 사연

by 사탐과탐 2021.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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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포네는 미국의 전설적인 마피아 '시카고 아웃핏'의 두목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수많은 불법적인 범죄를 일삼았던 범죄자이었지만 의외로 불우이웃을 돕기도 하고 신선한 우유를 공급하기 위해 유통기한을 만드는데 힘썼는데요.
갱스터인 그가 왜 그랬을까요?

 

 

오늘 이야기할 인물은 1920년대에 미국을 주름잡던 최악의 갱단 '시카고 아웃핏'의 두목 '알 카포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굉장히 독특한 인물인데요.

 

갱단 두목으로 있으면서 온갖 불법 행위로 돈을 벌어 구호단체에 기부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우유 유통에까지 사업을 확장하는데 우유 유통기한을 만들기도 하는 등 독특한 행보를 보이던 인물이죠.

그러다보니 그는 '오늘날의 로빈후드'라고 지칭되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였는데요.

1899년 1월 17일, 알 카포네는 미국 뉴욕시에 있는 브루클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카톨릭계 학교를 다녔는데 굉장히 엄격했던 규칙을 적응하지 못해 결국 교사를 구타하는 사건을 벌여 14세의 나이에 퇴학을 당하게 되었죠.

 

이후 사탕을 판매하기도 하고 볼링장에서 일을 하며 지내다가 갱단 생활을 하던 '자니 토리오' 를 만나 그를 멘토로 삼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알 카포네 역시 그렇게 갱단의 멤버가 되었는데 브루클린에 있는 나이트클럽 문지기를 하게 되었죠.

 

그러다 한 여성과 시비가 붙어 그 여성에게 욕지껄이를 해댔는데 그 여자의 오빠가 갑자기 그를 공격했고 얼굴 왼쪽에 세 줄의 칼자국이 생겨버렸습니다.

그러자 알 카포네는 흉터 난 얼굴이라는 뜻의 '스카페이스'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죠.

그는 그 흉터를 부끄럽게 여겼는지 사진을 찍을 때면 왼쪽 얼굴은 감추었고 사람들이 물을 때면 전쟁 중 생긴 흉터라고 둘러대기도 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자니 토리오는 당시 시카고에서 100개 넘는 매춘소를 운영하던 빈첸조 콜로시모의 처조카였는데 콜로시모는 토리오를 시카고로 불렀고 그렇게 그는 시카고로 향하게 되죠.

알 카포네 역시 멘토이던 토리오를 따라 뉴욕을 떠나 시카고로 향하게 되었으며 그의 본격적인 갱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콜로시모가 누군가에게 죽임당하면서 그의 거대한 조직을 토리오가 차지하게 된 것이죠.

 

1920년 미국에서는 금주법이 시행되면서 이후 토리오와 알 카포네는 밀주와, 도박, 매춘 등으로 돈을 벌며 조직의 규모를 키우기 시작했고 조직이 커가면서 '딘 오배니언'이 두목으로 있던 '노스사이드 갱'과 경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딘 오배디언은 토리오를 너무 죽이고 싶어 했지만 그를 죽이면 갱들끼리 큰 전쟁을 치뤄야 했기 때문에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죠.

 

그러나 결국 딘 오배디언의 모략으로 인해 시카고 아웃핏과 노스사이드 간의 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자니 토리오는 엄청난 부상을 입지만 결국 죽지는 않고 살아남게 됩니다.

하지만 토리오는 은퇴하기로 마음을 먹고 알 카포네에게 조직을 물려주게 되었죠.

 

이후 알 카포네가 이끄는 시카고 아웃핏 갱단은 더 가열차게 도박, 매춘 등 여러 사업을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고 특히나 밀주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게 되는데 비밀리에 생산하는 술 이외에도 다른 갱들과 손을 잡고 캐나다산 주류를 사들여 계속해서 술을 팔아먹었으며 1927년에는 '1년 수입이 1억 달러인 시민'으로 기네스북에 등재 되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게 벌어들인 자산의 일부를 시카고의 정치인들과 판사, 검사들에게 뇌물로 사용했고 심지어는 시카고 시장 윌리엄 톰슨도 알 카포네에게 뇌물을 받기도 했죠.

이후 알 카포네는 시카고 전역을 장악하였고 정치계와 법조계 뿐만 아니라 경찰에까지 영향력을 뻗기 시작했으며 그러다보니 이 시카고 아웃핏 갱단은 법적인 조치는 거의 받지 않으면서 불법적인 일들도 자유롭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엄청난 재력을 펑펑 쓰기도 했는데요.

항상 맞춤 의류를 입고 비싼 시거를 마음껏 피기도 했으며 비싸고 맛있는 음식에 온갖 귀금속을 여자들에게 선물하기도 하는 등 사치스럽고 방탕한 삶을 살았죠.

그러다보니 언론으로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기 시작했으며 그럴때마다 "자신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 주는 사업가다" 라고 하면서 자신의 유명세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거기다가 대공황이 미국을 덮쳤을 때는 무료 급식소를 열어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기도 했죠.

그는 범죄조직을 이끌고 있긴 했지만 시카고 지역 사람들의 민심을 얻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기도 했고 앞으로 사업을 이끌어 나가는데 있어서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까지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법을 어기는 사업들을 하기 때문에 언제 폭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민들까지 그들에게 등을 돌리면 그들이 발 붙일 곳마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었죠.

어쨌든 이때까지만 해도 알 카포네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헨리 포드'와 함께 시카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리기까지 했죠.

 

하지만 어쨌든 그는 경쟁 조직인 노스사이드 갱의 암살 위협을 항상 받고 있었고 그러다보니 양복 자켓 안에 방탄조끼를 입고 다녔다고 합니다.

