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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번쾌. 유방이 허튼짓하면 항상 등장해 그를 저지(?) 시켰던 유방의 최측근

by 사탐과탐 2023.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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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이 허튼짓하면 항상 등장해 그를 저지(?) 시켰던 유방의 최측근, 조조의 허저 유비의 장비 포지션, 항우와 비견될 만큼 괴력의 소유자. 번쾌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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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산기개세라는 말은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다라는 말인데요

이 역발산기개세는 바로 항우를 두고 한 말입니다

항우는 50만이 넘는 유방의 군대를 단 3만명의 병력으로 초토화 시켜버릴 만큼 엄청난 무력을 가진 인물이었죠

그런데 유방의 부하에도 항우와 비견될 만큼의 괴력의 소유자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번쾌 입니다

 

번쾌는 과거, 개를 전문으로 도살하던 개백정이었는데 유방과 친한사이였다고 하죠

그러다 동네 부자이던 여공이 번쾌가 풍기는 범상치 않은 관상과 기운을 보고 자신의 딸 여수를 번쾌에게 시집보냈습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여공의 딸 중 한명이 바로 유방의 아내 여치였는데 여치의 여동생이 번쾌에게 시집을 가면서 유방과 번쾌는 동서지간이 되었죠

 

그의 외모는 우락부락하고 무시무시하게 생겼다고 하는데 그런 무섭고 거칠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예의가 바르고 과묵하며 강직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믿음직하고 의리를 중시하는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처음에는 그의 외모를 보고 겁을 먹다가 나중에는 그의 훌륭한 인품을 보고 계속 그를 잘 따랐다고 하죠

 

거기다가 그는 미천한 백정 출신이었던데 반해 매우 뛰어난 언변을 구사했고 훗날 역사가들은 번쾌를 백정이지만 선비의 고상한 품격이 느껴진다고 말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인품이 워낙 좋다보니 그는 아내 여수와도 굉장히 사이가 좋았다고 하죠

한편 209년에 진승 오광의 난이 일어나면서 진나라의 여러 군현들 역시 봉기 하고 있었는데요

 

당시 유방은 죄수들을 여산에 끌고가는 임무를 맡았다가 죄수들이 대부분 달아나는 바람에 책임을 피하기 위해 산속으로 도망쳐 숨어살았는데 유방을 반란의 우두머리로 삼기위해 번쾌는 소하, 조참의 부탁을 받고 그를 데리러 가게 되죠

그리고 유방이 거병할 당시 번쾌는 소하와 조참 등과 함께 2~3천명의 병사를 모아 거병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유방과 함께한 거의 모든 전장에서 괴력을 발휘해 엄청난 공을 세우게 되었고 수많은 성을 함락시킬때도 가장 먼저 성벽에 오르기도 하는 등 굉장한 활약을 하게 되죠

거기다가 번쾌는 무식하게 힘만 쌘건 아니었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기원전 206년, 유방이 함양을 점령했을때 굉장한 정치력을 발휘하는데 유방이 진나라의 궁으로 들어갔을때 수많은 미녀와 보물에 눈이 돌아가서 거기서 죽치고 신나게 놀 생각을 하자 번쾌는 장량과 함께 유방을 찾아가 거의 끌어내리다시피 하면서 유방이 쾌락에 빠지지 못하도록 했으며 그러자 유방은 군대를 철수시켜 함양 백성들이 약탈을 당하지 않게 했죠

하지만 번쾌의 가장 큰 업적은 바로 홍문연에서 발휘 되는데요

유방이 관중에 먼저 입성했다는 소식을 들은 항우는 굉장히 분노하며 유방을 죽여버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항우의 책사이던 범증도 이 기회에 반드시 유방을 죽여야 한다고 했지만 홍문으로 직접 찾아온 유방이 항우에게 사과를 하자 항우는 유방을 용서해 줬던 것이죠

그러자 범증은 항장에게 검무를 추다가 기회를 보고 유방을 죽여버리라고 명령했는데 이 범증의 계획을 눈치챈 장량이 연회장 입구에 서있던 번쾌에게 위태로운 이 상황을 알리게 된것이죠

그러자 번쾌는 무서운 기세로 연회장에 뛰어 들어왔는데 이때 얼마나 번쾌의 기세가 사나웠는지 항우도 놀라서 순간 무기를 들려고 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쨌든 번쾌가 연회장에 들어서자 항우는 누구인지 물었는데 장량이 유방의 호위무사 번쾌라고 대답해 주었죠

