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와 정사 차이.
삼국지 연의가 허구 소설인 이유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는 실제 역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작가의 입맛에 맞게 각색한 부분이 많다고 하는데요
나관중의 각색은 밋밋할 수 있는 부분을 극적으로 바꿔주면서 지금까지도 삼국지가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을 수 있도록 해줬지만 덕분에 실제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일들과는 다르게 기록된 경우도 많다고 하죠
오늘은 과연 삼국지연의와 정사 간에는 어떤 차이점들이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삼국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물 중 하나인 관우는 청룡언월도와 적토마를 타고 전장을 누비는 모습이 상징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관우에게 청룡언월도와 적토마 같은 것은 없었다고 하죠
그리고 관우가 유비 장비와 마치 형제처럼 가까웠던 사이인 것은 맞지만 정말로 그들과 의형제를 맺었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당연히 복숭아밭에서 의형제가 되기로 맹세했다는 도원결의 또한 모두 나관중의 허구이며 실제 역사서에는 그런 기록이 전혀 없다고 하죠
그저 유비가 관우 장비와 같은 침대를 함께 쓸 만큼 가까웠다는 기록만이 있습니다
그리고 연의에서는 관우가 자신의 의형제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척 오만한 모습을 보였다고 나오는데 기록에 따르면 관우는 일반 병사들에게는 잘 대해주었지만 사대부에게는 강하게 나오는 강약약강 스타일이었다고 하네요
그의 동생인 장비는 연의에서 술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중요한 순간 일을 망치더니 마지막에는 술을 마시고 부하를 매질하다 목숨을 잃게 되지만 정사에서는 장비가 술을 좋아했다는 기록이 없다고 하죠
그리고 뛰어난 무력에 비해 단순무식한 성격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장비는 유비군 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만큼 뛰어난 통솔력을 가진 야전군 지휘관 에이스였다고 합니다
만약 장비가 연의에 나온 대로 부하들을 거칠게 다루기만 했다면 그런 뛰어난 통솔력을 보여주며 부대를 잘 지휘하기가 힘들었겠죠
정사에 따르면 장비는 군자라고 할만한 인물에게는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그렇지 못한 소인배는 경멸하고 무시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부분이 부하들에게 가혹했다는 것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음은 삼국지에서 무력최강자로 알려져 있는 여포인데 여포의 경우 실제로도 용맹한 장수로 이름나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연의에서 나왔던 동탁 토벌전당시 호로관에서 유비 삼 형제와 대결을 벌인 것이나 무안국 공손찬 등 다른 제후들의 장수들과 싸운 기록 그리고 조조와의 대결에서 허저 전위 하후돈 등 무려 6명의 장수를 한꺼번에 상대했다는 기록은 모두 나관중의 창작이라고 하죠
정사에 기록된 여포의 1대 1 대결은 곽사와의 싸움이 유일하다고 하네요
삼국지연의 그리고 모 게임회사의 삼국지시리즈에서 여포의 이미지 때문에 여포가 단순무식하게 돌격만 할 줄 아는 멧돼지로 알고 계신 분들도 많지만 역사 속에서의 여포는 삼국지 시대 군사적인 능력으로는 최강자라고 할 수 있는 조조를 상대로 야전과 수성전을 포함해 몇 번이나 승리를 거뒀을 만큼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이 매우 뛰어났던 장수입니다
다만 여포는 어느 정도 규모까지의 부대를 끌고 집단전투를 하는 능력은 뛰어났지만 한 세력의 대장으로서 큰 그림을 그리고 상황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졌기 때문에 결국은 조조에게 패하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연의에서는 여포가 정원을 양아버지로 섬겼다가 그를 죽이고 동탁을 아버지로 섬기면서 장비에게 아비를 셋이나 둔 패륜아라는 욕을 먹기도 하는데 여포가 주인을 밥먹듯이 바꾼 건 맞지만 아버지를 바꾼 적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의에서는 여포가 초선만을 사랑하는 순정남으로 나오지만 실제로 여포는 부하들의 아내를 건드릴만큼 호색한이었다고 하네요
다음은 연의에서 제대로 너프를 맞은 인물 중 하나인 고순입니다
연의에서는 그저 말없고 우직한 여포의 부하장수중 하나로 등장하며 마지막까지 여포를 배신하지 않고 충성을 보이는 모습만이 장점인 장수일뿐이지만 실제 고순은 함진영이라는 부대를 이끌던 여포군의 에이스였으며 유비 하후돈과 전투를 벌여 그들을 격파해 버릴 만큼 뛰어난 통솔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연의와 기록이 일치하는 부분은 고순이 여포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는 장수였다는 것이죠
심지어 여포는 고순이 충성스러운 장수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를 믿지 못한 채 고순의 군사를 모두 빼앗아버리고는 친척이었던 위속에게 주었고 전투가 있을 때만 위속의 군사를 고순에게 잠시 빌려줘서 싸우게 했습니다
말하자면 대우는 안 해주면서 필요할 때만 고순을 이용해 먹겠다는 굉장히 염치없고 비열한 행동을 한 셈인데 여포의 그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고순은 그를 원망하는 마음을 전혀 품지 않았다고 하네요
