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후반에 문앙과 함께 무쌍을 찍은 오나라 최강의 무장 정봉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오나라에서 최강의 무력을 가진 장수를 뽑아보라고 하면 감녕이나 태사자 주태 등의 이름이 가장 많이 나오고는 했죠
하지만 정사의 기록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오나라 최강의 무장이라고 하면 이 인물의 이름이 많이 오르기 시작했는데요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정봉입니다
과연 정봉이 어떤 기록을 남겼길래 이런 평가를 받게 된 것인지 지금부터 함께 보시죠
정봉은 여강군 안풍현에서 태어났으며 그가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항상 서성과 함께 세트로 등장하면서 중반부부터 활약하기 시작하지만 정사의 기록에 따르면 그가 진정한 활약을 하기 시작한 것은 손권이 죽은 이후부터라고 하죠
정봉이 215년 또는 219년에 죽은 감녕의 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때 정봉의 나이가 적게 잡아서 20대 초반정도라고 가정한다면 손권이 죽은 252년 이후 정봉이 본격적으로 활약을 했다는 것인데 이때 정봉의 나이는 이미 50대가 된 후입니다
그렇게 활약하기 시작한 정봉이 마지막 전공을 세운 것은 269년이니 그때 그의 나이는 60을 훌쩍 넘기고 70을 바라볼 시점이겠죠
삼국지에서 노장의 투혼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황충이고 이 황충이 전성기를 보냈던 시절 그의 나이가 50대 중후반에서 60대 초중반정도였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정봉은 그 황충보다 더 많은 나이에도 맹활약을 한 것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정봉은 젊었을 때부터 그 용맹을 인정받아 감녕과 육손 반장등의 아래에서 싸웠는데 자신이 다치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싸움터에서 선봉으로 나서 매번 적장의 목을 베고 깃발을 뺏는 일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오나라의 정벌에 수차례 따라가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매번 적장을 베고 적의 깃발을 뽑는 으뜸가는 공을 세우면서 그 공로를 인정받아 편장군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편장군이 된 후로도 계속 전공을 세웠던 것인지 손권이 죽고 그의 막내아들인 손량이 뒤를 이은후에는 관군장군이 되고 도정후에 봉해졌다고 하죠
정봉이 도정후에 봉해진 252년은 위와 오 두나라에 무척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위나라는 251년에 사마의가 죽자 아들 사마사가 뒤를 이었고 오나라는 252년 손권이 죽은 후 제갈근의 아들 제갈각이 태부자리에 올라 황제 손량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리는 섭정을 하던 시기였죠
사마사와 제갈각 두 사람 다 이제 막 나라의 실권자가 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인정할만한 공적을 세워 자신의 기반을 확고히 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 생각을 먼저 실행에 옮긴 것은 바로 제갈각이었죠
제갈각은 241년 작피전투에서 오나라가 위나라에 패했을때 망가져버린 동흥의 제방을 다시 건설하고 그 산의 양쪽으로 성을 쌓으면서 사마사에게 한번 붙어보자는 간접적인 신호를 보냈습니다
공적을 세울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던 사마사는 제갈각의 도발에 바로 응했죠
이후 사마사는 제갈탄과 부하(실제 이름)라는 신하를 불러 어떤 식으로 오를 공격하면 좋을지 의견을 내보라고 명했습니다
먼저 부하라는 신하는 지금 당장 제갈각의 도발에 응하는건 좋은 생각이 아니며 일단 오나라와의 국경지역에 병력을 늘려 대치만 한 다음에 둔전을 실시하면서 장기적으로 기회를 노리다가 오에 혼란이 생겼을 때 병사들을 보내 공격하면서 제갈각을 압박하자고 했죠
아직 지지기반을 확고하게 쌓지 못한 제갈각이 공적을 세우기 위해 조급해져 있으니 오히려 그 사정을 역으로 이용하자는 의견을 낸 것인데요
하지만 다른 신하인 제갈탄은 오히려 즉시 공격을 할 것을 주장하며 위나라가 오나라를 침공할 때 자주 사용하는 공격로인 남군과 무창 동흥 3곳에 병사들을 보내 오나라에 대한 총공격을 하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의견을 냈죠