그러자 평소 남자답고 용맹한 사람을 좋아하던 항우는 검무를 멈추고 번쾌에게 술과 고기를 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항장은 유방을 위협하던 검무를 거둘수 밖에 없었죠

 

그리고 번쾌는 순식간에 술 한말을 들이켰고 앞에 놓여있던 돼지고기 생고기를 우적우적 씹어 먹어 깔끔하게 먹어 치워버렸습니다

그러자 항우는 그런 번쾌의 모습을 보고 참으로 대단한 장사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술을 더 마시겠냐고 번쾌에게 물었는데 이때 번쾌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는 소장 이옵니다. 사내대장부가 어찌 몇말의 술인들 사양하겠습니까?" 라고 대답한뒤 다시 엄청난 양의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항우는 그저 그의 술마시는 모습을 감탄하며 쳐다봤는데 그 사이에 화장실에 간다며 유방은 연회장을 몰래 빠져나왔고 술을 마시고 다시 밖으로 나온 번쾌와 함께 도망쳤다고 하죠

일부 기록에는 번쾌가 항우에게 "유방은 재물에 손도 안대고 항우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 유방을 해하려 하냐"며 "천하의 인심이 항우를 떠나버릴까 염려된다"고 말해 홍문연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진정시키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번쾌는 홍문연에서 빠져나와 유방에게 얼른 도망가자 했지만 항우가 불쾌하게 여길까 두려웠던 유방이 망설이자 저기는 칼과 도마고 우리는 생선에 불과한데 그런소리가 나오냐며 일갈했고 그제서야 유방은 얼른 도망쳐 버렸다고 하죠

그렇게 유방이 목숨을 잃을 위기에서 번쾌가 등장해 극적으로 그를 구해낼수 있었던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후 유방은 한왕으로 봉해져 구석진 서촉지역으로 쫓겨나게 되었죠

그리고 한나라군이 삼진을 시작으로 다시 중원으로 공격해 들어올때 번쾌 역시 참전해 초한대전에서도 맹활약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항우를 없애고 유방이 천하의 주인이 되자 그는 많은 공을 세웠던 만큼 많은 식읍을 받을수 있었죠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이후로도 번쾌는 연왕 장도, 초왕 한신, 한왕 신, 조나라 진희와 만구신, 연왕 노관, 대장군 조기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가장 많은 공적을 세웠고 이후는 우승상의 자리까지 올라갔습니다

 

훗날 한신이 초왕의 자리에서 회음후로 강등된 이후 번쾌를 개무시하는 일도 있었는데요

한신이 회음후로 강등되고나서 어느날 우연히 번쾌의 집앞을 지나게 되자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번쾌는 한신을 깍듯하게 모셨고 누추한곳을 찾아줘서 영광이라며 그를 반갑게 맞이해주었죠

그리고 얼마후 한신은 번쾌의 집을 나서면서 자신이 번쾌 따위와 동급이 되었다며 한탄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비록 한신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청난 공을 세웠던 번쾌이기도 하고 번쾌의 아내는 여태후의 동생이며 또한 유방이 처음 거병을 했을 당시부터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번쾌 이기에 한신은 다시 재기를 하려면 그와 친해져 도움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었는데 그를 이렇게 개무시하는걸 보면 정말 한신의 처세술은 최악이라 할만했죠

이때 생긴 고사성어가 바로 '수여쾌오(羞與噲伍)' 라는 말인데 이는 '번쾌와 한 무리가 된것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라는 뜻으로 <사기>의 회음후열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번쾌는 흉노에 항복을 했던 왕항과 조리에게 공격당해 많은 영토를 빼앗겼을때도 빼앗긴 땅을 다시 되찾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으며 진희와 만구신이 반란을 일으켰을때도 반란군을 개박살 내버리고 27개현을 항복 시켰으며 이 공으로 상국이 되었습니다

또한 기원전 196년 구강왕이던 영포의 반란을 일으키자 지병이 악화되고 심신이 지친 유방은 만사가 귀찮아졌죠

이후 유방은 문을 걸어잠근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오직 환관들의 시중만 받고 있었습니다

 