조조와 함께하다가 여포의 책사가 된 진궁은 연의에서는 조조가 동탁을 암살하다가 실패하고 도망갈 때 조조의 의기에 감동해서 그를 따르기로 했지만 조조가 여백사 일가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모습에 실망해서 조조 곁을 떠나 여포에게로 갔다고 되어있죠
조조가 세력을 일으킬 때 진궁이 함께 했던 것은 분명 사실이며 조조가 진궁을 매우 아꼈던 것 또한 사실이지만 조조가 여백사를 죽일 때 진궁은 그곳에 있지도 않았으며 그가 어떤 이유로 조조를 배신하고 여포에게로 갔는지는 자세하게 기록이 나와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조조가 서주대학살을 일으켰을 때 그 끔찍한 학살극을 보고 조조에게 실망해 그의 곁을 떠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그 외에 다른 유명한 일화들에 대한 사실도 알려드리자면 관우가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의 목을 베고 왔다는 일화는 거짓이며 사실 화웅은 손견과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하죠
방천화극이나 청룡언월도 장팔사모 같은 무기들은 모두 삼국시대 이후에나 등장한 것으로 모두 나관중의 창작이라고 합니다
유비가 안휘현의 현위로 있던 시절 장비가 독우를 매질했던 사건에서 사실 독우를 때렸던 것은 장비가 아니라 유비였고 조조의 밑에 있던 유비세력이 원술을 치고 난 후 서주로 갔을 때 관우가 차주를 죽이는 장면에서도 실제로 차주를 죽인 것은 유비였죠
조조의 곁을 떠난 관우를 뒤쫓았다가 죽은 것으로 알려진 채양도 201년 여남에서 유벽의 무리와 함께하던 유비와 전투를 벌이다가 유비에게 격파당하며 그에게 목숨을 잃었던 것이라고 하네요
관우가 조조를 떠날 때 자신의 길을 가로막은 여섯 장수를 벤 오관참육장 사건도 모두 연의에서 지어낸 허구이며 정사에서 조조는 관우를 쿨하게 보내줬다고 합니다
제갈량이 오기 전 유비의 참모로 활약했다고 알려진 서서는 유비의 밑에 있을 때 별다른 활약을 한 것이 없고 조조가 거짓으로 서서 어머니의 편지를 보냈다는 것 또한 사실이 아니며 서서의 어머니가 위군에 붙잡히면서 위에 항복을 한 것이라고 하죠
유비의 밑으로 들어간 제갈량이 처음으로 활약한 박망파 전투에서도 하후돈을 물리친 것은 유비였다고 하는데요
박망파 전투가 일어난 것이 202년인데 제갈량이 유비를 섬기기 시작한 것은 207년부터였다고 합니다
조조가 남방정벌을 시작하자 조조에게 형주를 내주고 항복한 유종은 조조가 보낸 부하들에게 암살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대접을 받았으며 적벽대전에서 손권을 비롯한 오나라의 인물들을 설득해 위와 싸우게 만든 것도 제갈량이 아니라 주유가 한 일이었다고 하죠
연의에서는 마침내 적벽대전에서 전투가 벌어지자 감택이 황개의 편지를 들고 가 조조를 속이고 방통 또한 쇠사슬로 배를 묶는 연환계를 써서 조조군을 혼란에 빠트렸다고 나와있지만 감택은 전쟁에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는 학자이며 방통 또한 적벽대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제갈량이 동남풍을 불러왔다는 것 또한 당연히 소설이며 실제로 적벽대전에서 맹활약을 한 것은 주유와 유비라고 하죠
연의에서 주유는 몇 번이나 제갈량에게 농락당하다가 마지막에는 서천을 정벌하러 가는 척 유비를 치려는 계책마저 제갈량에게 들통나면서 분통을 터뜨리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주유는 실제로 제갈량과는 아예 만난 적도 없으며 서천을 정벌하려는 그의 계획도 유비와 제갈량을 속이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구상하던 것이라고 합니다
촉의 장송이 조조에게 항복하려다 푸대접을 당하고 돌아오는 길에 유비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고 감동해서 준비해 온 서촉의 지도를 바치는 장면도 사실은 지도를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라 유비가 서촉의 지형에 대해 물어보자 장송이 그 자리에서 바로 지도를 만들어서 유비에게 바친 것이라고 하네요
유비가 한중왕에 오른 후 관우 장비 조운 마초 황충을 오호대장군으로 임명했다고 알려졌는데 오호대장군은 정사에서는 없었던 칭호이며 조운을 뺀 나머지 4명을 각각 전장군 우장군 좌장군 후장군의 사방장군으로 임명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219년 번성 전투에서 관우가 독화살에 맞자 화타가 치료했다는 일화도 있는데 사실 화타는 208년 병에 걸린 조조를 치료해 주는 것을 거부하다가 감옥에 갇힌 후 고문을 당해 죽은 상태였다고 하죠
제갈량이 다섯 차례에 걸쳐 위나라를 침공하는 북벌을 일으켰을 때 1차 북벌에서 사마의의 계략으로 위가 가정을 다시 빼앗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당시 위군의 총사령관은 장합이었으며 실제로 가정전투에서 활약한 것 또한 장합이었습니다
가정 전투 패배 후 사마의가 추격을 해왔을 때 제갈량이 일부러 허세를 부리며 성을 비워두는 공성계를 펼치자 두려움을 느낀 사마의가 후퇴했다는 일화도 있는데 사실 그 당시 사마의는 형주의 도독이었기 때문에 완성에 있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제갈량이 자신이 죽은 후 사마의가 추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을 닮은 나무인형을 내세우며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냈다는 이야기 또한 유명한데 정사에서는 제갈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마의가 병사들을 끌고 추격을 해오자 강유와 양의가 오히려 추격해 오는 위군을 공격할 것처럼 북을 울리며 대응했고 그 기세에 놀란 사마의가 더 이상 추격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물러난 것일 뿐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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