공적을 세우기 위해 마음이 급한 것은 사마사 또한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는 결국 제갈탄의 3로침공 의견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오나라 역시 지난 전투들에서 위나라가 이 3군데 길을 이용해 침공해 온다는 것을 경험한 탓에 이를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군과 무창에서 마주친 위와 오의 병사들은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만 할 뿐 별다른 전투가 벌어지지 않으면서 결국 동흥에서의 전투가 두나라의 승부를 가르는 상황이 되었죠
사마사가 제갈탄과 호준에게 7만 병력을 주어 동흥을 공격하게 하자 제갈각도 위를 상대하기 위해 직접 나섰는데 이때 정봉 또한 같이 출격했습니다
다른 장수들은 별다른 계책하나 내놓지 못한 채 위나라군이 제갈각이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놀라서 달아나기 바쁠 것이라며 그저 제갈각을 향해 아부를 늘어놓기 바빴지만 오직 정봉만은 지금 아군이 행군하는 속도가 느리니 이대로 적이 좋은 지형을 차지하게 두면 이기기가 어렵다고 말하고는 자신을 믿고 출격을 명하면 승리를 가져다주겠다며 자신감을 보였죠
이후 정봉은 자신이 거느린 3천 명의 병사들에게 무거운 갑옷을 벗게 한 후 가벼운 무기만을 지니게 하고는 빠르게 진격을 시작했는데요
위군의 선봉대는 갑옷을 벗고 뛰어드는 정봉의 군대를 보고는 그들을 비웃으며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다가 정봉의 강력한 기습에 박살이 나버렸고 정봉은 끝내 선봉대의 대장인 한종의 목을 베는 공을 세우게 됩니다
이후 오의 다른 장수들까지 도착하면서 제갈탄의 위군은 완전히 무너졌고 이때의 공으로 정봉은 멸구장군으로 승진한 데다 도정향후의 작위까지 받게 되죠
기록에 따르면 257년 위나라의 문흠이 오나라로 항복해 왔을 때도 정봉은 문흠의 뒤를 쫓아온 위나라의 추격군과 전투를 벌였는데 이때 정봉이 말을 타고 위군의 진영에 돌격해서 수백의 머리를 베고 그들의 깃발을 빼앗은 공로로 안풍후에 봉해졌다고 합니다
제갈각은 사마사에게 이긴 후 합비신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20만의 병사를 징병해 위를 공격했지만 결국 패배했고 무리한 징병과 폭정으로 백성들과 관리들의 비난을 산 끝에 결국 손준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죠
손준이 죽은 후에는 사촌동생인 손침이 오나라의 최고권력자가 되었는데 손침은 오나라의 2대 황제 손량을 자신의 손으로 폐하고 손휴를 황제로 세우는가 하면 수많은 대신들을 제멋대로 참수하는 등 그 권세가 황제 손휴를 능가했습니다
하지만 손휴는 이전 황제인 손량처럼 허수아비가 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은밀히 정봉을 불러들여서는 손침을 없애는데 도움을 달라 요청했고 정봉은 사냥을 핑계로 손침을 불러들인후 처리해 버리자는 계책을 냈죠
그렇게 정봉의 계책이 적중하면서 결국 손침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고 정봉은 그 공로로 대장군에 봉해지게 됩니다
정사의 기록에 따르면 정봉은 그 용맹함이 장료나 여포와 같았다고 하며 오나라가 멸망한 이유에 대해 분석한 변망론이라는 책에서도 그에 대해 기록하길 '정봉은 말을 타고 무기를 든 채 적의 진중으로 돌격해서 수백 명의 머리를 베고 적의 깃발을 빼앗기를 밥먹듯이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고 하죠
그 당시 부대의 깃발인 군기는 그 부대의 상징으로 병사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물건인데 그걸 혼자 돌격해서 빼앗아 왔다는 건 정봉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정세가 혼란한 탓에 급하게 징병되면서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한 병사들도 많았던 삼국지의 전반부에 비해 삼국이 정립된 후반부의 병사들은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정예병사들이 많은데 그런 정예병사들을 상대로 무쌍을 찍은 기록을 남긴 것이 바로 정봉이기 때문에 문앙과 함께 삼국지 후반의 최강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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