또한 그의 리무진 차는 큰돈을 들여 방탄차량으로 만들었다고 하죠.

어느 날 그는 호텔에서 식사를 하는 도중 노스사이드 갱의 습격을 받게 되었고 다행히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죽을 수도 있었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거기다가 노스사이드 갱은 시카고 아웃핏의 주류 수송 트럭을 습격하기도 하고 시카고 아웃핏 쪽 사람들을 암살하기도 했었죠.

그러자 1929년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인 이날에 시카고 아웃핏의 조직원이 노스사이드 갱의 창고에 쳐들어가 노스사이드 조직원 7명을 죽인 일이 벌어졌는데 이는 알 카포네가 시킨 시카고 아웃핏의 보복이었다고 다들 생각했지만 증거가 없었고 그동안 뿌려놓은 뇌물 덕분인지 이 일로 죄를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밀주, 매춘, 도박 사업으로 큰 돈을 벌고 있었지만 대공황 이후 금주법이 폐기될 분위기가 돌자 알 카포네는 다른 사업에도 눈을 돌렸는데 그것은 바로 우유를 생산, 유통하는 사업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매일 찾는 상품을 취급해야 한다며 우유사업을 선택한 것이죠.

당시 우유 생산과 유통은 굉장한 수요가 있었던 사업인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알 카포네는 자신들이 밀주를 팔던 판매 기술들을 이 우유사업에 접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우유 생산과 유통 사업은 전혀 체계화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우유의 품질이 너무 떨어졌었는데요.

우유를 배달하던 배달원들도 상온에 우유를 방치하기도 하고 손수레나, 마차 같은 걸로 느릿느릿하게 배달해 우유가 상하기 일쑤였죠.

 

게다가 우유가 상해 색깔이 변질되기라도 하면 그 우유에 밀가루나 석회가루를 넣어 다시 하얗게 만든 뒤 팔았으며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써 어떤 국회의원은 "조금 상한 우유는 오히려 몸에 좋을 수도 있다" 라는 개소리를 지껄이기도 했죠.

그만큼 썩어있던 낙농업계에 알 카포네가 발을 들인 것입니다.

알 카포네는 조직원들을 동원해 목장을 반강제로 헐값에 사들였으며 우유의 생산과 유통을 장악해 나갔습니다.

 

어떤 목장에서 상한 우유를 납품하거나 이물질을 넣은 우유를 유통하기라도 하면 그 목장을 담당하던 조직원에게 그 문제의 우유를 다 마시게 했고 그런 식으로 우유가 고품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관리했죠.

또한 밀주 사업을 할 때 전국에 있던 매장들과 유통망 그리고 유리병을 만들던 공장, 냉장 수송차를 이용해 우유를 신선하게 보존해 각지로 유통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우유 사업을 자신이 독점하기 위해 또다시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뿌리기 시작했으며 우유의 유통기한 표시를 법제화하는 데에 정치인들을 움직였죠.

이후 우유의 유통기한 표시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유통기한을 표기하는 기계를 미리 준비해 놓았던 알 카포네는 다른 경쟁사들이 유통기한 표기를 대량으로 하는 방법을 마련하느라 우왕좌왕할 때 순식간에 우유 유통망을 독점해 버렸습니다.

 

거기다가 유통기한 표시 기계도 다른 우유 생산자들에게 팔아먹어 돈을 벌었죠.

알 카포네 덕분에 각 가정에서는 안전하고 상하지 않은 신선한 우유를 공급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알 카포네의 우유사업은 불과 3개월 만에 망할 위기에 처해지는데요.

이유는 그가 체포되고 만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알 카포네를 체포한 건 미 재무부 수사관 '엘리엇 네스' 였습니다.

워낙 많은 뇌물을 뿌려댔기에 각종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요리조리 잘 빠져나갔던 알 카포네는 결국 탈세 혐의를 적용해 구속하게 된 것이죠.

그렇게 그는 탈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11년의 금고형을 선고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엄청난 금액의 과태료와 그의 자산 또한 추징되었으며 그때 그가 타고 다니던 방탄 리무진 차량도 몰수되었죠.

 

그의 방탄차는 그대로 보관만 하고 있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서 루스벨트 대통령의 경호를 위해 알 카포네의 방탄차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그는 1934년 8월, 샌프란시스코 연안의 섬에 있던 알카트라즈 교도소에 갇히게 되었고 그는 당시에는 불치병이었던 매독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건강마저 급격히 악화되었죠.

 

그렇게 5년의 시간이 지난 1939년 11월, 가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왔지만 매독으로 인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는 재기할 수 있는 힘을 다 잃어버렸고 조용히 남은 여생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뇌출혈과 폐렴 등 많은 병을 앓다가 1947년 1월 25일 심장 마비로 사망하게 되었죠.

 

그가 이끌던 시카고 아웃핏은 시카고의 대표 갱단이었고 이 조직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2011년 런던에서는 그가 사용했던 38구경 리볼버 권총이 경매에 나와 1억 1600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으며 2021년에는 후손들이 그의 유품 174점을 경매에 부쳤는데 다이아몬드가 장식된 파텍필립 회중시계, 귀금속, 가구, 사진, 편지 등이 36억 원이 넘는 금액에 낙찰되었다고 하죠.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줄무늬 정장에 페도라를 삐딱하게 쓴 조폭들이 많았는데 바로 알 카포네의 사진을 보고 따라 입은 거라고 합니다.

20세기에 가장 악명 높고 유명했던 갱단 두목이었던 알 카포네는 이후로도 수많은 영화, 만화, 문학작품 등에 등장하기도 했죠.

 

1920년대 미국 시카고를 주름잡던 최악의 갱단 시카고 아웃핏의 보스, 알 카포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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