또한 반란 진압군 총사령관으로 태자였던 유영을 보내라고 했지만 여태후와 신하들의 반대로 실패하고 말았죠

그렇게 10여일이 지나도록 유방이 아무도 만날 생각이 없자 번쾌가 앞장서서 못들어가게 막는사람들을 밀어내고 궁안으로 튀어 들어갔고 수많은 대신들은 번쾌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번쾌는 유방의 앞으로 다가가 눈물을 흘리며 제발 정사를 다시 돌봐달라고 간청했고 그제서야 유방은 허허허 웃으며 몸을 일으켜 다시 정사를 돌보기 시작했죠

 

그리고 유방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영포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떠났는데요

양군이 대치하며 만났을때 영포는 유방을 향해 "황제가 되고 싶었다!" 라고 말했죠

이에 유방은 분노하며 직접 무장을 한채 병사들을 이끌고 전투에 나섰고 수많은 장수들이 깜짝 놀라 유방을 만류했지만 그는 듣지않고 맨앞에서 반란군과 맞붙어 싸웠습니다

황제가 직접 칼을들고 맨앞에서 싸우자 한나라군의 사기는 폭발적으로 올랐고 그렇게 반란군을 진압할수 있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런데 유방이 신나게 날뛰다가 그만 화살을 맞아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말았는데요

그리고 이어진 연왕 노관의 반란이 일어나자 부상을 입은 유방을 대신해 번쾌가 반란 진압군의 총대장이 되어 반란을 진압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번쾌의 목숨이 위태로워진 큰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죠

그것은 바로 번쾌가 노관의 반란을 진압하러 간사이 번쾌가 처가인 여태후 쪽과 결탁해 유방이 총애하던 척부인과 아들 유여의를 죽이려 한다고 모함한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자 유방은 격분하며 주발과 진평을 보내 번쾌를 처형하라 명령했죠

하지만 진평은 유방이 자초지종을 알아보지도 않은채 분노에 휩쌓여 내린 명령이라 생각했고 또한 황실의 외척이기도 하고 공신이기도 한 번쾌를 함부로 죽일수 없다고 여긴 진평은 주발과 상의한뒤 번쾌를 장안으로 압송해 그에 대한 처결은 유방에게 맡기기로 한것입니다

그렇게 번쾌는 압송되어 장안에 도착했지만 이미 유방이 세상을 떠난후였고 이후 모든 권력은 여태후가 차지했던 것이죠

 

덕분에 결국 번쾌는 다시 풀려날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평이 번쾌를 압송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의 아내 여수는 이때부터 진평을 증오하기 시작했고 그에 대한 안좋은 소문을 퍼트렸다고 하죠

이후 흉노의 선우인 묵돌이 여후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편지를 보내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는데요

 

그 내용은 바로 '나도 아내를 잃었고 너도 남편이 없으니 우리 서로 잘해보는게 어때?' 라는 내용이었는데 이를 보고 열받은 여태후는 당장 흉노에 쳐들어가자고 길길이 날뛰었죠

이때 번쾌는 여태후에게 10만의 군사만 자신에게 준다면 흉노를 개박살 내버리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계포가 나서서 '번쾌의 목을 잘라야 한다'고 얘기하며 '선제인 유방도 40만이나 되는 병력에 수많은 명장들까지 이끌고 갔다가 대패하고 돌아왔는데, 번쾌 따위가 어떻게 흉노를 이길수 있겠냐' 라고 했다고 하죠

 

모두가 여태후의 눈치를 보느라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지만 오직 계포만이 반대를 하고 나섰던 것인데 결국 여태후도 과거 초한대전을 승리로 이끈 역전의 명장들도 이미 다 죽거나 늙어버린 상황에 흉노에 대적할수 없다는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한번만 봐달라는 식으로 답서를 보냈다고 합니다

이후 번쾌는 계속해서 잘 먹고 잘 살다가 혜제 6년인 기원전 189년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죠

 

하지만 이후 여태후가 죽자 아들 번항과 아내 여수는 굉장히 비참하게 죽고 마는데요

진평과 주발이 여씨 일족을 몰아낼때 분노한 폭도들에 의해 맞아 죽게 되었다고 하죠

이후 번쾌의 가문은 서자인 번불인에 의해 이어지지만 번불인의 아들인 번타광이 사실 번불인의 아들이 아니라는것이 밝혀지면서 경제가 작위를 몰수해 번타광은 서인이 되어 버렸으며 그렇게 번씨는 처음 개백정을 하던 번쾌의 번씨로 돌아가버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후한말 조조는 자신의 부하인 허저를 두고 '나의 번쾌' 라고 불러주었다고 하죠

 

지금까지 유방의 최측근이자 항우에 비견되던 맹장, 번쾌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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